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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5

   소울 아카데미의 세계관에서 규모가 어느 정도 있는 숲에는 그 곳의 주인이라 할만한 이들이 존재한다.

   

   먼 과거에는 신이라 여겨졌던 이들은 평범한 생명체와는 비할 수 없는 능력을 지니고 있으며 자신이 인정한 자에게는 큰 도움이 되는 축복을 내리기도 한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한 때 신이라 여겨지던 이들은 어지간한 자와는 만남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질 때에만 자신의 얼굴을 마주하는 걸 허락하지.

   

   이 조건은 각 신령마다 다른 데 실루프 숲의 은랑 같은 경우에는 무력이다.

   

   게임에서는 일정 레벨 이상을 찍으면 얼굴을 만날 수 있는 식이었다.

   

   그대 정도면 만날 가치가 있는 유망주라는 식으로.

   

   그래서 나는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았다.

   

   레벨작을 꾸준히 해뒀으니까 충분히 만날 수 있을거라 생각했지.

   

   인정받는 것도 별로 어렵지 않을 거라 여겼다.

   

   지금 내가 지닌 무력은 게임 기준으로 하더라도 상위권.

   

   은랑을 상대로 좋은 싸움을 펼치는 것 정도야 나크라드를 상대하는 것보다 훨씬 편한 일이니까.

   

   근데 이런 변수가 생길 줄이야!

   

   “저도 얼마 전에 들었습니다. 사이틸 숲으로 결정되었더군요.”

   

   ‘대체 왜죠?!’

   “허접. 대체 이유가 뭐야?”

   

   사이틸 숲이라니!

   

   거기 원래 2학기에 가는 곳이잖아!

   

   왜 갑자기 숲의 순서가 바뀌어 버린 건데!

   

   “제가 듣기로는 안정상의 문제라 했습니다. 이번 년도 아카데미에 워낙 사건사고가 많지 않았습니까. 실루프 숲보단 사이틸 숲이 학생들의 안전을 보장하기에 적절한 장소라 판단되었다더군요.”

   

   아. 그런 이유야?

   

   칼은 이야기의 뒤에 자신은 뒷사정까진 알지 못하겠다 말을 했으나 나는 알 것 같았다.

   

   단순하게 말해서 은랑보다 사이틸 숲의 주인이 더 협조를 잘해주거든.

   

   학생들을 여러 소란에서 지키기 위해서는 사이틸 숲이 더 낫지.

   

   안전이 이유라면 그걸 바꿀 수도 없겠네.

   

   하. 젠장. 곤란하게 됐다. 진짜로.

   

   숲이 바뀌어도 그 숲의 주인에게 인정을 받으면 되지 않냐고?

   

   이론적으로는 맞는 말이야.

   

   근데 바꿔서 생각을 해봐.

   

   나는 고인물이니만큼 각 숲의 주인을 만나서 인정받는 방법을 모두 다 외우고 있거든?

   

   근데 왜 이렇게 고민을 하고 있겠냐고.

   

   사이틸 숲의 주인을 만나기 위한 조건은 매력이다.

   

   쉽게 말하자면 아름다움이나 기품 같은 거 말이다.

   

   이 수치를 올리기 위해서는 지금 내가 하는 것처럼 무작정 전투만 들이박아서는 안 된다.

   

   미용에 관심을 두어야 하고, 사교회에 나가 기품을 길러야 하며, 따로 개인교사를 들여서 배움을 얻어야 하는 것이다.

   

   이 중에서 내가 여태까지 한 일이 뭐가 있지?

   

   아무것도 없어.

   

   내가 여태까지 한 일이라고는 전투를 위해 레벨을 올리고 스텟을 올리고 숙련도를 올리는 것 뿐이었다.

   

   매력 수치를 올리기 위해 한 일은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게 무슨 소리냐면 지금 내가 지닌 매력 수치는 캐릭터를 만들었을 무렵 그대로라는 거라고!

   

   어떡하지.

   

   이대로라면 사이틸 숲의 주인에게 인정을 받지 못할 거야.

   

   기본적인 매력 수치가 높은 페이비나 조이를 대동하면 얼굴은 볼 수 있겠지만 내가 그 빌어먹을 얼빠 여우한테 인정을 못 받으면 아무 의미가 없잖아!

   

   안 돼. 허접 주신의 괴롭힘이 내 앞으로 스멀스멀 기어오는 게 보여.

   

   “아가씨? 괜찮으십니까?”

   

   ‘조용히 해봐요.’

   “허접. 입 닫고 있어.”

   

   “예. 알겠습니다.”

   

   생각하자. 이대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순 없어.

   

   실패 패널티로 존재하는 굴욕적인 무언가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알고 싶진 않다고.

   

   환경 자체는 그리 나쁘지 않아.

