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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7

       “악의 조직 『레전드 오브 데빌즈』의 제 2차 원탁대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땅땅땅.

       

       정장 차림의 핑발레즈가 안경을 치켜올리며 대회의의 막을 열었다. 참여자는 다음과 같았다. 정보 캐내기를 까먹고 세션만 즐긴 나, 미친 마법사 (3페이즈까지 있음).

       

       그리고 자색 마탑주이자 정보 캐내기를 까먹고 세션만 즐긴, 유나 유렌스토 바이올렛아이리스.

       

       제국수호방위국 요원이자 정보 캐내기를 까먹고 세션만 즐긴, 유리 랜스터.

       

       마지막으로 올해의 우수사원 『에스포와르 드 이터널 다크』 되시겠다.

       

       “이 개새끼들아──!!”

       

       “말투.”

       

       “이 개새끼들아아악──!!”

       

       “아이씨, 말투 똑바로 하라고!!”

       

       내 온건한 충고에도 불구하고, 외신이는 어찌나 억울했는지 단비처럼 윈드밀을 돌았다. 

       

       아니, 사람 하나 멀쩡하게 만들고 갱생시킨 게 그렇게 서러운 일인가? 동료 마법소녀 목 자르고 절망에 안 빠트린 게 그렇게 아쉽고 원통한가?

       

       사랑과 우정의 따뜻한 힘에 대해서 알지 못하다니. 이래서 유열쟁이들은⋯⋯. 

       

       “결말을 유치하게 끝낸 것 때문에 화내는 게 아니야, 내가 하려는 걸 죄다 방해했잖아! 나는, 정보를 캐낸 양만큼 설정을 지워주겠다고 해서, 열심히 노력했는데⋯⋯!!”

       

       하도 서럽게 난리를 치니, 핑발레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이터널 다크가 뭘 했습니까?”

       

       “아, 루루 죽었을 때 흔들리는 로데루스의 마음에 백도어를 심으려고 하더라고. 열 개의 세뇌 코드를 읊으면 꼭두각시가 되는 주문이길래, 그래서 막았지.”

       

       “오, 오대수가 마지막에 자폭할 때 있잖아. 그때, 통각 배율을 열 배로 늘려서 고통을 증대, 그 순간의 기억을 포장해서 심어 놓고, 필요할 때 격발해서 무력화시키는⋯⋯ 일종의 정신 폭탄을 심으려고 해서⋯⋯ 지웠어.”

       

       “으아아아아아──!!”

       

       외신이는 한탄을 하면서 데굴데굴 굴렀다. 팔다리 다 짤라놓고 일을 시키면 그게 도리에 맞는 거냐는 식의 하소연이었다. 나는 그 가엾은 모습을 보고 측은지심이⋯⋯ 들지는 않았던 게.

       

       삐빅.

       

       <감정 분석표>

       

       배신의 짐승 : 92%

       억울함 : 7%

       행복 : 1%

       남성성 : 0%

       

       내게는 저 녀석의 머릿속에 든 마구니가 뻔히 보인다.

       

       상하관계를 인식하고 저렇게 재롱까지 부리고는 있지만, 저건 암컷타락패배복종이 아니라 ‘너 이 새끼 틈만 보이면 뒤를 찔러주마’ 상태다. 아직 길이 덜 들었다.

       

       그러니 정보를 빼내기 위해서 했다던 행동들도, 잘 생각해 보면 하나같이 흑심 가득한 것들이었다. 감정이 흔들린 불안정한 상태면 그때 정보를 빼 와야지, 왜 백도어를 심고 나중에 가져오려는 거냐?

       

       강도질한다는 놈이 문 다 열려있는 상황에, 현금 챙기는 대신 창문에 장치를 달아 둔 셈인 거다. 

       

       아마 기회를 봐서 여길 탈출해 몸을 갈아탄다든가, 아니면 로데루스가 근접했을 때 폭주시켜서 내 목숨을 노린다든가, 그런 귀여운 수작을 부리려고 했겠지.

       

       그러니까 미리 칼같이 주문차단을 걸어버리는 게 맞는 판단이었다.

       

       감정적이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마탑주도 냉정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던가. 진짜 억울하고 원통한 녀석이었으면 우리 착한 유나가 먼저 풀어주려고 했을 거다.

       

       “저런⋯⋯ 많이 힘드셨겠습니다, 이터널 다크. 상사가 노는 걸 좋아하면 여러모로 곤란하죠. 저도 이해합니다.”

       

       “으흐윽⋯⋯!!”

       

       “옳지, 이리 오세요. 제가 따뜻하게 품어드리겠습니다.”

       

       핑발레즈는 외신이를 꼭 껴안고 다독여주면서 은밀하게 내게 눈짓했다. 수신호와 함께.

       

       -제가 먹이를 주는 역할을 하겠습니다. 미친 마법사님은 채찍질을 좀 더 하시죠.

       

       -좋은 경찰 나쁜 경찰, 너무 뻔한 수작이라 안 먹힐 것 같은데.

