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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6

       기숙사 침실.

         

       파스텔은 오들오들 떨었다.

         

       인생 최대 위기, 인생 최대 위기.

         

       황제 폐하의 내 아래 너 위로 모두 집합 명령.

         

       으아아!

         

       이건 마석 챙겨 먹어야 한다는 선고가 떨어졌는데 지갑에 한 푼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만큼의 공포.

         

       신분제 국가에서 최고 존엄의 심기를 거스른 직후 일어난 호출 명령이라니!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파스텔은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 상태로 빠르게 머리를 흔들자 미니 양갈래가 마구 파닥였다.

         

       저 아무 잘못도 안 했어요!

         

       진짜진짜 안 했어요!

         

       제국은행의 뒤에 황제 폐하가 있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도 에이 설마 그러겠어 라는 마인드로 경매 담합부터 생각하긴 했지만 악의는 없었어요!

         

       어차피 경매 담합한 거 쪼끔 뻔뻔하게 금화 1개를 부르자! 철도 기업이 금화 1개! 우와앙! 완전 싸! 완전! 완전! 같은 생각을 하고 실천하긴 했지만 악의는 없었어요!

         

       허억.

         

       악의는 없음.

         

       속셈은 있음.

         

       으아아!

         

       어쨌든 황제 폐하의 그림자를 밟고 춤춘 것과 다름없는 짓!

         

       뚬칫뚬칫 파스텔……!

         

       완전 불경 그 자체!

         

       파스텔 각하라면 하극상이냐며 밀실로 데려갈 상황……!

         

       절망.

         

       절마앙.

         

       파스텔은 절망 끝에 반성했다.

         

       왜 내가 최고 존엄이 아닌 거야아!

         

       황제로 태어났으면 괜찮았을 텐데!

         

       이건 신분이 부족하게 태어난 내 잘못이야!

         

       신님, 신님!

         

       다음 생에는 최고 권력자로 태어나게 해주세요오!

         

       많은 걸 바라는 것도 아니고 여기서 뽑기 운만 조금 더 좋으면 되잖아요!

         

       『진정, 흠.』

         

       악마가 분홍 머리통 위에 손을 얹어 진정시키려다가 파닥이는 분홍 양갈래의 훼방을 어쩌지 못하고 멈칫했다.

         

       악마는 이 정신없는 미니 양갈래를 잡아서 멈추게 할까 고심하는 표정이 되더니 포기했다.

         

       『일단 진정해 봐라. 큰일이 아닐 수도 있다. 반강제로 데려가지 않았으니 정말 말 그대로 만나자는 얘기일 거다. 크래프트는 엄연히 대귀족이니 평민이나 하위 작위라면 걱정해야 할 불상사는 없겠지.』

         

       “헛!”

         

       그런가?

         

       분홍 머리카락이 멈추고 진정됐다.

         

       듣고 보니 정말 그럼.

         

       나, 대귀족 크래프트.

         

       반역죄도 아닌 이상 황명으로 신변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매우 낮음.

         

       반역 계획 같은 건 세운 적도 없으니 매우매우 안전.

         

       “휴우!”

         

       파스텔은 괜히 이마를 훔쳤다.

         

       “그렇네요! 전 안전안전 파스텔이었어요!”

         

       후작가에서 태어난 건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이었어!

         

       악마가 흐트러진 분홍 머리카락을 가다듬어 줬다.

         

       『안전안전 파스텔인진 모르겠지만 별일 없을 거다. 내가 아는 황제 녀석은 사리 분별도 잘했던 편이니.』

         

       황제 녀석.

         

       그러고 보면 황제 폐하도 악마님처럼 한창때 엄마와 함께 다니던 짝사랑남이시구나?

         

       급격히 감정이 복잡미묘.

         

       도대체 아빠는 엄마에게 얼마나 절절한 사랑을 고백했길래 대악마와 황태자 사이에서 승리한 거지?

         

       사랑이 뭐길래 자식조차 놓을 정도로 절실해질 수 있는 걸까.

         

       『어린 크래프트?』

       “헛!”

         

       으이.

         

       파스텔은 양볼을 문지르며 생각을 전환했다.

         

       “그런데요 그런데요. 황제 폐하께서 그렇고 그랬던 분이라는 걸 알게 되니까 다른 의미로 걱정돼요!”

         

       손이 잘게 떨렸다.

