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26

       이 세상에서 10년이나 살았는데도 나는 귀족의 사고방식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했다.

        

       대체 어떻게 크로우필드 백작 부인은 크로우필드 백작을 그대로 둘 수가 있었을까? 설령 평민을 사람 취급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자기 남편이, 그…… 다른 사람과 밤을 보내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었는데.

        

       그걸 몰랐을까? 내가 자기 남편을 죽인 이유가 그저 황제의 정치적인 판단 때문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을까?

        

       오히려 그렇다고 생각하는 쪽이 더 이상할 것이다.

        

       어쩌면 사고방식이 너무 귀족적이라서 평민을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방법조차 생각하지 못하는 종류의 사람일지도 모르지.

        

       “저희 영지를 방문해주셔서 영광입니다.”

        

       응접실로 안내받아 마주 앉아, 백작 부인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우리에게 말했다.

        

       “저야말로 초대해주셔서 영광입니다.”

        

       앨리스의 대답에 나는 순간 앨리스 쪽을 쳐다볼 뻔했다.

        

       초대받았다고?

        

       나는 못 받았— 아, 그런가.

        

       애초에 나한테 초대를 해야 할 이유가 없겠지.

        

       나는 미아 크로우필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와 차마 마주치지 못한 시선이 이리저리 떠돌았다.

        

       어쩌면 미아 크로우필드에게 이야기를 들었을지도 모른다. 차기 황제는 내가 아니라 앨리스라고.

        

       그렇다면 미아 크로우필드가 자기 어머니에게 ‘어디까지’ 이야기했는지가 중요할 텐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렇게까지 많이 이야기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미아 크로우필드와 어머니인 백작 부인 사이의 관계가 심각하게 파탄나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미아 크로우필드와 우리 사이의 관계도 심각하게 파탄 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앨리스와 부인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진부한 귀족식 인사말을 몇 마디 정도 더 나눈 뒤, 부인은 이런 말을 했다.

        

       “미아가 황녀님들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해주더군요. 함께 즐겁게 지내고 있다고. 미아는 다른 사람과의 의사소통에 적극적인 아이가 아니라서, 그렇게 끌어주시는 두 분이 계신다는 것에 얼마나 마음이 놓이는지 모릅니다.”

        

       “저도 소심한 동생이 하나 있어서요.”

        

       “어머.”

        

       앨리스의 이야기를 들은 백작 부인의 시선이 의미심장하게 나를 향했다.

        

       “먼저 말을 걸어주지 않으면 입을 다문 채 뚱하니 앉아있기만 하니, 먼저 말을 거는 법을 배울 수밖에 없었죠.”

        

       ……실제로는 앨리스의 옛날 모습에 더 가까운 것 같은데. 오히려 나는 필요하면 대담하게 말을 거는 성격이다. 내가 실수한 것 같으면 시간을 되돌리면 되는 거니까.

        

       그렇다고 앨리스가 ‘저는 사실 소심하고 처음 보는 사람과 대화하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하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는 했다. 앨리스가 나를 동생이라고 부르며 아끼는 것을 생각하면, 내가 앨리스를 아껴주던 어린 시절은 앨리스에게 있어서 남에게 함부로 말해주기 싫은 소중한 기억일 수 있으니까.

        

       만약 앨리스가 나를 믿는다면, 내 앞에 있는 백작 부인의 말은 믿지 않겠지.

        

       “그러시군요. 오히려 그런 말씀을 들으니 더 안심입니다. 저희 딸이 아카데미에 쉽게 적응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그런 친우가 있었기 때문일 테니까요.”

        

       앨리스는 백작 부인의 말을 들으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아니, 마시는 척만 한 것 같다. 앨리스의 찻잔의 차는 아까부터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백작 부인은 따로 지적하지는 않았지만.

        

       설마 백작 부인이 저 안에 먹고 죽을 약을 넣지는 않았을 거다. 지금 이 영지에는 우리를 호위하기 위한 기사단도 와 있었다. 게다가 크로우필드 백작을 죽인 것이 황제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이니, 앨리스를 죽이면 어떤 일이 터질 줄 이미 알고 있으리라.

