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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7

    아카데미의 시간은 금세 지나가서 종례시간이 되었다.

    알림장을 쓰고, 안내장을 받고, 담임교사에게 오늘 하루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조심히 돌아가라는 당부를 받는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자, 다들 시험공부 열심히 하렴.”

    “네에-.”

    아이들의 말에는 힘이 없었다.

    어쩐지, 요즘들어 아이들의 분위기가 그리 행복하지만은 않던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단지 파이가 없어서 조용한 줄 알았는데.

    “루크, 시험공부 했어?”

    메리가 어느새 루크의 옆으로 다가와서 물었다.

    “아니. 따로 시험을 위해 공부하진 않는데.”

    “하긴, 할 필요가 없기는 하겠다.”

    루크는 원래 공부 많이 하니까.

    “흠.”

    시험기간이라는 단어를 잘 이해할 수 없던 루크는 턱을 쓸었다.

    루크에게 공부란건 평소에도 언제나 심심할 때마다하고 있던것이니 딱히 기간을 정해두고 한 적이 없었던 데다가, 과거 아카데미에선 ‘시험’이라는 제도가 이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았으니까.

    하루하루 모든 지식과 발상을 멘토와 함께 토론하고 지식을 공유하는 과거의 아카데미에선 말 그대로 매일이 시험과 같았다.

    그리고 아카데미의 수준이야, 이제는 잘 알지 않은가.

    시험지의 문제가 스스로의 마법적 지식향상에 더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 것도.

    자신이라면 그냥 준비없이 시험을 쳐도 당연하게 만점이 나오겠지.

    그것은 자만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마법경시대회로 분명히 알게된 진실.

    그래서 루크는 이 시대의 시험을 싫어했다.

    시험을 기대했던 루크는 번번히 실망했다. 그러니 이제는 좋아하지 않을 수밖에.

    뭐, 시험을 싫어하는건 보편적인 인식이니 딱히 이상할 것도 없지만.

    “시험은 대체 왜 있는걸까.”

    “그러게 말이야.”

    시루드가 한탄처럼 내뱉은 말에 메리도 맞장구쳤다.

    “너희들은 많이 힘든가보구나, 공부가.”

    루크의 말에 메리는 힘 없이 웃었다.

    “시험공부는 그나마 참을 만 하지만, 동아리 활동이 없는건 싫어.”

    “그렇군, 시루드. 너는?”

    “난 그냥 공부가 싫어.”

    시루드는 원래 시험점수가 높은 편이 아니었다.

    그래도 요즘 루크의 조언과 서클마법을 제대로 쓰고싶다는 생각으로 마법과목은 꽤 괄목할 성장을 보이긴 했지만, 언어라던가 사회같은 부분은 여전히 점수가 꽤 낮은 편이다.

    “대충 마법만 잘 하면 되는거 아닌가.”

    시루드는 퉁명스럽게 중얼거렸다.

    아이의 관점에서 시험은 충분히 어려운 모양이다.

    10살때 이미 천재소리를 듣던 루크는 잘 공감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이해는 갔다.

    아이들은 보통 공부보단 노는 걸 선호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그래도 마법만 괜찮게 다루면 이 세상 살아가는데 아무런 불편함은 없지 않을까, 하는 지극히 마법사적인 사고로 루크는 대답했다.

    “뭐, 마법만 잘 해도 충분하긴 하겠지.”

    그러자 메리는 손가락을 흔들며 훈계하듯이 말했다.

    “시루드, 그러다가는 방학때 보충수업 받게 될걸? 열심히 하라구. 루크, 너도 시루드라고 해서 무작정 감싸주기만 하면 안돼.”

    루크가 묻는다.

    “보충수업? 그게 뭐지?”

    루크는 생각했다.

    보충이라, 특정 기준치를 넘지 못했을때 주어지는 패널티인가.

    그러고보면 과거 왕궁기사단에 비슷한 제도가 있었다.

    훈련에서 뒤떨어진 인원을 데려다 보충반에 집어넣고 훈련을 다시 시키곤 했었지.

    보충은 보통 체벌을 겸하는 성격을 갖기에 더욱 혹독한 훈련을 했고, 거기서 탈락한 인원들은 그대로 은퇴를 생각해야했다.

    그런 보충제도가 이 아카데미에도 있다는 말인가.

    “점수가 낮은 과목이 있으면 방학때 수업을 들으러 학교에 와야 해. 그걸 보충수업이라고 불러.”

    “그렇군.”

    ……역시나 아카데미답게 보충이라고 큰일은 아닌 모양이다.

    방학때 학교에 나온다, 겨우 그정도였나.

    하긴, 이 평온한 시대라면 아이한테 특별히 심한짓은 못 할테니까.

    “그래도 시험이 끝나면 곧 체험학습 하잖아.”

