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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5

       일단 와있던 경찰과 공무원들을 모두 보낸 뒤, 우리는 다시 응접실에 모여앉았다.

        

       사용인은 당연히 소희와 양혜인을 제외하면 한 명도 없었다. 다들 내 눈치를 보고 있다고는 하지만 신뢰할 수는 없으니까.

        

       사실 양혜인도 여기 있는 세 친구만큼 신뢰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일단 경찰들의 얼굴이 빳빳하게 굳어있던 것은 아마 양혜인 때문이었던 것 같으니 여기 함께 앉아있도록 했다.

        

       물론 내 쪽에도 꽤 큰일이 일어나긴 했다. 그 공무원이 쓸데없이 좋은 눈썰미로 사라가 처했던 상황을 눈치챈 것 같으니까.

        

       덕분에 내 쪽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던 문제점을 떠올렸으니 고마운 일이기도 하지만.

        

       문제는 내가 건드리지 않았던 최나경을, 이제는 저 사람들이 건드릴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방문도 이번 한 번으로는 절대 끝나지 않을 것이고.

        

       ……그리고 내가 최나경에게 가진 감정이 그렇게 깊지 않더라도, 사라가 최나경에게 가진 감정은 상당히 깊고 어두운 것이다.

        

       당장 최나경 곁에 가지 않는 이상 대놓고 드러나지는 않지만, 사라의 마음 깊은 곳에는 아직도 ‘어머님’으로 남아있었다. 그게 사라가 최나경을 만나고 싶지 않아 하는 이유이기도 했고.

        

       만약 이번 일이 계속 진행된다면 경찰 측이 아무리 막아도 최나경 쪽에서 나에게 접촉해 오려 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지금 당장 일어난 일은 아니다. 나는 아직 공무원에게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않았고, 당연히 공무원도 뭔가 있었다고 추측만 하고 있을 뿐, 명확한 증거나 증언을 받아내지는 못했으니까.

        

       게다가,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증거가 아니라 증언뿐이다. 물질적인 증거 없이 증언만으로는 처벌받기 힘들겠지. 괜히 최나경 성질만 긁어놓게 될지도 모른다.

        

       최나경 정도 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변호사도 어마어마하게 비싼 변호사를 쓸 테니까. 명확한 물증이 없다면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갈 거다.

        

       “……그래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

        

       자리에 앉은 나는 물었다.

        

       분명 내가 그 공무원과 방으로 올라갈 때만 하더라도 경찰들의 분위기가 그렇게 살벌하지는 않았었다. 저택의 크기에 조금 당황했을 뿐 화를 낼 이유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공무원과 내려왔을 때는 입을 꾹 다문 채로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그 사람들이 여기서 나갈 때까지도 쭉 그런 표정이었다.

        

       내 질문에, 하늘이, 소희, 수아는 아무 말 없이 양혜인을 바라보았다. 자신들이 꺼낼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 시선을 따라, 나도 시선을 양혜인에게로 옮겼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내 질문에, 양혜인이 주저하듯 잠시 침묵했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제가 이 저택에서 했던 일에 대해 증언을 했습니다.”

        

       “이 저택에서 했던 일?”

        

       나는 미간을 찡그리고 잠시 생각했다.

        

       양혜인이 스스로 직책과 하는 일을 소개했다는 말은 당연히 아니겠지. 그 정도로 경찰들이 그렇게 심각한 표정을 지을 이유가 없다. 부르주아 배때기에 죽창 꽂으러 온 공산당원도 아니고.

        

       ……그보다는, 문자 그대로 ‘양혜인이 이 저택에서 행했던 일들’에 대한 증언이었을 거다.

        

       ……그리고 양혜인이 이 저택에서 하고 있던 일들은…….

        

       “하아.”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면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러니까, 저 경찰분들께…… 양혜인 씨가 이 저택에서 저지른 ‘아동학대’에 대해 자백했다는 말인가요?”

        

       내 말에, 양혜인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양혜인은 평소와는 다르게 몹시 긴장한 표정이었다. 사실 상황이 지금 같지만 않았다면 나는 그 표정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을 거다. 양혜인이 이렇게까지 인간적인 표정을 지어 보일 거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으니까.

