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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6

       한 무리의 마차들이 해안을 따라 난 길을 달렸다.

       마차들의 외관은 화려한 색으로 도장이 되어있었고, 짐칸은 공연에 쓰이는 도구들로 가득했다.

         

       누가 봐도 유랑 곡예단이었다.

         

       가장 먼저 그들을 목격한 발 빠른 동네 꼬마 하나가 마을에 소식을 퍼트렸다.

       마을에 있는 아이들이란 아이들은 좨 대로변으로 몰려나왔다.

         

       그들은 기대에 찬 눈으로 다가오는 마차 무리를 바라봤다.

         

       그들이 사는 마을은 이 근방에서 제일 컸고, 대로 바로 옆에 있어서 교통도 편리했다.

       5일장도 항상 이곳에서 열렸다.

         

       아이들은 서커스단이 당연히 자기네 마을을 들릴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길을 가로막은 그들을 보고 마부석에 앉은 랫맨들은 성가신 표정을 지었다.

         

       “찍찍! 저리 가라!”

       “오늘 영업! 안 한다!”

         

       그들은 아이들의 아우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차를 그들 사이로 몰았다.

       아이들은 와 하는 소리를 내며 흩어졌다.

         

       “감히 랫맨 주제에!”

       “얼굴 좀 보자! 얼마나 잘났다고!”

         

       그들의 태도가 고까웠는지 아이들 틈에 섞여 있던 한량들 몇이 마차를 세우고 시비를 걸었다.

       그러나 맨 앞에 앉은 가면을 쓴 광대가 무언가를 내밀자 그들은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그것은 영주의 문장이 박힌 통행증이었다.

       세상 돌아가는 데에 무지한 시골 주민들이지만 영주의 문장은 똑똑히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 노역을 동원할 때나 세금을 걷으러 올 때마다 지겹게 보기 때문이다.

         

       “기사님이 주신 표식이 쓸모가 있군요.”

         

       지금까지 이것으로 몇 번이나 시비를 물리친 스벤이 유쾌한 목소리로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나 그의 말에 장단을 맞춰주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지친 탓이었다.

         

       밤새 마귀와 싸우느라 제대로 자지 못했다.

       그렇게 부상당한 몸으로 제대로 쉬지도 먹지도 못하고 계속해서 마차를 타고 달렸다.

       그런 와중에 추적자들 걱정까지 하고 있으니 다들 짜증이 이만저만이 아닌 것이다.

         

       해골인 스벤만이 유일하게 잠도 식사도 할 필요가 없는 몸이라 평소처럼 행동할 수 있었다.

         

       평정심과 웃음.

       광대가 갖춰야 할 2가지 중 하나를 그는 타고났다.

         

       유라크네는 우리 안에서 고열로 끙끙 앓고 있는 우몬의 땀을 닦아주었다.

       그의 부러진 뿔 단면은 피가 고여 새빨갛게 부어 있었다.

         

       단원 중 마귀와 가장 심하게 싸움을 벌인 그였다.

       편한 침대에서 자게 해주지는 못할망정, 딱딱하고 덜컹거리는 철창 바닥에서 그를 눕혀둬야 하는 현실이 그녀는 안타까웠다.

         

       그렇다고 쉴 수도 없었다.

       드발체프의 참변이 주변으로 얼마나 빨리 퍼질지, 소식을 들은 영주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이상 빨리 이 동네를 벗어나야 했다.

       그들은 잠시도 멈추지 않고 해변 대로를 따라 계속 달렸다.

         

       그들은 교대로 자리를 바꿔가며 철야로 마차를 몰았다.

       이바넨코가 준 통행증 덕분에 역마다 지친 말들을 교환 받을 수 있었다.

       덕분에 그들은 다음날 정오쯤 이스미 구릉지를 간신히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원더스타인이 눈을 뜬 것도 그쯤이었다.

       그는 병간호를 하다가 자신의 가슴팍에 엎드려 잠든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세 쌍의 팔로 각각 이마, 볼, 턱을 받치고 있어 편안해 보였다.

         

       자신은 괜찮다고 하는데도, 그녀가 꼭 간호를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는 목을 크게 가다듬고 그녀를 불렀다.

         

       “유라 씨.”

       “으음……? 어어? ……다, 단장님? 깨, 깨어나셨군요!”

         

       유라크네는 두 눈을 비비며 그를 바라보고 환하게 웃었다.

       항상 비녀로 가지런하게 묶었던 그녀의 머리카락은 산발이 되어있었으며, 두 눈은 퀭하게 패어 있었다.

         

       아무래도 그가 쓰러져 있는 동안 마음고생을 심하게 한 듯했다.

       그는 그녀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별일 없었나요?”

       “네. 별일 없었어요. 다들 지쳐서 곯아떨어졌을 뿐이에요.”

         

       그는 그 ‘다들’에 한 사람이 빠져있다는 것을 알았다.

         

       “엘라 양은 괜찮습니까?”

