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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7

    <127 – 하급반 구제사업>

     

    오크노디는 나쁘지 않다.

    오크노디를 쥐락펴락하며 흔들려고 드는 와이히엠하이 재단이 나쁘다.

    하지만 오크노디는 재단의 장학생이자 인질.

    그 아이가 스스로 재단의 품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도와줘야 한다.

    그녀의 주변에서.

    그녀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아카디아는 사람을 모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지젤. 저번에 구상한 사업, 예정보다 빨리 시작해야겠어요.”

    “서둘러봤자 당장은 우리가 손해를 본다고 결론내리지 않았습니까?”

    “상황이 바뀌었거든요.”

     

    오크노디와 재단을 둘러싼 이야기를 전하자 지젤 역시 얼굴에 비장감이 묻어났다.

     

    “그런 이유라면 돕지 않을 수 없겠군요.”

     

    오크노디를 돕기 위해 재단 장학생이 사고를 치는 것을 막는다.

    오크노디 구조작전의 초석으로 아카디아와 지젤의 사업이 시작되었다.

     

     

    * *

     

     

    벨로카시오는 장부를 보고 눈썹을 찡그렸다.

    예정대로라면 커다란 포대를 꽉 채울 정도로 모여야 할 물자가 고작 반도 채우지 못했다.

    명백한 이상사태가 발생했다.

    계약사기를 통해 아카데미에서 수요가 있는 물자를 모아 가격을 끌어올린 뒤, 독과점의 이점을 적극 활용하던 그였지만 물자가 부족하면 위험이 닥친다.

    벨로카시오의 사업장을 찾아 포인트를 주고 구매하느니, 제 발로 직접 물건을 구하거나 직접 재료를 모아 판매하겠다는 고객층의 이탈과 경쟁자의 등장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딸랑딸랑.

     

    호출용 벨의 줄을 잡고 흔들어보지만 비서 녀석은 오늘따라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기사학부도, 마법학부도, 모험학부도 아닌 행정학부의 벨로카시오가 흑막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는 것은 본인의 능력 외에도 유능한 비서의 도움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완벽한 인재는 없다는 말처럼 이 비서에게도 게으름뱅이라는 문제점이 있었다.

     

    “…있는데 못 들은 척 하는 거 아니야?”

     

    통조림 캔을 까자 천장에서 물방울이 뚝 떨어졌다.

    아니나 다를까.

    천장에 숨어있던 비서가 입에서 침을 뚝뚝 흘렸다.

     

    “데드캣. 이 드럼통의 물자수급을 맡긴 학생들의 명부를 기억하나?”

    “2학년 기사학부 <육탄돌격 스킬을 익혀보자> 강의 수강생 세 명. 마이클, 로, Sir 랜들.”

    “강화훈련에 필요한 중량조끼에 채워 넣을 비중이 높은 물질이 금이지만 금은 워낙 값이 비싸서 납조끼를 만드는 학생들이 늘었지. 그래서 우리도 납 채광의뢰를 넣었고.”

     

    하지만 포대를 채운 납은 절반도 넘지 못했다.

     

    “할당량을 못 채운 이유를 당장 알아봐. 광산에 몬스터가 나왔는지, 교수가 새로운 과제를 내서 시간이 갈려버렸는지, 파업을 일으키는 건지 알아내.”

    “선금.”

    “…옛다.”

     

    뚜껑을 칸 통조림 캔을 내밀자 캔을 낚아채간 데드캣이 순식간에 내용물을 비웠다.

    개당 5포인트.

    학식과 맞먹는 비용을 지닌 보존식품이지만 5포인트로 부려먹기엔 과분할 정도로 실력 좋은 비서다.

     

    ‘슬슬 돌아올 때가 됐나.’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데드캣이 돌아왔다.

    볼에 수염이 세 가닥씩 난 고양이얼굴에 피가 묻어있었다.

    손수건으로 볼을 닦아주며 친절한 어조로 물었다.

