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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5

        

         드드드드득—!!

         

         이제는 자판을 간결하게 두들기는 게 아니라, 숫제 내리치거나 손톱으로 긁어 대는 소음을 내기 시작한 마리나의 팔을 관찰했다.

         

         건강미는 넘칠지언정 별로 근육질은 아니라고 생각했던 피부 아래엔 기계 관절이라도 들어있었는지 저 말도 안 되는 작업 속도를 유지하는데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실상 문제는커녕 중간중간에 이쪽을 향해 농담을 던질 여유까지 부렸으니 뭐.

         

         “……뭔데, 멋있냐.”

         

         그렇게 잠깐동안, 모두가 눈을 떼기 힘들어하는 어지러운 난타 쇼를 감상하면서 켄의 설명을 되새겨봤다.

         

         우선 코드 라이브러리, 이건 이 바닥 종사자들이 코딩 작업을 수행하다 보면 갱기는 자주 사용되는 로직들을 모아 놓는 서재다. 대분류는 당연히 자료 금고 해킹이 되겠고.

         엘리시움에서 무료 전자도서로 발행한 ‘까마귀도 영구 학습하는데 성공한 사이버 엔지니어링의 기초’에서 본 내용이니 이 부분은 틀림없다.

         

         그리고… 매크로(Macro)는 흔히들 아는 그 매크로가 맞다.

         여러 개의 키 입력이나 명령어를 단축키 하나로 묶어 놓는 그거. 한 번만 눌러도 화면이 바뀌거나, 특정 프로그램이 실행되고, 사람 손으로는 잘 쓰기도 어려운 모 격투게임의 바람 어퍼컷이 단번에 나가는 기능.

         

         빠르게 움직이는 그녀의 손가락을 다시 바라봤다.

         

         저 타건 하나하나가 다다른 기능을 품고 있다면 아무거나 막 누르는 걸로는 금고 해제가 진행될 리가 없다. 고장나서 막히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그럼 관점을 바꿔서, 저기에 등록된 그 ‘경우의 수’라는 건 몇 가지나 될까?

         만? 십만? …네트워크에 듣도 보도 못한 전문 용어만 검색해도 결과가 천만 단위로 나오는 세상이 그렇게 느슨할 리 있나.

         

         

         완전 기억 능력(Eidetic Memory) 이라는 이름만 요란한 특성이 있다. 플레이 도중에 레벨 업이나 임플란트로 얻을 수 있는 특성이 아닌, 내 전기 능력처럼 캐릭터 생성시에만 고를 수 있는 선천적 개성 중 하나.

         

         원래 서브 컬쳐 계에서 유명한 명칭치고는, 끽해야 지능 능력치 보정과 경험치 보너스 정도만 제공하는 애매한 특성이라 컨셉 플레이가 아닌 웬만한 유저는 챙기는 걸 고려조차 하지 않았겠지만.

         

         드드드드드드득—…!

         

         ‘단순히 배우는 게 좀 빠르다고 인간이 재봉틀 기계가 되지는 못할 것 같은데.’

         

         …저 모습을 보면 그런 아쉬운 성능 따위가 아닌 것 같았다.

         

         그야 예전에 봤던 용병 동생들처럼 특성이나 스킬이 직관적으로 대응되는 부분이 있기도 하고.

         방출하는 전기 신호에 의지 좀 담을 수 있다고 뇌가 자유자재로 세부적인 연산까지 마쳐주는 나 같은 경우도 있으니… 완전 기억 능력이라고 진짜 그 이름을 따라가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었다.

         

         만일 정말로 한번 본 걸 모조리 기억하고 재깍재깍 떠올릴 수 있다면, 그리고 그걸 응용할 신체능력까지 첨단 시술로 얻었다면 어떨까.

         

         결국에 의문은 돌고 돌아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화면에 짓쳐드는 저 난수의 해일, 무지막지한 코드의 세례.

         핵공격이라도 감지된 것 마냥 미친듯이 올라오는 시스템 메시지까지. 저것들에 각자 정확히 맞는 매크로만 발동하는 걸 보통 잔머리로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정말… 도대체 뭐가 기억력이 좀 좋은 수준이라는 건지.