         

       그의 말에 그녀는 안색이 헬쑥해지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직……의식을 회복하지 못했어요…….”

       “그렇군요…….”

         

       원더스타인은 웃었다.

       유라크네는 그의 미소를 보고 흠칫 몸을 떨었으나, 곧 안타까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단장님…….”

       “밖에 나가서 다른 단원들을 위로해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 얼굴로는 무리겠죠.”

         

       잠시 마차 안에 침묵이 흘렀다.

       유라크네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이제 솔직히 말하는 건 어떨까요……?”

       “…….”

       “그때는 말해봤자 해결되는 건 없고, 오해만 더 커질 뿐이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다들 이제……단장님에 대해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을 거예요.”

         

       원더스타인도 그녀의 말이 옳다고 여겼다.

         

       “알겠습니다……. 엘라 양이 깨어나면 모두 모아놓고 말하지요.”

         

       그의 말에 유라크네는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잘 생각하셨어요.”

         

       그때, 밖에서 와 하는 함성이 들렸다.

       요벨이 눈물을 흘리는지 울먹이는 소리로 외쳤다.

         

       “부단장이 깨어났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둘의 눈은 기쁨과 동시에 걱정이 담겨 있었다.

         

         

       ***

         

         

       사신의 낫에 달린 날 끝부분이 사람의 살을 뚫고 들어왔다.

       원더스타인의 얼굴에 피가 튀었다.

         

       충분히 피할 수 있던 공격이었다.

       그는 낫이 공간을 뚫고 튀어나오던 순간부터 그것을 보고있었으니까.

         

       하지만 갑자기 떠오른 메시지 때문에 주춤하고 말았다.

         

         

       [엘라의 호감도가 8 올랐습니다. 호감도 30을 달성한 보상으로 <인스피라: 모자 마술>이 엘라에게 제공됩니다. 현재 호감도: 36 (다음 보상: 호감도 50)]

         

         

       엘라의 호감도가 2번째 벽을 넘었다.

       평소라면 반가운 소식이었겠지만, 다급한 상황에서 몇 초의 머뭇거림은 컸다.

         

       “피해!”

         

       엘라가 소리치기 전에 그는 몸을 옆으로 튕겼다.

       그러나 사신이 건 빙결의 저주가 더 빨랐다.

       그의 몸은 얼음 때문에 땅에 달라붙고 말았다.

         

       얕은 살얼음이었다.

       아무리 부상 입은 상태라지만, 몸에 반동을 주면 충분히 부술 수 있었다.

         

       그러나 바로 앞까지 낫이 들이닥친 상황에서 그럴 여유가 없었다.

       시간이 부족했다.

         

       콰직.

       검은 칼날이 살을 찢고 들어왔다.

         

       “흐윽……큭…….”

         

       폐를 꿰뚫렸을까.

       신음에 바람 빠지는 소리가 섞였다.

         

       원더스타인은 자신을 밀친 존재를, 자신 대신 사신의 낫을 받아낸 존재를 보고 그 이름을 중얼거렸다.

         

       “엘라 양……?”

         

       익숙한 붉은 연미복이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녀의 작은 등을 뚫고 튀어나온 검은 날이 보였다.

         

       그녀는 자신의 가슴을 관통한 그것을 보면서 헛웃음을 흘렸다.

         

       “하…하…하하……. 마, 많이 아프네……. 다, 당신도 그랬으려나……?”

         

       커튼이 완전히 닫히며 사신의 낫도 그와 함께 사라졌다.

       그녀의 벌어진 가슴 틈으로 피가 바닥에 왈칵 쏟아졌다.

         

       “아…….”

         

       원더스타인은 비틀거리다 뒤로 쓰러지는 그녀의 몸을 받았다.

       그녀는 그의 가슴에 등을 기대고, 초점 없는 눈으로 먼 곳을 바라보며 턱을 덜덜 떨었다.

         

       “이거……기, 기분 이상한데…….”

         

       사신을 물리치면서 단원 퀘스트가 해결되었다는 알림들이 연달아 떴다.

       보상으로 데볼루트가 들어왔지만, 그걸로 엘라를 치료할 수 없었다.

       그녀는 데볼루트 면역이었다.

         

       그는 뭐라도 없나 상태창을 마구 뒤졌다.

       그러나 의상실도, 음향실도, 스킬북도 모두 지금 상황에서는 쓸모가 없었다.

         

       “엘라 양……어째서……어째서입니까……?”

         

       그의 말에 엘라는 떨리는 입술로 피식 웃어 보였다.

         

       “모, 몰라……. 나, 나도 모르게 나서고 말았네……. 모, 못 보고 있겠더라고……당신이 피 흘리면서 떨고 있는데…….”

         

       그는 안타까움에 울고만 싶었다.

         

       차라리 그냥 두지.

       자신은 사신을 물리친 보상으로 받은 데볼루트로 치료하면 되는데…….

