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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7

       먼 옛날.

        허무의 층은 마치 우주의 빈 공간과 비슷한 상태로 이곳을 등반하는 마법사들은 많은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어설픈 비행 마법 실력과 좌표에 대한 계산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영원히 무(無)에 갇히고 마는 극한의 위험지대.

        그러나 물 한 방울 없는 사막에도 오아시스가 있듯이 끝없는 어둠 속을 부유하는 마법사들에게도 위로 올라가기 위한 사다리가 존재했다.

       

        공역이라 불리우는 부유하는 섬.

        각종 자원이 풍부하며 면적도 넓고 가끔 까다롭게 구는 정령들을 제외하면 특별한 위험요소도 없었다.

        존재가 발견되자 자연스럽게 수많은 학파와 가문은 군침을 흘렸지만, 그곳을 중층의 전초기지로 삼는데는 큰 문제가 있었다.

       

        허무의 층 한 가운데 둥둥 떠 있는 공역은 신비로운 결계에 둘러싸여 외부의 침입을 허락하지 않았다.

        상층의 마법사들을 대거 동원하면 결계를 부수는 것도 가능하겠으나 그렇게 하면 안에 기거하던 ‘왕녀’의 분노를 살 것이 분명했다.

        그녀는 자신의 왕국에 외부인을 들일 생각이 없었고, 계층지기와 척을 지면 등반이 어려워지는 불 보듯 뻔한 상황에 마법사들은 공역의 점거를 포기했다.

       

        그렇게 관측 이래 점점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가던 어느 날, 한 마법사의 출현에 의해 44층은 전혀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고 보니 네 말대로 한 차례 온 적이 있었다. 춥고 배도 고프고 무엇보다 발판이 더 이상 주변에 없어서 올라가지 못하고 있었는데 마침 저 멀리 불빛이 보이더구나.”

        “발판이요?”

        “으햐아암, 나는 부유마법 같은 건 어설펐으니 말이다. 아무튼 늦은 밤에 문을 두드렸는데 안 열어주더구나. 그래서 자느라 못 들었나 싶어 좀 더 두드리니 생각보다 반갑게 환대해 주었다.”

        “어…… 왕녀님은 그렇게 기억 안 하시던데요?”

       

        자신에게 덤비는 마법사들을 말 그대로 ‘짓밟으며’ 4개의 층을 올라온 마법 살해자가 마침내 공역에 도착했을 때.

        결계는 무도회장 바닥에 떨어진 유리잔처럼 찢겨져 나갔고, 성벽은 두부처럼 무너져 내렸다.

        그것으로 모자라 다시 결계를 복구하려 하니 귀찮다는 듯 섬의 가장자리를 통째로 도려내어 전체 영토의 절반을 날려 버렸다.

       

        손쓸 틈도 없이 무너진 세계에 도래한 죽음은 옥좌 아래로 굴러떨어진 왕녀를 내려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머리가 높구나-.

       

        “그 말을 듣는 순간 목이 잘리는 줄 알았대요. 실제로 그 후로 일주일 간 밥도 못 먹었다고.”

        “아, 그건 여기 들어오느라 힘을 써서 키가 또 줄어들어 버렸기 때문에 무심코 나온 말이었다.”

        “‘이 땅에서 젖과 꿀이 흘러넘치니 네놈의 분수가 과분한 탓이로다’라고도 했다는데요.”

        “그냥 잘 곳과 따뜻한 우유를 요구했을 뿐이었다. 꾸준히 관리하지 않으면 성장판이 닫혀버릴 테니 말이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시선 차이가 괴랄하게 벌어져 있긴 하지만, 어쨌거나 그 후로 공역은 더 이상 무인지대가 아니게 되었다.

        허무의 층에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결계는 그대로 유지하지만 주기적으로 마법사들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허나 이렇게 되면 44층의 특성상 언젠가 모든 영토가 다른 이의 손에 넘어갈 것은 불 보듯 뻔한 노릇.

        왕녀는 성에 남겨진 최소한 보물이라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머리를 조아리며 떠나려는 아녜스를 붙잡고 간청했다.

       

        “왕성의 소유권을 관리하는 정령들을 쫓아내 달라고 부탁받았지. 그리고 보물방에 있는 보물에도 저주를 걸어 아무도 가지지 못하게 했다.”

        “그냥 주머니에 넣었으면 해주학파가 지금처럼 가난에 허덕일 일은 없지 않았을까요?”

