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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5

       “-쫓겠습니다.”

         

       요르드는 멀어지는 그림자에게 시선을 떼지 않은 채 허락을 구했고, 이한은 물었다.

         

       “잡을 수는 있고?”

       “지금 거리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자신감은 좋네, 으음…. 됐어. 그냥 놔둬.”

       “그, 그렇지만…!”

         

       요르드는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으나, 이한이 저토록 크게 다치게 하고 임무를 어렵게 만든 원흉이 저 거한의 사내 때문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했다.

       그런 자를 그냥 보내는 것이 영 아니다 싶은 그가 불만을 표시했으나.

         

       “관둬, 네가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선배님?”

         

       제이크가 후배의 어깨를 잡으며 말렸다.

       요르드를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아무리 지쳤다고 해도 ‘북부의 흑사자’를 잡는 건 무리겠지.”

       “!!?”

         

       요르드의 눈이 부릅떠졌다.

         

       북부의 흑사자.

       거인 살해자이자 북부 최강의 챔피언으로도 유명한 그…!

         

       “흑철사자의 부기사단장….”

       “십중팔구로 그가 맞아. 과거보다 덩치가 더 커져서 단번에 못 알아봤었지만, 그가 분명해. 소문대로 여전히 성장판이 안 닫힌 건가?”

       “…진짜 순수한 사람은 맞는 겁니까?”

       “일단은 순혈 인간이래.”

       “아, 아닌 것 같은데….”

         

       설마 소문으로만 듣던 흑철사자의 부단장을 이런 오지에서 보게 될 줄 몰랐기에 요르드는 불만마저 잊고 멍함을 느꼈다.

       그렇게 어린 후배가 경악을 감추지 못하며 그 뒷모습을 쫓을 때, 제이크는 퍼질러진 채 지쳐 쓰러진 친구에게 시선을 줬다.

         

       “…괜찮냐.”

       “괜찮아 보이냐?”

       “아니.”

       “그럼 왜 물어.”

       “놀리려고.”

       “……썩을.”

         

       처음이지 않을까 싶다.

       그가, 이한이란 인물이 이토록 지쳐 쓰러진 것을 본 것이.

       그리고 제이크가 짐작하기에 이 녀석이 이렇게 된 이유는 아마도.

         

       “광신도 무리 따위한테 맞았을 리는 없고, 그렇다고 마물한테 네가 그 꼴이 날 일은 절대 없겠지. 오히려 언급한 둘 모두 몰살하는 게 너다울 테니까.”

       “…넌 나에 대해 너무 잘 알아.”

       “그래, 본의 아니게 잘 알지. 그리고 이런 것도 알지. 너를 그렇게 만들 수 있는 건 왕국을, 아니 대륙 전역을 뒤져봐도 오십 명이 넘지 않을 거란 것, 그리고 그 오십 명 중 한 사람인 라이오넬의 흑사자라면 너를 이렇게 엉망인 꼴로 만들 수도 있겠지, 그런 뜻에서 물어보는 거다만, 혹시….”

       “싸웠어, 그냥 어쩌다 보니까.”

       “……역시.”

         

       자업자득이었구나.

         

       이한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실을 당당히 밝혔다.

       어차피 숨길 생각도 없었다는 듯이.

         

       다만.

         

       “넌 임무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이 불량 기사 녀석아.”

         

       “……음, 미안.”

         

       친구의 진심 어린 타박에 그는 무안한 듯 침음을 흘리며 솔직히 사과를 전하였다.

         

       본인이 생각해도 경우가 없는 짓인 건 맞은 것 같아서.

         

         

       뜻밖에도 ‘양심’이 아직은 살아있는 이한이었다.

         

         

         

         

         

       …제이크는 그를 타박하면서도 딱히 싸운 이유를 묻지 않았다.

         

       어차피.

         

       ‘별거 아닌 이유로 싸웠을 테니까.’

         

       이 녀석도 그렇고, 북부의 대전사도 그렇고 둘 다 성격이 유별나니, 사소한 이유를 명분삼아 대결이 성립됐을 게 뻔할 것이다.

         

       하여 큰 감흥이 없는 표정으로 일관하였으나.

         

       ‘누가 이겼을까?’

         

       관심사가 없는 건 아니었다.

         

       그가 아는 한 오러 유저를 제외하곤 왕국에서 가장 강하다고 할 수 있는 사내들.

       그들이 격돌하였고 결투를 벌였다고 한다.

       이러한 소식을 듣고 결과가 궁금하지 않다면 그건 기사라고 할 수도 없을 터.