         

       “설마설마 엄마 대신이라거나?!”

         

       인기인 파스텔의 초절정 인기력을 생각하면 황제 폐하께서 눈이 돌아가도 이상하지 않았다.

         

       역사적으로도 후계자 생산이라는 의무를 진 황제가 젊은 상대를 들이는 건 굉장히 흔하지……?

         

       으이.

         

       으이이.

         

       『그건.』

         

       악마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아마 아닐 거다.』

       “아마!”

         

       파스텔은 경악했다.

         

       아마! 아마아!

         

       “우아앙!”

         

       순식간에 울상이 됐다.

         

       부모 세대에게 고백받을 위기!

         

       만 14세 파스텔, 3n세 황제 폐하께 고백받다.

         

       그건 좀……!

         

       굉장히 좀……!

         

       파스텔 인생에 없었으면 좋겠는 사건인데요!

         

       완전완전!

         

       악마가 당황했다.

         

       『잘못 말했군. 절대 아닐 거다. 황제 녀석은 이미 결혼도 했고 처자식도 있는데 과거의 연정에 아직도 마음을 두고 있진 않겠지.』

         

       결혼도 안 했고 처자식도 없는 악마님이 말하니 뭔가 설득력이 있는 듯 없는 듯.

         

       『여태 연정이 남아 있다 해도 사교계에서 비아냥거릴 망측한 행동을 하진 않을 거다. 게다가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어머니와 그 자식을 혼동하진 않겠지. 내가 아는 황제 녀석은 충분히 제정신이다.』

         

       그런가?

         

       황제 폐하께서는 제정신이신 건가?

         

       악마가 한쪽 주먹을 쥐었다.

         

       『놈이 정 이상한 제안을 한다면 내가 혼내주마. 그런 마음이 다신 안들만큼 혼내주지.』

         

       허억.

         

       파스텔은 입을 가리며 놀랐다.

         

       “악마님, 황제 폐하보다 높은 사람이었어요?!”

         

       악마가 픽 웃었다.

         

       『일반 악마도 아니고 대악마인데 황제만도 못할까.』

         

       완전 믿음직!

         

       “악마님만 믿을게요!”

       『그래.』

         

       분홍 눈동자가 반짝였다.

         

       “사실 엄마에게 차였다고 딸에게 마음을 주는 건 굉장히 한심하다고 생각해요!”

         

       악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옳은 말이군. 그런 상대라면 쳐다도 안 보는 게 맞다. 연정이 어머니에서 딸에게 전가되는 것도 망측하고 혹여 그런 마음이 들었다 한들 그 나이 차로 마음을 표출하는 건 더 망측하지.』

         

       완전완전 공감!

         

       “정말정말이요!”

         

       파스텔은 양 주먹을 꼭 쥐었다.

         

       “심한 말 하긴 쪼끔! 그렇지만! 그런 분과는 같은 공간에 있고 싶지 않아요!”

         

       벚꽃 잎도 피해서 떨어질 존재감!

         

       악마가 적극 공감했다.

         

       『잘 생각했다. 혹여 그런 놈이 있다면 말해라. 접근도 못 하게 해놓겠다.』

         

       “와아!”

         

       파스텔은 만세 했다. 그대로 빙글빙글 돌았다.

         

       안도! 안도!

         

       악마님이 있어서 다행이야!

         

       평생 지켜주세요!

         

         

         

       #

         

         

         

       비공정 정박장.

         

       “지금이라도 같이 가드릴까요? 폐하와는 한번 뵌 적이 있거든요.”

         

       배웅 나온 멜리사가 걱정했다.

         

       “괜찮아! 파스텔은 혼자서도 잘해!”

       “그렇긴 해도 황제 폐하와의 첫 알현은 상당히 긴장될 거예요. 그래서 보통 어린 자제는 부모와 함께 알현하는 게 관습이죠.”

       “괜찮! 괜찮! 용감한 파스텔 각하는 이런 일에 겁먹지 않아!”

         

       파스텔은 짐가방을 안 든 손으로 손사래 쳤다.

         

       “그리고 악마님도 있어!”

         

       가리킨 방향엔 정장 차림의 악마가 황실 쾌속선의 선장과 일정을 재확인하고 있었다.

         

       “그런가요.”

         

       멜리사가 말을 멈췄다. 이 파스텔 각하가 대악마의 정체를 숨길 생각은 있는 건지 아리송해 보였다.

