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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7

       베니의 눈에서 빛이 사라졌다.

       

       초점 없이 새까맣게 죽은 눈. 흔히들 레이프 눈이라고 부르는 건데…이거 실제로 가능한 거였구나.

       

       특히 눈동자의 하트 문양이 검게 물든 것이 타락을 암시하는 것 같아 오싹오싹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너무 놀리기만 하다가는 베니도 이브처럼 가출하면 곤란하니 슬슬 달래줘야지.

       

       “에잇.”

       

       검지와 엄지로 베니의 코를 집게처럼 잡아 막았다.

       

       “그에.”

       

       호흡을 위해 반사적으로 입을 벌리는 베니. 그녀의 뾰족뾰족한 이빨 사이로 손을 밀어 넣었다.

       

       “으그긋?”

       

       아무리 베니가 멘붕 상태라지만 이쯤 되면 반응할 수밖에 없는지 눈에 초점이 돌아온다. 여전히 안광이 검게 물들긴 했지만.

       

       혹시라도 뾰족뾰족한 자신의 이빨에 내 손이 상처 입을까 최대한 턱을 크게 벌리는 베니.

       

       흑화한 건지 아닌지 모를 모습에 키득이며 일부러 이빨에 손을 가져다 댔다.

       

       꾸욱.

       

       베니의 이빨이 뾰족하다고는 했지만 일반적인 송곳니 같은 뾰족함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굳이 말하자면 무딘 날붙이에 가까운 뾰족함이었으니까.

       

       애초에 이 이빨은 몬스터의 것에서 유래된 형상. 당연히 무기처럼 쓰였으니 무기처럼 위험하겠지.

       

       가볍게 힘을 주어 누른 것만으로도 그대로 내 피부를 파고드는 이빨.

       

       “우으?!”

       

       당황한 베니가 팔을 파닥이며 허둥대며 뒤로 빠져나가려 했다. 하여, 남은 손으로 그녀의 턱과 볼 일부를 우악스레 움켜쥐어 멈춰 세웠다.

       

       그리고는 한층 강하게 손에 힘을 주었다. 베니의 이빨이 내 피부에 진한 자국을 남기는 걸 넘어, 아예 작은 구멍을 뚫고 피를 내도록.

       

       푸욱.

       

       “윽!”

       

       손가락 쪽에서 느껴지는 작은 고통. 슬쩍 내려보자 베니의 치열대로 난 작은 상처가 보였다. 그 위에서 흐르는 피도.

       

       지금쯤 입안에 퍼진 비릿한 맛으로 출혈을 알아차렸을 베니가 딱딱하게 굳었다.

       

       그제야 입에서 손을 빼고 베니의 앞에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가락을 들이밀며 말했다.

       

       “짜잔. 이빨 자국 반지에요.”

       

       “너 진짜 미쳤어?!”

       

       “미쳤다뇨! 전 완전 제정신이거든요?!”

       

       심지어 이번에 5성 권능인 사랑의 화신을 얻으며 정신 내성이 강해져서 미치는 것 자체가 힘들어졌다.

       

       “베니가 자기만 반지가 없다면서 삐치니까 해드린 거잖아요! 다음은 베니 차례니까 손이나 주세요.”

       

       “아, 아니. 피 나잖아! 피부터 어떻게 해!”

       

       “일부러 낸 건데요? 제가 이런저런 권능으로 보호받고 있어서 항상 피부가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거든요. 그냥 깨물기만 해서는 자국이 안 남으니 상처 정도는 새겨줘하거든요. 그나마도 금방 낫겠지만요.”

       

       어깨를 으쓱이고는 어버버 거리는 베니의 손을 잡았다.

       

       “걱정마세요. 제가 특이한 경우일뿐, 베니를 아프게 할 생각은 없어요. 피 나지 않을 정도로만 이빨 자국을 남길게요.”

       

       “어? 으어에?”

       

       보란 듯이 입을 벌리고 혀를 내밀자, 마구 화내던 베니가 스턴이라도 걸린 것처럼 굳었다.

       

       아! 성욕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슬픈 생물이여! …나도 마찬가지긴 해.

       

       속으로 낄낄 웃으며 베니의 약지를 입에 물었다. 혀로 손가락을 핥고, 앞니로 부드럽게 첫 번째 마디를 깨물었다.

