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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7

       황궁은 넓고 복잡했다.

         

       황금 반짝 대리석 반짝이라 휘황찬란하고 호화찬란한 건 잘 알겠다.

         

       하지만 비슷한 복도와 비슷한 모습의 사용인들이 오가니 여기가 아까 왔던 데인지 아니면 처음 오는 곳인지 분간이 안 됐다. 오직 시녀장의 뒤꽁무니만 졸졸 따라갈 뿐이었다.

         

       파스텔은 호랑이 입안에 들어온 기분으로 분홍 눈동자가 빙글빙글 돌았다.

         

       으에.

         

       으에에.

         

       악마님 어디 계세요.

         

       이럴 때 곁에 있어 주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악마님은 일단 사용인 신분이라 바로 입구 컷 당했다. 당연히 같이 황궁에 들어가려다가 시녀장의 제지로 멈추게 된 악마님의 당혹 어린 표정은 아직도 생생하다.

         

       ―무슨?

         

       허억.

         

       ―악마님 절 지켜주시지 못하는 거예요?!

         

       그런!

         

       그러언!

         

       ―기다려 봐라. 시녀장, 아직 은퇴하지 않았군. 10년은 더 된 일이라 얼굴을 기억하기 어려울 수 있겠지만 곰곰이 떠올려 봐라. 내가 누구지?

         

       악마님은 나 알지?를 시전했다.

         

       그 당당함에 파스텔은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나도 이런 권력자가 될래!

         

       ―데모니우스님, 물론 기억하고 있습니다. 비록 제가 고령의 나이가 되었다 한들 영광스러운 직위를 유지하는 자로서 귀인을 기억하는 지혜만큼은 쇠퇴하지 않았지요.

         

       효과 만점!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신분을 구분하고 지위를 구별하는 것 또한 제 본분입니다. 오늘은 날이 아니니 다음에 오시지요.

         

       효과 빵점…….

         

       ―아니.

         

       악마님은 힘없이 쫓겨났다.

         

       순진무구 파스텔은 홀로 남게 됐다.

         

       우아앙!

         

       악마님 지켜주신다면서요!

         

       거짓말쟁이! 거짓말쟁이!

         

       약속도 못 지키는 바보!

         

       파스텔은 바들바들 떨었다.

         

       분홍분홍 소녀가 시녀장 안내를 받고 있는데 시선도 주지 않고 무표정하게 지나치는 시녀들이 다소 무서웠다. 감정이 없는 게 아니고 엄숙한 규율이 개인의 감정을 초월하는 듯했다.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다니.

         

       인기인으로서 이런 무관심, 처음이야.

         

       환경과 분위기가 너무 역상성이다.

         

       소, 솔직히 질투와 비난은 이해해도 무관심은 너무 이상하다고 생각해.

         

       공포스럽다고 할까 으스스하다고 할까. 현실에선 분명 이럴 리가 없는데 아무 눈길도 안 오면 혹시 지금 악몽 꾸는 건 아닌가 의심부터 들게 된다.

         

       파스텔은 분홍 혓바닥을 빼꼼 내밀었다. 그리고 앞니로 콕 깨물었다. 분홍 눈동자에 물기가 차올랐다.

         

       아파아!

         

       힘 조절 실패……!

         

       꿈이 아니었다.

         

       잇자국 남은 혓바닥을 바들 떨며 눈가를 훔쳤다.

         

       현실이었어. 지금 무관심하게 지나치는 시녀분들이 유령이 아니었다니.

         

       도대체 어떻게 파스텔에게 시선을 주고 싶은 마음을 참는 거지?

         

       완전 프로페셔널.

         

       존경심이 들 정도.

         

       근데근데.

         

       존경심과는 별개로 관심을 주세요오!

         

       기계적 분위기 너무 무서워어!

         

       “크래프트 후작님, 이곳이 만찬장-”

       “흐아아! 네! 저 후작이에요!”

         

       파스텔은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걸음을 멈추고 손짓과 함께 설명하던 노년의 시녀장이 멈추더니 인자하게 미소 지었다.

         

       그러더니 어린 후작 각하의 흑역사를 못 봤다는 듯이 태연히 설명을 재개했다.

         

       “이곳이 만찬장입니다.”

         

       흐앗.

         

       파스텔은 살짝 붉어진 볼로 정신을 차렸다.

         

       설명을 들으며 전면을 보자 너무나 큰 대문 너머로 긴 식탁 테이블이 존재했다. 황금 촛대가 늘어서고 촛불이 일렁였다.

