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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6

    <126 – 오크노디는 나쁜아이가 아니야>

     

    암흑사교회와의 인맥은 뜻밖에도 유용하게 쓰였다.

     

    “혈석이라. 저주받은 혈마법의 힘을 빌려 마력감지에 걸리지 않는 은밀하고도 잔혹한 술수에 흥미가 생기기라도 했나.”

    “그냥 어쩌다보니 물건을 구했는데 제가 쓰기는 그래서 팔려구요. 혹시 괜찮은 구매자랑 연결 좀 시켜주실 수 있나요?”

     

    암흑사교회의 비밀스러운 접견장소.

    사람이 찾지 않는 망한 교단의 먼지 쌓인 예배당.

    연쇄살인마 뺨치는 분위기를 지닌 암흑사교회 동아리 소속 3학년 선배는 내 접견요청에 접견장소를 이곳으로 정했다.

    발을 내딛을 때마다 바닥의 나무판자가 삐걱 소리를 내고 찢어진 성서가 발에 채이는 것이, 교회 어딘가에서 몰래 악마를 키우고 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굉장한 분위기였다.

     

    ‘좀 무섭긴 해도 이 선배는 믿을만한 분이야.’

     

    2학년 선배들이 빨간이빨버섯 불법양식을 방해받은 건으로 화가 났음을 경고해주지 않았던가.

    덕분에 생긴 건 무서워도 마음씨는 착한 순정마초 같은 선배임을 알 수 있다.

     

    “중개료를 받을 거다. 그래도 괜찮나?”

    “넹!”

     

    3학년과 한바탕 싸우기도 한 마당에 바로 3학년 선배들을 찾아가서 직접 물건을 팔기는 좀 그렇지만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에 <암흑사교회> 동아리를 두면 신분을 감출 수 있고 안전도 보장된다.

     

    “사교회의 견습회원 중에 혈마법에 조예가 있는 잔혹한 녀석이 있지.”

    “오. 그 선배는 어떻게 혈마법을 다루세요?”

     

    강령술사가 시체를 다루고 원소술사가 원소를 다루듯이 혈마법사는 피를 다룬다.

    피 없는 혈마법은 모닥불 못 붙이는 화염술사이며 시체 일으킬 줄 모르는 사령술사, 1인분도 안 되는 애물단지나 다름없다.

    남이 지닌 피를 조종할 수 있는 뱀파이어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입문도 까다로운 마법을 다룬다니 흥미로울 수밖에!

     

    “본래 소유한 클래스는 테이머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우와. 펫의 피를 착취하는 <크림슨 테이머> 클래스를 개척하신 분인가요?”

    “아니. 모기를 테이밍해서 피를 모으는 방법을 깨우친 <모기술사> 클래스를 개척한 녀석이다.”

     

    아니, 세상에 어떻게 그런 끔찍한 직업이 존재할 수 있지?

    이건 뱀파이어보다 더한 악질이다.

    하지만 포인트는 아무 잘못 없어.

    혈석 팔기 전까지는 소중한 고객님이야!

     

    “참회실로 들어가라.”

    “넹.”

    “30분 내로 구매자가 올 거다.”

     

    사람 한 명 들어갈 공간만 있는 참회실.

    밖에서 나무판자를 대고 못질을 하면 나올 수도 없는 관이나 다름없는 곳.

    실제로 빨간이빨버섯을 비좁은 공간에 학대에 가깝게 양식하는 선배님을 믿고 들어가기에는 조금 무서운 장소였지만 포인트를 향한 탐욕이 두려움을 이겼다.

     

    “당신이야? 혈석을 판매하고 싶다던 사람.”

    “잘 찾아오셨어요.”

    “물건부터 보여줘.”

     

    참회실의 반대편.

    더러운 모기술사 녀석이 입장했다.

    반투명한 글라스 너머로 비치는 모기술사의 실루엣이 몹시 뜻밖이었다.

    수염이 무성한 야인이나 배불뚝이 괴인이라고 예상했지만, 뜻밖에도 상대는 두꺼운 로브 밑으로 청결함이 느껴지는 하얀 피부의 미인이었다.

    마이너스 30까지 내려놓고 시작한 모기술사를 향한 호감도가 0으로 초기화됐다.

    사람은 원래 미녀를 대할 땐 객관적으로 평가해야지.

    그래서 객관적으로 불호를 없애고 봤다.

    나 너무 객관적인 듯!

     

    “혈석의 무게는?”

    “3500그램이요.”

    “빛깔이 영롱하지는 않겠네.”

