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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7

       

       

       어디로 갔을까. (1)

       

       

       

       식사 시간은 다행히 평화로웠다.

       구령화에게 얻어맞긴 했으나 버틸 만했고, 

       

       당소열이 냅다 선물한 독에 대해서도 빠르게 해명해 넘어갈 수 있었다.

       

       물론 해명했다고 하더라도 검후가 애매한 미소를 짓는 것은 피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당소열은 검후를 존경하던 게 맞는 듯, 검후가 일궈낸 업적 하나하나를 빠짐없이 말했다.

       심지어 검후가 내뱉었다는 유명한 명대사를 읊으며 검후의 귀를 시뻘겋게 만드는 데 성공하기까지 했다.

       

       ‘내 매화는 악인에게 지지 않는다! 라니…. 검후도 낭만 가득한 인물이었구먼.’

       

       덕분에 손발이 움츠러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만, 보기 드물게 검후가 당황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 괜찮은 시간이었다.

       

       식사는 금방 끝이 났다.

        검후도 당소열이 기분 나쁘지는 않은 듯, 얘기를 잘 받아주기도 했다.

       

       다만 구령화가 당소열을 노려보는 눈빛이 상당히 매서웠다.

       

       [순한 강아지 같은 얼굴이었는데, 아이가 화나니 늑대처럼 변하는구나.]

       ‘저는 사마귀인데 저 아이는 늑대라고 표현하시는 겁니까? 이거 좀 차별이네요.’

       [헛 소리를 하는 걸 보니 밥 먹으면서 양심까지 먹은 모양이구나….]

       

       스승을 뺏긴 것 같은 느낌이라 그런 걸까? 둘의 사이가 상당히 멀어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식사를 끝내고 차까지 마신 다음에서야 자리를 끝냈다.

       당소열은 여러 의미로 더 있고 싶어 하는 것 같았지만, 검후의 상태가 좋지 않아 오래는 불가능해 보였다.

       

       뭐라고 할까, 검후는 조금 지친듯한 느낌이다.

       그걸 나뿐 아니라 당연히 구령화도 알고 있는지, 조금씩 챙기려 하고 있었다.

       

       나는 그 틈에 혼자 야금야금 밥을 먹고 있는 남궁비아를 살폈다.

       이미 위설아가 옆에서 말을 재잘재잘 말을 걸고 있지만, 여전히 혼이 나가 있는 모양이다.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자리를 끝내고 돌아가려는 검후에게 물은 것이다.

       

       “보다시피, 네 덕분에 예전보다 더 건강해진 느낌이구나.”

       

       내가 봐도 검후는 건강을 많이 되찾은 듯 보이지만….

       

       “무슨 일 있으십니까?”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내 물음에 검후가 다소 놀란듯한 반응을 보였다.

       

       어떻게 알았냐는 반응이길래 친절히 설명을 덧붙였다.

       

       “지금 표정이 상당히 안 좋으시거든요.”

       “…티가 많이 나는 모양이구나.”

       “예.”

       

       설마 감추려고 하고 있던 걸까? 그런 것이라면 검후는 거짓말을 하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저렇게 티가 나는데 뭘 감추겠다고.

       

       “동생이 많이 걱정하고 있습니다.”

       “…이런.”

       

       구령화는 뒤편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제 스승만을 보고 있었다.

       그걸 알아본 검후가 머쓱하게 웃는다.

       

       “걱정을 안 끼치려고 했는데, 이미 늦어버렸구나.”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 겁니까?”

       

       육체적인 문제는 아닌 모양인데, 근래에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괜찮다. 이 또한 모두 자연스럽게 흘러갈 일이니.”

       

       대답을 피하듯 말을 흐린 검후는 내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며 구령화에게 다가갔다.

       검후가 머리칼을 쓰다듬으니 구령화가 헤실헤실 웃는다.

       

       다시금 늑대에서 다람쥐로 돌아온 모습이었다. 

       

       “저기…. 구 공자님.”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오늘 같이 식사를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제가 아니라 검후님과 밥을 먹어서 좋았다는 말이죠?”