       자신이 찔려봤자 끽해야 기초능력치 몇 개 뺏기고 끝날 텐데…….

         

       “죄송합니다……. 제가 당신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군요.”

         

       그의 말에 예상했다는 듯 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럴 거 같았어……. 지금 당신 몸도……그 꼴인데……. 주, 죽는 건 괜찮아……. 당신과 함께 다니면서……몇 번이나 각오했던 일이니까…….”

       “엘라!”

       “부단장!”

         

       멀리서 단원들이 달려왔다.

       그러나 그들이 와도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엘라의 핏기 없는 얼굴은 그녀의 생명이 끝나감을 알려주었다.

       심장에 사신의 낫을 찔렸다.

       붕대나 연고, 회복 포션 따위로 수습 가능한 상처가 아니었다.

         

       “하지만 행복한 기억을 잃는다니까……조, 조금 아쉽네……. 씨……얼마나 힘겹게 쌓아온 것들인데……허무하게…….”

         

       그녀는 아까 원더스타인이 사신에게 한 말을 따라했다.

         

       그때, 그녀가 갑자기 짧은 숨을 연달아 끊어 쉬었다.

       입술을 씰룩이며 켈룩거리는 것이 웃어보려다 실패한 것 같았다.

         

       “킥…킥……. 우, 웃긴 거 하나 말해줄까……? 그, 아, 아쉬운 기억의 상당수가……지난 몇 달간의 일이다……? 음, 저, 정확히 베르그송 자작과 만나고 난 뒤……?”

         

       그녀의 말에 원더스타인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는…….

         

       “이상하지……? 나……. 그렇게나……당신을 싫어했는데…….”

         

       그녀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 아무래도……진짜 인정하기 싫지만……. 다, 당신과 함께하는 동안……. 나……행복……했나 봐…….”

         

       그녀의 눈이 감겼다.

         

       원더스타인은 등 뒤에서 단원들이 울음을 터트리는 것을 들었다.

       그는 단원들에게도 그녀와 작별인사를 할 기회를 주어야겠다는 생각에 그녀를 옮기려 했다.

         

       그때, 누군가의 손이 그의 어깨를 눌렀다.

         

       “진정하시죠. 살아있습니다. 잠든 것뿐입니다.”

       “……네?”

         

       그를 막아세운 것은 바로 바예르였다.

       그는 자신의 손바닥을 펼쳐 보이며 말했다.

         

       “그녀가 찔린 순간, 제가 반전의 힘을 썼습니다.”

       “아……!”

         

       그의 말에 단원들이 탄성을 내질렀다.

       그들은 그가 싸우는 모습을 봤다.

         

       중력을 뒤집고, 물을 불로 바꾸고, 날아오던 것을 튕겨내고…….

       원리는 알 수 없지만, 반전의 힘이라는 이름과 상황을 뒤집는다는 점에서 그 내용을 대강 눈치챌 수 있었다.

         

       설명을 들은 원더스타인은 사신이 처음에 낫을 들지 못했던 것도 그의 힘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고 보니 눈을 감은 그녀는 죽은 게 아니었다. 숨을 쌕쌕 내쉬며 잘 자고 있었다.

       피를 흘린 것도 처음이 다였다.

       처음 찔린 순간에 고여있던 피가 떨어진 것에 불과했다.

         

       그는 얼떨떨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엘라 양은 괜찮은 겁니까? 뭔가……사람이 바뀌는 건가요?”

         

       바예르는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습니다. 원래 제 반전의 힘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이걸로 다른 사람의 본질을 바꾸는 건 절대 무리죠.”

         

       그는 그렇게 말하곤 그녀의 상처를 가리켰다.

         

       “하지만 이번에는 사신의 낫에 적중당한 순간 반전의 힘이 적용됐죠. 그러면 얘기가 좀 복잡해집니다.”

         

       사신의 낫은 맞은 사람으로부터 ‘행복한 기억’을 흡수한다.

       바예르는 그것이 ‘불행한 기억’을 흡수하는 걸로 반전된 건지, 혹은 ‘행복한 기억’을 심는 식으로 반전된 건지, 그것도 아니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 반전된 건지, 혹은 그 능력에 대해서는 반전이 아예 안 된 건지 모른다고 답했다.

         

       “다급하게 힘을 쓰느라 축을 제대로 세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기준을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물리적인 타격을 ‘없던 것’으로 바뀐 것 확실합니다. 그러나 정신적인 면은……기다려 봐야 알겠죠.”

         

       바예르는 깨어난 그녀가 무엇을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상당히 무책힘한 태도였지만, 갈 길이 바쁘다는 그를 붙잡을 수 없었다.

       엘라의 목숨을 구해준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그는 검은 마도사 추적대의 대장이었다.

       함께 있어봤자 좋을 일이 없다고 생각한 원더스타인은 서둘러 영지를 떠나는 게 좋다는 이바넨코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원더스타인은 제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반전되었길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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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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