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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6

       

       

       

       

       

       “설마 이대로 날아가시려고요…?”

       

       나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물었다. 

       

       “뭐 문제 있나?”

       “저희야 상관없지만, 아무래도 사람들이 이드밀라 님을 보면 혼란에 빠지 않을까요…?”

       “그건 걱정 마라. 인비저블(Invisible) 마법을 쓸 테니까.”

       

       아하. 

       확실히 드래곤이 직접 쓰는 인비저블 마법이라면, 9서클 이상의 대마법사가 디텍트 마법을 쓰는 게 아닌 이상 알아보는 건 힘들 터.

       

       ‘난 또 대놓고 가신다는 줄 알았네.’

       

       이번엔 너무 드래곤 입장에서 생각했다.

       

       드래곤이라면, 특히 레드 드래곤이라면 인간 따위의 눈치를 보지 않고 그냥 ‘내가 간다는데 뭐 어쩌라고’ 같은 느낌으로 가도 이상하지 않았으니까. 

       

       안도의 한숨을 내쉰 나는 천천히 드래곤의 등에 탑승했다. 

       

       ‘와….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까 더 크네.’

       

       탑승한다는 느낌보다는 반쯤 등반을 한다는 느낌으로, 나는 이드밀라의 등에 올랐다. 

       

       물론 등반한다는 느낌으로 올라온 건 나뿐이었다.

       

       실비아는 엄청난 점프력으로 한 번에 올라왔고, 아르는 날아서 올라왔으니까.

       

       ‘…역시 육체 단련도 게을리 하지 말아야겠어.’

       

       드래곤의 등에 올라탄 것만으로도 벌써 땅이 꽤나 멀어 보였다. 

       

       특히, 우리가 모두 타고 이드밀라가 상체를 일으키자 과장 좀 보태서 세상이 작아 보일 정도였다. 

       

       날아오르면 어느 정도일까 기대가 되는 한편.

       

       “저, 이드밀라님. 그런데 이거, 잡을 데가 마땅치 않은 거 같은데요.”

       

       이대로 날아오르면 저 아래로 추락할 수 있다는 생각에 오싹하기도 했다. 

       

       “이 정도도 알아서 못 잡는단 말이냐? 흠. 그럼 이걸 잡도록.”

       

       이드밀라의 말과 함께 뉘여져 있던 비늘 몇 개가 곤두섰다. 

       

       ‘오, 손잡이인가.’

       

       솔직히 믿음직스럽지는 않은 작은 손잡이였지만, 나는 그걸 단단히 잡았다.

       

       “이드밀라 님의 등에 직접 타 보다니, 정말 영광이에요.”

       “흐흥. 알면 됐다.”

       

       실비아도 비늘을 잡으며 말했다. 

       

       “우아! 이모 등 지짜 널버!”

       

       아르는 드넓은 이드밀라의 등 위를 도도도 뛰어다녔다.

       

       “그럼 출발하겠다. 아르야, 너도 꼭 잡으렴.”

       “긍데 이모, 아르도 날 수 있는데 이모 따라 날아가면 안 대여?”

       “하하하! 한번 해 보겠니?”

       “네엥!”

       

       아르는 호기롭게 이드밀라의 등에서 점프하더니 그대로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펄럭!

       

       “우와아악!”

       “삐유유우욱!”

       

       이드밀라가 출발한 지 몇 초 만에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뒤처진 아르는 구슬픈 울음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

       

       “삐유…. 이모 넘무 빨라…. 힝.”

       

       결국 이드밀라는 다시 돌아와 아르까지 등에 태운 채 다시 길을 떠났고.

       아르도 이드밀라의 비늘을 작은 두 손으로 꼬옥 잡은 채 납작 엎드렸다. 

       

       화아아아악!

       

       ‘와, 진짜 속도감 장난 아니네.’

       

       앞에서 불어 오는 바람 탓에 눈을 제대로 뜨기가 힘들 정도였다. 

       간신히 옆을 바라보니 실비아는 나름 안정감 있는 자세로 비늘을 잡고 있었고.

       

       아르는….

       

       ‘푸흣.’

       

       슈퍼맨 자세로 비늘을 잡고 납작 엎드린 상태로 눈을 질끈 감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도 귀여웠다. 

       

       특히나 바람에 조금이라도 더 영향을 받을까 봐 날개도 거의 망토처럼 몸 쪽으로 접고, 꼬리도 다리 사이로 내려서 쭉 편 모습을 보니 입꼬리가 절로 올라가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근데 실비아 씨는 당연히 잘 버틴다 쳐도, 아르의 악력으로 저게 저렇게 버텨지네?’

       

       문득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 나는, 이윽고 우리에게 이미 그래비티(Gravity) 마법이 걸려 있음을 깨달았다. 