     

    “오랜만에 밖으로 돌아다니니까 어때?”

    “지루해.”

    “그래도 시킨 일은 했지?”

     

    무표정한 얼굴로 구겨진 종이뭉치를 꺼낸 데드캣.

    종이를 펼쳐 내용을 읽어본 벨로카시오는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부들부들.

    분노에 떨던 손이 종이를 갈가리 찢었다.

    한 방 먹었다.

     

    “…올해 1학년들은 참 담력이 좋아. 감히 지급대행으로 빚을 변제하고 우리 일꾼과 물자를 동시에 빼돌리는 짓을 하다니.”

     

    데드캣이 가져온 것은 학생회가 정한 법정한도이율로 빚을 원금까지 전액 탕감했으며 이에 불복할 시, 학생회를 통해 소송을 걸라는 통보문서였다.

     

    “죽여?”

    “…우리가 무슨 살인청부조직이냐? 아무리 아카데미라도 하급생을 함부로 죽였다간 <대감옥>에 갇히게 된다. 아직 그 정도 상황은 아니야.”

     

    건방진 1학년, 아카디아.

    사기계약서를 써서라도 복종시키려고 점찍어둔 인재.

    그녀가 기어이 1학년 상급생들에게 자금출자를 받아 사고를 쳤다.

    신설조직 <암흑상회>의 설립.

    인력확보 및 사업 확장.

    벨로카시오의 <계약사기사업>에 정면으로 맞서겠다는 선전포고를 날린 꼴이다.

     

    그렇지만 체급차이가 있다.

    이미 1학년부터 2년간 동급생들을 착취해온 벨로카시오와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한 아카디아.

    양자 간의 포인트에는 절대적인 차이가 있다.

    돈으로는 절대로 힘싸움에서 밀리지 않는다.

    빼앗긴 인력만 상하게 만든다면.

    알아서 이탈하게 만든다면.

    그들의 고객을 손본다면.

    거창한 이름의 <암흑상회>는 자금줄이 말라 스스로 무너지게 될 것이다.

     

    “놈들이 납과 인력을 모아서 무슨 짓을 하려는지 알아내야겠군. 빨간이빨버섯 양식협회의 오합지졸 중에 박스 차우더라는 녀석이 기사학부였지?”

    “맞아.”

    “놈을 이용해서 정보를 모아와라.”

    “공짜로?”

    “…통조림 캔을 준비해두지.”

    “질렸어.”

     

    어라. 이러면 안 되는데?

    좀처럼 뭘 요구하는 법이 없었던 데드캣의 변덕에 벨로카시오는 당황했다.

     

    “그럼 뭐가 먹고 싶지?”

    “스크래치를 하고 싶어.”

    “…내 카펫을 탐내는 건 아니겠지?”

    “기사학부 학생이 좋아.”

     

    데드캣의 무표정한 얼굴에 섬뜩한 미소가 떠올랐다.

     

    “함부로 기른 근육은 조잡해서 거칠고 단단해. 긁는 맛이 있어.”

    “너, 설마 아까 본 핏방울도…”

     

    낼름.

    손톱에 묻은 핏방울을 핥는 데드캣.

    그녀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1학년이면 더 좋겠지.”

    “…내 허락이 있기 전까지 1학년은 건들지 마.”

    “오래는 못 참아.”

     

    곱상한 외모만 보고 뽑았다가 싼 맛에 굴려먹었던 비서의 살벌한 모습에 벨로카시오는 머리털이 뽑히는 스트레스를 느꼈다.

     

    “이거 1학년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빨리 손을 써야겠군.”

     

    1학년은 되도록 건들지 마라.

    이 암묵적인 규칙이 크게 훼손되는 순간, 학생회가 움직인다.

    계약사기 같은 잔챙이 짓이나 하는 자신과는 격이 다른 큰물에서 노는 아카데미의 권력자들이.

    전국의 내로라하는 인재들 사이에서도 정점에 오른 실력자들이.

