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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6

       

       

       “···저게 뭐야.”

       

       “미친···.”

       

       

       그 시각.

       

       갑작스러운 명령에 불만을 토로하던 초인들의 눈앞에, 눈을 씻고 다시 보고 싶은 광경이 펼쳐졌다.

       

       마수가 나타났다.

       

       그 숫자를 셀 방법도 없어 보이는, 그야말로 초월적인 양의 마수들이.

       

       

       “저거, 블랙 타란툴라 아냐···?”

       

       “마, 말도 안 돼···!”

       

       

       마수들도 아이를 낳고, 후대를 잇는다.

       

       그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상식.

       

       저런 새끼 마수들도 가끔 덮쳐오는 일이 있다.

       

       그건 이상하지 않아.

       

       이상한 것은 그 양이다.

       

       저 파도라고 불러야 걸맞지 않을까 싶은 초월적인 양의 거미들을 보라.

       

       저것이 블랙 타란툴라의 습성이다.

       

       엄청나게 많은 개체의 자그마한 새끼를 낳는 것.

       

       학자들이 확인한 바로는 그들은 말 그대로 천문학적인 양의 새끼를 낳는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그것을 볼 방법은 없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겪어왔던 경험 상, 그게 사실이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있었다.

       

       그리고 그 상식이.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상식이, 눈앞에서 부정당했다.

       

       

       “저 양이 가능할 리가 없어! 블랙 타란툴라의 습성상, 절대 불가능할 텐데···!”

       

       

       인간은 탯줄로 영양분을 공급받는다.

       

       보통 하나. 많게는 둘에서 셋의 아이들에게 영양분을 보급하지.

       

       그러나 저렇게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거미들은 그런 식으로 영양분을 보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들은 알에서 태어나니까.

       

       그렇다면 그들은 어디에서 영양분을 보급받을까?

       

       알주머니 하나에 모여있는 수많은 새끼거미는 어떻게 살아남을까?

       

       그들이 그 알주머니를 힘겹게 빠져나와서 영양분이 부족한 상황에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영양분을 공급받을까?

       

       ···정답은 간단하다.

       

       그들은, 태어나자마자 서로를 잡아먹는다.

       

       서로를 잡아먹어 영양분을 보충하고, 모든 영양분을 보충한 뒤 경쟁이 끝나면 남는 새끼들은 고작해야 둘에서 셋.

       

       그렇게 알려져 왔다.

       

       그것이 상식이었다.

       

       그렇기에 저 새끼거미들은 이상현상이다.

       

       서로를 잡아먹지 않고서는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해 죽어버릴 텐데.

       

       도대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며 혼란에 빠져있는 초인들에게, 불호령이 내려왔다.

       

       

       “진형을 갖춰라! 어서! 시간이 없다!”

       

       “···네!”

       

       

       사령관은 갑작스레 나타난 이상 사태에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명령을 내리는 것처럼 보였다.

       

       저 끔찍한 검은 파도에 대해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당연히 미리 알고 있었을 리는 없지만, 그 침착한 모습에 영웅들의 혼란이 조금씩 가라앉아 작업속도가 진척되기 시작했다.

       

       물론, 사령관의 머릿속도 복잡한 것은 매한가지였다.

       

       지금껏 보지 못한 이상 사태가 벌어진 것은 그에게도 마찬가지였으니까.

       

       

       “···.”

       

       

       사령관이 당황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지금껏 전장에서 경험한 수많은 세월 덕이기도 했지만, 짐작 가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 존재 탓인가···.”

       

       

       그것 외에는 있을 수 없겠지.

       

       저 멀리서 황급히 이쪽으로 달려오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모종의 위협을 알려준 저 시우라는 학생.

       

       저 학생과 아르테라는 학생에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한 명은 학생이라기에는 조금 어폐가 있긴 하지만···.

       

       자신보다 어리니 둘 다 학생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안타까운 아이들이다.

       

       끔찍한 존재의 눈에 띄어 이런 굴곡진 인생을 살게 되다니.

       

       

       “무슨 일이 있어도, 학생들은 지켜라! 미래의 자산들이다!”