    “그거 끝나면 또 시험이고.”

    메리의 말에 시루드는 한숨을 쉬었다.

    아카데미에선 왜 이렇게 시키는게 많을까.

    “체험학습? 그건 또 무엇인가.”

    “체험학습을 모른다고?”

    “……모른다만.”

    루크는 턱선을 긁으며 시루드의 시선을 피했다.

    너무나 당연한 것을 모른다고 한 것 같아서.

    설마, 체험학습을 모른다니!

    루크는 공부는 잘 하지만 의외로 이런 부분에선 아는게 별로 없다.

    “맞다. 루크는 10살이었지! 따로 유아학원을 다닌게 아니면 모를 수도 있겠다.”

    “어, 그러네.”

    가끔 루크의 나이를 자꾸만 까먹는단 말이지, 10살보다 훨씬 어른스러워서 나이가 들어보이는 탓에 자주 잊어버리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대체 그것이 뭐길래 그러는것이지? 대체 뭘 체험하면서 학습을 하는게냐? 단체로 마나스폿이라도 가서 마나라도 느끼는 것인가?”

    “아하하! 그럴수도 있겠네! 그치만, 보통은 그냥 소풍이야! 이번에 듣기로는 좀 멀리 간다던데?”

    “멀리?”

    “해외로 간다나봐, 잘하면 비행기나 워프트레인을 탈 수 있을지도!”

    “오, 비행기, 워프트레인! 그것 참 기대가 되는구나.”

    메리는 성심성의껏 루크의 질문에 답해주었다.

    설명을 할수록 눈을 빛내는 루크의 모습은 여느때와 다름 없어보였다.

    오늘까지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아서 걱정이 되었는데.

    정말 다행인 일이다.

    “어때? 기대되지 않아?”

    “그래, 기대되는구나.”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날이라면야, 루크도 좋아한다.

    아이들의 미소띈 모습이라, 그 광경은 또 얼마나 귀여운가.

    게다가, 비행기와 워프트레인이라니. 예전에 병원에 놓여진 잡지에서 읽은 그 단어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언젠가 직접 볼 수 있는 날이 온다면 좋겠다고 생각은 했는데.

    루크는 그 광경을 상상하면서 입가에 미소를 드리웠다.

    메리 역시 그런 루크를 바라보면서 많이 기대가 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루드는 당장 눈앞에 닥친 문제가 더 신경이 쓰였다.

    “하여튼, 시험은 싫다고-.”

    ——-

    늦은 밤, 제라드가 찾은 곳은 시끄러운 분위기의 술집이었다.

    요즘 꽤 일에 치여서 잊고 있었는데 평소 친하게 지내던 대학동기의 생일이라는 소식에 시간을 낸 것이다.

    제라드가 도착했을 때, 남자는 이미 기분좋게 취했는지 상당히 얼굴이 붉은 상태다.

    좀 기다렸다가 같이 좀 마시면 어때서, 여전히도 성질이 급한 녀석이다.

    뭐, 저 녀석이라면 취하는걸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 어떤 독한 술에도 드워프는 쉽게 취하질 않으니 말이다.

    그 익숙한 모습에 제라드는 피식 웃으면서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러자 그는 제라드를 돌아보고는 굉장히 반갑다는 표정으로 미소지으며 제 옆자리를 가리켰다.

    “여! 왔네! 얼른 앉아 앉아.”

    “어, 오랜만이네. 작년엔 못 와서 미안했다, 길버트.”

    “뭘 미안할 것 까지야. 근데, 그건 뭐냐?”

    길버트는 제라드에게 반갑다는 듯이 인사를 건네다가 제라드가 테이블 위에 올려두는 검은 쇼핑백이 신경쓰였는지 바로 내용물을 확인해본다.

    그는 생소한 글자나열을 읽는 듯이 눈을 가늘게 뜨면서 한글자씩 음을 이어나갔다.

    “오, 이게 뭐야, ‘릴리스 드 아이투멘’? 이렇게 읽는거 맞나? 야, 이게 대체 얼마짜리 와인이야?”

    “뭐, 얼마 안하니까 부담갖지 말고 받아.”

    “흐흐, 내가 부담스러워 할 것 같아? 아무튼 고맙다. 잘 마실게.”

    길버트는 호탕하게 웃으며 쇼핑백을 제 의자 밑으로 내렸다.

    “근데, 너 요즘 바쁘다며? 거, 인공세계수 연구소는 여전한가봐?”

    “더하지, 아. 일단 나도 한잔 시켜야지.”

    “그래. 오랜만에 마시면서 이야기 하자고!”

    ——-

    술자리가 으레 그렇듯이, 대화의 주제는 일정한 것이 없었다.