         

       …허나 제이크는 인내하며 차마 친구에게 물음을 던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게.

         

       ‘지금 물어보면 맞겠지?’

         

       무언가가 크게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만 보아도 질문을 던지는 게 현명한 선택지가 아님을 짐작하는 그였고, 지금은 궁금증을 억누르기로 하였다.

         

       ‘들을 날이 오겠지.’

         

       …언젠가 호기심을 풀 기회가 있길 바라며.

         

       *

       *

       *

         

       휙! 휘이익!

         

       여성은 전력질주를 하듯 달렸다.

       땀이 주르륵 흐르긴 하였으나 속도를 유지하며 초당 수십 미터 거리를 단숨에 주파하는 그녀의 모습은 설원을 거침없이 뛰어노는 설표와 같았다.

         

       거대하다 못해 황소와 같은 무게를 자랑하는 막시무스를 짊어진 채였으나, 이 정도 무게조차 거뜬히 들지 못한다면 어찌 스스로를 북부의 수호신이자 최강의 전사 집단인 흑철사자의 일원이라 주장하겠는가?

         

       북부의 전사에게 성별은 변명이 되지 않았고, 오로지 실력만이 전부일 따름이었다.

         

       “다행히 추적자는 없는 것 같네요.”

         

       설원의 새하얀 눈 같은 피부가 인상적인 장신의 여성,

       리리나 하트문은 뒤를 슬쩍 경계하며 쫓는 인원이 없음에 안심했다.

         

       만약 백은사자의 기사들이 그녀를 쫓았다면 조금 골치 아팠을 텐데.

         

       ‘쓰러져 있는 기사를 제외하고도 나머지 둘도 심상치 않았으니까.’

       

       북부 기준에서도 경시해선 안 되는 수준이었다.

       리리나로선 내심 감탄했다.

         

       ‘백색 고양이들은 다 머저리밖에 없다고 들었는데, 그래도 쓸 만한 자들이 없진 않구나.’

         

       이런 것이 왕국의 저력인가 싶은 그녀였다.

       허나 곧 그녀의 관심사는 고양이들에게서 멀어졌다.

         

       슬쩍….

         

       조금은 심적 여유가 생겨서일까?

       리리나는 시금치처럼 축 늘어진 부단장을 보았다.

         

       막시무스 라이오넬.

       라이오넬 대공의 막내 동생이지만, 대공의 막내 동생이란 이름보다 ‘북부의 대전사’라 더 자주 불리는 사내.

       타고난 재능과 불굴의 노력, 그리고 끝없는 향상심을 기반으로 한 투쟁으로 북부의 전사들을 전부 무릎 꿇린 기사가 다름 아닌 그였다.

         

       리리나 본인 또한 호승심으로 그에게 덤빈 전적이 있었고, 그날 리리나는 인간의 형상을 한 거인이 있을 수 있음을 뼈저리게 느꼈었다.

         

       그 정도로 막시무스는 강했고, 리리나는 그가 대공 전하를 제외한 인간에게 진다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다.

         

       그가 가진 끝을 모르는 체력과 산을 뒤엎을 것 같은 힘이 얼마나 강대한지 몸소 겪었기에.

         

       한데, 지금.

         

       ‘이렇게 지친 걸 본 건 처음이야.’

         

       옛날 서리 거인과 단독으로 전투를 치렀을 때도 상처 하나 없었는데.

       하여 리리나의 시선이 호기심을 머금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수순…-.

         

       “-리리나, 무엇이 궁금하지.”

         

       “…….”

         

       “궁금한 것이 있다면 풀어주마.”

         

       “…어쩌다 그런 꼴이 되셨습니까. 북부의 챔피언이란 사람이.”

         

       기회가 주어졌을 때 직설적으로 곧장 묻는다.

         

       북부의 여전사다운 호방함과 직설적임.

         

       그리고 이런 물음에 일순 그녀의 어깨에 짐짝처럼 옮겨지던 막시무스는 만족스러운 눈웃음을 지으며.

         

       “멋진 대결이 있었지. 참으로 가슴 벅차고 뜨거웠던 대결이.”

         

       “…….”

         

       리리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 아니 자신들의 부단장이 저토록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 걸 처음 보아서.

       이후 그는.

         

       “리리나, 대륙은 넓더구나, 하하!”

       “…당신답지 않은 겸손한 답변이네요.”

       “그런가?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겠군.”

         

       막시무스는 그녀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리리나의 말대로 그는 겸손하기보단 오만한 이가 맞았으니까.