    “그 정도 상급품이면 교수님한테 팔아야죠.”

    “…흥. 아주 맹탕은 아니네.”

     

    구매자는 가격을 제시했다.

     

    “1000포인트.”

    “일 없어요.”

     

    참회실을 나가려고 자리에서 일어서자 구매자가 급히 말렸다.

     

    “플러스 1000포인트.”

    “더 써보시죠?”

    “아이씨, 혈석에 2000포인트나 줬으면 후하게 쳐준 거지. 뭘 얼마나 더 받아먹으려고 그래?”

     

    보통의 학부생들은 자신에게 딱 맞는 인생강의를 찾아서 포인트보너스를 듬뿍 받아야 벌 수 있는 포인트가 2000포인트였다.

    아카데미에서는 정량배식권 400장, 아침 점심 저녁 꼬박꼬박 챙겨먹으면 133일, 한 학기에 해당하는 4개월 12일이면 사라질 포인트이지만 그조차도 못 벌어서 하루 두 끼만 먹고, 심하면 산나물을 캐먹는 학부생들이 널리고 널렸다.

    괜히 동아리에서 식량수급이 가능하다는 점을 신규회원들에게 어필하는 것이 아니다.

     

    “이번에 혈마법사 교수님이 새로 초빙된다는 소식 못 들었어요?”

    “뭐?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저야 좋은 뜻에서 말해드렸을 뿐이에요. 싫으면 사지 말던가.”

    “자, 잠깐만. 어제 교장님이 밖에서 교수 한 명을 주워왔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게 설마…?”

    “어떡할래요?”

    “4000포인트 줄게. 더는 안 돼. 포인트 쥐어짜낼 구석도 없어.”

     

    마지막 제시가격에서 2배, 최초제시가격에서 4배로 껑충 뛴 가격.

     

    “딜.”

     

    나쁘지 않은 거래였다.

     

    [영악한 당신은 <혈석>의 가치를 대폭 상승시켜서 판매했습니다.]

    [흥정 경험치+5]

    [나쁜아이 경험치+1]

     

    이제 와서는 나쁜아이 경험치가 오른다고 쫄리는 느낌도 없다.

    대부분의 기능은 원래 어디에 쓰이는지도 모르면서 쌓다보면 아, 여기서 쓰이는 구나! 하고 뒤늦게 깨달을 때가 찾아온다.

    미리 알아내려고 애쓸 필요가 없단 말씀!

    그치만 꾸준히 도트딜이 박히는 것처럼 오르는 수치는 신경이 안 쓰일 수는 없었다.

     

    [모기들과 3학년 선배들의 방해를 뚫고 혈석을 쟁취해내었습니다. 살아남은 거대육상보행모기가 하나쯤 있는 것 같지만 기분 탓일지도 모르죠!]

    [약물제조 경험치+5]

    [나쁜아이 경험치+5]

    [협박 경험치+3]

    [오르기 경험치+3]

     

    상태창이 마렵다.

    기능설명을 읽어보고 싶다.

    그렇다고 궁금증 해소하자고 어렵게 혈석 팔아 번 포인트를 낭비할 수는 없다.

     

    ‘어떻게든 되겠지!’

     

    찜찜한 기분을 애써 넘겼다.

     

    “근데 모기술사가 혈석이 왜 필요해요? 모기로 열심히 피 훔쳐서 만드시는 거 아니에요?”

    “안 그래도 통제권을 얻은 모기들이 있었는데, 어느 못된 선배들이 이상한 시약을 뿌려서 통제권을 빼앗고 불살라 죽이고 난리가 났거든.”

    “…우와, 큰일이었겠다!”

    “그렇지? 슬슬 혈석을 수확할 때가 되어서 기대가 컸는데, 정말 허무하더라니깐. 근데 이 혈석은 어디서 구한 거야?”

    “비밀이에요!”

     

    원한을 품은 모기술사가 기숙사에 모기를 푸는 꼴을 보고 싶지는 않으니까 혈석의 출처에 대해서는 입도 뻥끗하지 말아야겠다.

     

     

    * *

     

     

    아카디아는 궁금했다.

    오크노디도 알고 있을까?

    매년 이맘때 와이히엠하이 재단의 하급생이 사고를 친다는 사실을.

    혼자 앓아봤자 달라질 건 없다.

    직접 물어보자.

    경쾌한 걸음으로 기숙사에 돌아오는 오크노디를 붙잡아 세웠다.

     

    “디. 잠시만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마치 잘못이라도 저지르고 걸린 것처럼 움찔 놀라는 오크노디.