       

       “당연한 거 아닙니까! 얘들아, 빨리 움직여라! 시간이 없어!”

       

       “옙!”

       

       

       정신머리가 빠져있던 범죄자 놈들도 저 광경을 보니 도망치기는 글렀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저 정도로 열정 있게 노력하는 건 거의 본 적 없는데.

       

       빠른 속도로 완성되는 간이 성벽을 빤히 바라보고 있자니, 어느새 다가온 라이오넬이 손에 거미의 사체를 쥐고 돌아오고 있었다.

       

       ···새끼라고는 하지만, 성체의 크기에 비해서 작을 뿐.

       

       한 마리 한 마리가 사람과 비슷한 크기였다.

       

       

       “어느 정도로 추정되는가?”

       

       “3급 하위···. 아니, 4급 마수로 추정됩니다. 상당히 물러요. 손쉽게 부숴버릴 수 있지만···.”

       

       “우리도 손쉽게 부서질 수 있겠군.”

       

       “···네.”

       

       

       마수의 갑피가 아무리 연약하다고 해도 인간보다는 단단하다.

       

       자기 몸을 튼튼하게 하는 능력이라도 있지 않은 한, 맞지 않고 피하거나 흘리는 것이 최선.

       

       그러니 이런, 피할 수 없는 커다란 무리는 재앙에 가깝다.

       

       한 마리라면 전혀 두렵지 않다.

       

       열 마리여도 조금 골치 아플 뿐, 두려운 자는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백 마리라면?

       

       천 마리라면?

       

       점점 발을 디딜 곳이 사라져 언젠가는 집어삼켜질 뿐이다.

       

       그야말로 해일.

       

       검은 파도와 같은, 재앙이라고 불러야겠지.

       

       

       “···하아.”

       

       “왜 또 한숨이십니까? 평소에는 그렇게 평온하게 웃고 계셨으면서.”

       

       “너라면 한숨이 나오지 않을 것 같니? 저 광경을 보렴. 끔찍하구나.”

       

       

       배시시 웃는 저 얄미운 놈은 내게 대답하지 않았다.

       

       느껴지는 것은 신뢰의 감정.

       

       나라면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신뢰가 담긴 감정이 전해져왔다.

       

       

       “···예끼, 이놈. 늙은이를 부려 먹으면 안 되는 거야.”

       

       “하하. 늙은이라뇨, 무슨 말씀을. 이곳에서 제일 강하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흥. 그렇게 아부해도 콩고물 따위는 없어.”

       

       “없긴요, 뭐가 없습니까.”

       

       

       그는 어느새 우리들의 눈에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이리저리 움직이는 자기 딸을 바라보았다.

       

       

       “···제 딸이 위험한걸요. 사령관님이 함께하시면 든든하죠.”

       

       “쯧. 평소에나 좀 그럴 것이지.”

       

       “하하.”

       

       

       

       ***

       

       

       

       “으음, 운이 좋았네.”

       

       “맞아, 애니. 운이 좋았어.”

       

       

       누더기로 몸을 덮어쓴 소녀는 맑게 웃었다.

       

       정말로 운이 좋았다.

       

       이 거미 친구들을 발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알 하나가 부화했을 때.

       

       서로를 잡아먹으려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다행히 내가 그만두라고 말렸더니 그만뒀지만, 배고프다고 칭얼거리더라고.

       

       마침 운 좋게도 거미의 사체가 있길래 그걸 나눠주었더니 맛있게 먹더라.

       

       깨어난 새끼 거미들에게 먹이를 주느라 한동안 고생하기는 했지만···.

       

       저 엄청난 양을 보니 뿌듯함이 밀려왔다.

       

       

       “아마 엄청나게 배고플걸.”

       

       “그래, 그렇겠지. 마지막에는 밥을 거의 못 줬으니까.”

       

       “어쩔 수 없잖아.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걸.”

       

       

       어렸을 적에는 조금만 줘도 충분했는데.

       

       조금 더 키워준 뒤에 보내려고 했는데, 더 이상 먹일 마수들이 없었으니까 어쩔 수 없잖아.