         

         그리고 저런 걸 대신 가상 공간에서 감당하려고 다들 챙기는 게 연산 장치나 할당한 보조 메모리인데, 본격적인 접속도 안 한 상태로 외부에서 자판 두드리는 걸로 대신하다니?

         

         늦기 전에 올바른 키를 눌러야 한다는 리듬 게임의 빡빡한 점과 후반으로 갈수록 주문이 더럽게 복잡해진다는 타이쿤 게임의 악랄한 점이 합쳐진 금고의 보안 미궁을 차례차례 답파해간다.

         

         웃기는 헤어 스타일링 속에 소형 재머를 숨기고 다니는 개성적인 여자인 만큼 뭔가 숨겨둔 실력이 있으리란 건 알았는데 이런 거라면 인정이다.

         

         하지만 그런 능력이 있는데 왜 굳이 팀 같은 걸 만들었을…….

         

         “부끄럼쟁이야아아아—?! 패킷 변조가 마구 일어나서 몇 개는 처리가 안 되는데! 슬슬 좀 거들어 줄래?!”

         

         “…엥?”

         

         진짜다.

         말마따나 아까까지는 그녀의 처리 능력에 막혀 화면 절반도 못 넘어가던 금고의 검증 절차가 이 빠진 테트리스 블록 마냥 꾸역꾸역 쌓이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무작위 바이러스가 투여되니까 엄청나게 당황했었…지?

         ……얘 설마, 라이브러리에 없거나 답안지를 본적 없는 문제에는 전혀 대처 못하나?

         

         팔을 똑같이 움직이는데 얼굴에 식은땀이 쏟아져 내리는 상태로 도움을 요청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맞는 것 같은데.

         

         “얌마아아앗!!!”

         

         “재…… 재촉하지 마. 이름이나 닉네임만 아는 사람끼리 하는 첫 공동작업치고는 이정도면 빠른 거야.”

         

         본인의 부족한 점은 확실히 아는지, 작업이 망해가자 거리낌 없이 꺅꺅대며 도움을 청하는 모습은 당당했다. ……약간은 애처로웠고. 구경해도 된다는 소리를 들은 나도 손을 내밀어야 하나 착각할 만큼.

         

         뭐, 그럴 필요는 없었다.

         둘이서 해결해본다고 했으니까 나머지 한 명도 감당하기 힘들어지면 알아서 신호를 주겠지.

         

         스륵 하고.

         얼굴 윗부분을 가릴 정도로 내려앉은 앞머리가 거슬렸는지, 켄 꼬맹이는 어느새 머리띠를 꺼내서 곱슬기 가득한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 넘겼다.

         

         눈이 사람의 인상에서 얼마만큼의 비중을 차지했더라? 아무튼 소심한 목소리와는 달리 더럽게 날카로운 눈매가 드러나자 그의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파일 수정 권한은 금고가 열리고나서 취득할 수 있어서, 아직 깔린 악성 코드들을 지우지는 못하니까 담당한 영역을 넘어오진 말아줘.”

         

         “어차피 다른 건 할 줄 몰라!”

         

         절대 자랑은 아닌 것 같았지만, 하여간 마리나는 기운차게 대답했고.

         켄은 오실로스코프에 탐지되는 신호 줄기를 분석하고 밀린 숙제를 처리하고자 바쁘게 손을 놀렸다.

         

         그렇게 일할 때 불편하면 평소에도 머리 좀 정리하라 충고해주고 싶었지만….

         더럽게 비싼 의안인데 드러내고 다니다가 재수없게 강도라도 만나면 얼마나 억울하겠나? 저것도 나름의 안전대책일지도 모르겠다.

         

         끼릭… 끼리릭!

         

         어쩐지 휴대용 관제실이라 불러도 될 정도로 펼쳐진 화면이 좌우로 널찍하고 자잘한 계량기도 많더라니 다 사용자 맞춤형이었던 모양이다.

         

         원래 이 동네 사람들이 여유가 되면 가장 먼저 바꾸는 신체 부위는 팔이나 다리, 내부 장기가 아니라 눈이다. 사람이 가장 의존하는 정보 입수 기관인 주제에 밥 먹듯이 오작동을 일으키는 부위.