        “당시 내겐 필요 없고 거추장스럽기만 했다. 그런 보물은 가지고 있으면 적만 더 늘어나는 법이지.”

        “확실히 그렇군요.”

        “애초에 탑에 널린 게 마법사고 물건이나 음식은 그들에게 가서 구하면 되지 않느냐. 필요한 게 도처에 널려 있는데 굳이 내가 실어나를 필요는 없었다.”

        “…….”

       

        사고방식 자체가 다른 아녜스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확실히 그녀가 탑을 오르던 시절이 야생 그 자체였음이 느껴졌다.

       

        “생각난 김에 내일 왕성에 가자꾸나.”

        “네?”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도 보고 네가 말했던 보물도 챙겨야지. 지금껏 안전하게 보물을 보관해 줬으니 조금 정도는 달라고 해도 군말은 못할 거다.”

        “음…… 저주를 다시 풀 수 있나요?”

        “지금의 나로서는 무리구나.”

        “그럼 저는요?”

        “흠…… 잠시 이리 와 보거라.”

       

        아녜스는 양팔을 벌려 나를 끌어안고 목덜미에 코를 파묻었다.

        이제는 마력을 감지하는 것조차 힘들어진 그녀가 내 경지를 파악할 때 써왔던 방법이었다.

       

        “쯔읍, 애매하구나.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실패할 확률이 높아 보인다.”

        “휴, 그렇군요.”

        “그래도 프리나 정도라면 가능할 거다. 오랜만에 봤는데 재능이 만개했더구나. 마력의 근원에 꺼림찍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어떻게든 통제하고 있는 것 같고…….”

        “…….”

        “그러게 내가 누누히 말하지 않았느냐. 마법 수련을 게을리 해선 안 된다고.”

        “벌써 시간이 10시가 다 되어가네요. 이만 잘까요?”

        “아앗! 말을 돌리지 말거라!”

       

        딱히 게을리 한 적은 없었다.

        지금의 내가 40층에 도달할 당시의 아녜스보다 해주 마법을 못 쓰는 건 당연한 일.

        그러나 괜히 입 열었다가 잔소리만 들을 게 뻔해 재빨리 그녀를 침대로 옮겼다.

        오랜만에 좋은 휴양지에 놀러 온 아녜스는 드물게 늦게까지 버텨보려 했지만 10시를 알리는 종과 함께 필살 자장가를 불러주자 이윽고 수마에 빠져들었다.

       

        보물을 가져가는데 왕녀의 분노를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하물며 저주는 프리나가 풀 수 있다고 한다.

       

        ====

        — 실프공략대참모장마가렛라미 : 클락 씨, 아직 안 주무시죠?

        — 실프공략대참모장마가렛라미 : 제가 공사를 진행했던 업체와 미팅 중인데 보물방 입구까지는 봉하지 않았다고 해요.

        — 실프공략대참모장마가렛라미 : 지반 조사나 안전점검 기록까지 갖고 있어서 위험부담 없이 작업할 수 있다는데 어떻게 하시겠어요?

        — 실프공략대참모장마가렛라미 : 업체 쪽에서도 진작 냄새를 맡은 것 같아서…… 아마 내일쯤이면 다른 학파들 귀에 들어갈 수도 있어요

        ====

       

        때마침 마가렛에게 공사를 시작할 수 있으며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는 연락까지 왔다.

        이렇게나 일이 술술 풀리다니.

        마치 우주의 모든 빛과 성신의 의지가 살살이를 도와주는 것만 같지 않은가.

       

        “살살아, 내가 널 위해 이렇게까지 노력하는 걸 알아야 돼. 지금까지 했던 말은 다 농담이었고 당연히 처음부터 꺼내줄 생각이었다니까?”

        — 살, 살, 살(殺)…….

       

        뒤늦게 사실 우리가 같은 편임을 어필해 보았으나 반응을 보아하니 일단 몸을 되찾으면 나부터 찌를 게 분명해 보였다.

        살살이는 이자젤과 함께 나의 정체를 알고 있는 단 둘 뿐인 사람이었다.

        이자젤이야 워낙 나를 두려워하기도 하고, 최근에는 묘하게 순종적이어서 큰 걱정 안 하고 있지만 녀석은 달랐다.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내가 너를 너무 놀렸던 것 같아. 혹시 원래 몸을 되찾으면 뭘 가장 먼저 하고 싶어?”