    요즘 어떻게 지냈냐, 요즘 어디차가 좋다더라, 누가 집을 샀다더라, 하는 등의 주제가 마구 뒤섞여서 뱉어질뿐인 대화.

    사람은 지성을 갖고 살아야 하지만 가끔은 이런식의 지성이 필요없는 대화도 필요한 법이다.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과 묵혀둔 이야기들을 모두 털어내고나면, 분위기는 조금 차분해진다.

    “그래, 요즘 일은 어때? 아직도 그리 바쁘더냐?”

    “하아, 말도 마라. 세피로 02도 이제 수명이 다했나봐, 요즘들어 마력 공급이 불안정해.”

    “흠, 나 세계수관련주 샀는데. 빼야되나?”

    “큭큭……. 뭐, 그럴 것 까진 없고……. 아니다, 그냥 다 빼라. 주식 때려쳐.”

    “말이 심하네, 이번엔 반드시 수익 난다니까.”

    “벌써 1000만길 잃었다며, 멍청아-.”

    “시끄러워-! 그정도는 술 좀 덜 마시면 돼!”

    “그게 가능하냐?”

    방금 그 말을 하고 나서도 술잔을 가득 채우고 그대로 목구멍에 때려붓는 녀석이 말은 참 잘한다.

    그에 길버트도 무안했는지 수염에 조금 묻은 술방울들을 혓바닥으로 핥으며 답지않게 조그만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불가능하긴 해.”

    술기운 탓일까, 별것도 아닌 말로 한바탕 웃어제낀 제라드는 겨우 웃음을 진정시키곤 물었다.

    “너, 요즘도 동화 쓰냐?”

    “가끔은. 왜?”

    “그냥, 궁금해서.”

    매직아카데미출신 알코올 중독 드워프가 동화작가라니, 이녀석처럼 기묘한 삶을 사는 사람도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녀석의 글을 쓰는 솜씨는 그럭저럭 괜찮기도 해서 적당히 밥 벌어먹는 정도는 되는 모양이었다.

    그는 드워프답게 여행을 좋아하는 활동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 탓에 여러가지 여행의 경험이 많았으며, 그의 허풍스러운 언행도 소설에 꽤 긍정적인 영향을 주어서 같은 일을 겪어도 더 재밌게 말을 지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것보다…….

    “마도기술학부나와서 동화쓰는 거. 솔직히 웃기잖아.”

    “아니, 이 친구가 지금 날 맥이는구만.”

    길버트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썹 한쪽을 들어올렸다.

    “뭐……. 동화는 이제 그만쓰고 길-게 장편소설한번 써보려고. 안정적인 수입. 얼마나 달콤한 말이냐.”

    “그런놈이 주식은 왜 해?”

    “그거때문에 안정적인 수입이 필요해진거야. 이제 불안정한 수익은 무섭다.”

    “푸흡!”

    웃기긴 했지만 멍청한 소리는 아니었다. 

    그가 보기에도 길버트는 안정적인 수익이 필요해 보였으니까.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덕담이나 한마디 해준 그는 다시 천천히 술잔을 들다가 문득 한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아, 그러고보니……. 너, 에레가 어디 나오는 말인지 아냐?”

    “에레?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 아는 꼬마애가 어디서 들었는지 에레라는 이름에 대해서 궁금해하더라고. 동화관련 이름인것 같은데 물어볼 만한 사람이 너밖에 없어서.”

    루크가 나중에 알아봐달라고 말했던 ‘에레’는 그도 시간이 날 때 몇번 검색을 해본적이 있었지만 별다른 소득은 얻지 못했다.

    혹시 이름 말고 더 아는건 없냐고 물었더니 정령이랑 관련이 있다는 말만 했을 뿐이고.

    결국 어떻게 찾을지 감이 안 왔었는데.

    길버트라면 혹시 알지 않을까?

    “혹시 들어본 적 있냐? 정령이랑 관련있대.”

    “어…….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이름이기는 한데.”

    “그래? 어디서 들어봤는데?”

    길버트는 듣자마자 뭔가 알것 같다는 듯이 말했다. 

    ‘진작 얘한테 물어볼 걸 그랬네.’

    제라드는 길버트의 대답을 기다리며 조용히 술잔을 기울였다.

    길버트는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눈썹을 찌푸렸다.

    그가 깊은 생각을 할 때의 버릇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생각이 나지 않는지 길버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음……. 모르겠다. 지금은 생각이 안나. 분명 어디서 들은 것 같긴 한데.”

    “그럼 뭐, 나중에 생각나면 연락 줘.”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술잔을 앞에 두고 ‘에레’가 뭔지는 당장 별로 중요한 건 아니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에레가 뭔지 드디어 밝혀질지….?

    루크의 생생한 상상력을 그림으로 표현할 길이 없는 작가는 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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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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