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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6

        

       안에 있는 사람들이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건 말건, 리무진은 제 할 일을 끝마쳤다.

         

       저택에 도착한 것이다.

         

       “흠.”

         

       저택은 언제나처럼 화려한 모습을 자랑했다.

       아니, 예전보다도 더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안타까운 사실은 그 화려함에 통일성이 없었다는 것.

         

       “대체 저 근본도 없는 조경은 누가 한 거야?”

         

       대마녀는 손님으로 초대되었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평소의 성질머리를 그대로 표출했다. 진성이 옆에 있건 말건, 눈앞의 풍경이 너무 어이가 없어서 욕지거리를 내뱉은 것이다.

         

       그녀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프랑스에서 볼 수 있는 자수화단(parterre).

       높은 곳에서 본다면 아주 멋들어진 모습을 보일 것 같은 풍경이었다.

         

       여기까지는 나쁘지 않았다.

       제법 그럴싸해 보이는 것이 돈을 한껏 들인 것 같았으니까.

         

       적어도 어디 가서 구색만 갖췄다느니, 흉내 내려다가 괴상한 것을 만들어냈다느니 하는 악담을 듣지 않을 정도는 충분히 되어 보였다.

         

       여기서 끝냈으면 좋았으련만.

         

       “프랑스식 정원에, 영국식 정원에…. 게다가 저 돌 부스러기는 일본식 아니야?”

         

       자수화단은 웅장했다.

       적절히 통제된 모습이 군기가 잡힌 채 늘어선 군인을 보는 것 같았고, 제각기 문양을 이루고 있는 것이 위에서 쳐다본다면 위압감을 줄 것이다. 그리고 저것을 본 사람들은 집주인에게 카리스마를 느끼게 되었으리라.

         

       영국식 정원은 자유분방하였다.

       군기가 딱 잡혀있는 자수화단을 감싸듯 만들어진 영국식 정원은 자연의 풍경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전망대에서 도시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얼핏 보면 보잘것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가만히 보고 있자면 그 자체가 주는 자연스러움이 하나의 그림이 되고, 그 그림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언어가 되어 스며들게 되는 느낌이었다.

       난잡하게 자라난 것처럼 보이는 풀들에는 묘한 규칙성이 있었고, 꼼꼼하게 잡초 관리를 함으로써 오직 원하는 것만 자라나게 하고 있었다. 계절마다 모습을 바꾸는 이 영국식 정원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른 멋을, 다른 아름다움을 거니는 이에게 선사하리라.

         

       그리고 한편에 존재하는 일본식 정원의 모습은 그야말로 일본의 미를 그대로 담고 있었다.

       가레산스이(枯山水)식으로 만들어진 정원은 멀리서 보면 모래가 파도를 이루고 돌이 배가 된 것처럼 그 파도를 떠다니는 것처럼 보였고, 한 걸음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갈 때마다 걸음에 맞춰 문양이 움직이며 바다를 걸어 섬에 다가가는 느낌을 주었다.

       그렇게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흙과 모래, 이끼로 만들어진 자연의 축소판을 그대로 볼 수 있었으니.

       가만히 보고 있자면 시냇물 같기도, 계곡 같기도 한 그 미묘한 모습은 간소하면서도 참으로 세련됨을 품고 있어, 생각이 많거나 마음이 복잡할 때 가만히 그것을 보고 있자면 모든 근심이 씻어지고 마음에 평온이 찾아오게 될 것이다.

         

       그래.

       하나하나는 나쁘지 않다.

       그런데, 이 세 가지가 한 곳에 모여있으니까 문제였다.

         

       좋은 말로는 서로 어우러지지 않았고, 나쁜 말로는 근본이 없었다.

         

       대마녀는 자신을 자극하는 정원의 풍경에 인상을 찌푸렸다.

         

       평소 같았으면 온갖 불평불만을 쏟아내고, 사용인을 불러서 호통을 치고, 집주인을 불러서 창피를 주었으리라.

