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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7

       “그래, 내가 조금 전에 너를 보고 ‘친우’라고 했지.”

        

       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입을 헤 벌리고 굳어버린 미아 크로우필드를 향해, 앨리스는 다소 날카롭게 말했다.

        

       “아니면, 너는 나를 친우라고 생각하지 않는 건가?”

        

       “어, 아뇨, 저, 그게.”

        

       미아 크로우필드가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 것을 보며, 앨리스는 그때까지도 손에 쥐고 있던 찻잔을 들어 흔들어 보였다.

        

       “적어도, 조금 늦게라도 네가 이 찻잔에 대해 지적한 걸 보면, 너희 어머니처럼 나를 복수의 대상으로 보는 것 같지는 않은데. 아니면 복수심보다는 우정이 조금 더 앞서 있다던가.”

        

       미아 크로우필드는 그 말에 입을 딱 다물었다. 하지만 무표정을 효과적으로 유지하지는 못했다. 입가는 파들거리고 있었고, 눈동자는 이리저리 요동치고 있었으며, 얼굴은 문자 그대로 홍당무처럼 붉어졌으니까.

        

       “일단, 이야기를 나눠보자. 여기 온 가장 큰 이유는 당연히 실비아 때문이긴 하지만…… 너, 아니지, 너의 가문과 관련된 일이기도 하니까.”

        

       나는 나도 모르게 앨리스를 빤히 바라보고 말았다.

        

       나와 관련된 일?

        

       앨리스가 나의 과거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게 되기라도 한 걸까?

        

       ……하긴, 다시 생각해보면 앨리스가 내 과거에 대해서 마음먹고 찾아보기 시작하면 못 찾을 것도 없기는 했다. 다른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존재들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나마 직접 만나볼 수 있는 황제의 아이들, 벨라나 제이든한테 물어보기만 해도 내가 어디서 오게 되었는지 정도는 알아낼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만약 제가 있던 곳과 이곳이 관계가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셨다면, 그 생각은 틀리셨을 가능성이 큽니다.”

        

       나의 말을 들은 미아 크로우필드의 시선이 조심스럽게 내 쪽으로 돌아왔다. 끼어들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는 듯한 눈이었다. 물론 그 안에서 마음은 ‘끼어들면 안 된다’쪽으로 거의 기운 것 같이 보이긴 했다.

        

       “그래?”

        

       하지만 나의 말을 듣고도 앨리스는 그다지 흔들리지도 않고, 그저 쥐고 있던 찻잔을 탁자 위에 우아한 동작으로 올려둘 뿐이었다.

        

       “제가 마지막으로 조사했을 때는 아니었으니까요.”

        

       나는 그때 백작을 죽이기 전에 온갖 방식으로 내부의 서류를 찾아내 읽어보았다. 거기에는 내가 살았던 고아원과 연결되었던 증거는 없었다.

        

       애초에 아이들을 팔아대는 고아원이 그곳 한곳만은 아닐 것이다. 제국은 넓다. 제도에서부터 여기까지 아이를 사 올 바에는 차라리 근처의 다른 곳에서 고아들을 사다 모으는 것이 나을 수 있다. 크로우필드 영지 내에도 고아들이라면 충분히 있을 테고, 국경지대니까 해외에서 고아를 사들일 수도 있었을 거다.

        

       실제로 클레어도 나름대로 조사를 해봤던 것 같지만, 그 고아원과 연결된 사람들을 찾지 못했으니까.

        

       그래서 나는 나 나름대로 그 고아원이 독자적으로 운영되던 영세한 곳이라고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렸다. 내가 불태움으로써 그 자체가 소멸해버렸고.

        

       그때 고아원을 찾아왔던 그 남자와 여자는 결국 찾지 못하긴 했지만.

        

       “만약 네가 그렇게 생각했다면, 놓친 곳이 있다는 뜻이겠지.”

        

       앨리스는 손이 허전하다는 듯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말했다. 이런 분위기라면 차를 마시며 말하는 것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기라도 하는 걸까.

        

       “아무리 점조직처럼 운영되는 곳이라고 해도, 이어지는 곳은 있기 마련이야.”

        

       내가 계속 설명해보라는 듯 앨리스를 가만히 바라보자, 그녀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인 뒤 말했다.

        

       “한 가게에서만 계속 물건을 구매하는 사람은 없다는 뜻이지. 마음에 드는 물건이 없다면 주변의 다른 가게들을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원하는 물건이 나올 때까지 뒤지고 다니는 거야. 특히, 누군가가 주문 제작한 물건이 있다면 더 확실하게.”

        

       “아, 저기…….”

        

       조금 전까지 ‘끼어들면 안 되겠다’라는 표정을 하고 있던 미아 크로우필드였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자기 앞에서 계속 이해가 되지 않는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결국 참지 못한 모양이었다.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 건가요? 그 물건이라는 게…… 저희 영지와 관련이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앨리스와 나는 동시에 미아 크로우필드를 보았다. 그쪽으로 시선을 보낸 시간이 더 짧은 쪽은 나였다. 나는 미아 크로우필드의 당황한 표정을 잠깐 보고, 그대로 다시 앨리스 쪽으로 시선을 돌려서 뚫어져라 보았다.

        

       앨리스는, 내가 크로우필드 백작을 죽였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기라도 한 것일까?

        

       “그래, 관련 있어. 백작이 사망하기 전에 하던 사업과 관련 있는 이야기니까.”