   

   알새틴에게 채무를 지워둔 게 있고 뉴먼가문도 마음대로 써먹을 수 있는 상황이니까.

   

   매력 수치를 올리기 위한 수단을 구하는 건 충분히 가능해.

   

   그럼 지금 나한테 중요한 건 내 매력 수치를 얼마나 올려야 하는 지인데.

   

   곰곰이 생각을 하던 나는 고개를 들어서 칼을 올려다봤다.

   

   상태창을 볼 수 없는 지금의 내가 매력수치를 확인하기 위한 제일 손 쉬운 방법은 NPC의 반응을 보는 거다.

   

   매력 수치에 따라서 NPC들의 반응이 달라지거든.

   

   구체적으로는 매력 수치가 낮으면 반응이 차가워지고 매력 수치가 높으면 반응이 호의적이 되지.

   

   ‘칼. 저 예뻐요?’

   “허접. 나 예뻐?”

   

   “당연한 것을 왜 물어 보십니까. 아가씨께서는 그야말로 천상에서 내려온 천사와 같은 외모를 지니고 계십니다. 그 피부는…”

   

   ‘거기까지.’

   “징그러우니까 그만해. 이 허접 로리콘.”

   

   그래. 칼 너한테 물어보면 이런 대답이 돌아오겠지.

   

   대체 왜 이렇게 된 건지는 몰라도 자기 주인을 덕질하는 사람이니까.

   

   내가 얘한테 뭐를 한 것도 없는데 호감도가 왜 이렇게 높은 건지 모르겠어.

   

   누구의 반응을 확인하면 좋으려나.

   

   어지간한 NPC에게 물어봐야 좋은 반응이 돌아오지는 않을 거야.

   

   매력 수치 이전에 평판에 문제가 있으니까.

   

   루시 알른이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질색을 하는데 예쁘냐고 물어봐서 제대로 된 대답이 돌아오겠냐고.

   

   그나마 내 주변에서 객관적으로 평가해줄 수 있는 사람은.

   

   조이는 호감도가 높은 편이니까 객관적일 수가 없고.

   

   프레이는 이상한 대답이나 내놓을 거고.

   

   페이비는 좋은 말만 해 줄 거니까 의미가 없고.

   

   비시나 애버리 알새틴은 내 눈치를 보면서 사탕발린 말을 내놓을 테니까 제외.

   

   그럼 남은 건 아서 정도인가.

   

   흐음. 걔 정도면 적당하겠다.

   

   이전에 한 번 치고 박고 싸운 덕분에 나에 대한 악감정도 없고 그렇다고 호감도가 그리 높지도 않을 테니까.

   

   걔 반응을 보고 현재 매력 수치를 판단하면 제일 정확하겠네.

   

   *

   

   지난 번 중간고사에서 조이에게 패배를 한 이후로 아서는 자신을 갈고 닦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이전부터 게으름을 거의 부리지 않던 그이지만 최근에는 노력의 정도가 더욱 강해졌다.

   

   그 중간고사 당시에는 이런 말 저런 말을 해가며 투덜투덜 거렸지만 이러나 저러나해도 진 것은 진 것이다.

   

   아서가 좀 더 높은 성적을 받았더라면. 막말로 루시 알른보다 뛰어난 성적을 거두는 데만 성공했더라면 아무런 문제도 없었을 것 아닌가.

   

   그 때의 패배를 가지고서 잔뜩 놀림을 받았던 아서는 다음번에는 조이는 물론이고 루시 알른의 콧대까지 찍어 누르겠다 결심을 하며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루시 알른이 더 먼 곳으로 가는 게 문제이긴 했지만.

   

   

   “아카데미 던전의 최초공략자인가.”

   

   아카데미의 긴 역사상 최초로 1학년 1학기에 최초 공략자가 된 자.

   

   루시 알른.

   

   이럴 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던전의 모든 것을 제 손바닥 위에 둔 그녀다.

   

   아카데미의 던전은 그녀에게 있어서 언제나 바란다면 공략할 수 있는 장소에 불과했으니.

   

   그러한 결과를 거둔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그만한 재능을 지녔으니 조금 게을러도 좋으련만.”

   

   그녀는 계속해서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더 큰 성과를 거두어 내는 구나.

   

   그 누구도 따라잡지 못하는 곳까지 달려가려하는 것처럼.

   

   “허나 언젠가는 반드시 루시 알른을 상대로 승리를 거둘 것이다.”

   

   거만한 소리처럼 들릴 수는 있겠지만 본인은 남들보다 재능이 모자라다는 생각을 해 본 일이 없다.

   

   본인도 분명히 빛나는 별이란 말이다.

   

   루시 알른 그대가 아무리 빛난다 할지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따라 잡아 내리라.

   

   그리고서는 물어보겠다.

   

   그 때 그대가 한 말의 의미를.