       “어…어…그게 아니라…! 아닌 게 아니긴 한데.”

       

       내 말장난에 당황한 듯 어버버 거리는 모습이 조금 웃겨서 내가 살짝 웃었다.

       그걸 본 당소열이 살짝 멈칫하더니 내게 물었다.

       

       “지금 웃은 거죠?”

       “예?”

       “공자님, 지금 저 보고 웃으신 거 아니에요?”

       “아니…. 예, 혹시 기분 나쁘셨으면.”

       “아니요! 안 나빴어요!”

       

       그렇게 말한 당소열이 활짝 웃는다. 너무 순한 미소라 나도 모르게 멈칫하게 됐다.

       

       어디선가 봤던 미소라 그럴 것이다. 독비가 짓던 웃음과 닮아있다.

       같은 사람이니 그렇겠지 싶지만, 그녀가 짓던 웃음과는 무게가 달랐다.

       

       독비의 짙고 무겁고, 지쳐있던 미소가 아니라, 그저 순수하게 즐거워서 짓는 것 같은 웃음이라 더 그랬다.

       

       [후회하느냐.]

       ‘갑자기 뜬금없이 무슨 소리십니까.’

       

       노야의 말에 장난스럽게 답하면서도, 노야가 무슨 뜻으로 물어보는지 알 것 같아 조금은 지치는 느낌이었다.

       

       [그런 것 같아서 말이다.]

       ‘후회하지 않습니다.’

       

       내 손으로 독비의 숨을 끊은 것? 그건 해야 했던 일이다.

       

       나를 위해서보다는, 그녀를 위해서.

       

       그때는 그래야 했다.

       

       “다, 다음에도 불러주실래요?”

       

       당소열의 물음에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살짝 망설이긴 했는데, 당소열은 그런 건 상관없다는 듯 웃음을 내비쳤다.

       

       “둘이서는…. 안 되겠죠?”

       “아….”

       “죄송해요! 들떠서 너무 앞섰나 봐요. 대답 안 해주셔도 괜찮아요…!”

       

       그렇게 외치더니 내 손에 뭔가를 쥐여주고 미친 듯이 뛰어나간다.

       

       손에는 작은 호리병이 쥐어져 있었는데. 흔들어보니 찰랑찰랑 소리가 나는 것이 뭔가가 들어있는 모양이다.

       

       “…이건 또 무슨 독일까.”

       

       이제는 무조건 독이라는 확신을 하고 있었다. 저번에도 헤어지기 전에 독을 받았던 것 같은데.

       문제는 무슨 용도로 주고 갔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일단은 품 안에 넣어놨다. 다음에 물어보면 되겠지.

       

       사람들을 모두 보낸 뒤에는 시종을 시켜 정리를 부탁하고 잠시 밖을 거닐며 산책을 했다.

       구가의 산책로는 그다지 아름답지 않다. 그나마 어머니가 계실 적에는 열심히 가꾸거나 했던 것 같은데.

       

       지금에 이르러선 손을 대지 않고 있었다. 

       

       “도련님 이건 무슨 꽃이에요?”

       

       같이 거닐던 위설아가 내게 묻는다.

       

        뭔가 하얗고 예쁜 꽃이긴 한데, 이름까지는 모르겠다.

       

       “백유화(白幼花).”

       

       뒤에서 따라오던 남궁비아가 속삭였다.

       

       “뭐야, 너 꽃 이름도 알아?”

       

       상당히 의외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라 남궁비아가 꽃의 이름을 알고 있다니. 남궁비아는 시선을 위설아가 보고 있는 꽃에 두고 말을 잇는다.

       

       “엄마가 좋아하던 꽃이야.”

       

       그렇게 말하더니 꽃쪽으로 다가가 살포시 앉는다.

       

       “…여기에도 피어있었네.”

       

       조심스럽게 꽃을 만지작거리더니 내게 물었다.

       

       “이거…내가 가져가도 돼…?”

       “뭐하러 가져가게, 키우려고?”

       “응….”

       

       별것도 아니고 꽃 한 송이 주는 건 어렵지 않으니 그러라고 말했다.

