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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6

       ─칼날과 창촉이 맞닿는 순간 그는, 아니 그만이 아니라 상대도 일순 의식이 꺼졌으리라.

         

       감에 불과하지만 왠지 확신이 든다고 할까?

         

       어쨌든 그렇게 의식이 꺼진 시간이, 대략 1초에서 3초쯤?

         

       정확히 세려보진 않아 모르겠으나 얼추 맞으리라.

       추측이지만 무애검과 파천이 충돌하며 생긴 거대한 충격파에 그들조차 견디지 못하고 의식이 일순 날아가 버린 게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의식을 차린 그가 본 건.

         

       “-부숴지는 칼날과 멀쩡한 창촉의 모습이었지.”

       “…….”

       “하지만 유리한 상황에서 그 양반은 갑작스럽게 몸을 뒤로 빼더라, 어디 다친 곳도 안 보였는데.”

       “…왜 그랬을까요?”

       “모르지, 모르겠는데 어쩌면 의식을 잃은 짧은 순간에 판단력이 흐려졌을 가능성도 있겠지. …다른 이유가 있는지도 모르고. 어쨌든, 그렇게 돼서 승부는 흐지부지 끝났고 나는 찝찝한데 그 인간은 내가 이겼다나 뭐라나 하면서 튀더라. …이게 다야.”

       “하하….”

         

       설명하면서도 여간 불쾌한 상황이라며 투덜거리는 이한이었고, 데릭은 어쩐지 웃음이 났다.

       입에 담기 싫은 일일 텐데도 이토록 굳이 입에 담으며 친절히 설명해주는 이유가 ‘빌드 업’을 위한 설명임을 알기에.

         

       무엇을 위한 빌드 업이냐고?

         

       “…그래도 미안하다. 귀한 검 부숴 먹어서.”

       “진짜 괜찮은데….”

         

       사과를 위한 빌드 업.

         

       빚쟁이는 사정팔이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몸소 체험하게 된 이한은 시선을 피했고, 데릭은 그저 멋쩍게 웃을 따름이었다.

         

         

         

         

         

       이한은 산산조각 난 채 손잡이만 남은 글라디우스를, 아니 ‘글리디우스였던 것’을 내밀며 사과했다.

       웬만하면 뻔뻔스레 나갈 테지만 귀한 검을 부숴 먹고 입을 싹 닦을 만큼 그가 염치를 팔아먹지 않았기에.

       허나 사과 받는 당사자는 과하다며 손을 내저었다.

         

       “괘, 괜찮아요. 그렇게 귀한 것도 아니고요.”

       “명검이 안 귀하면 뭐가 귀한데.”

         

       괜히 그에게 부담을 실어주기 싫어 저리 말하는 게 아닐까 싶어 이리 물었으나, 태창이는 고개를 저었다.

       부담이고 뭐고 그런 게 아닌, 정말 본심만을 입에 담는다는 듯이.

       그리고 도리어.

         

       “명검이라…. 아, 확실히 그 ‘창고’에 있던 검들이 다 좋아 보이긴 했죠.”

         

       자신도 모르는 사실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렸고, 이한은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창고?”

       “네에, [난쟁이들의 쓰레기통]이라고, 드워프와 호빗들의 실패작이 모인 창고가 있거든요. 200년 전쯤 버려진 곳이라 제가 ‘5번 창고’로 쓰는 곳이기도 하고요.”

       “…….”

       “그 검도 그 창고에서 가져온 것 중 하난데, 웬만한 검보단 그냥 좀 튼튼하긴 할 거예요.”

         

       그냥 바닥에서 굴러다니는 것 중 나름 깨끗하기에 가져와봤다는 발언.

       이한은 급속도로 태창이와의 빈부격차를 실감했다.

         

       “이제 보니, 왕국 제일 부자는 내 앞에 있었네….”

       “그, 그 정도는 아니에요. ……그, 그래도 열 손가락 안에는 들려나?”

       “…내가 말을 말자.”

         

       다시금 생각하건대, 회귀자든 빙의자건 다 필요 없다.

         

       ‘상태창이 끝판왕이 맞아.’

         

       …부러운 놈.

         

       막시무스의 재능에도 느낀 적 없는 부러움이 치솟는 이한이었다.

         

       *

       *

       *

         

       “-그래서 누가 이기셨습니까?”