    벨로카시오의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 *

     

     

    주말이 되며 구충작업도 막바지에 치달았다.

    학생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던 모기들도 거의 줄어든 상황.

    화염마법사들의 가치가 떡상하는 덕분에 포인트를 받고 호위임무를 수행했던 로지니는 아쉬움을 느꼈다.

     

    “어디서 아껴둔 모기를 꺼내는 모기술사라도 안 나와주려나?”

    “그런 소리를 하고 다니다가 의뢰주들한테 들키면 네가 모기 풀었다고 오해받고 몰매부터 맞을 걸? 치료비로 번 돈 다 날리기는 딱 좋겠네.”

    “…그 독설을 지난 번 작전에서 좀 보여주지.”

     

    독설가 에코는 흥 하고 도도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그런 건 됐고, 돈 냄새 나는 일을 찾았어. 지난번에는 내가 신세를 졌으니 이번에는 신세를 갚을 겸 내가 소개시켜주는 거야.”

    “무슨 일인데?”

    “납을 제련하는데 필요한 화력을 보태는 일.”

    “납을?”

    “암흑상회라는 조직에서 하급생 구제작업에 나섰어.”

     

    설명을 들을수록 더욱 오리무중에 빠졌다.

    상회 이름은 뭐 그리 불길하고 이름값 못하게 하급생 구제작업은 또 뭐람?

    일단 현장에 가보고나니 이해가 됐다.

    한 무리의 학생들을 이끌고 다니며 부채를 펼치고 입가를 가리며 중앙제국귀족영애들처럼 조신하게 웃는, 그렇지만 목청은 조신하지 못한 호탕한 웃음소리의 주인 아카디아.

    변방출신 여학생들의 정신적 지주이자 남 돌보기를 좋아하는 착한 여자가 취미생활을 크게 벌였다.

     

    “성적이 위험한 학생들을 선배들이 집중단련 시켜주고 그 대가로 빚을 변제해주는 사업을 벌인다고?”

    “그래요. 꽤 괜찮은 사업이죠?”

    “너희는 어디서 돈을 버는데?”

    “학점이 안정권에 접어든 하급반 학생들이 아카데미 생활로 벌어들인 포인트를 환수하는 거예요.”

    “머리 잘 썼네.”

     

    어차피 낙제할 학생들은 아카데미에 남아있을 수만 있다면 그깟 포인트야 전부 갖다 바칠 수 있다.

    포인트를 주고 학점을 사는 것보다 저렴하게 선배들이 코칭까지 해주고 실제 실력까지 상승하는데 은혜를 안다면 고마워서라도 포인트를 내야 한다.

    아카디아 정도의 인물이라면 같은 포인트로 더욱 돈이 되는 벌이를 창출해낼 수도 있다.

    안 해도 되는 일.

    수익성이 높지 않은 일.

    그럼에도 아카디아이기에 베푸는 호의.

    암흑상회의 <하급생 구제사업>은 사실상 자선사업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오크노디도 교육을 도와주기로 했어?”

    “디가 왜 있는지 궁금하셨나보군요?”

    “특별한 아이니까.”

     

    솔직하게 의문을 드러내는 로지니의 모습에 아카디아는 후후 웃으며 자랑스레 말했다.

     

    “저희 디가 또 의외의 경험이 있더라고요.”

    “무슨 경험?”

    “중량조끼나 납 벨트, 그밖에도 훈련도구를 상당히 많이 알고 있더라고요.”

    “…설마 자기가 다 훈련을 해봐서?”

    “납 신발이나 무게가 5kg이나 되는 훈련용 수저도 있대요. 정말 신기하죠?”

     

    하급반 학생들이 그런 걸 썼다간 근육통에 쓰러져서 강의도 못 듣지 않을까.

    로지니는 속으로 떠오른 의문을 내미는 대신, 손부터 내밀었다.

     

    “의뢰비의 50%는 선금이야.”

     

    고생이야 낙제위기인 학생들이 겪을 일이지, 그녀가 겪을 건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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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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