       

       ‘언제부턴가 몸이 너무 안정적으로 등에 붙어 있다 싶었는데….’

       

       우리가 날아갈까 봐 이드밀라가 그래비티 마법으로 등에 밀착되도록 해 준 것이었다. 

       

       ‘인비저블에, 그래비티에…. 전부 무영창으로 쓰고 유지하면서도 하나도 안 힘들어 보이는 거 실환가.’

       

       인비저블이나 그래비티처럼 일정 범위 내에 계속해서 영향을 주는 마법들은, 당연하게도 마나 소모량이 다른 마법에 비해 월등히 많고 집중력도 많이 소모한다.

       

       ‘암살자들이 자기 몸 하나 은신해 가지고 잠입해도 이동 이외의 행동을 하면 은신이 풀리는 게 괜히 그런 게 아니지.’

       

       그나마 암살자들이 사용하는 은신 스킬들은 1인용인 데다가 작동 메커니즘도 간단한 편이다.

       그래서 자세히 보면 공기가 꿀렁거리는 듯한 이펙트가 보이는 거고.

       

       하지만 이 ‘인비저블’이라는 마법은 마법사용인 만큼 ‘안 보인다’는 기능에 특화되어 있어, 탐지 마법을 쓰지 않는 이상 육안으로는 절대 찾아내지 못할 정도로 몸을 숨길 수 있다.

       

       ‘그래서 특히 다인용으로 사용할 때 마나 소모량이 엄청날 텐데.’

       

       그걸 이렇게 고속으로 비행하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심지어 멀티 캐스팅으로 쓰다니.

       

       ‘진짜 드래곤은 드래곤이네.’

       

       그것도 그냥 드래곤이 아니라 몇천 살 먹은 고룡이지.

       

       어쨌든 우리는 이드밀라의 고속 비행 덕분에 3일 동안 마차를 타고—그것도 빈 마차라 평소보다 엄청 빨랐는데도 불구하고— 왔던 거리를 약 두 시간 만에 올 수 있었다. 

       

       그야말로 교통 혁명.

       비행기가 처음 상용화되었을 때의 감동이 이러했을까 생각될 정도로 엄청난 시간 단축이었다. 

       

       “흠. 여긴가.”

       

       정보 길드 상공에 멈추어 선 이드밀라는 인비저블을 유지한 상태로 인간의 모습으로 폴리모프를 했다. 

       

       “아르두 변신!”

       

       뭔가 히어로 특촬물 주인공 같은 포즈를 취한 아르도 공중에서 인간 폼으로 변신을 했다. 

       

       이드밀라의 마법으로 우리는 공중에서 천천히 정보 길드 옥상에 내려섰고.

       

       “하이고…. 힘들어 뒈지겄네. 담배 한 대 피고 들어가서…. 응?”

       

       마침 옥상으로 올라오다가 우리의 모습을 발견한 정보 길드 마스터는 담배를 툭, 떨구었다. 

       

       ***

       

       “그, 그, 그, 그, 그, 그러니까…. 이 분이 진짜 그 레드 드래곤….”

       

       우리는 길드장실에 모여 앉았다. 

       

       처음에는 믿지 못하던 길드장도, 이드밀라가 손 부분을 드래곤의 모습으로 바꾸어 보여주자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땅에 머리를 박으며 사죄했다. 

       

       “몰라 봬서 죄송합니다!”

       “됐다, 일어나라.”

       “옙!”

       

       물론 이드밀라가 레드 드래곤이라는 걸 동네방네 밝히고 다닐 생각은 없었다. 

       

       다만 레드 드래곤 레어의 위치를 알려 달라고 부탁한 곳이었기도 하고, 앞으로도 마왕 산하 세력을 찾아내고 여러 정보를 받으며 지속적으로 교류할 곳이었기 때문에 길드 마스터와 간부 몇몇에게만 밝히기로 한 것이었다. 

       

       ‘정보를 전문으로 다루는 곳이라 소식이 유출될 염려도 거의 없고 말이지.’

       

       설사 그런 일이 발생하려 해도, 아마 레드 드래곤의 보복이 두려워서라도 길드 간부 측에서 필사적으로 막을 것이다. 

       

       “…그래서 떠나시기 전에 저희한테 맡기셨던 의뢰에 대해 말씀드리면…. 헤카르테교 지부의 흔적을 찾아 저희 길드원들이 동분서주 움직이고 있습니다만….”

       

       마스터는 우리의 눈치를 보며 말을 이었다. 

       

       “그, 아직 며칠 안 됐기도 하고, 하도 폐쇄적인 놈들이라 지부의 위치는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그 말에 이드밀라의 입가가 씰룩였다.