         

       “응?”

         

       뜬금없는 후배의 말에 이한은 눈을 끔뻑였고, 이 같은 반응이 오해를 샀는지 요르드는 찔끔거리며 눈을 깔았다.

       그가 화가 난 것이 아닐까 하고.

       허나 호기심은 막을 수 없는지 겁을 이겨내며 그는….

         

       “마, 막시무스 경이랑 싸우신 거 아닙니까? 그 북부의 흑사자와….”

         

       끝내 용감하게 질문을 던졌고, 이한은 이제야 무슨 말인지 알아들으며 허허롭게 웃었다.

       인자하기 짝이 없는 표정.

       이한은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으며.

         

       “후배야. 밥 먹고 있는데 그걸 꼭 물어야겠니? 내가 널 물어버리는 수가 있다.”

         

       나지막한 경고를 내뱉었다.

         

       “……죄송합니다.”

         

       요르드는 1차 경고가 떨어지자마자 깍듯하게 허리를 숙였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고 하였던가?

         

       뭐, 개는 물기에 안 건드린다고 하는데, 이한도 밥 먹을 때 건드리면 문다.

         

       대신 지성인이기에 입이 아닌 손으로 가볍게 훈육만 할 테지만.

         

       “차라리 무는 게 낫지. 네 손으로 훈육하면 잘못하면 살인난다.”

       “헛소리는 됐고, 상황이나 좀 말해봐.”

       “헛소리가 아니라 진담이다만….”

         

       이한은 만능 상태창이 인벤토리에서 꺼내는 빵과 소시지 등으로 배를 허겁지겁 채우며 현 상황에 대해 물었다.

         

       자신이 샛길로 빠지느라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도 모르고 있으니까.

         

       “그래도 임무를 잊지는 않았구나.”

         

       제이크는 불량한 자세지만 그래도 본연의 임무를 잊지 않은 친구에게 내심 기특함을 느꼈다.

         

       …물론 대놓고 이런 감상을 내뱉었다간 후배 대신 그가 도리어 물리는 수가 있으니 속으로만 생각한 채 제이크는 간결하게 상황을 요약하여 있었던 일만을 내뱉었다.

         

       아렌의 활약이나, 그들이 처리한 반마인의 숫자,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다행스럽게도 조력자님 덕분에 광신도의 신병을 확보한 상태야. 실상 임무는 성공한 셈이지. …다만, 네가 봤다던 수백 명이 넘는 반마인은 끝내 보지 못했다.”

         

       “…….”

         

       급속도로 표정이 굳을 만한 소식.

         

       이한은 먹던 것을 입안에 다 털어 넣으며 삼켜버렸다.

         

       “…우리가 모르는 통로로 이미 빠져나갔나?”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면 다 흙더미에서 깔려 죽었을 가능성도 있고.”

       “그게 최고긴 하지.”

         

       이한이 숫자를 좀 줄이고, 땅굴이 무너지며 다 빠져나가지 못한 반마인의 숫자는 제법 될 거다.

         

       1/3, 아니 1/5 정도 줄었을지도?

         

       그러나 설령 그렇게 줄였다 한들….

         

       “한두 명만 풀려나도 충분히 위협적이겠지.”

       “으음, 지금이라도 병사들과 함께 이 근방을 수색해볼까?”

       “글쎄? 딱히 의미는 없을걸? 10년 넘게 안 들켰는데, 지금 찾는다고 해서 찾을 수 있을 만큼 만만치 않을 테니까.”

       “…생긴 거랑 다르게 날카로운 지적을 한단 말이야, …진짜 가끔.”

       “쓸데없는 말은 빼지?”

         

       그들은 고개를 긁적였다.

         

       기껏 뭐 빠지게 노력하여 흰개미 굴을 처리는 했는데, 그 흰개미들이 여전히 살아남아 도심으로 향했을지도 모를 불안감이라고 할까?

         

       “……하아, 어쩔 수 없지.”

         

       이한은 숨을 토해냈고, 제이크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기에 피로함이 감도는 쓴웃음을 지었다.

         

       “좀 더 고생하는 것도 방법이긴 하겠지…. 보름, 아니, 한 달은 계속 눌러앉아야 하나?”

         

       그들이 내린 공통적인 의견은 정석적인 노가다를 의미했다.