       하지만 진성이 바로 옆에 있는 데다가 저택의 주인과도 끈끈한 관계였기에 입을 꾸욱 다물었다. 앞서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야 주워 담지 못한다고 해도, 그 뒤에 나오는 말이야 입을 다무는 것만으로 바깥으로 내보내지 않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정원이야 그냥 지나치면 그만이고, 저택 안으로 들어가면 보이지도 않을 공간이니 잠깐만 참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잠깐만 참으면 이 모든 게 지나가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저택 안은 더 가관이었으니.

         

       “하.”

         

       헛웃음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

         

       『 현대적이면서도 고풍스러운 느낌이 들며, 고전적인 느낌을 주면서도 세련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야 하며, 화려한 색을 쓰면서도 절제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야 하며, 세세하게 묘사된 느낌을 주어야 하지만 동시에 장엄함과 속세를 벗어난 듯한 무욕함이 보여야 한다. 재료는 값비싼 것을 쓴 것을 분명히 티를 내야 하지만 그 사이에서 은은하게 풍기는 고귀함을 드러내어야 한다. 』

         

       디자이너를 화나게 하는 주문도 아니다.

       전설 속에 등장하는 물건에 대한 묘사도 아니다.

         

       저것이 바로, 저택 안의 실내장식을 그대로 표현하는 말이었다.

         

       ‘돈 많은 호구.’

         

       대마녀는 정원과 저택 안을 보고 단숨에 저택의 주인에 대해 파악해냈다.

         

       돈은 많지만, 역사가 부족하고.

       예술에 대해 조언해줄 사람도 주위에 없으며.

       자식을 잘 기른 것으로 보아선 인성은 나쁘지 않으나, 분명히 허영심이 있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녀가 얼굴 한 번 보지 않고 평가하자마자, 마치 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은 호랑이처럼 이양훈이 나타났다.

         

       일행에게 이양훈의 첫인상은 좋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집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정원과 인테리어가 개판이었기에 좋지 않은 첫인상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옳은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이양훈은 예술에 대한 조예가 부족할 뿐 사람을 다루는 것은 능숙하였고, 악마인지 사람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돈에 미친 새끼들을 상대하면서 얻은 경험을 이용해 손쉽게 나쁜 첫인상을 뒤바꿔버렸다.

         

       “아린, 세린. 나는 분명히 너희에게 할 말이 많다. 그리고 그 말 대부분은 너희가 듣기 싫어하는 말들이겠지. 하지만 너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내가 혼을 내거나 당장 한국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강압적인 명령이 아닌 진심을 담은 말 한마디일 것이다.”

         

       이양훈은 가장 먼저 이아린과 이세린을 껴안으며 말했다.

         

       “너희가 무사한 것만으로도 나는 너무나 기쁘다.”

         

       그는 자신의 온기를 전해주겠다는 듯 이아린과 이세린을 껴안고 한참이나 있었다. 그리고 둘의 포옹을 푼 뒤에는 대마녀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대마녀님께서 제 아이들이 큰일을 당하지 않게 도움을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덕분에 제 아이들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소중한 보물이 사라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큼, 크흠.”

         

       대마녀는 이양훈의 극진한 감사 인사에 헛기침할 수밖에 없었다.

         

       도움이 되었냐고 물으면 분명히 된 건 맞는데.

       그렇다고 얼마나 도움이 되었냐고 물으면….

         

       ‘돈을 쓰기는 했다만.’

         

       따지고 보자면 물주라는 중대한 역할을 한 것은 맞으나, 직접 행동해서 구한 것은 진성이었다. 그런데 진성을 두고 가장 먼저 감사 인사를 받았으니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너희에게도 감사한다.”

         

       이양훈은 엘라와 아나스타시아에게도 감사를 표했다.

         

       “세상에 수많은 종류의 친구가 있지만, 오직 그중에서 가치가 있는 것은 서로의 생명으로 서로를 지켜줄 친구라고 한다. 생명과도 맞바꿀 수 있을 정도의 친구, 서로를 위해서 위험을 무릅쓸 정도의 우정.”

       “어…. 그….”