        

       아마 내가 크로우필드 백작 부인이라면 다른 방법을 찾았을 것이다. 차에 탈 수 있는 것에는 정말 여러 종류가 있으니까.

        

       “어머, 내 정신 좀 봐.”

        

       백작 부인이 문득 그렇게 말하며 손뼉을 짝 쳤다. 그 소리에 미아 크로우필드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엄청나게 긴장이라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제가 눈치 없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네요. 오랜만에 친우끼리 만났으니 대화할 시간을 진작 드렸어야 했는데. 저는 이만 자리를 비키도록 하겠습니다.”

        

       크로우필드 백작 부인이 일어나서, 우리 모두 따라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앨리스, 나, 그리고 백작 부인은 서로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그리고 백작 부인은 자기 말대로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리고 문이 닫히는 것을 조금 불안하게 바라보고 있던 미아 크로우필드가, 자기 어머니가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얼른 입을 열었다.

        

       “그 차—”

        

       “그 정도는 의심하고 있었으니 괜찮아.”

        

       앨리스는 손수건을 꺼내 자기 입을 닦으며 말했다.

        

       차를 호록거리는 소리만 냈을 뿐, 찻잔 안의 내용물이 앨리스의 입술도 적시지 않았다. 앨리스도 마약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고 있으니까.

        

       내 방 안에서 나온, 군인들도 사용하던 그 모르핀을 보고 기겁했을 정도니까.

        

       “아…….”

        

       앨리스의 말에 미아 크로우필드가 허무하다는 듯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뒤늦게 앨리스가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차렸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안심해. 지금 당장 너를 탓할 생각은 없으니까.”

        

       앨리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응접실 안을 느긋하게 걸어 다녔다. 천천히, 응접실의 벽과 천장을 훑어보면서 발을 옮기는 그 모습은 ‘애초부터 전부 예상하였다’라는듯한 모습이었다.

        

       “…….”

        

       미아 크로우필드의 눈이 나를 향했다.

        

       “실비아는 관계없어. 걔는 그냥 내가 걱정되어서 따라온 거니까.”

        

       너나 너의 어머니를 죽이러 온 건 아니야.

        

       그 뒤에 생략된 말을 상상해보았다.

        

       ……작년의 나였다면 미아 크로우필드는 몰라도 그녀의 어머니를 죽일 가능성 정도는 찾아봤을 텐데. 기왕이면 내가 죽였다는 근거가 없도록, 사고사로.

        

       “이 방 안에 누가 숨을 수 있는 공간이 있어?”

        

       앨리스가 얼핏 보기에 느긋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 그건…….”

        

       미아 크로우필드는 입을 열었다가, 이내 다물었다.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여전히, 얼굴에는 복잡한 표정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오늘은 무슨 일로 오셨죠?”

        

       “네가 초대장을 보냈기 때문이잖아?”

        

       “…….”

        

       하지만 그 초대장에 응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걸까.

        

       하긴, 누가 봐도 수상한 초대장이기는 했다. 미아 크로우필드보다 더 친한 사이, 이를테면 샤를로트 같은 사람도 앨리스를 ‘초대’하지는 않았다. 안부 인사가 담긴 편지를 보내는 거라면 또 몰라도.

        

       귀족이 여기저기 놀러 다니는 것과 황녀가 방문하는 것에는 어마어마하게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딸려오는 사람의 머릿수가 많고, 그 머릿수를 먹고 재우기 위해서는 이래저래 골치가 아프다. 돈이야 황실이 쓰지만, 영지 크기에 따라서는 그냥 그 많은 사람을 먹고 재우는 것 자체가 부담될 수 있다.

        

       국가 간의 이야기라면 더 그렇고. 상대한테 ‘우리가 이렇게 잘 산다’를 보여줘야 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그레이스 가는 엄청나게 특이하다고 할 수 있겠다. 호위 하나 없이 우리가 가더라도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만큼 황제의 신뢰가 두텁다는 증거고, 그 사실 자체로 남작가에게는 자기들이 가진 힘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나도 그게 나름대로 경고장이라는 것은 알고 있어.”