   

   “저를요? 불쌍 왕자님. 꿈도 크시네요. 맨날 발리는 허접 주제에.”

   

   그리 생각을 하며 주먹을 움켜쥐던 아서는 뒤 편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조심스레 고개를 돌렸다.

   

   그 곳에는 방금 전까지 아서가 이기겠노라 결심을 하던 상대가 있었다.

   

   루시 알른. 아카데미의 교복을 입고 있는 그녀는 여느 때와 같이 얇게 뜬 눈으로 아서를 올려다봤다.

   

   “…어디서부터 들었지?”

   “처음부터요. 푸훗. 열등감을 느끼나봐요? 불쌍왕자님?”

   

   수련을 하다 잠시 감성에 젖었거늘 그를 처음부터 듣고 있었다고?!

   

   아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부끄러움에 다급히 고갤 틀어 붉어진 얼굴을 감췄다.

   

   “여긴 어쩐 일이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여자애한테 열등감을 느끼는 허어접 왕자님.”

   “…적당히 해다오. 내가 잘못했다.”

   

   평소 왕자라는 지위를 지녀 다른 이에게 놀림을 당하는 데에 내성이 적은 아서는 장난감 보듯 자신을 대하는 루시의 태도를 버틸 수가 없었다.

   

   얼굴이 벌개진 아서의 모습에 한참 웃음을 흘리던 루시는 이내 알겠다는 듯 고갤 끄덕이더니 자신의 용무를 꺼냈다.

   

   “저기요. 불쌍 왕자님. 왕자님의 허접한 눈으로 보기에 전 어때요. 예쁜가요?”

   “하?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더냐.”

   

   예쁘냐니.

   

   아무런 전조도 없이 찾아와서 왜 그런 것을 묻는 것이야.

   

   “대답이나 해주세요. 안 그러면 불쌍 왕자님이 혼잣말을 재현…”

   “아니. 잠시만 기다려다오! 대답해주겠다!”

   

   제기랄. 결코 약점을 잡혀서 안 될 이에게 부끄러운 부분을 들키고 말았구나.

   

   부디 나중에도 이를 가지고 본인을 괴롭히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질문이 무엇이었지?

   

   예쁘냐고?

   

   아서는 얼굴을 쓸어내리고는 루시의 얼굴을 눈에 담았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루시는 예쁜 편이었다.

   

   왕궁에 기거하며 세상의 온갖 미인들을 눈에 새겼던 아서가 보기에도 그러했다.

   

   어지간한 기사조차 기겁할 정도로 거센 훈련을 함에도 불구하고 흠 하나 남지 않은 피부는 새하얳고.

   

   주홍빛의 눈동자는 루비를 박아넣은 것처럼 반짝거렸으며.

   

   그 머리카락은 붉은 색의 비단처럼 보여 자기도 모르게 쓰다듬고 싶을 지경이었으니.

   

   입을 다물고 가만 서 있는다면 어느 실력 있는 장인이 만들어낸 인형처럼 보이는 루시 알른은 분명히 아름다웠다.

   

   당장 사교계 전체를 뒤져 보더라도 그녀와 비견되는 사람은 몇 없을 정도로.

   

   그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허나 아서는 차마 루시에게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그 말을 꺼냈다가는 저 조막만한 입술에서 어떤 얄미운 단어가 흘러나올지 알 수 없었으니까.

   

   “그럭저럭 봐 줄 만은 하지.”

   “그래요?”

   

   아서가 퉁명스럽게 이야기를 하자 루시가 눈에 띄게 실망스러운 기색을 드러냈다.

   

   아. 음.

   

   실수했나?

   

   아무리 루시 알른이 얄밉다지만 그래도 영애인데 봐 줄 만하다는 것은 예의가 아닌가?

   

   “그으. 농이다. 그대는 아름다운 축에 속하지.”

   “흐응. 정말이죠? 불쌍 왕자님?”

   “그래.”

   “알겠어요. 그럼 훈련 열심히 하세요. 허접한 불쌍 왕자님이 절 이길 순 없겠지만.”

   “용무가 끝났다면 이만 떠나가라!”

   “아핫. 알겠어요. 이만 가 볼게요.”

   

   아서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떠나가는 루시의 뒷모습을 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저거 하나만 물으러 온 것인가?

   

   *

   

   흐응. 아서의 입에서 저런 말이 튀어나온 걸 보면 내 매력 수치가 그리 낮은 편은 아닌가 보네.

   

   아름답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면 충분히 평균 이상.

   

   이 정도면 아이템으로 충분히 커버가 가능한 수준이야.

   

   오케이. 답이 보인다.

   

   허접 주신! 네가 아무리 억까를 할 지라도 나는 돌파를 해 보이겠다!

   

   그것이 고인물이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고인물에겐 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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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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