        

       ……그래,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그런 ‘이미지’는, 양혜인이 지난 3년간 사라의 직속 메이드였던 것 때문에 더 뇌리 깊숙이 박혀있었다. 한 어린아이가 3년 동안은 서서히 망가지는 것을 보면서도 별다른 조치 없이 있다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들어버린 사람 중 하나였으니까.

        

       그런 사람이, 어째서 경찰에게 갑자기 그런 고해성사를 한 건가.

        

       ……대충은 알 것 같기는 했다.

        

       양혜인은 내가 사라의 몸에 들어오고 나서 조금씩 바뀌어왔다. 거의 드러내지 않던 감정들도 서서히, 점점 더 많이 드러내고 있었고, 하는 행동들도 대체로 사라를 위한 것들이었으니까.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갑자기 변할 수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어쩌면 원래의 사라보다 훨씬 더 감정적인 나를 보고 ‘공감’이라는 걸 하게 되었을지도 모르지. 그전까지는 사라를 인형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고.

        

       “대체 왜? 지금 이 타이밍에?”

        

       “…….”

        

       나는 목소리에 조금 짜증을 담아서 물었다.

        

       잘못한 것을 처벌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게 법에 따른 처벌이건, 개인 간의 대화로 해결하건, 스스로 그런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좋게 봐줄 수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양혜인을 내치지 않고 있었던 거고.

        

       법에 따라 처벌받겠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건 존중해줄 수 있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피해자에게 사과하는 것이 옳은 일 아닌가?

        

       그런데, 이런 식으로 갑작스레 행동하는 것은……

        

       “사실 저는,”

        

       내가 혼자 분개해서 속으로 씩씩거리고 있는데 양혜인이 입을 열었다.

        

       “여기서 해고된 직후에도 비슷한 행동을 하려고 했었습니다.”

        

       “…….”

        

       일을 그만두고 나갔을 때 뭘 하고 있었나 했더니 경찰서라도 갔던 모양이다.

        

       그렇게 속이 시원해지고 싶었나요?

        

       그런 말이 나오려는 걸, 나는 꾹 참았다.

        

       결국 이 일에서도 나는 당사자가 아니었으니까.

        

       나는 양혜인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당한 적이 없다. 방치되었던 것은 내가 아니라 사라였다. 만약 양혜인을 원망하더라도 내가 아니라 사라가 해야 했고, 사과받아도 사라가 받아야 했고, 용서한다고 하더라도 사라가 용서해야 했다.

        

       …….

        

       사라는 아까부터 아무 말도 없었다.

        

       “그러니까, 그 생각은 이미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던 생각이라는 말이죠?”

        

       나는 확인하듯 물었다.

        

       “…….”

        

       양혜인은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그래, 만약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생각이라면 이제 와서 행동했을 리는 없지.

        

       이런 생각을 품게 된 것은, 적어도 나를 만난 이후였다.

        

       그렇기에 더 화가 났다.

        

       결국 사라는,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도 관심받지 못하고 있는 셈이었으니까.

        

       …….

        

       사라는 아무 말도 없었다.

        

       아니, 이곳에 앉아있는 누구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결국 갑자기 일이 꼬이기 시작한 것에 분통을 터뜨린 나 때문에 분위기가 엄청나게 어색해지고 말았다.

        

       내가 그런 태도를 보이는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인지, 하늘이, 소희, 수아는 밤이 될 때까지 내 눈치만 보았다. 나는 나대로 생각에 잠겨있었고.

        

       오히려 양혜인은 나의 그런 태도가 당연하다는 듯 차분한 표정이 되어버려서 더 화났다.

        

       물론 본인의 죄를 알고 사과할 줄 아는 것은 좋은 일이다. 과거를 뉘우치고 죄를 청산할 수 있을 정도로 생각이 깊은 사람은 얼마 없으니까.

        

       하지만, 혼자 그렇게 생각하고 혼자 후련해지면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나도 알고 있다.

        

       정작 그렇게 화가 나는 내가 당사자가 아니고, 나에게 그 말에 반박할 권리가 없다는 거.

        

       그래서 더 화가 나는 거겠지. 옆에서 지켜볼 수만 있는 사람이니까.

        

       ……이만 잠이나 자자.

        

       침대에 누워 속으로 분을 삭이고 있으니, 사라가 조용히 속삭여왔다.

        

       나랑 얘기 좀 해.

        

       …….

        

       이대로 잠이 들면, 사라의 얼굴을 봐야겠지.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결국에는 나도 사라를 두고 다 포기하려고 했던 사람이니까.

