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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6

       

       

       

       

       

       126화. 지옥의 끝에서 ( 6 )

       

       

       

       

       

       땡 땡 땡 땡!

       

       작은 종은 비명을 지르듯 제 몸을 흔들었고, 깊은 잠에서 깨어난 야영지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한곳으로 모여라! 마귀들의 습격이다!”

       

       “민간인을 뒤로 옮겨!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라고!”

       

       “라이언하트 님! 라이언하트 님은 어디 계신 거야!”

       

       키히이이익!

       

       “거미형 마귀다! 모두 조심해!”

       

       콰앙!

       

       

       야영지는 갑작스러운 마귀의 습격으로 혼돈, 그 자체였다. 야영지의 사방을 둘러싸고 물밀듯 밀려오는 마귀들.

       

       추운 기후에 적응한 그것들의 껍질은 매우 두꺼워서 일반인은 흠집조차 내기 어려웠다. 튼튼한 껍질과 거대한 덩치를 앞세워 달려오는 거미 마귀는 성문을 박살 내는 충차와도 같았지만.

       

       촤악!

       

       레온 앞에서는 종이처럼 반으로 갈라졌다.

       

       

       “흐읍!”

       

       

       할버드를 꼬나들고 야영지를 가로지르는 레온은 만나는 족족 달려드는 거미들을 반토막 냈다. 두꺼운 껍질이 무색하게 두 동강 나며 피를 흩뿌리는 거미.

       

       

       “사,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쪽은 위험하니 어서 성기사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가시오.”

       

       “예엡! 감사합니다!”

       

       

       남성에게 달려들던 거미를 순식간에 처리한 레온은 주변을 둘러봤다.

       

       챙! 채챙!!

       

       쿠웅! 

       

       “전열을 유지해! 당황하지 말고 물러서지 마라! 일제히 찔러!”

       

       “”하!!””

       

       촤하악!

       

       야영지 한곳에 모인 성기사들은 단단한 철벽을 이루어 마귀들의 공격을 버텨내고 있었다. 거대한 거미들은 몸집을 앞세워 성기사들의 전열을 두들겼다.

       

       성기사들의 뒤에는 농민들이 있었다. 몸을 떨어대며 신을 부르짖는 이들.

       

       

       “라이언하트 님은 어디 계신 거야! 레온 이 멍청한 놈은 또 어디 있고!”

       

       “침착해! 라이언하트 님은 곧 오실 거다! 레온은… 알아서 잘하고 있겠지! 그러니 다들 집중해!”

       

       

       스승님을 찾는 성기사들의 외침. 레온의 마음이 급해졌다. 스승님은 둥지로 달려간 젊은 자신을 구하러 갔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쯤이면 젊은 자신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을 테지.

       

       거미들 따위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깟 거미는 백 마리, 천 마리라도 썰어버릴 수 있었으니. 젊은 시절의 그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 그리고 낮에 둥지를 정찰한 스승님도 몰랐던 사실.

       

       

       ‘변이종…’

       

       

       마귀는 자연적 동물인 마수가 악마의 영향을 받아 변이한 것들을 총칭한다. 마귀의 세세한 특징을 나열하자면 끝도 없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었으니.

       

       변이하는 속도가 무지막지하게 빨랐다. 주변의 환경에 유리하게 진화하는 마귀들의 생존력은 가히 어마무시하고, 그 방향이 다채로웠으니.

       

       

       ‘늪지대 주변에서 곰이 꼬리를 달고 튀어나온 적도 있었지.’

       

       

       이 주변에 자리 잡은 둥지에는 대량의 변이종이 잠들어 있었다. 땅 밑에 굴을 파고 신진대사를 극한으로 억제해 동면을 취하는 녀석들이…

       

       

       ‘기척이 없기에 기습을 당했다.’

       

       

       그날, 오만의 대가로 눈을 잃었다. 

       그리고 그를 제외한 모두의 목숨을 잃었다.

       

       꾸욱.

       

       ‘막아야 한다!’

       

       촤악ㅡ!

       

       아가리를 벌리고 달려드는 거미를 가로로 벤다. 갈라진 틈으로 이빨을 들이밀는 또 다른 거미. 위에서 아래로 창을 휘두른다.

       

       키헤에엑!

       

       서걱!

       

       거미 떼의 한가운데에서 할버드와 함께 춤을 춘다. 거미 떼는 불나방처럼 레온에게 달려들었고, 부질없이 조각나며 허공에 흩날렸다.

       

       끝없이 몰려드는 거미를 베고, 자르고, 토막 낸다. 허나 그럼에도 거미 떼의 기세는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도리어 성기사들이 조금씩 수세에 몰렸다.

       

       

       “크으윽! 이쪽 지원 부탁해!”

       

       “아악!! 저 새끼들이 밀고 들어온다!”