         

         쌍둥이들이나 마리너처럼 맨눈에 보조기구만 이용해서 상위권 경쟁에 비비는 게 대단한 거지. 보통은 남들보다 더 멀리 보고, 많이 보고, 정확하게 본다는 게 가져다주는 이점을 뛰어넘기 힘드니까.

         

         끼릭!

         

         얼마나 많은 부가기능이 담겼는지 알아보기도 힘들 정도로 정교해 보이는 현미경 같은 눈동자가 회전한다.

         

         때로는 화면을, 가끔은 가상 공간을, 대부분은 금고 자체의 맥동이라도 가늠하는지 노려보면서.

         

         …렌즈가 세 개씩 돌아가는 게 꼭 제로 옛날 모델 같네.

         

         – 저는 가능하다면 다음 개조 시, 추가 스캐너 같은 부착물보다는 제대로 된 전투용 의체로 갈아타고 싶습니다만. –

         

         “시끄러워 욘석아. 넌 지금도 내 전재산이나 다름없어!”

         

         이상한 기대심 품기는.

         나를 무슨 주기적으로 크레딧 열리는 나무 취급하는 녀석을 타박해 놓고 두 사람의 콤비를 지켜봤다.

         

         브레이크도 없이, 최전방에서 무조건 맞는 정답만 골라서 치고 달려나가는 길잡이(Guide).

         시시각각 변화하는 구조와 가짜 벽-변조 데이터-을 간파하고 전체적인 흐름을 조율하는 감독관(Overseer).

         

         어느 쪽이나 몸 쓰는 전투원이 보기엔 영락없는 후방 오퍼레이터일지도 모르겠지만, 이렇게 또 미묘하게 다른 성향과 기술이 합쳐져서 일으키는 시너지를 같은 직군 종사자가 아니면 또 누가 평가해주겠나.

         

         …나는 그냥 효율적이라고 칭찬하는 거고! 평가는 다른 이들 얘기다.

         아무러면 진짜들 앞에서 아는 척하는 양심 없는 인간이 아니라는 점 분명히 하겠다.

         

         “……1등 기록이 몇 분이었지? 14분쯤 걸렸나?”

         “에이, 설마 막판에 뒤집어 질라고.”

         

         봐라, 처음엔 시간 아깝게 무슨 짓인가… 하고 시큰둥해하던 다른 이들도 심상치 않음을 감지하고는 금고와 모니터를 훔쳐보고 있었다.

         

         그나저나 진행도가 어느 정도일까? 일단 꽤 빠른 것 같은데.

         일부러 공정하지 않게 설계된 시험인 만큼 순수하게 걸린 시간대로 합격하지는 않겠지만 여차하면 나도 어떻게 거들어서 확실하게 못을 박을 의향은 있다. 아니, 넘쳤다.

         

         문제는 이제 금고가 열리고 판도라의 상자 꼴이 났을 때, 안에 있던 것들을 얼마나 깔끔하게 정리하느냐에 달렸다고 본다.

         

         시험에는 합격했는데 장비도 좆 되고 사람도 폐인이 됐어요~ 같은 결과는 피하고 싶다. 그러니 해킹 실력과 비슷한 수준으로 바이러스 대책도 했다면 더할 나위 없으리라.

         

         혹사당하던 계기판이 점점 안정화, 눈이 아프게 문자와 숫자를 토해내던 화면도 차츰 조용해진다. 나에겐 보이지 않는 카운트다운이 차츰 줄어들어가고….

         

         …철컹.

         

         망할 자료 금고가, 악취가 가득 들어찬 통조림 뚜껑이 열렸다.

         하지만 지금부터 흘러 넘쳐나오는 걸 어떻게 막느냐가 진짜 싸움…!

         

         “…파이팅!!”

         

         “”야.””

         

         – 기발하지만 효과적이군요. 일단 그녀의 신뢰 수준을 하향 조정하겠습니다. –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마리나는 냅다 자신의 와이어를 잡아 뽑았으니… 나와 켄은 황당함을 참지 못했다. 여기서는 당연히 힘을 합쳐서 뭔가 해볼 부분 아니었어?!

         

         “난 정해진 대로 뚫는 것밖에 못한다니까?”

         

         아, 예. 그렇셨죠 참.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책임없는 유능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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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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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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