        

       하지만 앨리스는 내가 죽였다는 말까지는 하지 않았다. 여전히 아슬아슬하기는 했지만…… 하긴, 다시 생각해보면 이미 미아 크로우필드는 내가 자기 아버지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더라도, 이미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있긴 했다.

        

       그래서 내가 잘해줄수록 당황하는 거고. 그녀로서는 내가 자기를 죽이겠다고 생각하지 않을수록, 그리고 나에 대한 악감정이 지워질수록 혼란스러울 거다. 일평생 복수의 대상으로 상대하던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게 되어버린다면…… 그만큼 허무할 테니까.

        

       “…….”

        

       앨리스가 무슨 말을 하건, 나는 막을 생각이 없었다.

        

       고집을 부리는 앨리스를 쉽게 막기 어렵다는 것도 있었고, 무엇보다—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지금 상황이, 조금 흥미로웠다.

        

       내가 주도하는 것이 아닌, ‘캐릭터 간의 관계가 스스로 바뀌는’ 것을 직접 보고 있는 것이니까.

        

       “그게, 무슨 사업이었는데요?”

        

       미아 크로우필드는 정말로 아무것도 모른 채 되물어오는 것일까?

        

       어린 시절에는 전혀 몰랐을지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버지가 죽고 나서 자기 어머니가 복수를 준비하고 미아 크로우필드를 끌어들인 뒤에는 조금씩이라도 눈치를 채 가고 있지 않았을까? 본인은 그저 억지로 눈을 돌리고……

        

       “일단, 설명을 마저 할게.”

        

       하지만 앨리스는 그런 미아 크로우필드에게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않고, 설명을 그대로 이어 나갔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아니면 다행스럽지 않게도, 미아 크로우필드는 ‘말하지 않겠다’라고 거의 대놓고 말하는 황녀에게 반박할 정도로 무모한 성격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추적하기 위해서는 이미 불타버린 가장 아래쪽의 가게를 살피는 건 의미가 없어. 이미 10년 전에 잿더미가 되어버린 곳이잖아. 그보다는, 아직 살아서 활동하고 있을 그 위쪽을 찾아야겠지.”

        

       앨리스는 숨을 작게 내쉬었다. 마치 한탄하는 것 같은 한숨이었다.

        

       “제일 위에서부터, 아편에 중독된 귀족을 찾고, 그중에서 방탕한 존재를 추리고, 아편굴을 뒤지고 하는 식으로 하나하나 찾으면, 생각보다 쉽게 알아낼 수 있어.”

        

       “……그곳으로 직접 가셨습니까?”

        

       내가 조금 힐난하듯 물어보자, 앨리스는 미간을 찡그렸다.

        

       “당연히 직접 가지는 않았지. 내 실력이랑은 별개로 나는 겉보기에 별로 위협적으로 보이는 인상은 아니거든. 그보다는 황제의 위광을 빌린 명령서를 쥐고 있는 기사를 보내는 쪽이 훨씬 무시무시하지.”

        

       “황제 폐하가 그걸 허락하셨다는 말씀이십니까?”

        

       “딱히 허락은 안 받았어. 명령서 양식을 슬쩍 했지. 아버지 서명이야 어떻게 생겼는지 이미 잘 알고 있었고. 이렇게 보여도 나는 딸이거든. 내 필체가 아버지 필체를 상당히 닮았다는 것도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잖아?”

        

       “…….”

        

       으엑, 하는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서 나는 온 힘을 다했다. 심지어 저 말을 하는 앨리스의 얼굴이 너무 뿌듯해 보여서 나는 한동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찾지도 못했다.

        

       “황제 폐하의 명령서를 위조했다는 말씀이십니까?”

        

       “위대하신 황제 폐하께서 그 사실을 모르고 있을 리 없으니, 나는 사실상 허락받은 거라고 봐.”

        

       아니, 아무리 그래도 황제가 정말로 ‘모든 것을’ 아는 건 아닌데.

        

       나는 이번에는 이마를 탁 치지 않기 위해서 팔에 힘을 꽉 주어야 했다.

        

       “아무튼, 그렇게…… 네가 있던 그 구역을 한바탕 휩쓸었거든? 그래서 몇 가지 확실하게 알아낸 게 있지.”

        

       앨리스는 씩 웃으며 말했다.

        

       “귀족이라는 작자들은 아무리 도망가고 싶어도 도망가지 못하는 때가 많다는 거 말이야. 자기 영지와 이름을 버리기에는 그게 자기 자신의 가치보다 훨씬 더 높으니까.”

        

       “…….”

        

       “그리고 누가 봐주는 것을 보고 ‘그게 당연하다’라고 생각하기도 한다는 것도.”

        

       미아 크로우필드의 턱이 빠졌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보았다. 저 정도면 정형외과나 치과 둘 중 한 곳이라도 가봐야 하는 거 아닐까?

        

       “음.”

        

       거기까지 말한 앨리스는 조금 아쉽다는 듯 다시 찻잔을 들었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차의 표면에 자기 얼굴을 비춰보았다.

        

       “……그런데, 진짜로 여기 뭔가 들어가 있을까?”

        

       앨리스는 조금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

        

       아니, 뭐, 조심해서 나쁘지는 않을 거다. 실제로 마약이 아주 미세하게 들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사실 백작 부인이 그 정도로 미친 사람은 아니고, 미아 크로우필드 혼자 식겁한 것일지도 모르지.

        

       그런데 지금 그게 중요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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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Comment

  1. Sitidara says:

    Benar-benar mengecewak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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