        

       미아 크로우필드가 입을 열기 전에 앨리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

        

       미아 크로우필드의 입술이 꽉 다물려서 거의 일자가 되었다.

        

       “하지만…… 확인해볼 게 있었으니까.”

        

       “……저와 저희 어머니에 대해서요?”

        

       “아니. 너와 너희 어머니에 대해서는 이미 알아야 할 건 다 알고 있어. 사실 귀족만큼 조사하기 쉬운 상대도 없으니까. 미리 말을 하지 않고 조사했던 것은 사죄할게.”

        

       앨리스가 무릎을 살짝 굽혔지만, 미아 크로우필드의 표정은 여전히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그 눈이 뒷말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는지, 앨리스는 이어서 말했다.

        

       “물론, 너희 영지와 관련된 일이기는 해. 어쩌면…… 그때의 그 사건과도 관련 있을지 모르지.”

        

       “…….”

        

       미아 크로우필드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앨리스는 그 표정을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았다.

        

       “학교에서는 보지 못한 표정이네.”

        

       “결국 당신들은 전혀 변하지 않았군요.”

        

       미아 크로우필드의 말에, 앨리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다음 말을 기다리듯.

        

       “그때, 저희 아버지의 목숨을 앗아갔던 것처럼—”

        

       “아니.”

        

       앨리스는 미아의 말을 중간에 딱 끊으면서 말했다.

        

       “나는 너를 죽이지 않아. 죽일 이유가 없으니까.”

        

       “…….”

        

       미아 크로우필드의 눈이 커지는 것을 가만히 보면서, 앨리스가 말했다.

        

       “팬그리폰의 이름을 걸고 맹세할게. 나는 나의 ‘친우’를 죽이지 않겠어.”

        

       미아 크로우필드의 입이 딱 벌어졌다.

        

       내 입이 벌어지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다년간의 훈련과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치 후원감사는 최대한 빠르게 추가하도록 하겠습니다!

    =

    Ilham Senjaya 님, 후원 감사합니다!

    익명으로 후원해주셨기에 독자 닉네임 기능으로 인사드립니다!

    언제나 저의 소설을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매일 저의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신다는 것이, 제가 오늘도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었던 원동력입니다. 단순히 글을 쓰는 것 뿐만이 아니라, 제가 즐겁게 지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죠. 어린 시절부터 꿈만 꾸던 일을 하고 있는데, 그 일을 좋게 평가해주시는 분들이 많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모릅니다. 작년에 처음 글을 썼을 때만 해도 불안하기만 했는데, 지금은 그때 기회를 잡은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꾸준히 읽어주실 수 있도록, 재미있는 글을 쓸 수 있도록 언제나 노력하는 작가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KYYY 님,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팀은 아니고, 혼자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직업 특성이 전형적인 ‘손님 많으면 시간이 없고, 손님 없으면 시간이 많은’일인데다가 특정한 공간에 혼자 앉아있을 시간이 많으니 비교적 남들 눈치 안 보고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많아서요. 취업하던 때에도 시간 남으면 인터넷이나 하고 있으라는 말을 듣기도 했고… 면허가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라서 제가 이 자리에 꼭 있어야 하는 점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덕분에 이렇게 새로운 일에도 도전할 수 있었으니, 이 직업을 가졌던 것이 그렇게 나쁜 일만은 아니었네요.

    그것과는 별개로, 사실 불특정 다수의 사람을 하루에 십수명씩 마주해야 하는 것이 저와 잘 맞는 일은 아닌 것 같지만… 직업 중에서 정말로 아무도 만나지 않고 돈만 벌 수 있는 직업이 얼마나 되겠어요. 그러니 저는 이렇게 웹소설을 쓰게 된 것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자 여러분 덕분에 오늘도 즐겁게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독자 여러분을 위해 읽기 즐거운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