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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6

       “꽃 사세요~ 꽃 사세요~ 오늘 팔지 않으면 이 친구들이 다 시들어 버려요…….”

       

        공역(空域)의 밤하늘은 주인을 잃어버린 땅이 눈물을 흘리는 듯했다.

        세월의 흔적이 짙게 묻어난 왕성에는 부서진 돌조각을 치울 사람도, 안달루시아의 영광을 기억해줄 사람도 없이 오직 달빛만이 감돌고 있었다.

        야시장에 있던 상인들마저 좌판을 접고 떠나 성을 밝히던 마지막 온기마저 사라진 모습을 보고 있자니, 발걸음에도 저절로 슬픔이 묻어났다.

        저절로 지갑을 열게 하는 슬픔이었다.

       

        “가진 꽃, 전부 주시겠습니까.”

        “정말인가요 마법사님?”

        “네, 소중했던 사람을 보내주고 오는 길이라서요…… 마지막 만큼은, 제 진심이 닿았으면 좋겠네요.”

        “그런 슬픈 사연이…… 종류별로 합쳐서 350골드에요.”

        “한 송이면 됐습니다. 제일 싼 걸로요.”

       

        이때다 싶어 바가지를 씌우는 소녀에게 구입한 말라 비틀어진 꽃을 돌 의자 주변에 장식했다.

        그리고 딱딱하게 굳은 바닥을 창끝으로 긁어내어 녀석을 위한 비문을 적어주었다.

       

        [살살이에게도 육체가 있었다는 증거 ㅎ]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처음 봤을 때 너무나 놀란 나머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던 그녀의 모습이.

        다시 만나자는 약속은 결국 지키지 못했지만, 그곳에서는 꼭 행복하게 두 다리로 뛰어놀았으면 했다.

       

        그렇게 녀석을 보내주고 나니 마음이 너무 아팠지만, 한편으로는 후련한 기분도 들었다.

        이제 살살이는 영원히 검에 갇혀 본래 육체를 되찾지 못한 채로 평생동안 갤러리를 떠도는 망령처럼 살아가는 미래가 예정…….

       

        “왕성 지하에 그런 장소가 있었나요? 들어갈 방법이라면 얼마든지 있죠.”

       

        되어있었는데 한가롭게 저녁식사를 하던 중, 마가렛이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계획이 완전히 무너졌다.

       

        “아시다시피 왕성의 소유권은 어느 학파에도 없거든요. 위원회 측에서 외부 업체를 선정해서 일회성으로 공사를 진행한 거라 다시 파내도 딱히 책임을 묻진 않을 거에요.”

        “아니, 콘크리트로 완전히 덮여 있었다니까요? 소음도 그렇고 괜히 건드렸다가 성이 무너지면 큰 사고로 이어질 게 분명해요.”

        “에이, 그 정도 안정성이야 마법으로 충분히 보강 가능하죠. 그리고 동료 분의 유해가 거기 있으시다면서요. 뭣하면 저희 공략대가 대신 해드릴까요?”

       

        ====

        44층에갇혀있어요살

        [실프 공ㄹㅑㄱㄷㅐ ㅁㅏ탑 초ㅣ고으ㅣ 공ㄹㅑㄱㄷㅐ!!]

       

        마ㄱㅏㄹㅔㅅ트 중층 초ㅣ고으ㅣ ㅁㅏ법ㅅㅏ 마ㄱㅏㄹㅔㅅ트 중층 초ㅣ고으ㅣ ㅁㅏ법ㅅㅏ 마ㄱㅏㄹㅔㅅ트 중층 초ㅣ고으ㅣ ㅁㅏ법ㅅㅏ 마ㄱㅏㄹㅔㅅ트 중층 초ㅣ고으ㅣ ㅁㅏ법ㅅㅏ 

        ====

       

        젠장, 돈에 눈이 먼 공략대 놈들에게 정보를 흘리는 게 아니었다.

        살살이 녀석은 기어이 내려온 동앗줄에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중이었다.

        허나 마가렛이 간과한 사실이 있다면 보물방은 보기와 달리 공략이 그리 호락호락한 구역이 아니라는 것.

        나는 운드라 가문의 최후를 설파하던 투어 가이드보다 더욱 음산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좋은 생각은 아니군요. 그곳엔 저주가 걸려 있습니다.”

        “저주요?”