       

       남궁비아는 백유화 한 송이를 뽑아 위설아의 머리에 끼워 넣는다.

       

       “으응?”

       

       위설아가 이게 뭐냐는 듯 반응하니 남궁비아는 위설아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예쁘다…. 우리 엄마가 이렇게 자주 해줬어.”

       

       위설아가 배시시 웃으니 남궁비아도 따라서 살짝 미소짓는다.

       

       […예쁜 것들이 붙어 있으니 빛이 나는 것 같구나.]

       ‘갑자기 주책이시네요.’

       [끌끌끌….]

       

       위설아를 잠깐 쓰다듬다 다른 백유화는 뿌리가 상하지 않게 세심하게 흙과 같이 든다.

       

       흙으로 남궁비아의 하얀 손이 더러워졌지만, 그녀는 상관없는 모양이었다.

       

       “이제는 좀 괜찮은가 보네.”

       

       아까 붉어진 얼굴로 민감하게 굴던 것을 떠올리며 물었다.

       

       “…응.”

       

       남궁비아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도 귓가 살짝 붉어져 있었는데, 가을바람이 추워서일까, 아까의 영향이 남아서일까.

       

       “이제 괜찮아…아마도.”

       

       바람결에 속삭이는 목소리가 이다지도 수줍었다.

       

       “…그거 알아…?”

       

       남궁비아가 물었다.

       

       “뭘.”

       “아이는…. 손만 잡는 거로는 안 생긴데.”

       “뭐?”

       “…그냥 그렇다고.”

       

       갑자기 뭐라는 거야.

       그렇게 말하고는 앞으로 걸어갔다. 살짝 걸음이 빨라 보이는 것은 기분 탓일까?

       

       “도련님 추워요. 얼른 가요!”

       

       가만히 멍을 때리고 있으니 위설아가 내 손을 잡고 끌고 갔다.

       참고로 이날부터 한동안 남궁비아가 내 방에서 낮잠을 자지 않았다.

       

       

       

       

       

       ******************

       

       

       

       하루가 지나고, 나는 남궁진을 찾아갔다. 

       약속했던 일정이기에 아침 수련을 끝내자마자 찾아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남궁진은 저번과 같이 별채에 마련된 수련장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주변에 다소 휑한 이유는 남궁가의 무인이 아직 치료 중에 있어서 일 것이다.

       

       “일장로와의 담화를 잡아놨소.”

       

       검을 한껏 휘두르던 남궁진이 말한다. 저번에 내가 부탁해둔 일 탓에 얘기 해주는 모양이었다.

       

       “아마 오늘 저녁이 될 것이오.”

       “알겠습니다.”

       

       크게 뭔가를 부탁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적당히 일장로가 무언가 바라는 것 같으면 들어주려는 듯한 느낌만 내어달라 말했다.

       

       “세가에는 안 돌아가셔도 되겠습니까?”

       “세가의 일보다 중요한 게 있으니 괜찮소.”

       “…음. 알겠습니다.”

       

       본래라면 약혼식 일정을 끝내고 남궁비아와 함께 세가로 돌아가려고 했을 터인데.

       

       이쪽에 붙잡혀 못 가고 있는 상태였다.

       

       ‘정확히는 안 가고 있는 거긴 하지.’

       

       그놈의 검이 뭐길래….

       

       [그놈의 검이라니 이 녀석아! 무인의 욕심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놈이…. 에잉 쯧.]

       

       뇌천일검 남궁명이 남겼을 진화된 검의 초석. 어떻게 되면 참 묘한 일이었다.

       

       어째서 이어지지 않았을까. 어째서 남궁은 그의 검을 잊었을까.

       

       퇴화한 검으로도 검문명가의 일인자로 군림하고 있는 걸 신기하게 보는 한편,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제 다 되었소?”

       “예.”

       

       며칠을 기다렸으니, 슬슬 남궁진도 재촉하기 시작했다.

       하기야 금제까지 걸린 마당에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말씀 해둔 것만 지켜주시면 좋겠네요.”

       “…걱정 마시오.”