       “나에게 아린과 세린이 보물이라면, 너희는 아린과 세린이의 보물일 것이다. 살아가며 평생 품고 가야 할 보물을 찾은 것만큼 가치 있는 일은 없는 법. 내 딸아이가 너희를 만났음에 감사하고, 친구가 되었음에 감사하고, 너희와 우정을 쌓았다는 것에 감사한다. 그러니 미안해하지 말아라. 내 딸아이가 너희를 원망하지 않듯 나는 너희를 원망하지 않고, 딸아이가 너희를 친구로 여기는 만큼 너희를 딸아이처럼 여기고 있으니.”

         

       그리고 아그네스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꺼냈다.

         

       “제자를 훌륭하게 키우셨습니다.”

       “어머, 감사합니다.”

         

       모두에게 감사를 표한 이양훈은 사용인을 불러 그들이 머물 방을 안내해달라고 부탁한 뒤 진성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진성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훌륭히 지켜줬구나.”

         

       이양훈은 진성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지 않았다.

       진성이 아무리 집안에서 애매한 위치에 있었다고 한들, 함께 살아온 세월이 있었기에.

         

       한 지붕 아래에서 같은 밥을 먹고 살아온 사람을 식구라고 부른다.

       그리고 식구끼리 서로 돕는 것에 감사하다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것은 당연하였으니까.

         

       대신에 이양훈은 마땅히 해야 할 말을 했다.

         

       “잘했다.”

         

       그는 그렇게 짤막하게 말을 남기고 등을 돌렸다.

         

       진성은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이로써 어느 정도 은혜는 갚았도다. 미래를 바꾸어 좋은 방향으로 인도하였으니 좋구나, 좋아.’

         

       그는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모든 것이 참으로 이롭다. 일본에는 나의 그림자가 드리울 것이니 과거와 같은 선전포고 없는 기습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호국회와 애국단의 도움이 없이도 광양 그룹은 안정된 정세 속에서 부를 쌓고 또 쌓아 평온한 삶을 구가하게 해 줄 것이니.’

         

       그는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손을 뻗었다.

       그러자 침대의 구석구석에서 노란 액체가 줄줄이 흘러나왔고, 흐르는 액체는 살아있는 것처럼 바닥을 꿈틀꿈틀 헤엄치더니 진성의 몸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호국회와 닿는 것은 나에게 이로운 것이며, 홍익애국단에 닿는 것 역시 나에게도 이로운 일이다. 또한, 그 둘에게서 벗어나는 것 역시 이씨 가문에 이로운 일이니. 그 누구도 불행하지 않으며,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을 터이니 참으로 길하고 또 길하다.’

         

       진성의 몸에 달라붙은 액체는 단단하게 굳으며 광택이 났다.

       조명의 빛에 반짝반짝 빛을 발했고, 찬란한 노란색의 빛을 뿜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따스한 느낌이 들었고, 조명에 반사된 빛은 사람을 현혹하려는 듯 부서지고 합쳐지는 것을 반복하였다.

         

       ‘미지의 주술과 혼과 백이 넘쳐나는 일본. 갈기갈기 찢긴 주술의 파편을 간직한 한국. 서로가 싸우면서 부수고 부서질 운명에서 벗어나 고스란히 간직한 주술로서 답을 찾아 나가게 될 것이니, 이 얼마나 길한 일인가.’

         

       황금.

         

       진성의 몸에 달라붙어 갑옷 같은 형상을 이룬 것은 황금이었다.

         

       ‘머물던 둥지를 안전하게 만들었으니 이는 집을 가지런히 하는 것과 같고, 나라를 평온하게 만들었으니 이는 참으로 거대한 덕을 쌓은 것과 같다. 다만 뜻과 마음은 오직 하나의 이치만을 바라고 있으니, 평온의 대가로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은 결코 틀린 일이 아닐 것이다.’

         

       황금은 뜨거운 열기에 녹아내리는 것처럼 액체가 되었고, 차가운 얼음 위에 놓인 것처럼 빠르게 식어 고체가 되었다. 그러면서도 진성의 몸을 타고 흐르는 것을 멈추지 않으며 특이하기 짝이 없는 형상을 이루었다.

         

       “금속은 반짝이며.”

         

       그 형상은 탐욕스러운 벌레 같아 보이기도 했으며.

         

       “사람을 현혹한다.”

         

       벌레를 다루는 주술사 같아 보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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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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