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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6

       내가 그 모습에 피식 웃었더니, 사라는 나를 째려보았다. 이제는 익숙해져서 딱히 무섭지도 않은 얼굴이었다.

        

       아니, 심리를 알고 있으니 차라리 귀엽다고 하는 쪽이 맞는 말이겠다.

        

       아무리 같은 여자라도 서로 가슴까지 만지는 일은 잘 없을 테니까. 만진다고 해도 친구 이상의 사이에서나 가능한 일일거고.

        

       ……나는 지난번에 입었던 그 르네상스풍의 옷이라서 가슴 부분에 손이 닿아도 옷보다는 먼저 두툼한 레이스에 닿으니 큰 문제는 없었지만.

        

       “아, 아무튼!”

        

       혼자 이 상황을 어색하게 느끼고 있는 사라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내 얼굴에 척, 삿대질하면서 말했다.

        

       “내가 싫으면 싫다고 할 테니까, 너는 혼자 멋대로 이상한 착각 하면서 자책하지 마!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거였으니까!”

        

       “알았어, 알았어.”

        

       사라 덕분에 하던 고민이 날아가 버린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마음이 조금은 편해진 내가 침대에 털썩 앉았더니, 사라가 쪼르르 달려와서 내 옆에 자리를 잡았다.

        

       “…….”

       “…….”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런데,”

        

       먼저 입을 연 것은 나였다.

        

       아무리 사라가 괜찮다고 했다고 하더라도, 그건 내가 사라의 몸으로 한 행동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 외에, 사라의 주변 인물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친구들이야 말 그대로 친구들이니 따로 따질 이야기가 없지만, 양혜인에 관한 이야기는 다르다.

        

       ……명백하게 사라에게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 그 사람들에 대한 사라의 마음은 어떨까.

        

       “너는 이번 일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

        

       나의 질문에, 사라는 아무 말 없이 생각에 잠겼다.

        

       일단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태연했기에 다소 마음이 놓이긴 했지만, 이걸 물어보면서도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사라가 삶을 포기하게 되었던 이유에 관한 이야기였으니까.

        

       “……나도 이번 일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는데 말야.”

        

       한참 동안 말없이 생각에 잠겼던 사라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시선은 정면에 고정한 채였다. 말을 하면서도 여전히 고민에 잠긴 모양이었다.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

        

       “……그래?”

        

       “응.”

        

       사라는 고개를 끄덕인 뒤, 내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거기에 깊은 고뇌나 괴로움은 보이지 않았다.

        

       그보다는 혼란스러워 보였다.

        

       마치 이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모습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사람들과 대화해본 적이 별로 없어서…… 나한테 잘못한 사람한테 어떻게 해야 할지, 나에게 사과하는 사람한테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

        

       “아직 사과는 받지 못했는데 말야.”

        

       양혜인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사과하고 싶은 마음은 있는 모양이었다.

        

       문제는 이 사람도 어떻게 사과해야 할지 감을 못 잡고 있다는 게 문제였지만.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화가 났지만, 마음을 조금 진정시키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 사람은 일단 법적인 일을 마무리 짓고 마지막에 제대로 사과하고 싶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어땠을지 몰라도 지금은 확실히 사라의 편인 사람이긴 했으니까.

        

       “지금 내가 하는 말이 그런 뜻이 아니잖아.”

        

       “……미안.”

        

       입을 삐죽 내밀고 말하는 사라에게 사과하자, 사라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런데…… 앞으로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너한테 맡길 수도 없겠네.”

        

       “응? 그게 무슨 소리야?”

        

       “…….”

        

       사라는 여전히 불만에 가득 찬 표정으로,

        

       “내가 지금 너한테 삶을 맡기고 있는 이유로, 이게 ‘너의 인생’이라는 이유를 들고 있으니까.”

        

       그렇게 말했다.

        

       아, 하긴 그랬다.

        

       지금 당장 내가 이 몸을 움직이고 있는 이유는, 내가 만들어 둔 관계를 두고 사라가 ‘자기 삶’이 아닌 ‘나의 삶’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내가 만든 관계를 제대로 관리하는 걸 내가 맡은 거였고.

        

       하지만, 양혜인에 관한 일은…… 물론 나의 영향도 있긴 하지만, 그 원인을 따지고 들면 ‘원래의 사라’의 삶에 있었다.