       

       여러 가지 사항에 관해 얘기가 오갔으나, 내가 가장 중요하게 걸었던 부분은 한 가지였다.

       

       이것에 대해 깨닫게 되면.

       

       남궁비아에게도 가르침을 내릴 것.

       

       이 부분에 대해서 남궁진은 그다지 좋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혈족에게 깨달음에 대한 가르침을 내리는 것이 뭐가 그리 불편할까.

       

       끝내는 내가 굽히지 않고 따지니 ‘남궁비아’ 에게만 가르침을 내리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우습지 않은가.

       애초에 다른 이들은 어찌 될지 관심 없고, 나는 오로지 남궁비아에게만 가르침을 내렸으면 되는 것이었는데.

       

       남궁진은 구태여 직접, 다른 혈족에게 가르치지 않겠다는 조건을 내건 것이다.

       왜일까, 왜 굳이 그런 조건을 집어넣은 것일까.

       

       남궁진의 의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생각이 스치지만, 가장 확률 높은 예상은 가주로서의 입자를 확고히 하고픈 마음일 것이다.

       

       쓰지 못하거나, 쓸 줄 모르는 것을 할 줄 아는 것.

       심지어 가문의 검이면서 보다 진보된 것을 다른 이도 아니고 가주가 사용한다면, 그로서 가지는 가치에 대해 생각하던 것이 아닐까.

       

       ‘그런 걸 자신의 핏줄에게까지 선을 긋다니.’

       

       나로서야 가르침이라 적었으나, 엄연히 거래에 가까웠고.

        무엇보다 남궁비아에게는 전할 수 있는 부분이니 상관없었다.

       

       그리고 이런 부분을 볼수록, 남궁비아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 알아보고픈 마음이 들었다.

       

       마검후로서가 아니라, 지금의 남궁비아를 봤을 때는 그럴 행동을 할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제가 말씀드릴 것은 두 가지 줄깁니다.”

       

       검을 들지는 않았다.

        노야는 저번 빙의 이후로 한동안은 할 수 없다고 했다. 위험하다고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되지도 않는 검을 들어 남궁진에게 동작을 보여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는데.

       노야는 그저 말만 전하면 충분할 거라고 했다.

       

       [남궁의 검은, 줄기가 끊어져 있다.]

       ‘줄기요.’

       [그래, 식과 식을 잇는 줄기, 그것도 아주 미세하게 끊어져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게지.]

       ‘그런 걸 고작 말로서 이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나야 모르지, 명이 놈이 해준 말을 그대로 전할 뿐이니 말이다.]

       ‘아니 뭔 무책임한 말씀입니까…?’

       [뇌천일검이 자신의 깨달음을 가득 담은 것이다. 이를 듣고도 남궁의 아이가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다면 그걸로 끝인 게야.]

       ‘그렇게 해서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고 저한테 따지고 들면 저는 어찌합니까?’

       [뛰어가서 네 아비 등 뒤로 숨어야지 별수 있겠느냐.]

       ‘…망할.’

       

       이 나이 처먹고 아버지한테 그런 걸로 뛰어가라고?

       아니…. 실제로 이번 생은 아직 어리기는 하다지만, 양심이 있지.

       

       [양심은 원래 없지 않았느냐, 이제 와서 세울 체면이 어디 있다고.]

       ‘…’

       

       내가 호흡을 고르니 남궁진은 진작 반짝이는 눈으로 귀를 열고 있었다.

       

       아버지 또래의 사내가 저런 초롱초롱한 눈을 보내니 심하게 부담스럽다.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귓가로 들려오는 신 노야의 말을 내 입으로 전달할 뿐이다.

       

       “남궁의 검은 파도와 같습니다. 일생을 번개로 살고 있으나, 구태여 따지자면 파도에 가깝죠.”

       

       깨달음이란 본래 추상적이다.

        육체와 검을 동일시하는, 신검합일(身劍合一)을 목표로 하는 검수로서는 더 그럴 것이다.

       

       과거 마검후는 물론이고, 위설아를 비롯해 뛰어난 검수들이 닿았을 영역이다.