       

       -이런 건 지르고 보는 겁니다.

       

       외신이도 우리도 서로를 속이려고 드는, 기만 넘치는 단란한 조직이었다. 그리고 시간은 우리의 편이다.

       

       아직은 탈출할 기회가 있다고 판단한 외신이가 열심히 노력해서, 날카로운 배신각을 잡아낼 즈음에는⋯⋯ 내 손을 거쳐 갔던 여러 인물처럼 녀석 또한 정의타락해 있을 터.

       

       나는 사악한 악당이 피폐와 절망에 빠지는 걸 무척이나 좋아한다.

       

       핑발레즈의 손이 슬그머니 외신이의 등허리를 쓸어내는 걸 관람하고 있자니, 마탑주가 내 소매를 당기면서 소곤소곤 말했다.

       

       “그래서, 진짜로 어떻게 할 거야⋯⋯?”

       

       “뭘요?”

       

       “레드번⋯⋯. 눈 딱 감고 다 지워버리고 올까? 사람을 문 개는, 두 번도 물어. 레드번도 그럴 거야.”

       

       “괜찮아요. 그렇게 무리해서 움직일 거 없으니까.”

       

       그래, 괜찮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시간은 내 편이다. 나를 소개하면서 3페이즈까지 있다고 한 게 농담이 아니다.

       

       로데루스와 싸우면서 얻은 아이디어와 시련의 탑에서 모은 실전 데이터를 바탕으로, 나는 언제든 소환할 수 있는 전위와 후위를 손에 넣⋯⋯기 직전이었다.

       

       수도기사단의 파워 아머같은 걸 구하기만 하면 말이다.

       

       그 뒤에는 어지간히 상성이 안 맞는 적이 아니라면, 대부분은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마력 패링쟁이도 재꼈는데 무엇이 두려우랴.

       

       동력원, 그러니까 마력량의 문제는 여전하지만, 마탑주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천천히 해결되는 문제였다. 요새도 정기적으로 하품을 마시니까.

       

       자신감을 뿜뿜 뿜어내는 내 모습을 바라보며, 마탑주는 걱정스럽다는 듯이 내 손등 위에 손을 얹었다.

       

       “있지, 우화의 무서운 점은, 상식 밖에 있다는 거야.”

       

       “상식 밖이요?”

       

       “응⋯⋯ 분명히 힘의 총량은 정해져 있어. 하지만 그걸 뛰어넘는 상성도 분명히 있어. 극단적인 비유지만, 20대 남자에 머리카락이 검은색인 사람에게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능력이라든가, 나올 수도 있는 거니까.”

       

       나만을 저격하기 위한 맞춤 제작 우화라도 있으면 요단강 건널지도 모르니 조심하라는 얘기였다. 

       

       사실, 그 부분도 대비가 되어 있었다. TRPG 하면서 놀고, 친구를 만들고, 아는 사람들을 늘려가는 것 자체가 내 방어막을 두텁게 만든다. 

       

       그도 그럴 게, 마법사만 찌르려고 만든 칼은 전사에게는 쉽게 꺾일 것 아니냐. 그런 상황에서는 핑발레즈가 날 지켜줄 거다.

       

       개인이 단체를 상대하기 곤란하다면, 흑마법사 놈들이 어디서 어떻게 튀어나와 습격해 올지 염려된다면, 이쪽도 사람을 모아서 단체를 꾸리면 된다. 

       

       플레이어들과 나는 느슨하게나마 연결되어 있지 않던가.

       

       모두와 친구가 될 수는 없더라도,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이야기를 엮으면 직장 동료 정도는 될 수 있을 테지.

       

       “안 그래도 제가 생각해 둔 게──”

       

       삐비빅.

       

       마법-팩스에 불이 들어왔다. 정식 명칭은 마도 복제 어쩌구 저쩌구인데, 하는 일은 팩스랑 똑같다. 

       

       위조라도 됐다가는 사달이 나는 황실 명령서라든가는 사람이 들고 나르지만, 보안이 중요하지 않거나 격식 없는 정보 교환에는 이걸 쓴다.

       

       나는 하던 말을 멈추고 인쇄된 글을 확인했다. 

       

       요약하면, 크라운홀에 좀 파랗게 생기고 치렁치렁하게 입은 소녀가 범죄자를 때려잡고 다닌다는데, 혹시 설마하니 이거 미친 마법사 네 짓이냐고 묻는 내용이었다.

       

       “⋯⋯핑발레즈야 너 이거 보고 안 했지?”

       

       “예, 아직 안 했는데요.”

       

       “그럼 2황자 지금,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싶으면 대충 나부터 찍고 보는 거냐?”

       

       “솔직히 그럴 만하지 않습니까?”

       

       양심상 부정은 못 했다. 

       

       엔딩 이후에 로데루스가 어떤 행보를 보일지는 미지수였기에 내심 조마조마하고 있었는데, 다행히도 좋은 쪽으로 가 준 모양이다. 

       

       그런데 소녀의 모습이라⋯⋯?