       

       앞서 말했던 대로 자국이 남을 정도로 강하게. 하지만 피가 나거나 아프지는 않을 만큼 적당한 세기로.

       

       “프하. 이 정도면 됐네요.”

       

       입에서 손가락을 빼낸 뒤, 베니의 옷자락으로 묻어있는 침을 대충 닦고는 내 손을 내밀었다.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베니가 여전히 피가 뚝뚝 떨어지는 광경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피 때문에 잘 안 보여서 그런데 베니가 깨끗하게 해주실 수 있나요?”

       

       “으응? 깨끗…아, 알았어.”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베니. 그녀가 뾰족한 이빨 사이로 혀를 쭈욱 내밀더니, 손끝부터 핥기 시작한다.

       

       출혈이라고는 해도, 애초에 상처가 그리 깊지 않으니 피가 많이 묻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베니는 필요 이상으로 공을 들여 내 손가락에 묻은 피를 핥아서 닦아내기 시작했다.

       

       손끝, 손가락 마디, 손가락의 사이, 손바닥과 손등을 넘어 마지막으로 상처 부위까지.

       

       정성스럽고 꼼꼼하게 핥아내는 베니. 그만큼 시간이 걸렸고, 이쯤 되자 촉촉한 피부 권능 때문인지 거죽의 상처가 아물어버렸다.

       

       이번에 강화돼서인지 그 속도가 한층 빨라진 기분.

       

       덕분에 베니가 상처 부위를 핥아 송골송골 묻어난 피를 닦아내는 순간. 때마침 딱 좋은 형태로 남은 상처가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문신이라도 새긴 것처럼 베니의 이빨 모양대로 남은 모습.

       

       멍하니 이를 바라보던 베니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어때요? 제 몸에 베니의 흔적을 남긴 기분은.”

       

       “…….”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이쪽을 바라보는 베니. 그녀의 눈동자는 어느새 불이 켜진 것처럼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다만, 그 안에서 반짝이는 것은 의지나 신념 같은 멋있는 것이 아니라 욕망이었지만.

       

       이 정도로 노골적이고 뜨거운 시선을 받는 건 처음인데……이거 생각보다 기분 좋은 일이네.

       

       기본적으로 작가는 관심을 먹고 사는 생물이다.

       

       그런데 이 세계에서 나 같은 외모의 남자로 살면 뭘 해도 관심이 뒤따라 조금 무덤덤해졌는데.

       

       지금의 베니는 한계치까지 놀린 엘리와 비슷할 정도로 강렬했다.

       

       숨길 수 없을 정도로 히죽 올라간 입꼬리. 그 상태로 입을 열었다.

       

       “만족했나 보네요 베니. 그럼 이제 다시 본론으로 돌아갈까요?”

       

       “……어?”

       

       “장인 말이에요. 수정을 가공할 수 있는 장인을 소개해 준다고 하셨잖아요.”

       

       “그, 랬지.”

       

       베니의 눈동자에 빠르게 돌아오는 이성의 빛. 하지만 여전히 미련이 남은 건지 내 손을 힐끔거리던 그녀가 말을 이었다.

       

       “어떤 물건을 만들지, 어떤 효과가 있었으면 좋겠는지 말해주면 최대한 맞춰달라고 전해줄게.”

       

       “같이 갈 필요는 없고요?”

       

       “…응.”

       

       “베니가 가고 싶다면 가드릴 수는 있는데.”

       

       “아잇! 그만 놀리고 원하는 옵션이나 말해!”

       

       “전투에 방해가 되지 않는 디자인의 반지로 2개, 하나는 늑대 수인의 강화에 집중해서, 다른 하나는 기척 감소에 집중한 능력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전투? 꼭 반지여야 해?”

       

       “넹?”

       

       “요나 너는 섬세한 손재주를 살린 전투방식이 메인이잖아? 엘리 씨는 아예 맨주먹으로 싸우시고. 반지 자체가 방해일 걸?”

       

       “아, 그건 그러네요. …목걸이가 좋으려나?”

       

       “목걸이도 격하게 움직이면 방해되긴 마찬가지야. 가장 좋은 건 귀걸이나 피어싱처럼 몸에 딱 고정된 거긴 한데….”