        “네, 보물방에 조금이라도 발을 들이려 하면 4대 재앙에 버금가는 무시무시한 괴물이 깨어나는 저주죠. 아마 공역이 모조리 파괴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해주학파잖아요……?”

        “해주학파라 해도 모든 저주를 풀 수 있는 건 아닙니다. 특히 이유없는 저주는 더더욱이요.”

       

        마가렛은 믿지 못하는 모양새였지만 엄연한 진실이었다.

        선두로 가던 창잡이가 사악한 악령에게 영혼을 빼앗겨 난동을 피울 가능성이 0.000001%정도 있었다.

       

        위계를 막론하고 마탑에서 불길한 예언을 간과하는 마법사는 오래 살아남지 못한다.

        천변의 방 공략에도 안전에 상당한 주의를 기울였던 마가렛인 만큼 일단은 한발 물러나겠지.

        예상대로 나의 만류에 그녀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흠, 그럼 보류해둘까요. 위치를 알았다는 게 중요한 거고 차후 기회가 있을 테니까.”

        “현명한 판단이네요. 위험요소가 파악된 다음에 천천히 공략해봅시다. 음…… 한 30년쯤 뒤에?”

        “아하하, 농담도 잘 하시네요.”

       

        농담 아닌데, 너무 긴가?

        그럼 한 15년쯤이면 적당하겠군.

        식사도 끝났고, 이대로 대화가 마무리될 것 같은 분위기에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나는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내일 계층지기 님께 물어보고 결정해요.”

        “네?”

        “그분이라면 공역에 대해서는 다 꿰고 계실 테니까요. 아마 잘만 설득하면 동료분의 유해를 수습하는데 도움을 주실지도 몰라요.”

       

       

       

        *

       

        계층지기.

        중층에 존재하는 시련을 관장하는 자로 ‘층의 주인’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마탑의 각 층에는 다음 층으로 넘어가기 위해 붙여놓은 조건이 있지만, 탑으로부터 이명을 받은 시점에서는 그러한 제약이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계층지기에게 ‘다음 층으로 넘어가도 좋다’는 허락만 받으면 되니까.

        시련으로 향하는 포탈 역시 생활부 직원들이 따로 지켜가며 성적을 확인하지 않는다.

        중층부터는 시련의 난이도가 행정력으로 보호할 수 있는 수준을 아득히 넘어서기 때문이다.

       

        오직 등반을 목적으로 하는 공략대에게 계층지기와의 커넥션은 중요한 것이었다.

       

        “이래봬도 운이 좋은 셈이에요. 허무의 층 시련은 시간을 오래 잡아먹는데 반해 ‘왕녀’께서는 44층에서 움직이지 않으시거든요.”

        “다른 계층지기들은 아닙니까?”

        “저들이 딱히 저희를 통과시켜줄 의무도 없고, 사실상 얼굴 보기도 힘들다고 할 수 있죠. ‘사서장’은 어지간한 마법사가 아니면 문전박대하기로 유명하고, 악의의 층 계층지기는 아직까지도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았어요.”

       

        지금 은혜를 입혀 놓아서 다행이다-.

        마가렛은 겸양 떨듯 이렇게 말했지만 사실 계층지기를 독대하는 건 흔치 않다.

        중층과 상층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실프 공략대쯤 되니 가능한 일이었다.

       

        아직 부활 가능성을 남겨둔 살살이의 장례를 치른 다음날.

        토비와 루퍼트는 예정대로 자유시간을 갖고 나와 프리나만 마가렛과 동행했다.

        아녜스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했지만 일단 호텔에 놔두기로 했다.

        본인도 자유시간을 달라며 떼썼지만 조금이라도 한눈을 팔면 사라지곤 하므로 기각되었다.

       

        그렇게 셋이서 왕궁의 내성으로 들어갔다.

        커다란 문 너머에 있다는 알현실 앞 복도에서 들어오라는 명령을 기다리던 중, 마가렛이 나와 프리나에게 말했다.

       

        “들어가시기 전에 두 가지 주의사항이 있어요. 계층지기를 만나실 땐 반드시 왕족을 대하는 것처럼 예의를 갖춰야 해요.”

        “왕족이요?”

        “네, 계층지기들은 저마다 성격이 천차만별인데, ‘왕녀’께서는 말 그대로 이 공역의 왕족처럼 생각하고 행동하세요. 다소 과하다 여겨질지라도 그분의 규칙에 맞추는 편이 이야기가 수월해요.”