       무투가 또한 비슷한 단어로 불리는 영역이 존재하나, 느낌이 달랐다.

       

       나는 아까도 말했듯, 그저 노야의 입을 밀려 말을 뱉을 뿐이고.

       가끔 손을 뻗으라느니 이유를 알 수 없는 행동 지시를 따를 뿐이다.

       

       “…뇌기를 다루니 쾌검과 속검에 중점을 둬야 하지만….”

       

       다만, 완전히 추상적이지는 않은지, 남궁의 검로에서 손목의 문제나 발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단편적인 정보가 오간다.

       동작에 관련된 발언은 신 노야가 개인적으로 덧붙이는 것이다.

       

       문제는.

       

       ‘도움이 되기는 하는 모양이야.’

       

       파도니 번개니, 나무니 숲이니, 남궁의 검을 모르는 입장에선 들어봐야 부질없는 얘기다.

       

       나는 그가 검을 휘두르며 얻어왔을 경험과 뜻을 모르니.

       저 추상적이면서 모호한 얘기가 그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 모른다.

       

       설명은 끝나지 않았지만, 남궁진의 시선이 달라졌다.

       

       그가 눈을 천천히 감는다.

       

       무언가를 얻은 걸까.

       그렇다고 하기에 깨달음이라 칭할 만큼의 무언가는 느껴지지 않았다.

       

       [마냥 반푼이에 모지리는 아닌 모양이구나.]

       ‘이렇게 해도 될지 모르겠네요.’

       [네 입장도 고려해 모든 걸 알려주진 않았다. 남궁의 아이도 많은 것을 얻어 가지는 못할 게야.]

       

       어떻게든 친우의 검을 이어주고 싶어 했던 노야의 마음은 이해했기에 나 또한 강하게 부정하지 않고 넘어간 것이다.

       침묵은 잠깐이었다.

       

       남궁진은 금방 감았던 눈을 떴고. 곧바로 검을 휘두른다.

       

       쉭! 쉬익!

       

       이어지는 검로는 예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 보였으나. 미세하리만큼 무언가가 달라져 있었다.

       

       [발을 걸치는 데 성공한 모양이구나.]

       

       노야가 말을 덧붙이지만, 나로서는 큰 차이를 느끼지는 못했다.

       

       다만 분명 무언가가 달라졌음은 알 수 있었다. 이 부분이 중요한 것이다.

       반각 정도를 검만 휘두르던 남궁진이 멈추고서 조용히 속삭인다.

       

       “…고맙소.”

       

       화경에 닿았을 무인이 땀을 주룩주룩 흘리고 있었다. 고작 반각 사이에 말이다.

       

       “뭔가를 얻으셨습니까?”

       “간신히…. 아주 조금은”

       

       남궁진은 뒤에 말을 이으며 이걸 체감하는 데에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는 얘기를 했다.

       

       “몸에 익은 모든 것을 버려야 할지 모르겠군….”

       

       수십의 세월 동안 몸에 익은 동작을 바꿔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이걸 굳이 단련할 생각일까, 가주의 입지를 다지려면 그럴 시간도 부족할 텐데. 

       

       [보이지 않으냐. 이미 매료되었다.]

       

       노야의 말에 남궁진의 눈을 보니 열기로 가득했다.

       

       [작지만 분명 다르다. 그 차이를 알면 끝에 얼마나 다를지 스스로 알 터이니 물러서기에는 이미 늦었지.]

       ‘어째 칼 쓰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정상인이 없네요.’

       […그거 무공 차별이니라 이 썩을 놈아.]

       ‘누가 칼잡이 아니랄까 봐 발끈하시네.’

       

       경지는 달라지지 않았고, 내기의 변동도 없다. 

       단순히 검을 어떻게 휘둘러야 하는가에 대해 살짝의 차이를 발견했을 뿐이다.

       

       하물며 이를 사용하기까지 적어도 몇 년은 걸릴 것이라 했다.

       

       그렇다면 이건 독이 아닐까. 내가 보기에는 그랬다.

       

       그 틈에 남궁진의 몸에 남은 마기의 흔적을 재차 확인했다.

