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27

       내가 세라핀과 리지의 제안을 거절하고 난 날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두 가지의 크고 작은 사건이 아카데미를 한 차례씩 소란스럽게 만들었다.

         

        하나는 검술부의 불량 학생들에게 위협받고 있던 실레나를 주인공이 구출하고 실레나와 주인공의 사이가 한 차례 더 돈독해졌던 것.

         

        이거야 뭐 원래 스토리와도 크게 다르지 않은 이벤트였기에 적당히 확인만 하고 넘어갔다. 보나 마나 겧뫄조셰기괏의 영웅주의적 행보가 여학생들 입에 오르내리고 그런 정도의 사건이겠지.

         

        『루미노르 아카데미』를 24번이나 클리어해온 나에게는 실레나를 데려온 순간 당연히 수행해야 할 이벤트로 보일 뿐이었지만.

         

         

        ‘제대로 된 실레나 공략을 위해서라면 무조건 구출해야지. 기껏 데려와 놓고 이거 안 해주면 사실상 유기나 다름없으니까.’

         

         

        구해줬을 때 주인공을 향한 실레나의 호감도가 크게 오르는 것은 물론이고 만약 구해주지 않으면 이 사건에서 입은 부상으로 인해 실레나는 엔딩 때까지 부상 페널티가 붙는다.

         

        그런 면으로 볼 때 주인공의 이 행위는 제대로 게임의 클리어를 향해 움직이는 듯했고 나 또한 마음속으로 주인공에 대한 평가를 조금 더 수정했다.

         

        물론 아직도 직접 만나 이야기를 한 적은 한 차례도 없었지만.

         

        일단 에단과도 쓸데없는 충돌 없이 데면데면한 사이를 유지하고 있는 걸 보면 다행히 녀석도 에단을 원작의 악역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체형 자체가 역변 수준으로 완전히 바뀌었는데 스토리가 그대로 흘러가리라고 미처 생각하지 못하겠지.

         

         

        주인공과 실레나의 연애 스토리야 뭐 그렇다 치고 오히려 내가 조금 더 놀란 부분은 두 번째로 일어난 사건 쪽이었다.

         

        주인공이 진행한 메인 스토리에 비하면 화제성은 확실히 덜했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제법 의외의 사건이 내 예상보다 빨리 일어난 순간이었으니.

         

        세라핀의 호위인 루크가 남장을 벗어던지고 그녀의 전속 메이드로 위치를 바꾼 사건이 나에게는 더욱 의외의 사건처럼 느껴졌다.

         

         

        남장을 벗어던졌다는 말에서 대충 알아챘겠지만 루크는 이 게임의 유일한 ‘남장여자 히로인’이었다.

         

        원래 이런 종류의 게임에는 남장여자 히로인이 한 명씩 껴서 주인공과 이런저런 상황에 부딪히는 게 묘한 재미였으니까.

         

        게임의 서브 히로인이니만큼 당연히 공략도 가능하고. 가장 쉬운 공략 방법은 기술부에 입학해서 그녀와 함께 2인실 기숙사를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같은 기숙사를 쓰다 보니 루크가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주인공에게 여자임을 들킬 수밖에 없는 상황이 나타나고 거기서 주인공은 루크의 비밀을 지켜주면서 우정과 애정을 쌓아가는 스토리.

         

         

        그렇기에 보통은 게임 내내 주인공과 세라핀만 그녀가 여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고 심지어 몇몇 루트는 아예 그녀가 여자라는 사실이 엔딩까지 밝혀지지 않는 경우도 허다했으니.

         

        이번에 루크가 스스로 여자임을 밝히고 여자 제복과 함께 아카데미에 등교하기 시작한 건 24번의 클리어를 한 나조차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심지어 거기서 그치지 않고 교복에는 레이스를 달고 머리에는 헤드 드레스까지 단 채 확실하게 전속 메이드임을 어필하는 모습.

         

        묘하게 나를 닮은 차림을 한 채 등교하기 시작한 그녀의 모습을 보니 혹시 내가 원인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조심스레 든 순간이었다.

         

         

        ‘세라핀이 나를 전속 메이드로 삼으려고 그 자리를 비워놓았다가 내가 거절하니까 결국 그 자리를 루크로 채운 걸지도 모르겠네.’

         

         

        어쨌든 세라핀의 긴 머릿결을 포함하여 그녀의 몸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전속 메이드가 필수적이었고 그 역할은 남장하고 아카데미를 다니던 루크의 몸으로 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그렇다고 섣불리 아카데미의 다른 학생을 전속 메이드로 삼는 것은 신뢰가 안 갈 테고 외부에서 메이드를 불러오는 것도 다음 학기부터 가능한 방법이었으니.