         

       좌우로 도열된 의자를 따라 시선을 옮기면 황제가 앉을 상석이 있었다. 자리의 주인은 없었지만 서로를 마주 보게 배치된 자리들과 달리 홀로 대문을 정면으로 보는 배치는 지위 고하를 알려주는 듯했다.

         

       중후한 분위기에 파스텔은 숨이 턱 막혔다.

         

       으에.

         

       으에에.

         

       멜리사 말 들을걸!

         

       거절하지 말고 그냥 멜리사와 같이 올걸!

         

       이 분위기에서 황제 폐하와 일대일 만찬을 하면 분명 체하고 말 거야……!

         

       당사자는 하나도 못 들은 설명을 마친 시녀장이 자리로 안내해 줬다. 상석 바로 오른쪽 의자였다.

         

       파스텔은 어째 자신의 몸보다 너무 큰 의자에 다소곳이 앉았다. 분홍 눈동자가 정처 없이 떠돌았다. 작은 손이 하얀 치맛자락을 꼼지락댔다.

         

       “일정이 끝나는 대로 착석할 테니 먼저 식사하라 명하셨습니다.”

       “네? 네?”

         

       시녀장이 고개 숙여 인사하더니 떠났다.

         

       “네?!”

         

       저기요?!

         

       파스텔은 만찬장에 덩그러니 남았다. 촛불이 바람 없이 타들어 갔다.

         

       소녀는 서서히 울상이 됐다.

         

       “저기요……?”

         

       집주인 없는 만찬에서 혼자 식사하기.

         

       이런 거 경험하고 싶지 않았는데요오!

         

       쪼그라든 파스텔 상태로 기다리자 시녀가 줄지어 들어왔다. 각자 손엔 요리가 들려 있었다.

         

       요리가 하나씩 우아하게 만찬 테이블에 놓였다. 테이블의 끝에서 끝까지 다채로운 요리로 가득 채워지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만찬 세팅을 마친 시녀들은 양쪽 벽에 도열했다. 복부에 다소곳이 손을 모으고 착석자가 부담스럽지 않게 시선은 지면으로 다소 낮춘 게 기계적인 규율 그 자체였다.

         

       파스텔은 혼자 있던 것과 다른 의미로 울상이 됐다.

         

       저한테 왜 이러세요…….

         

       분홍 눈동자가 떨리다가 코앞의 칠면조 통구이를 바라봤다. 갈색 표면을 타고 촉촉한 기름이 흘러내렸다. 먹기 좋게 칼집 낸 살결에서 모락모락 김이 올라왔다.

         

       파스텔은 침을 꼴깍 삼켰다. 살짝 방정맞게 주변을 휙휙 둘러봤다. 시선이 마주치는 시녀를 찾다가 정말 아무도 안 마주치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먹어요……?”

         

       개미만큼 작은 목소리였다.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파스텔은 칠면조 통구이를 뚫어지게 보며 격렬히 고심했다.

         

       시간이 흐르고 통구이의 모락모락 김이 묘락묘락 김~ 정도로 줄어들었다.

         

       파스텔은 떨리는 손으로 포크를 들었다.

         

       “저, 먹어요?”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도열한 시녀진은 고요했다.

         

       포크가 떨리며 칠면조 통구이를 향해 움직였다.

         

       그러다 소극적으로 경로를 변경해 그 옆의 샐러드로 향했다. 방울토마토가 콕 찔렸다.

         

       파스텔은 방울토마토 포크를 모두가 볼 수 있게 당당히 들어 올렸다.

         

       방울토마토가 휘황찬란하게 빛났다.

         

       “저, 진짜진짜 먹어요.”

         

       대답은 없었다.

         

       파스텔은 숨을 들이켜고 방울토마토를 입에 넣었다.

         

       냠.

         

       우물우물.

         

       토마토가 탄력 있게 씹혔다. 신선한 상큼함이 입안에 퍼졌다.

         

       허억.

         

       분홍 눈동자가 동그래졌다.

         

       이건, 이건.

         

       내 인생 최고의 방울토마토!

         

       텃밭에서 바로 캐낸 듯한 최고급 향미와 신선도를 갖춘 완벽한 식품이야……!

         

       감동하며 포크를 서둘러 움직였다. 다음 방울토마토를 콕 찌른 다음 입에 넣었다.

         

       이것도 인생 최고의 방울토마토!

         

       응응!

         

       황궁에 오길 잘했어!

         

       방울토마토만으로도 이렇게 맛있는데 다른 건 얼마나 맛있을까?!