       혹시 얻을 걸 얻었다고 돌변할지 모르니까 말이다.

       

       “약속은 잊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열기가 전부 식지 않은 남궁진은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당장이라도 검을 더 휘두르고 싶어 하는 기색이 가득했다.

       나는 금제를 한 번 더 확인한 뒤에 문을 닫고 나왔다. 

       

       이거 조금 알려준다고 끝날 일은 아니었고, 몇 번을 더 마주하는 것으로 얘기가 되어있었다.

       

       이 과정이 남궁비아의 삶에 도움이 될까.

       엄청 커다란 도움이 되진 않더라도 조금의 차이는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부질없는 기대가 문득 스쳤다.

       

       “그건 그렇고…. 노야.”

       [왜 그러느냐?.]

       “아까 남궁 가주에게 전하던 얘기들 있잖습니까.”

       

       동작에 직접 엮인 얘기가 아니라, 추상적인 부분들.

       

       나는 그 부분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

       

       “…뇌천일검이 남긴 말들이 맞습니까?”

       [그래, 그 재수 없는 놈이 남기고 간 얘기가 맞다. 제 검이 잘났다며 미친 듯이 떠들고 다녔지.]

       

       어떤 미친놈이 지 깨달음을 그렇게 다녔을까, 분명 과장된 말이라 생각됐지만.

       

       중요한 건 정말 그 발언들이 뇌천일검이 남긴 얘기가 맞냐는 의미였다.

       

       [한데, 그건 왜 묻는냐.]

       “아닙니다. 그냥 여쭤봤어요.”

       

       물어본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전생의 마검후도 이와 같은 얘기를 했던 것 같다. 심지어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똑같은 얘기를 말이다.

       

       언제였을까, 아마 내가 신검합일에 대해 물어보고 있을 즈음일 것이다.

       그때의 마검후는 분명 자신은 그렇게 배웠다며 말을 하곤 했었다.

       

       -라고 했어….

       -…뭐라고 하는 것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잖느냐.

       

       개떡 같은 얘기라 하나도 알아듣지 못해 그렇게 되묻고는 했다.

       신 노야가 보여주던 남궁의 검은 분명 마검후가 휘두르던 검로와 비슷했다.

       

       하지만 지금의 남궁의 검은 그렇지 않다.

       남궁의 현 제일 고수인 천존은 모르겠으나, 남궁진은 그 검을 쓸 줄 몰랐다.

       

       하물며 남궁의 검이 가진 문제점도 모르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마검후는 누구에게 그 검을 배웠을까.

       지금의 남궁진이 아니라면, 대체 누구에게?

       

       나는 그저 마검후의 재능이 드높아 홀로 고질적인 문제를 초탈하고 검로를 재정립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와서 보니 이질감이 들었다.

       

       이 또한 우연일까.

       

       왠지 나는 아닐 것 같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

       

       

       

       

       곧바로 향한 곳은 남궁비아가 있을 별채였다.

       

       남궁가의 무인이 대부분 병상에 누워있으니 별채를 지키고 있는 것은 반쯤은 구가의 무인이었다.

       참 역설적이게도 말이다.

       

       별채 입구에 가서 앞에 대기 중인 시종에게 전언을 넣으려 하니.

       

       건너편에서 문을 열고 남궁비아가 뿅 하고 나타났다.

       

       “…왔어…?”

       “어떻게 알고 나온 거야?”

       

       창밖으로 보기라도 하고 있었나? 

       

       그런 것 치고는 잠이라도 자고 있던 건지 표정이 살짝 평소보다 맹해 보였다.

        

       “자고 있었어?”

       “아니….”

       

       목적이 있어서 온 것은 아니고 어제 상태가 안 좋아 보이던 게 신경 쓰여서 온 것이다.

       

       “밥은.”

       “…안 먹었어.”

       “그럼 이따 같이 먹어.”

       “응….”

       

       내가 주었던 장식품은 여전히 남궁비아의 머리칼을 묶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평소에도 하고 다니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 주제에 안 맞게 살짝 뿌듯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몸은.”

       “…괜찮아….”