         

       반마인을 추적하기 위해서라도 체류시간을 늘리고, 이 근처에 퍼진 마을들을 일일이 방문하여 보호한다.

         

       말 그대로 정석적인 생고생이 예정된 바.

         

       “인생….”

         

       한동안 고생할 것을 생각하니 절로 앓는 소리가 나온다.

         

       “…선배님들은, 진짜 성실하시군요.”

         

       요르드는 선배들이 웃겼다.

         

       사실 저러한 고행을 직접 할 필요는 없는데, 자처해서 고생하는 거지 않은가?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니며, 한다고 하여 대가가 따르는 것도 아니다.

       그저 어디서 발생할지도 모를 비극을 막기 위해,

         

       …오로지 책임감을 다하려고 움직이는 선배들이었고, 요르드는 새삼 이들의 지위가 낮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러니 이분들이 출세를 못 하지.’

         

       한번 일을 맡으면 융통성이 없다.

       오로지 정석적으로 일하며 최선을 다한다.

       누군가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요즘 누가 이렇게 일을 한단 말인가?

         

       이런다고 누가 칭송해주는 것도 아닌데, 그저 자기만족일 뿐인 행위일 텐데.

         

       ……하지만 그렇기에.

         

       “일단, 제가 근처 마을 지도부터 구해보겠습니다.”

         

       따를 가치가 있는 거겠지.

         

       그리고.

         

       “-그 일은 1기사단 측에서 맡겠다. 너흰 돌아가도록.”

         

       그에게 영향을 받은 이가 자기만이 아님을 증명하듯 사내가 소리쳤다.

         

       “아렌 경? 그게 무슨….”

         

       아렌 팬드래건의 선언에 시선이 몰렸고, 아렌은 특유의 오만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금 선언했다.

         

       “말 그대로다. 반마인과 광신도들을 찾는 건 내가 알아서 하겠다는 것이다.”

       “1기사단과 같이 말입니까?”

       “그렇다!”

       “…굳이요?”

       “이익! 무슨 의미로 되묻는 거냐!”

       “…….”

       “대답을 하란 말이다!”

         

       …어찌 제 입으로 말할 수 있으랴.

         

       아무래도 그와 1기사단을 믿기엔 아직….

         

       “금쪽이랑 반편이 놈들을 믿으라고? 차라리 우리 곰돌이들한테 맡기면 맡겼지, 너희를 어떻게 믿고 맡기냐?”

         

       ……아이러니하게도 대놓고 왕족과 1기사단을 무시하는 발언을 내뱉을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며,

         

       더욱 아쉽게도 저 얘기가 팩트에 기반 한다는 것이 아렌을 욱하게 했다.

         

       또한 금쪽이란 호칭 자체는 무슨 뜻인지 모르겠으나 비하 발언인 건 뉘앙스만으로 짐작 가능한 바.

         

       하여 아렌은 손가락을 치켜들며!

         

       “그놈의 금쪽이를 한 번만 더 말한다면, 그때는…!”

       “그 손가락 예쁘게 뽑아주는 수가 있다.”

       “…그, 그때는 그때고…. 크흠, 널 향해 치켜든 것은 아니다. 오해하진 말도록.”

         

       화가 나도 학습능력은 있는지 차마 이한에게 대놓고 언성을 높이지 못하는 아렌이었다.

       아니, 정확힌 주먹이 무서운 거려나?

         

       “…그, 그래도 우리에게 맡겨주었으면 한다.”

         

       그렇게 허무하게 진압당하는가 싶었으나, 아렌은 다시금 용기를 내었다.

         

       하며.

         

       “나 또한 1기사단이 여러모로 부족한 집단임을 알고 있다. 허나, 집단 개개인의 능력이 부족하다 하여 어찌 가만히 놀려둘 수 있을까. 그건 인력 낭비이며 기사가, 아니 군인이 의무를 내팽겨 친 것과 다를 바 없는 국가에 대한 기만이다. 그러니 나 아렌 팬드래건은 1기사단을 맡은 단장으로서 그 의무와 책임을 이행해야 할 사명이 있다.”

         

       “………”

         

       …이한은 눈을 끔뻑였다.

         

       아니…….

         

       ‘저 새끼, 왜 갑자기 정상인처럼 말하지?’