        

       혼자 안일하게, 이제는 평범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는 후련해져서 떠나려고 했었다.

        

       사라가 내가 남겨둔 모든 일을 기쁘게 받아들일 거라고만 생각하고.

        

       사라의 몸으로 멋대로 관계를 만들고, 그 재산을 함부로 사용하고.

        

       ……어쩌면 나는 양혜인에게 나 자신을 겹쳐 보이고 있었기에 그렇게 화가 났는지도 모른다.

        

       야.

        

       내 생각이 계속 굴러가자, 결국 사라가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 잠이나 자라고.

        

       “…….”

        

       그 말에, 나는 천장을 올려다보던 눈을 감았다.

        

       *

        

       “뭐 그렇게 궁상을 떨고 있어?”

        

       그렇게 얼마나 눈을 감고 있었을까.

        

       아마 쉽게 잠들지는 못했을 거다.

        

       한참 동안 눈을 감고 있다가 겨우 잠이 든 뒤에 마주친 사라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양손을 허리에 얹은 채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꿈속에서의 나는 사라와 같은 외모를 하고 있었지만, 사라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반영되어서인지 사라보다 키가 조금 더 컸다. 덕분에 이렇게 마주 서 있으면 사라는 언제나 나를 올려다보는 자세가 되었다.

        

       눈을 치켜뜨고 나를 올려다보는 모습은 귀여웠다. 물론 그 얼굴을 보고 느끼는 감정은 그런 태평한 것이 아니었지만.

        

       “이…….”

        

       사라는 뭔가 말을 내뱉으려다가 꾹 참고, 손가락으로 자기 이마를 꾸욱 누르며 무언가를 꾹 참았다.

        

       “하아.”

        

       그리고 크게 한숨을 쉬었다. 나 들으라는 듯이.

        

       “그러니까, 그렇게 궁상떨지 말라고.”

        

       조금 진정했나 싶었는데, 사라의 목소리는 여전히 화가 단단히 난 상태였다.

        

       “뭐? 마음대로 관계를 만들어? 마음대로 내 돈을 써?”

        

       사라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동작을 보고 사라는 발끈한 표정으로 한쪽 발을 들었다가, 다시 조용히 내려놓았다. 그리고 손으로 자기 가슴을 쓸어내리며,

        

       “잠깐, 사라야, 진정하자.”

        

       라고 중얼거린 뒤,

        

       “후우~”

        

       하고 다시 숨을 깊게 내쉬었다.

        

       “너.”

        

       그리고 다시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지금까지 니가 쓴 돈이나, 니가 한 행동을 두고 내가 뭐라고 한 적 있어? 왜 내 허락도 받지 않고 멋대로 친구를 만들었냐느니, 뭐 하러 돈을 그렇게 많이 썼냐느니 하는 말을 한 적 있냐고.”

        

       “……없지.”

        

       “그래!”

        

       내 대답에, 사라는 버럭 화를 내듯이 말했다.

        

       “당연히 없지! 왜냐하면 불만이 없으니까! 너, 내가 불만이 있는데 너한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성격 같아 보여?”

        

       나는 고개를 저었다.

        

       사라는 대놓고 말로 하지는 않아도, 의식 안에서 느끼는 감정을 숨기는 일은 없었다. 언짢은 일이 일어나면 대놓고 언짢다는 티를 팍팍 냈고,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기도 했다. 내가 오기 전까지는 감정표현이 거의 없었다고 하기에 조금 걱정했는데, 적어도 나와 대화를 나누는 사라는 충분히 활발한 성격이었다.

        

       “그래.”

        

       사라는 이제야 말이 통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네가 하는 일이 정말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나도 가만히 안 있었어. 내가 나의 몸을 너한테 맡기고 있는 건, 너를 그만큼 신뢰하기 때문이야.”

        

       그렇게 말하면서 사라는 내 가슴을 손가락으로 콕콕 찔렀다.

        

       그러다가,

        

       “으, 으헿?”

        

       혼자 당황해서 펄쩍 뛰었다.

        

       그리고 몇 걸음 뒤로 물러나더니, 내 가슴을 찌른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어어…….

        

       음, 저런 모습을 보니 바로 조금 전까지 고민하던 내용이 아무래도 상관없게 느껴지긴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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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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