     

    “나중에 하면 안 돼요?”

    “지금 꼭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그래요.”

    “알았어요.”

     

    돌아온 오크노디한테서는 짙은 피냄새가 풍겼다.

    다과회를 가지면서 이 아이를 누구보다도 많이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자신이 없어진다.

    사람을 죽인 건 아니겠지.

    …그렇겠지?

     

    “디. 무얼 하다가 오는 길인가요?”

    “잠깐 거래를 하고 왔어요!”

    “거래인가요.”

     

    해충방지를 위해 창문이 닫힌 실내.

    늦은 시각이기에 오직 아카디아와 오크노디, 두 사람만이 있는 휴게실.

    날이 좋았을 적에는 창을 열고 나가 하얀 테이블에 차와 디저트를 놓고 햇볕과 대화를 즐기던 발코니를 안에서 들여다보는 자리.

    고작 창문 한겹으로 막힌 자리이건만.

    그때의 시간과 추억이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무고한 사람의 피가 흐르는 일은 반드시 업보가 따르기 마련이에요. 누군가가 대가를 강요하지 않더라도 스스로가 먼저 그릇되었음을 느끼죠.”

     

    아카디아는 가문의 상선을 지키고자 해적들과 싸우던 시절의 일을 떠올렸다.

    해적들도 처음부터 글러먹은 이들은 아니었다.

    가난한 어촌마을.

    치안유지에 들일 해군을 상선보호에 돌린 국가.

    늘어나는 해수몬스터에 더 이상 어업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게 된 촌민들.

    그들이 쪽배를 타고 바다로 나와 상선을 털기 시작했고, 그렇게 최초의 해적이 탄생했다.

    아카디아가 속한 세비체 공작가문.

    그들이 저지른 로비로 해군이 일개 가문의 상선을 수호하고자 움직인 것이 만악의 근원이자 모든 불행의 시초였다.

    가문 대대로 뿌리 깊게 내린 원죄를 깨달은 날, 아카디아는 위험한 바다로 나가는 일을 자처했다.

    비단 상선을 지키기 위한 바다행만은 아니었다.

    가문의 군사력을 동원해 포술을 연습한다는 명목으로 촌민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해양몬스터의 퇴치에 주기적으로 나섰다.

    가문이 외면해온 업보를 마주보기 위함이었다.

     

    “업보를 마주보는 사람은 스스로에게 떳떳해질 수 있어요. 하지만 외면하는 사람은 마음이 닳아버리죠. 그냥은 버틸 수 없으니까요.”

     

    그녀의 가문, <세비체 공작가>의 많은 이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저는 디의 마음이 그렇게 닳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요.”

    “아카디아…”

    “디가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는 더 이상 묻지 않을게요. 대신, 하나만 약속해줘요. 스스로에게 떳떳해지겠다고.”

     

    오크노디가 고개를 푹 숙이더니 고백했다.

     

    “아카디아. 저, 실은 고백할 말이 있어요.”

    “뭐든 들어드릴게요.”

     

    다행이구나.

    아직 늦지 않았어.

    오크노디의 <착한아이>다운 모습이 그녀의 안에 남아있었다.

    오크노디를 만나고자 몇 시간을 꼬박 기다리고.

    마음을 졸이고.

    최악의 상황을 각오하며 마음을 다졌던 시간들.

    그 시간들이 헛된 시간은 아니었구나.

    가슴깊이 안도하는 아카디아에게 오크노디가 말했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아카데미에 모기가 더 늘어날지도 몰라요.”

    “…디? 그게 무슨…”

    “모기를 키우는 사람하고 거래를 하고 왔어요. 더 많은 모기를 키울 수 있는 방법을 팔았거든요.”

     

    아카디아의 머릿속에 수많은 정보가 떠올랐다.

    와이히엠하이재단.

    모기처럼 널린 재단의 장학생들.

    곧 벌어질지도 모를 사고.

    오크노디의 고백.

    모기를 키우는 사람.

    모기를 키울 수 있는 방법.

     

    ‘오크노디가 다른 장학생들이 아카데미에서 버틸 수 있도록 재단이 요구하는 정보를 구해서 넘겨줬군요!’

     

    이제야 요 근래의 오크노디가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오크노디의 나쁜 짓을 꾸미는 기색.

    혈석을 모아 팔아서 마차승차권을 얻고 해독제를 모으려던 계획.

    전부 재단의 요청이었다.

    와이히엠하이 재단이 나쁜 것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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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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