         

       “믿음직한 사용인이네요. 저도 어머니만큼은 아니지만 믿고 따르는 하녀 분이 계시긴 해요. 불가피하게 바쁜 어머니를 대신해서 많은 보살핌을 받을 수 있었죠.”

       “어머니가 두 분이네! 좋겠다!”

         

       멜리사가 살포시 웃었다.

         

       “정말 그렇네요.”

         

       멜리사와 그냥 옆에서 가끔 “응.” 거리며 멍하니 있던 앨시어의 배웅이 끝났다.

         

       엘리가 슬쩍 다가왔다. 엿듣는 사람이 있나 주변을 살피더니 조용히 말했다.

         

       “소식은 다 보내놨어. 네가 돌아올 때쯤엔 모두에게서 피드백이 올 거야. 맞춰서 철도 사업도 진행해 놓을게.”

       “응응!”

         

       마왕마왕 파스텔인 거야.

         

       이것이 타락의 전조?

         

       두근두근.

         

       정작 엘리는 연기라 생각하지만!

         

       언젠가 마왕님이라 부르게 만들겠어!

         

       다른 친구들과도 인사한 파스텔은 황실 쾌속선에 승선했다.

         

       그냥 비공정이면서 바닥은 온통 대리석에 하얀 벽은 금무늬까지 새겨져 있었다. 굉장히 화려하고 호화찬란하다. 역시 황실답다는 생각이 팍팍 들었다.

         

       “우와아!”

         

       이게 모두 세금이구나!

         

       우왕!

         

       가난한 학생회실에서 근검절약한 삶을 살던 파스텔 학생에겐 문화 충격!

         

       저도 이런 권력자가 될래요!

         

       학생답게 순수한 꿈 하나가 더 늘었다.

         

       높으신 사람 대우로 선장에게 손수 비공정을 안내받고 공간 낭비라고 생각할 만큼 큰 객실을 배정받았다.

         

       외부인이 모두 빠지자 파스텔은 벽면에 걸린 거대 풍경화 앞으로 후다닥 달려갔다.

         

       푸른 바다와 산호초 무리를 그린 그림이 시야에 가득 찼다.

         

       “악마님! 악마님! 이거 얼마일까요?!”

         

       세금 백만 배의 냄새가!

         

       악마가 티세트를 살펴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림을 감상할 때 가격표부터 보지 마라. 중요한 건 예술가의 의도와 네 자율적 해석이다.』

         

       파스텔은 양팔을 활짝 펼쳤다. 최대한 펼쳤건만 그림이 얼마나 큰지 손이 액자 끝의 왼쪽에도 오른쪽에도 닿지 않았다.

         

       “우와아!”

         

       입이 헤 벌어졌다.

         

       “이거 얼마일까요?!”

       『듣지도 않는군.』

         

       악마가 포기하고 풍경화를 살펴봤다.

         

       『호오, 가격이 상당하겠군. 나스타샤의 작품이다.』

         

       모르는 분!

         

       근데 악마님이 감탄할 정도면 어느 수준인지 예상이 된다.

         

       “그래서 얼마일까요?!”

         

       악마가 팔짱을 끼고 손가락으로 팔뚝을 툭툭 두드리며 미간을 좁혔다.

         

       『최소한, 파산했던 철도 상단을 정가에 구매하고도 남을 값 정도는 되겠어.』

         

       허억.

         

       분홍 눈동자가 떨렸다.

         

       황실은 이런 그림을 쾌속 비공정의 객실에 걸어둘 만큼 돈이 많다?

         

       얼마나 많은 세금을 거둔 걸까.

         

       이것이, 이것이 진정한 권력자……?

         

       파스텔은 급격히 기가 죽었다.

         

       사실 파스텔 각하는 변방의 지배자였을 뿐이야.

         

       흐윽.

         

       『쾌속 비공정에 놓을만한 가격대는 아니야. 크래프트 후작이 알현하러 오며 지낼 객실이니 황실이 일부러 배치한 건가?』

         

       으에?

         

       『금화 1개가 섭섭하긴 했나 보군.』

         

       파스텔은 떨리는 눈동자로 풍경화를 봤다.

         

       설마 이건 우리가 돈이 부족한 건 아닌데 네가 그러면 좀 섭섭하다? 라는 우회적 표현?

         

       으아아!

         

       살려주세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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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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