        

       물론 그 모든 관계는 사라의 바람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멋대로 만들어진 것일 뿐이지만.

        

       대부분은 최나경에 의한 것이었고.

        

       ……그리고, 내가 최나경의 근처에 갈 때마다 느끼는 감정도 모두 사라와 최나경의 과거로부터 나오는 거니까.

        

       “……이건, 나의 삶이잖아.”

        

       사라는 조금은 힘겹게 말했다.

        

       “적어도 나의 삶은, 내가 책임져야지. 전부 너한테 떠맡길 수는 없으니까.”

        

       “…….”

        

       그건, 분명 내가 듣고 싶은 대답이었다.

        

       내가 듣고 싶었던 대답이기는 했지만…….

        

       “……괜찮을까?”

        

       이런 상황에서 이런 말을 듣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조금 더, 정상적이고 행복한 상황에서 사라가 자신도 돌아오고 싶다고 했으면 했는데.

        

       이러면 꼭 내가 힘든 부분만 떠넘기는 것 같잖아.

        

       “이 바보야.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응?”

        

       사라가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짜증을 냈다.

        

       “당연히 나도 하기 싫어. 내 과거는 대부분 내가 엄청나게 싫어하던 시절이니까. 하지만 이걸 처리하지 못하면 지금의 삶도 유지하지 못할 거 아냐.”

        

       사라는 다시 고개를 돌리고, 꼬고 앉은 다리 위에 팔꿈치를 올리고 턱을 괴었다.

        

       그리고 조금 주저하다가 말했다.

        

       “……나도 지금의 생활이 마음에 드니까. 치, 친구들도 좋고, 먹고 싶은 것도 마음껏 먹고…… 건강해지는 것도 좋고…… 그리고…….”

        

       사라의 목소리는 말을 하면 할수록 기어들어 가서,

        

       “……도 좋고.”

        

       마지막에는 뭐라고 하는지 거의 들리지도 않는 수준이 되었다.

        

       “응? 미안, 마지막 말은 제대로 못 들었는데.”

        

       “아, 아무튼 좋다고!”

        

       내가 귓가에 손을 세우며 그렇게 물어보자, 사라가 소리를 빽 질렀다.

        

       “아무튼!”

        

       그리고 다시 한번 그렇게 소리 지른 다음,

        

       “그러니까 이번에는 내가 협력할게!”

        

       그렇게 선언하듯 말했다.

        

       “협력?”

        

       내 물음에, 사라는 숨을 크게 들이쉰 후, 한꺼번에 내쉬듯 말했다.

        

       “몸, 나한테 잠깐만 돌려줘. 착각하지 마. 일만 다 해결되면 다시 안으로 들어갈 거니까.”

        

       “……괜찮겠어?”

        

       “당연히 안 괜찮아.”

        

       사라는 토라진 듯 고개를 휙 돌리며 말했다.

        

       “……하지만, 이건 내가 처리해야 할 일이니까. 그리고…….”

        

       사라는 침대에 있는 내 손 위에, 자기 손을 겹치며 덧붙이듯 말했다.

        

       “그리고, 내가 어딜 가든, 너도 함께 갈 거잖아.”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

        

       그리고 우리 둘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아, 그런데 몸을 바꾸려면 또 하늘이한테 부탁해야 하는데, 괜찮겠어?”

        

       “꼭 그걸 지금 이 상황에서 말해야겠어!?”

        

       *

        

       “저, 저기, 하늘아.”

        

       “응?”

        

       일요일 아침.

        

       어제 상황이 조금 그렇기는 했지만, 하늘이는 하루 자고 가겠다고 한 말을 충실하게 지켰다. 그리고 아마 평소처럼, 오늘 돌아가긴 하더라도 저녁까지 다 먹고 돌아가겠지.

        

       그러니까 우리 둘이 같이 있을 시간은 있었다. 있기는 했지만…….

        

       문제는 내가 부탁하려는 행동이, ‘남들 앞에서 하기는 좀 아주 그렇고 그런’ 행동이었다는 말이다.

        

       진짜 키스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사실상 키스 직전까지는 가야 하는 행위.