       

       “조금만 기다려! 금방 갈게!”

       

       “윽! 녀석들의 독을 조심해! 신성력을 마비시킨다!”

       

       

       성기사들만 있었다면 손쉽게 빠져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뒤에 다친 민간인들이 없었다면.

       

       

       “아파… 아파요 사제님…”

       

       “추, 추워… 춥고 졸려… 엄마. 나 자, 잘래…”

       

       “독이 신성력을 막고 있어…! 젠장, 치유가 안 돼! 자면 안 됩니다! 정신 차려요! 다섯 신이시여, 영원한 빛으로ㅡ”

       

       

       영악하게도 거미들은 최초의 기습에서 민간인들을 노렸다. 목적은 죽이거나, 거동이 불가능할 정도의 부상을 입히는 것.

       

       부상자가 생기면 인간의 무리가 굼떠진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수많은 인간 사냥으로 깨달은 것일 테지.

       

       키히이익!

       

       거미들은 점차 성기사들을 수세로 몰아넣었다. 뒤의 민간인들을 보호하기 위하 전열을 유지해야만 하는 성기사들은 그저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끄흐읍!! 라이언, 라이언하트 님은!”

       

       “흐아아압! 나도 몰라…!! 일단 저 새끼들부터 족쳐!”

       

       “다섯 신이시여, 저에게 힘을!”

       

       

       성기사들이 뿜어내는 신성력은 전장의 한구석을 환하게 밝혔다.

       

       마치 어둠을 불사르는 횃불처럼. 

       그리고 거미 떼는 불을 향해 몸을 던지는 불나방처럼 달려든다. 

       

       지끈!

       

       “끄윽…”

       

       

       불현듯 쑤셔오는 두통에 레온은 머리를 싸맸다. 심장을 바늘로 찌르는 듯 따끔거리고, 머리의 핏줄이 쿵쾅거리며 터질 듯했다.

       

       이 풍경, 이 광경, 이 냄새.

       아직까지도 악몽으로 나온다. 

       

       드미트리는 배가 찢어지고 내장이 파먹혀 죽었다. 쓰러진 사람에게 필사적으로 신성력을 퍼붓는 뮬리앙은 팔다리가 잘려서 죽었다. 엘레미어는 눈이 파먹히고 조각나서 죽었다.

       

       젊은 시절의 레온이 죽은 스승님의 몸을 이끌고 돌아왔을 때, 야영지는 이미 죽음만이 가득했다.

       

       시체, 피.

       

       전우였던 이들의 몸이 더러운 진창을 굴러다닌다. 익숙한 팔이, 몸통이, 얼굴이. 제 주인을 잃고 땅바닥을 구르며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아들을 감싸다가 죽은 어미의 시체가, 어린 여아의 팔다리가, 늙은 농부의 목이.

       

       그들의 얼굴이, 텅 빈 눈동자가 자신을 향한다. 그리고 속삭인다.

       

       모두 너의 잘못이노라고.

       네 오만의 대가를 우리의 피로 치렀노라고.

       

       털썩.

       

       “후읍, 꺼흐읍…!”

       

       

       레온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심장이 거칠게 뛰며 산소를 요구했다. 허나 조여진 목구멍은 죽음을 원하는 듯,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가, 가야… 막아야 하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끝인가? 팔라딘이라는 자가 고작 악몽에 질식해서?

       

       ‘너는 힘에 대한 의무를 모른다.’

       

       책임.

       그리고 의무.

       

       힘에 대한 의무.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았는데. 스승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는데.

       

       미안하다고. 고마웠다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고 듣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았다. 고작 악몽 따위에 무릎 꿇기에는 그가 보고 겪은 것이, 지나온 세월이 너무나 길었다.

       

       푸욱!

       

       “후우…!”

       

       

       할버드의 날을 돌려 허벅지를 깊게 찌른다. 고통으로 말미암아 익사해가던 정신이 부유하고, 몸이 깨어난다.

       

       피가 줄줄 흐르는 허벅지를 대충 지혈하고 할버드에 기대어 일어섰다. 좀 깊이 찔렀는지 뼈가 닿은 것 같았는데, 이 정도는 상관없다.

       

       

       “우선, 야영지부터.”

       

       

       고통으로 냉철해진 머리가 빠르게 상황을 정리한다.

       

       스승님은 조금 늦어도 괜찮다. 젊은 시절의 자신을 감싸면서 싸우고도 하루 밤새 버티신 분이다. 잘 버티고 계시리라.

       

       차가워진 머리와 다르게 다급한 마음은 당장 둥지로 뛰어가라 외치지만,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지금 야영지는 절대적인 전력이 부족하다.

       

       타앗!

       

       촤아악!