         

       허나 지금은 달랐다.

       그는.

         

       “‘패배’를 겪고도 달라지지 않는다면, 어찌 그것이 사람이라 할 수 있을까.”

       “!!!”

       “왜 그러나, 내가 패하였다는 게 그렇게 믿기 힘든가?”

       “…저, 정말 지셨어요?”

         

       그녀의 부단장에게, 막시무스에게 가장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아닐 수 없다.

         

       패배. 누군가와 싸워 졌다는 얘기가 도저히 연상되지 않았다.

       그는 항상 결투의 승자로 남을 것 같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막시무스는.

         

       “리리나 잊었나? 난 태어나서 지금껏 거짓말이란 걸 내뱉어 본 적이 없다.”

       “…….”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난 내 패배가 전혀 부끄럽지도 낯설지도 않다. 북부에서 난 언제나 패배자였으니.”

         

       형님 전하, 아니 대공의 신비에 항상 그는 패배했고, 북부에서 불어오는 눈보라에도 그는 항상 패배했다.

       북부의 또 다른 신비인 만년설은 추위가 느껴지지 않으나, 그 웅대함과 강대한 존재감으로 항상 그에게 압도적인 패배감을 안겼었다.

         

       그렇기에 그에겐 패배란 건 친숙한 것이다.

         

       “흑왕과 대자연에게 지는 게 왜 패배예요? 그걸 인간이 이길 수는 있는 건가요?”

         

       리리나 하트문은 어이가 없었다.

         

       그가 언급한 것들.

         

       북부의 토지신이자 주인이라 할 수 있는 ‘사자왕의 파편’인 라이오넬의 흑왕.

       만년을 넘게 얼어 있으며, 눈 요정의 유해라고도 불리는 신비를 품은 설원 만년설.

         

       이러한 것들 모두가 결코 일개 인간이 대항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누가 자연과, 아니 재해와 싸울 생각을 할 수 있고, 그것에 졌다고 패배자라 할 수 있으랴.

         

       “원래 목표는 크게 잡아야 하는 법.”

       “…그냥 당신이 제정신이 아닌 거예요.”

       “흠, 그럴지도 모르지.”

         

       막시무스는 선뜻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녀의 의견에 동의했다.

       원래 각자의 기준이란 것이 있는 거니까.

         

       그리고 그런 뜻에서.

         

       “적어도 내 기준에서 이번에 나는 패배한 것이 맞다.”

       “……그 기사의 검을 부쉈는데도요?”

       “허허, 볼 건 다 봤나 보군.”

       “그냥 그 기사가 신경질적으로 손잡이를 던지는 걸 봤을 뿐이에요.”

         

       북부에서 자주 봤던 풍경이다.

       막시무스의 주특기인 무기 파괴, 이로 인해 자신의 애병을 잃은 전사들이 수두룩했으니.

         

       그러나.

         

       “리리나, 내 목을 봐라.”

       “네에?”

       “얼른.”

       “…….”

         

       리리나는 그가 갑자기 왜 저런 말을 할까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순순히 그의 목을 쳐다봤고, 그렇게….

         

       “으읍…!”

         

       그녀는 비명을 내지르고 말았다.

         

       웬만한 일에도 놀랄 일이 잘 없는 그녀였지만, 지금만큼은 경악하다 못해 몸이 떨렸고, 어느새 그녀는 달리는 것을 멈추며 동공에 지진이 나는 중이었다.

         

       ……붉은 실선.

         

       그는 목의 상처를 ‘힘’으로 억누르는 중이었다.

         

       “이 경이란 건, 배우길 정말 잘했다 싶더군.”

         

       안 그랬으면 진작 피분수가 솟구치며 죽었을 테니.

         

       뭐.

         

       “기사로 살다 보면 목도 베이고 하는 거겠지, 나쁘지 않은 경험이다, 아하하!”

       “우, 웃지 마요! 웃지 말라고 이 등신 같은 인간아! 피가 난다고!! 왜 다쳤다고 말을 안 해!?”

       “아하하!!”

         

       막시무스는 별일 아니란 듯 그저 웃을 따름이었으나, 리리나의 안색은 창백해질 뿐이었고, 그녀는 이 정신 나간 인간을 빠르게 치료부터 해야 했다.

         

       “망할 인간!!”

         

       리리나 하트문은 자신의 부단장을, …동시에 제 [남편]이기도 한 그를 보며 성질을 냈다.

         

       자칫 과부가 될 판이라며.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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