       “그럼 이마 만져도 돼?”

       

       저번에 피했던 걸 떠올리며 이번엔 먼저 물어봤다.

       

       [찌질하게 그걸 물어보다니….]

       ‘노야….’

       [뭐, 왜.]

       ‘아닙니다.’

       [이…이…!]

       

       뭐라 말하지도 않았는데 신 노야가 발끈했다.

       나는 정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허락을 구하는 말에 남궁비아가 멈칫하며 살짝 한 걸음 뒤로 물러난다.

       

       싫은 건가?

       

       “싫으면 이제 안 물어볼….”

       “…해줘….”

       

       남궁비아는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게 그렇게 힘든 걸까?

       어찌 되었든 허락해줬으니 성큼성큼 다가가 남궁비아의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댔다.

       

       “…몸이 안 좋은 거 맞는데?”

       

       이마는 뜨거웠다.

       만질 때만 해도 따뜻한가 싶었던 이마가 점점 열이 오른다.

       

       이 정도 열이면 진짜 뭔가 문제가 있었다. 일류의 닿았을 무인이 갑자기 이렇게 열이 오르다니.

       

       당장 끌고 신의에게 데려가려는데. 

       남궁비아의 이마에 대고 있던 손 위로 무언가가 닿는다.

       

       다름 아닌 남궁비아의 손이었다.

       

       “괜찮아…. 이제 진짜 괜찮아졌어….”

       

       그리 말하며 내 손을 잡더니 그대로 내린다.

       자연스럽게 나와 남궁비아가 손을 잡고 걸을 수 있는 상태가 됐다.

       

       이게 뭐 하는 거냐고 따로 묻지 않았다. 그리 말하기에는 남궁비아의 새하얀 얼굴이 빨갛게 변해 있었으니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거에 부끄러워하는 느낌은 아니었는데.’

       

       어디서 뭐라도 진짜 잘못 먹은 걸까. 남궁비아는 바람에 얼굴을 식히며 말한다.

       

       “밥…먹으러 갈래.”

       “어디로, 네 방?”

       “아, 안돼, 내 방은….”

       

       진짜 당황했는지 남궁비아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훨씬 커져 있었다.

       

       뭐야, 지는 내 방에 아무렇지 않게 침투하면서 이럴 때는 밀어내다니.

       

       방에 뭐라도 숨겨놨나 싶어서 호기심에 들어가 볼까 했지만, 왠지 그렇게 했다간 남궁비아가 진짜 화낼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남궁비아가 화를 낸다라…?

       

       ‘그것도 좀 궁금하긴 한데.’

       

       전생도 그렇고 본적이 없는 것 같아서였다.

       

       내 속마음을 눈치챘는지 남궁비아가 다급히 날 끌고 걸어간다.

       나는 손이 잡힌 채로 반쯤 딸려가듯 걸어갔다.

       

       와중에 나도 잡힌 손을 뿌리칠 생각은 없었다.

       

       

        노야가 순간 뭐라 욕하는 것 같았지만, 듣지 않았다.

       

       나는 순순히 잡혀서 길을 걸었다.

       

       나중에 시종을 통해 알게 된 것인데.

       

       내 방에 있어야 할 침구류 몇 개가 사라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값어치가 좀 나가는 모양이라 시종이 울상을 짓고 있었는데, 얼마 뒤에 시종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일을 했다.

       

       되려 뭔가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는 모양인지 웃음꽃까지 피어있더라.

       나름 오래 써서 낡은 것이라 잃어버려도 상관없었지만.

       

       그건 대체 어디로 간 걸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_ _ )

    문득 처음 글을 쓸 때가 떠오르네요, 그랜드 체이스의 소설게시판에서 종종 쓰고는 했었는데…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어요.

    항상 감사합니다 ( _ 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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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CFZ, Childhood Friend of the Zenith Under the Heavens, The Zenith's Childhood Friend, 천하제일인의 소꿉친구
Score 8.4
Status: Ongoing Type: Author: , Artist: Released: 2021 Native Language: Korean
Instead of struggling meaninglessly, he acknowledged his 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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