       

       한 하루 정도 굶자 서로 잡아먹으려고 하길래 황급히 저곳에 먹이가 있다고 알려주니 저렇게 달려가는 것 좀 봐.

       

       귀여워라.

       

       

       “아하하, 깜짝 놀란 모습 좀 봐.”

       

       “···.”

       

       “이제 우리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어, 미르.”

       

       

       저 녀석들이 저 거미들을 막아낼까, 아니면 막지 못하고 모두 죽어버릴까?

       

       그런 건 관심 없었다.

       

       이제 저 녀석들은 자그마한 여자아이 하나가 전선을 빠져나가는 것 정도는 신경 쓰지 못할 정도로 바빠질 테니까.

       

       이 힘을 사용해서 달성하지 못했던 목표를 달성하러 가면 그만이었다.

       

       

       “미르, 드디어. 이제 곧 네가 꿈꿔왔던 평등한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거야.”

       

       “···.”

       

       “···미르? 왜 대답이 없어?”

       

       

       아무런 대답이 없는 미르의 목소리에 불안함이 깃들었다.

       

       또 내가 무언가를 실수한 걸까.

       

       그때.

       

       미르가 땅에 처박힐 때.

       

       그런 실수를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또다시 무언가 실수한 걸까.

       

       그런 불안감이 들어 긴장하고 있자니, 나를 안심시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건 아니야, 애니.”

       

       “···그러면?”

       

       “어디서 본 것 같아서.”

       

       

       소녀는 계속해서 홀로 중얼거렸다.

       

       마치 옆에 누군가가 있다는 듯이.

       

       마치 누군가와 대화하고 있다는 듯이.

       

       

       “본 적 있는 것 같다니, 도대체 뭘?”

       

       “저기, 저 사람. 분명히 본 기억이 있어.”

       

       “저 사람?”

       

       “본대로 향하고 있는 저 남자.”

       

       

       ···아.

       

       그제야 소녀는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그래, 어째서 잊고 있었을까.

       

       아니.

       

       잊고 있었던 게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떠올리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을지도.

       

       

       “···그래. 잊을 수 있을 리가 없지, 미르. 전부 기억하고 있어.”

       

       “···.”

       

       “네가 쓰러진 날은, 내 뇌리에 확실히 각인되어 있다고.”

       

       “···.”

       

       

       저 소년.

       

       기억하고 있다.

       

       미르를 방해하던 녀석.

       

       미르가 금방 처리할 테니 먼저 가 있으라고 했던 녀석.

       

       ···마지막의 마지막에, 계획을 모두 망가뜨린 원인.

       

       

       “저 자식이 왜···.”

       

       

       학생이 아니었던가?

       

       도대체 왜 이런 곳에 있는 거지?

       

       ···문득, 소녀는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그 녀석.

       

       미르를 죽인 그 여자도 학생복을 입고 있었지.

       

       이 기회에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은 이미 소녀의 머릿속에 들어있지 않았다.

       

       저 수많은 인파 사이의 얼굴을 하나하나 대조해보고 있을 뿐.

       

       

       “···없네.”

       

       

       그러나 소녀의 생각은 틀렸다는 듯, 그 가증스러운 여자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 특징적인 외형 탓에 구분이 쉬울 것임에도 불구하고.

       

       

       “하긴, 이런 곳에서 만날 수 있을 리가 없지. 가자, 미르···?”

       

       

       그렇게 소녀가 자리를 벗어나려는 순간, 소녀는 보고 말았다.

       

       저 멀리, 조그맣게 보이는 건물에서 달려오는 누군가를.

       

       검은색의 증오스러운 머리카락과 그 얼굴을.

       

       

       “···.”

       

       

       그 얼굴을 본 순간 소녀의 머릿속에 있던 계획은 모두 사라졌다.

       

       계획, 그래. 좋지.

       

       새로운 계획을 짜자.

       

       저 가증스러운 여자에게 하는 복수.

       

       저 여자의 피로, 미르를 달래주는 거야.

       

       소녀는 맑게 웃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기걸렸어요

    약을 먹었더니 졸려 죽겠습니다

    여러분도 환절기는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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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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