       

       “엘리가 싫어할걸요?”

       

       “응. 바른 생활 아가씨니까 그렇겠지.”

       

       이후로도 베니랑 어떤 물건을 만들지 한참을 상의했다. 본인이 고위 모험가라 그런지, 실용적인 마도구에 일가견이 있어 여러모로 도움이 되더라.

       

       그 결과 본래 반지를 만들려던 계획은 목걸이와 팔찌를 지나, 다시 목걸이로 돌아왔다.

       

       조금 더 정확히는 초커였지만.

       

       “…요나. 정말 이걸로 괜찮은 거 맞아?”

       

       “네. 이거라면 격하게 움직여도 흔들려서 방해되지 않고, 반지 같은 거에 비하면 면적도 커지니 다양한 인챈트를 안정적으로 새길 수 있잖아요?”

       

       “그렇긴 한데…쓰읍. 뭔가 비주얼이 좀 그렇단 말이지.”

       

       군침…아니, 한숨을 삼키며 미간을 찌푸리는 베니.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물어왔다.

       

       “아무튼 알겠어. 그거면 되는 거지?”

       

       “넹. …아.”

       

       뒤늦게 떠올린 사실에 나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어째서인지 손가락을 움찔거리는 베니.

       

       “뭐, 뭐야! 필요한 게 있으면 지금 말해. 만들기 시작한 이후에는 바꾸기 힘드니까.”

       

       “필요한 거죠. 사실 가장 중요한 일이에요.”

       

       “뭐길래 그렇게까지?”

       

       “…공짜였으면 좋겠어요.”

       

       “?”

       

       베니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번에 100골드 넘게 벌었잖아. 수정을 사는 데 좀 썼다고 해도 상당히 남아있을 텐데? 설마 수정을 100골드에 산 건 아니겠지?”

       

       “에이. 그런 건 아니죠. 다만 뭐어. 조금 쓸데가 있었거든요. 지금은 빈털터리예요.”

       

       “아니, 그렇게 없어? 일단 얼마까지 맞출 수 있는지 말해줘. 나도 거기에 맞는 이들을 찾아볼 테니까. 인챈트는 좀 나중에 하고 초커만 만들어도 수정의 효과는 나름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고.”

       

       “0원이요.”

       

       “장난치지 말고.”

       

       “진짜 0원이에요.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빈털터리거든요.”

       

       “…진짜?”

       

       “진짜 진짜.”

       

       “…….”

       

       눈을 가늘게 뜬 베니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요나. 나한테만 솔직히 말해봐. 너 어디에 돈 뜯기고 있어?”

       

       “그런 놈이 있었으면 제가 진작에 모가지를 뜯어버렸겠죠.”

       

       “아니면 위험한 놈들한테 빚이라도 진 거야?”

       

       “어지간하면 빚은 안 지는 주의라 대출받은 적도 없는데요?”

       

       “그럼 대체 100골드가 넘는 거금을 어디에 쓴 거야?!”

       

       기겁하는 베니의 모습에 짐짓 경건한 미소를 지으며 기도하는 시늉을 했다.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순박한 사제처럼.

       

       “전부 사랑의 여신님께 썼답니다.”

       

       “…….”

       

       할 말을 잃은 것처럼 입을 꾹 다문 베니. 가챠에 질렀으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닌데 말이지.

       

       물론 베니에겐 비밀로 허튼 데 썼다고 들렸는지, 메챠쿠챠 잔소리 들었다. 돈 흥청망청 쓰지 말라면서 말이다.

       

       “하아. 일단 이번에는 내가 지불할 테니까 나중에 천천히 갚아. 리디아에게 갚을 돈도 제법 있다면서?”

       

       “제가 베니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던가요?”

       

       “…요나, 네 사랑은 너무 비싸!”

       

       길길이 날뛰는 베니를 피해 다시 요정과 은화로 돌아갔다.

       

       어째 하루 종일 도망만 다니는 것 같네. 난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말이야.

       

       우웅-

       

       주머니 속의 풀돌 여신상이 개소리하지 말라는 듯 진동했지만 분명 기분 탓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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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cha Addict in a Matriarchal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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