       

       나는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길한 가능성에 표정을 굳히며, 참담한 심정으로 운을 뗐다. 마탑주도 동조해서 오들오들 떨었다.

       

       “저희 로데루스한테 뭐 준 거 없잖아요. 홀로그램 영사기라든가.”

       

       “어, 없지. 줄 방법도 없었고. 꿈으로 연결한 거니까⋯⋯.”

       

       “이거 혹시, 로데루스놈⋯⋯ 꿈 속 세계의 추억을 못 잊고 그만.”

       

       “⋯⋯여장을?!”

       

       내가 또 한 명의 인생을 망쳤구나!

       

       마법사 멱을 따고 다니는 것보다는 건전한 취미이겠으나, 부디 누군가에게 들키지만 않기를 바랄 뿐이다. 특히 루루에게. 행운을 빈다 로데루스여.

       

       사라진 누군가의 남성성에 애도를 표하는 사이, 벼락같은 아이디어가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자암깐만.”

       

       루루는 상당히 정의타락이 완료된 것으로 관측되었고, 오대수를 좋아한다.

       

       마지막 씬에서 루루는 오대수의 트루-폼을 관측했다.

       

       로데루스는 레드번이 밉다.

       

       그렇다면 두 사람을 짝지어줬을 때, 수도기사단장 김루루가 레드번을 흠씬 두들겨 팰 가능성은?

       

       “이거다.”

       

       정보 캐내기가 대수냐? 지금 승화급 인력을 유도해서 꼴아박을 각이 나왔는데!

       

       원래 첩보전은 힘이 약한 놈들이나 하는 거다. 승화폭탄 떨궈서 잿더미도 안 남으면 첩보를 할 필요가 없다. 물론, 고작 한 발 가지고 무너질 사이즈는 아닐 것 같긴 한데⋯⋯.

       

       적어도 나한테 개수작을 부릴 생각은 못 하겠지. 저쪽 웨이브부터 막아내야 할 테니까.

       

       대강의 개요를 설명하자, 대수X루루 커플링 열성 지지자 유나가 눈을 반짝거리면서 120%의 의욕을 냈다.

       

       “두, 둘이 엮으면 된다는 거지?! 나한테 맡겨 줘⋯⋯! 둘이 예쁘게 만나게 해 볼게!”

       

       제국수호방위국의 요원 유리 랜스터가 안경을 치켜올리며 안경알을 반짝였다. 

       

       “음. 제게도 아이디어가 하나 있습니다. 자세한 견적은 접촉해 본 이후에 알 수 있겠지만, 방위국과도 연계해서 진행할 수 있을 것 같군요.”

       

       마탑주와 핑발레즈는 서로 이러저러 이야기를 나누며 작전의 세부사항을 착착착 쌓아 올렸다. 순애의 힘으로 레드번을 옥죈다.

       

       이리드(2황자 / 제국수호방위국) – 김루루(수도기사단) – 로데루스(내부고발자).

       

       셋이 하나를 상대하리라!

       

       나는 인쇄된 글을 외신이 앞에서 팔랑거리며 일갈했다. 정보 캐내는 거 까먹었다고 꼽을 준 사람이 대체 누구냐! 보아라, 이렇게 아름다운 큰그림이었거늘!

       

       “외신아 이거 보라고, 됐잖아!!”

       

       “소 뒷걸음질로 쥐 잡아놓고는 자~랑~이다!!”

       

       “너는 오늘 어미에 열 글자 넘어가는 효과음 붙을 줄 알아라.”

       

       “으아아악뀽뀽!!”

       

       무자비한 정보 찜질로 외신이의 기강을 잡고 있으려니, 마탑주와 핑발레즈는 어느새 크라운홀로의 출장 준비를 마쳤다.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무슨 일 있으면 부르고⋯⋯!”

       

       두 사람은 마차를 잡아타고 아카데미를 잠시 떠났다. 순애와 대업의 성취를 위하여.

       

       ===============================================================

       

       간만에 혼자 남았다.

       

       핑발레즈도 마탑주도 없으니 뭐랄까, 내 집무실이 이렇게 조용했나 싶기도 하고 그렇다. 오늘 밤에 혼자 침대에서 잠이 들 걸 생각하니까 벌써 좀 외로웠다.

       

       아니,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혼자 남았을 때만 할 수 있는 일도 있는 법 아닌가. 핑발레즈랑 마탑주와는 평소에 너무 붙어 다니니까.

       

       이제야 혼자만의 자유 시간이 생겼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럼, 그러니까⋯⋯.

       

       남들 시선이 없어야만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은밀하고 개인적인⋯⋯ 것.

       

       나는 외신이를 빤히 바라보았다.

       

       “⋯⋯⋯⋯.”

       

       “왜, 왜 날 그렇게 봐?!”

       

       “너는 나랑 어울려줘야겠다, 외신아.”

       

       너는 이제 변신로봇이 될 것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좋은 아침입니다 마이 프렌즈. 내일 또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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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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