         

        세라핀의 처지에서는 나름대로 루크를 전속 메이드 직위로 옮기는 그 방식이 제일 나은 선택이었겠지.

         

         

        ‘잠깐, 그렇다면 처음에 전속 메이드가 비어 있었던 이유는 처음부터 나를 그 자리에 들여놓으려고….’

         

         

        솔직히 말하자면 가장 유력한 가능성이었다.

         

        애초에 세라핀이 자신의 전속 메이드 자리를 비우고 입학한 게 이번이 처음이기도 했고 그녀는 자신이 유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최대한 자신의 곁에 두려는 성격을 갖고 있으니까.

         

        원래대로라면 황궁에 있던 그녀의 전속 메이드 중 한 명을 데리고 함께 아카데미에 입학했겠지만 그 자리를 비우고 입학했다는 건 처음부터 나를 거기에 넣을 생각으로 그리 행동했을 가능성이 컸다.

         

         

        물론 내가 에단의 전속 메이드를 하지 않고 있었더라도 세라핀의 제안 자체는 아마 거절했을 터였다.

         

        그야 그렇잖아. 전생에서 남자였던 내가 어떻게 여자인 세라핀의 전속 메이드 업무를 맡을 수 있겠냐고.

         

        제복을 다리고 머리를 빗겨주는 것까지는 딱히 상관없었지만, 옷을 갈아입히고 몸을 씻겨주는 행위는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하기에 영 부담스러운 행위였다.

         

        성욕을 느끼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내 마음이 찜찜해서 못 버틸 것 같다는 뜻이다. 지금도 가끔 이사벨과 함께 욕실에 들어서면 죄악감이 장난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그날 함께 들었던 리지의 개인 비서 제안은…그냥 그녀 자체를 아직 신뢰하기 힘들어서 거절한 것에 가까웠다.

         

        내가 리지의 개인 비서 자리를 덥석 받아들였다가는 왠지 그녀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나를 쉴 새 없이 부려먹을 것 같은 생각이 머릿속에 들었기에.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지금의 리지가 나에게 악감정이 남아있지 않으리라고 확신할 수 없었고, 무엇보다 개인 비서로 고용하겠다는 그녀의 제안 자체도 수상했다.

         

        이미 약학부 신입생들 사이에서 자신의 독자적인 그룹을 만들어 낼 정도로 사람을 모으고 다루는 실력이 뛰어난 그녀가 굳이 나 같은 사람을 고용한다고? 그것도 황녀와 경쟁을 벌이면서까지?

         

        100% 무슨 꿍꿍이가 있을 게 분명했다. 이런 수상쩍은 제안은 당연히 받아들이는 게 아니지.

         

         

        다행히 지금까지 오랫동안 함께 일해온 에단과 의리를 지키겠다는 핑계는 두 사람에게 생각보다 잘 먹혀들었고.

         

        세라핀과 리지 중 어느 한 사람에게 망신을 주는 일 없이 무난하게 두 제안 모두 거절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내가 세라핀의 제안을 거절한 것으로 루크가 남장을 풀고 세라핀의 전속 메이드가 되어버리기는 했지만 딱히 내 잘못은 아니지.

         

        난 어디까지나 에단과의 의리를 지켰을 뿐 사용인이 한 주인에게 충성한다는 게 딱히 욕을 먹어야 할 이유는 아니잖아.

         

        만약 불만이 있으면 네 주인한테 해라, 루크야. 당연히 못 하겠지만.

         

         

        그렇게, 크고 작은 여러 사건이 있었던 사이 루미노르 아카데미 첫 학기의 나머지 기간 또한 어영부영 흘러가기 시작했고.

         

        어느덧 1학기의 마지막 기말 평가 이벤트. 평가전 대련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 ⁎ ⁎

         

         

         

        『릴리스는 레벨 10이 되었다!』

         

        『릴리스는 ‘마력 부여’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 ⁎ ⁎

         

         

         

        루미노르 아카데미의 1학기 수업도 하나둘 종강을 맞이하고, 슬슬 첫 번째 학기의 마무리를 지을 시기 또한 다가오고 있었다.

         

        여느 아카데미 게임이 다 그렇듯 한 학기 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기말 평가 이벤트였다.

         

        사실 직접 아카데미에 다니는 학생으로서는 기말 평가 이벤트 못지않게 중간 평가 시험도 중요하기는 했지만, 중간 평가 시험은 게임 내에서 비중 있게 다뤄질 정도로 재밌는 이벤트가 아니었으니까.

         

        다 같이 시험장에 모여 학창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시험문제를 풀거나 혹은 야외 훈련장에 있는 과녁을 마법으로 맞추는 것 따위를 뭐가 재밌다고 보고 플레이하겠어.