         

       어른 금쪽이의 변화는 아무리 그라도 당황스러운 법이다.

         

       * * *

         

       아렌은 그가 놀라건 말건 계속해서 주장했다.

         

       “물론, 1기사단 수준으론 반마인을 처리할 수도 없을뿐더러, 그들이 성실하게 임무를 수행할 리 없다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2기사단마저 동원하여 숫자로 밀어붙인다면 반마인을 이기진 못하더라도 잡아두는 것은 가능하겠지. 또한 서로에 대한 반발심 때문에라도 맡은 바 임무를 성실히 수행할 터.”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렇게 된다면 최고긴 하겠지만, 결국 1기사단과 2기사단은 정적 관계다.

       언제라도 서로를 제거하고 싶어 안달이 난 물과 기름과 같은 관계란 뜻이다.

       같이 다니게 했다가 칼부림이 나거나 서로를 죽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곧장 명령 불복종으로 ‘참형’에 처할 생각이다.”

         

       “…….”

         

       “정적이기 이전에 백은사자는 기사단이며 군부에 소속된 군인이다. 한데 명령에 불복종하고 개인의 사사로운 원한과 영달을 위해서 움직인다면 참형하는 게 당연하다. 물론 모두를 감시할 수 없겠으나, 조원을 한 명이라도 잃은 기사들은 그 자리에서 참형시킬 생각이다.”

         

       “너, 너무 극단적인데요.”

         

       “필요한 일을 하는 것뿐.”

         

       “…하.”

         

       반론을 던졌던 요르드는 격침했다.

       감탄이 나온 게 아니라, 그의 과감함에 어안이 벙벙했기에.

         

       “원성이 만만치 않을 겁니다.”

       “안다, 허나 어쩌겠는가. 1기사단은 반편이다. 실력도 부족한 데다 쓸 만한 구석이 없지. 2기사단도 마찬지로 쓸모가 없다. 그리고! 쓸모가 없는 기사는 왕국의 썩은 뿌리와 같은 바. 하니!”

         

       사악.

         

       “썩은 뿌리 따윈 팬드래건에게 필요 없다.”

         

       “…….”

         

       제이크도 마찬가지로 격침되는 순간이었다.

         

       패도(霸道).

       지독한 패도.

       원래도 어느 정도 오만한 구석이 있던 탓인지, 아렌의 제왕학에는 여러모로 극단적인 면모가 넘쳐났다.

       만약 그가 왕의 후계자가 되었다면 당장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켜도 이상할 것 없다.

         

       허나 그는 후계자와 상관없는 왕자이며, 귀족들에게 얼마든지 미움을 사도 상관없는 지위에 위치한 사람이다.

       또한 그는 선전용으로 만들어진 백사자란 이명마저 가지고 있는 바.

         

       설령 기사들을 제 임의로 처단한다고 해도 그걸 문제 삼기엔 왕당파나 귀족파나 힘을 너무 많이 실어주었다.

         

       아마 귀족들 입장에선 아무리 힘을 실어주어도 무능할 뿐이라며 아무 생각이 없었을 테지만….

         

       예상이나 했겠는가?

       무능하기 그지없던 철부지가 하루아침 사이 새사람이 될 줄은.

         

       “금쪽이 저거 갑자기 왜 저러냐?”

         

       “…….”

         

       아…. 생각해 보니 아니구나.

         

       아렌은 하루아침 만에 새사람이 된 것이 아니라 강제로 저리 변한 것이었지, 참.

         

       이를 떠올리며 제이크와 요르드의 시선은 슬쩍 그에게, 인성 교육의 권위자라 자칭해도 무방할 그에게 향했다.

         

       이한, 사랑의 매(?)로 무능한 왕족을 제구실하게 만든 그는.

         

       “금쪽이 너 어디 머리라도 다친 거 아니지?”

       “안 다쳤고! 금쪽이라 하지 말란 말이다!”

       “…여전히 싸가지 없는 거 맞는데? 이놈이 왜 이렇게 됐지?”

       “이이이이…!”

         

       자신이 해낸 업적인 줄도 모르고 그저 신기한 시선을 줄 따름이었다.

         

       “…저놈은 사실 참교육자가 아닐까?”

       “그러게요….”

         

       어쩌면 그는 기사가 아니라 교육자의 길로 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순간이었다.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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