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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5

       

       

       

       

       “그래, 그래. 내가 네 이모란다.”

       

       이드밀라는 아르를 마주 껴안았다. 

       

       “카르사유의 아이에게 이 말을 직접 듣는 날이 올 줄이야….”

       

       이드밀라의 표정에는 많은 감정이 섞여 있었다. 

       눈가가 약간 촉촉해지기까지 한 걸 보니 카르사유와 얼마나 각별한 사이였는지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르의 등을 말없이 두드려 주던 이드밀라는, 감상을 정리한 듯 일어섰다. 

       

       “이제 출발해 보자꾸나. 어디 보자…. 어느 곳부터 정리를 해 볼까. 역시 지부부터 화끈하게 쓸어 버리는 게….”

       

       그 말에 나는 지도의 남부 내륙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아무래도 이쪽에 있는 작은 세력들부터 깔끔하게 치우고 가는 게 낫지 않을까요? 지부부터 공략했다가 만약 타 지부에서 습격 사실을 알고 내륙 쪽 세력에게 분란을 유도하도록 하면 괜히 그쪽에 있는 사람들의 목숨이 위험해질 수 있으니까요. 그걸 막으러 갔다가 지부에서 도주를 하면 까다로워지기도 하고요.”

       

       꽤 그럴듯한 근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드밀라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흠. 인간들이 서로 싸우든 말든 나야 딱히 관심은 없다만….”

       “아.”

       

       생각지 못한 반응에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맞다. 드래곤 입장에서는 그렇긴 하겠구나.’

       

       인간의 도시를 지키는 건 어디까지나 인간인 내 입장.

       

       ‘드래곤은 대륙의 수호자지, 인간의 수호자가 아니니까.’

       

       지금 이드밀라의 관심사는 마왕의 세력을 조지는 데에 있지, 인간을 지키는 데에 있지 않다. 

       

       아무래도 내가 사람이라 사람 입장에서 생각하게 되는데, 철저히 드래곤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인간이란 종족은 그냥 대륙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종족 중 하나일 뿐이다.

       

       ‘착한 사람도 물론 많지만, 그중 나쁜 인간들이 행하는 각종 끔찍하고 잔악무도한 악행들의 수준을 생각하면….’

       

       드래곤이 ‘어쩌면 인간을 청소하는 것이 대륙에 더 보탬이 되는 게 아닐까’ 판단하고 쓸어 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

       

       ‘당장 어디 질 나쁜 비공식 용병 길드만 가도 돈이 된다면 해츨링도 서슴없이 납치해다가 팔아먹고도 남을 사람들이 줄을 섰을 테니.’

       

       물론 기본적으로 드래곤은 생태계에 직접 간섭하지 않으니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겠지만….

       

       여튼, 드래곤 입장에서 인간들끼리 싸우는 걸 보는 건 어쩌면 인간이 마물들끼리 싸우는 걸 보는 것과 비슷할지도 몰랐다. 

       

       ‘실제로 원래 스토리에서는 인간들끼리 파이어 브레이슬릿을 두고 싸우는 걸 보고 화가 나서 브레스로 쓸어 버렸으니….’

       

       내가 그런 생각을 하며 어떻게 설득할지 생각하고 있는데, 어느새 귀여운 용 모드로 돌아간 아르가 손을 번쩍 들며 끼어들었다. 

       

       “쩌기에 있는 길드 아조씨들, 아르한테 어어엄청 마싰는 케이크랑 커피 줘써여! 착한 아조씨들은 주그면 안 대.”

       

       그러자 팔짱을 끼고 있던 이드밀라의 표정이 단박에 풀렸다. 

       

       “아유, 그랬어? 아르는 케이크랑 커피를 좋아하는구나.”

       

       그러고는 아르를 안은 채 나를 보며 말했다.

       

       “당연히 내륙의 세력부터 처리하러 가야지. 원래부터 그리할 생각이었다.”

       “…….”

       

       아르의 힘은 대단했다.

       

       ***

       

       레어를 떠나기 전, 이드밀라는 레어를 정리했다. 

       

       솔직히 내 눈에는 이런 휑하고 딱딱한 동굴에서 정리할 게 뭐가 있나 싶었지만, 본룡이 보기에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흐트러져 있는 돌 무더기를 정리하고, 파손된 부분이 있으면 다시 메꿔 넣은 후, 이드밀라는 보물상자 쪽으로 갔다. 

       

       “아, 맞다. 파이어 브레이슬릿. 이거 지금 다시 돌려드릴게요.”

       

       마침 생각난 김에 내가 팔찌를 내밀자, 이드밀라가 고개를 저었다.

       

       “레온이라고 했나. 보아하니 이쪽 엘프에 비해 굉장히 약한 모양인데.”

       

       그거야 당연하죠. 실비아 씨는 9성 검사고 저는 전투 관련 특성도 하나 없는 평범한 인간인데요.