        “되, 되도 않는 컨셉질이네, 다 망한 도시에서 왕은 무슨. 두 번째는 뭔데?”

        “두 번째는 그분 앞에서 절대로 언급해서는 안 되는 마법사에 대해서인데…….”

       

        그때, 조금 전 들어간 앞 팀이 나오며 생각보다 빠르게 우리 차례가 다가왔다.

       

        “실프 공략대 소속 마가렛 라미 외 두 명, 지금 입장하시오!”

        “일단 들어가죠. 그 자에 관해선 어지간해서는 이야기할 일 없을 거에요. 공역을 최초로 발견한 마법사라는 것만 알아두세요.”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경비병을 지나쳐 알현실에 들어가니 텅 빈 내부에 옥좌가 하나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 위에 심드렁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있는 자가 바로 허무의 층의 계층지기인 ‘왕녀’였다.

        기감을 슬쩍 흘려보니 그리 위협적이지 않은 존재.

        허나 왕성을 포함한 공역 전체가 그녀의 마력으로 물들어있는 걸 보니 이 안에서 싸우면 대단히 불리할 것 같앗다.

       

        “실프 공략대의 마가렛 라미, 왕녀님을 뵙습니다.”

       

        마가렛이 먼저 무릎을 굽히자 나와 프리나도 똑같이 허리를 숙였다.

       

        “오랜만이와요, 라미. 용건은요?”

        “오늘은 뒤에 있는 두 사람의 허무의 층 통과를 허락받고자 왔습니다. 둘 모두 단기간에 중층에 오를 정도로 뛰어난 마법사이며 저희 공략대에서도 중요한…….”

        “좋을대로 하셔요. 안달루시아의 땅을 뺏겠다며 서로 치고박으며 싸우는 것보단 조용히 사라져 주는 게 나으니까.”

       

        툭, 툭.

        옥좌 위에서 작은 돌맹이가 나와 프리나 앞으로 굴러 떨어졌다.

        공역을 통과하는 조건은 일정 구역의 소유권을 인정받는 것인 만큼 이런 방식으로 빠르게 올려보내는 듯했다.

        묘하게 열받는 아가씨 말투에 누군가를 떠올릴 즈음, 마가렛이 나를 살짝 곁눈질했다.

       

        “크흠, 한 가지 더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대는?”

        “클락이라고 합니다. 여기 있는 마가렛의…….”

        “됐으니 용건만 말하시와요, 간단히.”

       

        음, 호텔에 돌아가는대로 주방장에게 바퀴벌레 한 마리와 샌드위치를 주문하고 싶게 만드는 화법이다.

        하지만 오히려 이 편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

        계층지기인 그녀에게 누군가 성의 보물방에 침입한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달갑지 않을 터.

        예상대로 내가 보물방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자 왕녀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렇군요, 기어코 침입자들이 왕실의 보고까지. 이래서 공역을 개방하고 싶지 않았건만.”

        “…….”

        “그곳에 있는 모든 재보는 왕가의 것이어요. 반짝이는 돌이든, 돌이 된 인간이든. 정령들에게 지키라고 하는 것도 모자라 저주까지 걸어 놓았는데 제 발로 들어간 자가 멍청한 것이지요. 참, 꼴이 좋사와요.”

       

        그러게, 참 꼴 좋다.

        고장난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맞는다고 싸가지 없는 왕녀님의 의견이 나와 일치했다.

        솔직히 살살이의 저주를 풀 수 있으면 보물방의 다른 보물들도 가져갈 수 있다는 뜻이기에 그리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었다.

        허나 왕녀의 태도로 보아하니 함부로 들어갔다가는 계층지기의 분노를 한몸에 받을 게 뻔했다.

       

        그렇게 살살이의 마지막 희망이 산산조각 나려던 찰나.

        옆에 있던 프리나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누구한테?”

        “예?”

        “저주 걸었다며. 술자가 누구인데?”

        “그건…….”

       

        순간 왕녀의 표정이 공포로 물들었다.

        팔걸이에 올린 손이 덜덜 떨리고 바짝 마른 입술은 쉴 새 없이 경련했다.

       

        “……살해자.”

       

        어디선가 본 적 있는 그녀의 반응을 보며 누군가를 떠올리던 내게 왕녀의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법, 살해자…….”

       

        범인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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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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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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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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