         

        아무튼, 학기를 제대로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이 기말 평가 이벤트를 제대로 수행할 필요가 있었고, 다행히 내 준비는 그럭저럭 잘 되어가는 중이었다.

         

         

        가장 달라진 점은 내 레벨이 9에서 10으로 올랐다는 점.

         

        해럴드의 과목에서 하루에 세 번씩 검술부 학생들과 대련하며 경험치를 벌다 보니 어느덧 내 레벨은 대련 도중 자연스레 10레벨로 한 단계 올라있었고.

         

        덕분에 10레벨이 되면 자동으로 배우는 ‘마력 부여’ 스킬까지도 손에 들어온 상황이었다.

         

        무기에 마력을 부여하여 무기를 강화하는 형태의 보조 마법이었으니, 내 단검 공격에도 어느 정도 안정성이 늘어난 셈이지.

         

        마법사인데 단검 공격에 안정성이 늘어나는 게 대체 무슨 상관이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기말 평가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가져가는 데는 마법인지 근접 공격인지가 딱히 중요한 게 아니었다.

         

        자신이 가진 모든 수단을 써서 어떻게든 상대를 이기고 승리를 따내는 것. 그것이 마법부 전체의 1학기 기말 평가에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평가전’ 이벤트였으니까.

         

         

        참고로 이 과목은 딱히 마법부에만 해당하는 내용도 아니었다.

         

        전투 관련 과목을 배우는 모든 과목은 다 이런 식으로 1학기를 마무리하는 평가전 대련을 시행했으니까.

         

        에단이 포함된 검술부는 물론이고 창술부, 궁술부, 격투부도 모두 이 방식으로 1학기 수업의 최종 평가를 마무리 짓는다.

         

        물론 과목의 이수율도 중요하니까 평가전 하나만이 학기 전체의 성적을 결정짓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중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원래 아카데미라는 곳은 전투 능력이 있는 인재를 기르기 위한 양성 장소였고 실전 전투에서 얼마나 강한지로 학생을 평가하는 것이 어찌 보면 가장 당연하면서도 가장 공평한 평가의 방식이었다.

         

        적어도 많은 사람이 이해하지 못할 방식의 시험 성적 평가보다는 전투력 줄 세우기가 가장 확실한 평가 방법이긴 하지.

         

         

        어쨌든, 이 학기 말 이벤트인 평가전 대련을 위해 지난 한 학기 동안 갖은 고생을 다 하며 ‘운’ 수치 상승에 집중한 결과 입학할 때 겨우 2에 불과했던 운 수치를 어떻게든 쓸만한 정도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

         

        리지에게 얻은 ‘마력 흐름의 이해’를 통해 얻은 운 수치가 2.

         

        명중률 특화 강의를 이수하고 학기가 마무리되면서 들어온 운 수치가 2. 이걸 두 개 들었으니까 4.

         

        마지막으로 레벨이 1 오르는 과정에서 함께 오른 1의 수치까지.

         

        2에서 9까지 무려 4배가 넘게 상승한 운 수치를 보니 괜히 감격이 밀려오는 기분이었다.

         

        릴리스로 운을 여기까지 끌어왔다는 것 자체가 그야말로 기적에 가까울 정도.

         

        다행히 9 정도의 수치면 실제 명중률은 약 20퍼센트에 해당하는 정도의 양이었으니. 이 정도면 트리플 캐스팅을 통해 대충 50퍼센트에 가까운 정도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상대에게서 압도적인 우위를 가져가지는 못하더라도 무난하게 승리를 가져올 수 있는 수준기도 하고.

         

         

        “진짜, 고생 많이 하긴 했다.”

         

         

        그래도 이번 학기만 어떻게든 보내고 나면 다음 학기부터는 그래도 그럭저럭 할만해 지겠지.

         

        학기 말 대련에서 나보다 강한 상대가 매칭되지 않는 이상 무난하게 승리를 가져오고 1학기를 마무리 지을 수 있을 터였다.

         

        평가전 대련은 같은 부서끼리만 매칭된다는 점. 그리고 학기 중 성적 우수자에게는 기말 평가전의 상대를 지정할 수 있는 『루미노르 아카데미』의 매칭 시스템을 생각한다면, 나보다 강한 상대와 붙게 될 일은 절대로 없겠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1학기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평가전 대련에서 굳이 쉬운 상대를 내버려 두고 나를 상대로 지정하는 미친년이 설마 내 위에 있을 것이라고는.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Maid of the Lout Prince

I Became the Maid of the Lout Prince

망나니 공자의 메이드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transmigrated into a character from my favorite game in my previous life. Moreover, as the character I despise second most in the game. (Not a wasteman) The cover was designed by Deep Dark Wolf, and the typography was done by 유일유화 (Yu Ilyuhwa).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