        

       게다가 그냥 키스 비슷한 자세만으로 될지 안 될지도 모른다. ‘최대한 강렬한 기억과 감정’을 끌어오기 위해서는 입술만 가까이 대는 것이 아니라 몸도 최대한 밀착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아무래도, 그런 행동을 다른 애들 앞에서 하기가 좀 그랬다.

        

       아, 그래, 물론, 나도 사라도 교실 한가운데서 하늘이 위에 올라타긴 했다.

        

       그리고 사라가 올라탔을 때는 소희도 봤었고.

        

       잃었던 기억을 찾기 위해서 그랬다는 것 정도는 친구들도 알고 있었다. 인격 자체가 스위칭하는 거라는 건 알지 못했지만.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보여서는 안된다.

        

       기억을 이미 찾았는데 또 그런 자세를 취하고 있으면 그때는 진짜로 오해할지 모르니까.

        

       나는 괜찮다. 하지만 사라와 하늘이가 곤란해지는 것은 싫었다.

        

       그렇기에, 나는 일부러 이렇게 이른 시간에 하늘이에게 말을 건 것이다.

        

       나와 거의 24시간을 붙어 다니는 소희도 이른 아침에는 자리를 비운다. 메이드 업무에 들어가기 전에 준비해야 할 일이 몇 가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아에게는 먼저 씻으라고 말해두었다. 지난번에도 이미 수아의 머리카락을 말려준 적이 있었기 때문에, 수아는 크게 의심하지 않고 먼저 씻으러 들어갔다.

        

       물론 이렇게 하늘이와 단둘이 있는 시간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 그러니, 당연히 최대한 빠르게 해결해야 했다.

        

       ……몸을 붙이고 키스 직전까지 가는 행위를 무슨 화장실 다녀오는 것처럼 표현하는 것이 영 꺼림직하기는 하지마는.

        

       그렇기에, 나는 하늘이에게 얼른 말했다.

        

       “하, 하늘아. 그…… 아무래도…….”

        

       “응, 아무래도?”

        

       ……얼른 말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나는 전생에 여자한테 고백 한 번 해본 적 없는 쫄보였다. 그런데 인제 와서 여자애한테 ‘니 몸에 착 달라붙어서 입술 비비기 직전까지 가고 싶어’라고 말할 용기가 있을 리 없었다. 너무 허들이 높다.

        

       뭐 인제 와서 그런 헛소리냐고 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나도 나대로 급했다.

        

       그리고, 그때는 말로 안 했다. 행동으로 했지.

        

       사람과의 관계가 제대로 형성되기도 전에 아무 생각 없이 저지르고 본 일이었기 때문에 넘길 수 있었던 거지, 만약에 말로 ‘안아줘’ 같은 걸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당연히 못 했다.

        

       아니, 그보다 내가 처음 의도했던 건 그냥 서로 몸을 겹치고 있는 수준이었지만, 나중에는 하늘이 쪽에서 주도적으로 내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었다고. 나도 나름대로 변명할만한 이유는 있었다.

        

       “그, 어젯밤에 사라와 대화해봤는데, 아무래도 둘이 자리를 바꿔야 할 것 같아서…….”

        

       “아.”

        

       그래도 억지로 쥐어짜 내듯 말하는 데는 성공했다.

        

       하늘이는 내 말을 바로 알아들었는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응, 알았어!”

        

       하고, 바로 허락했다.

        

       다행이다, 하늘이가 착해서.

        

       하늘이는 바로 침대로 가더니 털썩 앉았다.

        

       침대는 의자처럼 좁지 않았기 때문에 아마 내가 하늘이 위에 올라타려면 무릎을 접어야겠지만, 뭐, 좋다. 일단 허락해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니까.

        

       하지만, 하늘이 쪽으로 얼른 움직이던 나는, 이어지는 하늘이의 다른 행동에 그대로 딱딱하게 굳어 걸음을 멈췄다.

        

       하늘이는, 침대 위에 앉은 채로 그대로 뒤로 벌러덩 누워버렸다.

        

       “자, 어서 와!”

        

       하늘이가 소리쳤다.

        

       “…….”

        

       어…….

        

       그 위로 올라가면, 침대 위에 앉아있던 너를 내가 그대로 덮친 것 같은 모습이 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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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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