       

       “그래서야 어디 가서 은룡의 계약자라고 할 수 있겠나. 그거라도 끼고 다니면서 필요할 때마다 쓰도록 해.”

       

       그 말에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이걸 제가요?”

       “니가요.”

       “하지만…. 파이어 브레이슬릿은 감당할 수 있는 인간이 쓰지 않으면 힘에 잡아먹힐 텐데….”

       

       그러자 이드밀라는 피식 웃었다. 

       

       “너는 아직 네가 다른 인간들과 같다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로구나.”

       

       이드밀라는 아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은룡의 계약자라는 자리는 네 생각보다도 훨씬 격이 높은 자리다. 고작 이런 유물이 그 격을 잡아먹을 수는 없다는 이야기지.”

       “아하….”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다. 

       어쨌거나 나는 아르라는 존재와 단단히 결속되어 있는 존재.

       

       ‘실감은 아직 안 나지만, 이미 인간의 수명을 초월했다고도 하고.’

       

       그러니 일반인이 유물을 사용할 때와는 다르게 생각을 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막 쓰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잡아먹히지는 않겠지만, 반대로 유물이 못 버티고 깨져 버릴 수도 있거든. 내가 준 유물을 깨 먹을 생각은 아니겠지?”

       “그, 그럼요! 소중히 잘 쓰겠습니다.”

       

       나는 거듭 인사를 한 뒤, 조심스럽게 팔찌를 착용했다. 

       

       우웅.

       

       그러자 팔찌는 마치 내 몸과 공명하듯 반응하며, 곧 내 손목에 딱 맞는 크기로 변했다. 

       

       ‘오…. 신기하다.’

       

       영롱한 팔찌에 새겨져 있는 레드 드래곤의 문양이 더욱 빛나 보였다. 

       

       [유물 : 파이어 브레이슬릿을 착용했습니다.]

       [착용 보너스 효과로 마력 스탯이 (50)만큼 상승합니다.]

       [화염 마법 사용 시 기본 위력이 크게 증가합니다.]

       [특수 효과 : 염룡의 힘 개방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와. 직접 껴 보니까 사기템이라는 게 확 체감이 되네.’

       

       마력 스탯을 깡으로 바로 50 늘려주는 것뿐 아니라 화염 마법 사용 시 위력 보너스에 특수 효과까지….

       

       ‘이러니까 사람들이 유물 갖다 싸우지.’

       

       마력 스탯을 깡으로 50이나 올려 준다는 건, 당장 파이어 볼밖에 못 쓰는 1서클짜리 하급 마법사도 단숨에 3~4서클급으로 만들어 준다는 소리다. 

       

       ‘심지어 깡스탯이라 이미 마력 스탯이 높은 사람한테는 더더욱 효과가 뛰어날 거야.’

       

       스탯은 올라갈수록 점점 올리기가 힘들어지니까.

       

       <특수 효과 : 염룡의 힘 개방>

       일시적으로 유물에 깃든 염룡의 힘을 개방하여 모든 종류의 화염 마법을 시전할 수 있으며, 위력이 추가로 대폭 증가합니다.

       

       ‘…이거 특수 효과가 진짜 사기네.’

       

       1서클짜리 마법사가 마력 스탯을 늘리고 화염 마법의 위력 증가 효과를 받아 봤자, 사실 파이어 볼을 3~4서클급으로 쓰는 게 전부일 뿐.

       플레임 스피어라든가 파이어 월이라든가 하는 상위 마법을 쓸 수 없다면 반쪽짜리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만약 특수 효과를 개방하게 된다면….

       

       ‘플레임 스피어가 뭐야. 이론 상으로는 메테오도 소환 가능하게 되는데.’

       

       물론 마력 스탯이 받쳐 주지 않으니 1서클 마법사가 아무리 메테오를 쓴다 해도 내가 생각하는 그 메테오가 안 나오겠지만.

       

       ‘중요한 건 화염 마법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다는 것.’

       

       심지어 이 효과는 마법사에게만 해당되는 효과가 아니다. 누구든 ‘염룡의 힘’을 개방하기만 하면 화염 마법에 한해서는 일정 시간 동안 자유롭게 사용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일반인이든, 용병이든 이 유물만 있으면 마력 스탯 뻥튀기와 함께 화염 마법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것.

       

       ‘이거 뺏으려고 아수라장이 벌어지는 이유를 알 것 같네.’

       

       이 정도라면 누구라도 힘의 유혹에 빠져들 만하다. 

       

       물론 큰 힘에는 큰 대가가 따르고, 쓸 자격이 없는 사람이 염룡의 힘을 마구 개방했다간 바로 유물에 잡아먹혀 폭주해 버리고 말겠지만 말이다.

       

       ‘이런 어마어마한 물건을 나한테 그냥 공짜로 주시다니.’

       

       게다가 공교롭게도 나는 이 유물을 가장 알차게 쓸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굳이 염룡의 힘을 개방하지 않더라도, 아르에게 화염 마법을 빌려서 쓸 수 있으니까.’