       

       크게 도약하여 할버드로 원을 그리며 휘두른다. 할버드의 날을 따라 거미들이 죽어 나간다. 늙은 사자의 발톱은 매섭도록 날카로웠다.

       

       촤자작! 촤악!

       

       창날이 한번 스칠 때마다 수십 마리의 거미가 허공에 흩날린다. 레온은 무아의 지경으로 창을 휘둘렀다.

       

       

       “저 분은… 누구야?”

       

       “어제 대장님이 데려온 분이라고 했는데.”

       

       “지금 그게 중요해?! 지금이야! 다들 밀어붙여!!”

       

       

       레온의 활약으로 수세에 몰리던 성기사들은 한결 여유를 되찾고, 전열을 재정비하여 크게 앞으로 나섰다. 

       

       

       “앞으로! 앞으로 전진해라! 여섯 신의 이름으로, 나 레온이 앞장서겠다!!”

       

       촤아악!!

       

       성기사들의 앞에는 레온이 있었다. 

       

       할버드의 날을 따라 신성력이 번뜩였고, 그 빛은 어둠을 가르는 거대한 쐐기가 되었다. 

       

       레온은 가장 앞에서 미친듯이 싸웠다. 전열의 선두에서 거미를 죽고 또 죽였다. 설령 지금이 한낱 환상에 불과해도, 이슬처럼 사라질 신기루일지라도.

       

       저열한 자기만족이라 욕해도 좋다.

       

       그저 이렇게라도 그들에게 속죄할 수 있다면.

       레온은 기꺼이 앞에 나서서 싸울 것이다.

       

       그래, 이것은 레온의 속죄이자 참회였다.

       

       키히이익!

       

       “건방진 마귀가!”

       

       

       떨어진 단검을 주워 거미의 눈동자를 찌르고 벤다. 옆에서 덮쳐오는 거미 아가리를 손으로 찢고, 굴러다니는 손도끼로 몸통을 가른다. 

       

       무엇을 베고, 무엇을 찌르고 있는가.

       

       마귀? 아니면 그의 악몽?

       

       레온은 알 수 없었다. 다만 조금이라도 더 죽여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니. 그에 충실하게 몸을 움직였다.

       

       투콰아앙!

       

       불현듯 무아에 빠진 그를 깨우는 거대한 폭음. 번뜩 정신이 들었다.

       주변을 살피자 초록색 진액이 땅을 적시며 질척하게 가득했고, 사지가 잘려 나간 거미의 사체들이 가득했다.

       

       파사사사삭.

       

       남은 거미 떼는 바삐 다리를 놀려 둥지로 돌아가고 있다. 무리 어미가 거미 떼를 불러들였다.

       

       

       “저건…”

       

       

       저 멀리 떨어진 마귀의 둥지, 그곳에서 거대한 빛의 폭발이 일어났다. 야영지에서도 뚜렷하게 보이는 신성력의 기둥이 하늘을 향해 올라갔다가 서서히 흐려졌다.

       

       레온은 누가 했는지 안다. 저런 무지막지한 짓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흔지 않았으니.

       

       

       “스승님.”

       

       

       그의 스승님이 둥지에서 싸우고 있다. 아마 지금쯤이면 젊은 시절의 자신은 눈을 잃고 꼴사납게 기절했으리라.

       

       스승님은 쓰러진 자신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계실 테고.

       

       이제 가야 한다.

       

       후회의 끝맺음을 위해.

       마지막 인사를 전하러 가야 한다.

       

       

       ‘참 오래 걸렸구나.’

       

       

       미안하다. 그리고 고마웠다.

       

       그 짧은 말을 못 해서 참으로 긴 시간을 돌아왔다. 

       이제 그만 종지부를 찍을 차례다.

       

       탁.

       

       할버드를 지팡이 삼아 땅을 짚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둥지로 갈 테니, 그대들은 민간인들과 함께 물러나시오. 녀석들이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르니, 최대한 빨리.”

       

       “뭣? 혼자서는 무모한ㅡ”

       

       

       엘레미어의 말을 뒤로 하고 걸음을 옮겼다. 천천히 걷다가 점차 빠르게 뛰어간다. 

       

       둥지로, 마귀의 둥지로 향한다.

       마지막 인사를 전하기 위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댓글은 오늘 작가가 일용할 양식이 됩니다!! 와구와구!!

    – ‘신선우’님!! 소중한 후원!! 감사합니다!! 강제로 흑역사 공개 처형… 끔찍하군요!!

    – ‘후루루’님!! 귀중한 후원!! 감사합니다!! QnA요? 생각 해본적이 없는데… 어, 음. 궁금하신게 있으시다면 최대한 제가 답변을 달아드리겠습니다! 외전은 시간날때 최대한…? 장담은 못합니다!!

    – ‘하꼬인생’님!! 후횡찬란한 후원!! 감사합니다!! 언제나 봐주셔서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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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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