         

       여태 악마님의 요리가 세계 최고라고 엄지를 척 세웠지만 자본과 권력이 만드는 신선한 식재료의 격차는 요리 실력만으로 메꿀 수 없는 거였어!

         

       악마님, 미안해요!

         

       앞으로 제 인생 최고의 요리사는 황실 셰프님이에요!

         

       이 정도 맛이면 금화 1개 선언해서 황제 폐하의 심기를 거스른 직후 초대받은 공포스러운 상황이나, 집주인 없이 만찬장에서 홀로 식사하게 된 모욕적인 상황도 감수할 수 있어!

         

       화해인 척 만찬에 불러서 독살하는 것도 아니고 생애 최고의 식사를 대접해 주시다니!

         

       황제 폐하 만세!

         

       만만세!

         

       파스텔은 입가심 삼아 방울토마토를 계속 먹다가 문득 몸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거부반응을 느꼈다. 가슴이 들썩이고 입에서 울컥 핏물이 나왔다.

         

       “아?”

         

       입술을 타고 피가 줄줄 흘렀다.

         

       분홍 눈동자가 떨렸다.

         

       독살.

         

       독살……!

         

       잔기침이 나왔다. 붉은 핏방울이 하얀 테이블보를 적셨다. 접시의 금무늬를 타고 핏물이 흘렀다.

         

       양손이 벌벌 떨렸다.

         

       으아아!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객관적으로 죽을죄는 아니었잖아요!

         

       가슴이 울컥였다. 핏물이 한차례 흘렀다. 몸에 힘이 빠지고 포크가 지면에 떨어졌다. 만찬장에 포크 소리가 울렸다.

         

       파스텔은 의자 팔걸이를 힘겹게 붙잡고 일어섰다.

         

       도망!

         

       도망……!

         

       그러다 힘이 빠져 엎어졌다. 파스텔과 부딪힌 의자가 쓰러지고 소음이 울렸다. 피 묻은 하얀 치맛자락이 대리석을 덮었다.

         

       고개 숙인 시녀 중 몇몇이 힐끔 시선을 줬다. 단번에 눈동자가 커졌다. 혼란이 빠르게 퍼졌다.

         

       “후작 각하?!”

         

       소란스러운 걸음이 쓰러져 몸을 떠는 파스텔에게 향했다. 부축하는 손길이 서둘러 움직였다.

         

       “후작 각하! 괜찮으십니까?!”

         

       간신히 상체만 일으켜 기댄 파스텔은 바들바들 떨었다. 창백해진 입술로 힘겹게 유언을 말했다.

         

       “화, 황제 폐하의 독살.”

         

       당사자 증언에 비명이 울렸다. 직업이 시녀긴 해도 신분은 엄연히 사교계 영애인 시녀진의 비명이었다.

         

       파스텔은 흐려지는 정신 속에서 눈물이 펑펑 나왔다.

         

       너무해, 너무해.

         

       내가 그렇게 잘못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된 거 폭군도 안 할 독살이라는 걸 만천하에 알리고 죽겠어!

         

       이 시녀분 중에서 진실을 사교계에 퍼트릴 귀족파가 정말 없을지 저승에서 두고 보자구요……!

         

       “각하! 후작 각하!”

         

       흔들리는 소녀의 품속에서 무언가 굴러떨어졌다.

         

       원통형의 후추통이었다.

         

       마석 가루가 찰랑였다.

         

       에.

         

       파스텔은 멈칫했다.

         

       분홍 눈동자가 점점 동그래졌다.

         

       “그 선황도 안 했던 귀족 독살을 하다니!”

         

       사명감 투철한 시녀가 격분했다.

         

       그러더니 목숨 걸고 이 소식을 알리겠다는 양 달리기 불편한 구두를 벗어 던지고 뛰쳐나갔다.

         

       잠깐! 잠깐만요……!

         

       귀족파 시녀의 뒷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으아아!

         

       몸 상태 안 좋은 상황에 충격까지 받은 파스텔은 서서히 정신이 흐려졌다.

         

       부축한 시녀의 옷자락을 힘겹게 붙잡았다.

         

       “말하세요! 모두에게 전할게요!”

         

       시녀가 눈물 흘렸다.

         

       창백한 입술이 간신히 열렸다.

         

       “마석, 후추후추…….”

         

       고개가 떨어졌다.

         

       깨꼬닥.

         

       비명이 울렸다.

         

       크래프트 후작, 황제가 초대한 만찬에서 독살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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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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