       

       신뢰의 계약 특성의 부가 효과로, 마법 천재인 아르에게 어떤 화염 마법이든 기본적으로 빌려 쓸 수 있으니, 1서클 마법사 예시처럼 반쪽짜리가 될 일이 애초에 없다. 

       

       ‘거기서 필요할 때만 염룡의 힘을 개방하면, 다양한 화염 마법을 자유롭게 바꿔 가면서 더 강해진 위력으로 쓸 수 있게 되는 거고.’

       

       나는 뜻밖의 횡재에 만족스럽게 팔찌를 만지작거렸다. 

       

       “아주 좋아 죽는구나.”

       “크, 크흠….”

       “됐고, 다음은…. 아. 이게 있었지.”

       

       이드밀라는 헤카르테교 녀석들이 선물, 아니 뇌물로 두고 간 자수정을 집어들었다. 

       

       보석 보는 눈이 높은 드래곤에게 줄 거라 나름 고심해서 고른 듯,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꽤나 세공 퀄리티가 좋아 보였다. 

       

       “이건 내 보석함에 따로…. 응?”

       

       전용 보석함으로 옮겨 두려던 이드밀라는 문득 아래쪽에서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숙였다. 

       

       “…아르야?”

       

       반짝반짝.

       

       아르가 손을 꼬옥 쥔 채 반짝이는 눈으로 자수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통통한 꼬리도 왠지 모르게 들뜬 듯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

       

       이드밀라는 잠시 할 말을 잃더니 피식 웃었다. 

       그리고 아르에게 자수정을 내밀었다. 

       

       “자. 아르야. 이거 너 가지렴.”

       “쀼, 쀼우?!”

       

       아르는 그 말에 정신을 차린 듯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 아르 그거 달라구 본 거 아니에여! 안 줘도 대여!”

       

       하지만 꼬리는 솔직하게 바닥을 톡톡 두드리고 있었다. 

       

       “아르야, 그런 말을 하려면 꼬리라도 가만히 두고 해야지.”

       “쀼, 쀼우…!”

       

       아르가 화들짝 놀라 꼬리를 멈추자 이드밀라가 웃음을 터뜨렸다.

       

       “기분 좋을 때 꼬리로 바닥 두드리는 것도 어째 카르사유를 꼭 빼닮았구나.”

       

       이드밀라는 아르의 손에 자수정을 꼬옥 쥐여 주었다. 

       

       “자, 이모가 조카에게 주는 용돈이다. 보관하든 팔아 쓰든 마음대로 하렴.”

       

       아르는 그 말에 어쩔 수 없이 자수정을 받아 들었다. 

       

       “고, 고마어여 이모!”

       “그래, 그래.”

       

       아르는 행복한 얼굴로 자수정을 조물거리다가, 아공간을 열었다. 

       

       보석 전용 아공간인 듯, 그곳에는 내가 준 루비와 용병 길드장에게 받은 블루 사파이어가 고이 모셔져 있었다.

       

       그중 가장 초라한 루비를 본 이드밀라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건 아직 세공도 안 했고 가치도 별로 없어 보이는데? 내가 더 좋은 루비로 바꿔 줄까, 아르야?”

       

       하지만 그 말에 아르는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안 대여! 이거는 레온이 처음으루 선물해 준 소중한 루비에여.”

       

       아르는 얼른 자수정을 넣고 행여 루비를 빼앗길세라 바로 아공간을 닫았다. 

       그리고 나에게 쪼르르 달려와 안겼다.

       

       그 모습을 본 이드밀라는 피식 웃었다. 

       

       “그래, 계약자는 계약자로구나.”

       

       ***

       

       레어 밖으로 나온 우리는 일단 로멜드의 정보 길드로 가기로 했다.

       

       혹여나 지도에 표시가 안 된 자잘한 세력이 있는지 교차 검증을 해 보기 위해서였다. 

       

       나는 산기슭에 숨겨 놓은 마차 쪽으로 이드밀라를 안내했다. 

       

       “…설마 너희들, 이걸 타고 온 거냐?”

       “네. 그래도 아공간에 짐을 다 넣고 왔더니 3일 정도밖에 안 걸렸습니다.”

       

       이드밀라는 한숨을 쉬었다. 

       

       “아서라. 당장 매스 텔레포트(Mass Teleport)라도 써서…. 아니지, 내가 잠들기 전과 지형이 달라졌을 테니 좌표는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전까진 쓰기가 그렇겠군.”

       

       혼자 무언가를 잠깐 생각하던 이드밀라는, 별안간 아공간을 열더니 말과 마차를 전부 아공간에 쑥 집어넣어 버렸다.

       

       “히히힝?!”

       “걱정 마라. 목숨에 지장은 없을 거다.”

       

       아공간을 닫은 이드밀라는, 곧 드래곤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턱짓을 하며 말했다. 

       

       “뭐 하나. 어서 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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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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