       그러자 마스터는 황급히 덧붙였다.

       

       “그, 그, 그래도! 헤카르테교 지부 자체는 찾지 못했지만, 놈들이 거느린 자잘한 세력들에 대한 정보는 꽤 찾았습니다. 파면 팔수록 대단한 놈들이더군요. 남부 이곳저곳에 세력을 흩뿌려 놓았습니다.”

       

       마스터는 살려 달라는 간절한 눈빛으로 우리를 보았다.

       

       그러자 이드밀라는 피식 웃더니, 아공간을 열어 지도를 꺼냈다. 

       말로만 듣던 아공간 마법에 마스터의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얼른 정신을 차리고 지도에 집중했다.

       

       “이건…?”

       

       이드밀라가 지도를 테이블에 펼치자 마스터는 표시된 위치들을 눈으로 훑었다. 

       

       그리고, 그 위치들과 길드가 알아낸 위치들이 겹치는 부분이 있다는 걸 눈치채고는 고개를 들었다. 

       

       “이거 설마….”

       “그래, 네가 생각하는 그거다. 이미 지부의 위치를 포함해 잔당들의 위치까지 표시되어 있지.”

       “대체 어떻게….”

       

       이드밀라는 설명하기도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그건 알 필요 없고. 꽤 확실한 정보니까 너희 것과 대조해 보고, 남부에 퍼져 있는 놈들 산하 세력부터 싹 쓸어 버릴 생각이다. 어떠냐. 여기 표시된 곳 말고도 너희가 조사한 곳이 있나?”

       

       길드 마스터는 다른 지도를 하나 더 가져오더니 우리의 지도와 대조해 본 뒤, 우리 지도에는 없지만 마스터의 지도에는 있는 몇몇 군데를 우리의 지도에 표시했다. 

       

       “이 정도입니다. 나머지는 정확히 저희 정보와 일치합니다. 정말…. 대단하시군요. 정보 길드의 이름이 부끄러울 정도입니다.”

       

       그야 찾아온 당사자들을 속여서 전부 불게 만들었으니 정보 길드보다 빠르고 정확할 수밖에.

       

       “좋아. 그럼 우린 여기부터 차례로 처리할 테니까, 너희들은 혹시 남은 찌꺼기가 있나 잘 감시하도록.”

       “옙!”

       

       이드밀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테이블에 놓인 케이크를 포크로 크게 잘라 먹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이 딸기 케이크는 정말 맛있군. 이 브라우니도 그렇고.”

       “그치, 이모? 엄청 맛있지? 여기 커피도 엄청 맛있어.”

       

       아르는 아까부터 지도를 보는 대신 입가에 딸기 크림을 묻혀 가며 케이크를 맛있게 먹고 있었다. 

       

       커피라는 말에 마스터가 황급히 소리쳤다. 

       

       “뭣들 하나! 어서 커피 내 와!”

       “예에엡!”

       “딸기 케이크 하나 더 없나? 스티브! 접시가 비어 간다!”

       “저, 이거 일부러 줄 서서 두 개 사 온… 금방 갖다 드리겠습니다! 줄은 또 서면 되죠!”

       

       곧 케이크와 커피를 한 차례 더 흡입한 이드밀라와 아르는 만족한 얼굴로 의자에 기댔다. 

       

       특히 이드밀라는 생각보다도 더 만족한 듯했다. 

       

       “내가 잠든 사이 인간들의 음식 솜씨가 많이 발전한 모양이구나. 옛날에는 이런 맛있는 딸기 크림 케이크는 상상도 못 했는데 말이야.”

       

       솔직히 그 점은 나도 이 세계에 처음 왔을 때 가장 많이 놀란 부분이었다. 

       

       내가 살던 대한민국에서 먹던 것보다 더 퀄리티가 좋고 가격은 싼 음식과 디저트들이 즐비했으니까. 

       

       ‘근데 그게 천 년 전에는 안 그랬었나 보구나.’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어.

       

       ‘안 되겠군. 아무래도 신세계를 좀 보여드려야겠어.’

       

       나는 사람들 앞에서 이드밀라를 부를 때 쓰기로 한 이름을 부르며 말했다. 

       

       “라밀 님, 근처에 굉장히 큰 호텔이 있는데 거기 뷔페가 정말 맛있습니다. 오늘은 그쪽에 묵는 걸로 하시죠.”

       “뷔페? 그건 음식 이름이냐? 특이하군.”

       

       이드밀라가 고개를 갸웃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씨익 웃었다. 

       

       “분명 좋아하실 겁니다. 풀 코스로다가 모시죠.”

       “와아! 뷔페 또 간다! 이모, 거기 아보카도가 진짜 마시써.”

       “아포가토란다, 아르야.”

       “아, 마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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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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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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