        — ㅍㅣ으ㅣ 복ㅅㅜ

        “행정부에서 걸어놓은 내 현상금이 왜 검색 이력에 남아있는 거야? 그냥 호기심에서지?”

        — 착ㅎㅏㄴ 주ㄷ닥 ㅅㅏ랑ㅎㅐ영ㅇㅝㄴㅎㅣ:::::))))))

       

        벌써부터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려는 용의주도함이 엿보인다.

        순수한 마음씨를 지닌 나를 제외한 모두가 보물에 눈이 멀어 그것들과 함께 잠든 사악한 마검을 깨우려 하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트라팔가 호수로 뛰어가 녀석을 차가운 얼음 밑바닥에 완전히 수장시켜야 하나 고민했다.

        때마침 내가 방 앞을 지나치려 할 때, 문이 철컥! 하고 열리며 안에서 빛이 쏟아졌다.

       

        “어, 어디 가. 너 여기서 자기로 했잖아.”

        “다녀올 곳이 있어서요 선배. 세상을 구하는 중요한 일이라 금방 해결하고 들어갈게요.”

       

        얇은 잠옷 차림의 프리나가 슬리퍼를 신은 채로 걸어나왔다.

        늦은 밤, 불퉁스런 표정으로 나를 가로막은 그녀는 다짜고짜 내 손을 들어 올리더니 그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갰다.

        요사스러움과 야릇함이 공존하는 움직임으로 손가락을 몇 차례 돌리자 마치 실이 휘감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도 같이 가. 안 그래도 호수 근처 산책하려고 했어.”

        “정말요? 먼저 가셔도 되는데.”

        “너, 너 기다리고 있었지. 위험하니까 늦은 밤에 혼자 나가는 건 안 되는게 학파규칙이잖아.”

        “그게 무슨 소리에요?”

       

        공역은 위험한 곳이 아니었다.

        이미 한 차례 이곳에 온 경험이 있기도 했고 살살이처럼 이상한 보물에만 욕심내지 않으면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소싯적에 창질로 이름 좀 날린 내가 관광객만 가득한 공역의 마법사들에게 당할 염려도 없다.

       

        “마, 맞다. 이런 식으론 안 되지. 반감은 배제, 연민은 강화, 사고의 편향을 위해서는 행동의 당위성에 ‘좋아하는 것’이 들어가야 하니까…….”

       

        내 반응에 프리나는 무언가 착각했다는 듯이 다시 손을 휘감으며 말했다.

       

        “늦은 밤에 ‘나를 혼자 남겨두면’ 안 되는 게 규칙이잖아. 잊었어?”

        “으음 확실히…….”

        “선배랑은 꼭 붙어 있어야 하는 거야. 옷 입고 나올 테니까 여기서 기다려.”

        “네.”

       

        어쩌다 보니 둘이서 하게 된 밤산책.

        설레일 법도 하건만 구국의 결단을 내려야 하는 심정이라 머리가 복잡했다.

        눈치빠른 살살이 녀석은 내가 자신을 봉인해 버릴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소환진을 만들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보아하니 저주를 풀 때까지 나타나지 않을 듯 한데, 이제는 관계가 역전 되어버린 것만 같은 상황이었다.

       

        “으, 추워. 대체 왜 이렇게 추운 거야?”

        “그야 니플헤이르의 권역이니까요.”

        “신발에 자갈은 계속 들어가고, 풀비린내 같은 것도 나고, 마가렛 얘는 어디갔어? 분명 도와준다고 해놓고…….”

        “마가렛이라면 다른 층에 있는 모양인데요? 아까 미팅 중이라고 하더라고요.”

        “뭐어!?”

       

        내 대답에 놀란 프리나가 호수 근처의 돌을 밟고 넘어졌다.

        그녀도 나처럼 뭔가 잘 안 풀렸는지 손을 내밀어도 한참을 가만히 있더니, 이내 고개를 푹 숙이며 중얼거렸다.

       

        “이, 이럴 줄 알았어. 시작부터 꼬이더니 되는 일도 하나 없고, 기껏 도와준다는 친구 놈은 미팅이나 나가다니…….”

       

        그 미팅을 말하는 게 아닌데.

        아무튼 의기소침해 있는 프리나에게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있잖아요, 선배.”

        “왜, 왜! 설마 고백 같은 거 하려는 건 아니지!?”

        “그게 아니고, 고민이 좀 있어서요.”

        “뭐, 뭔데?”

       

        나는 익명S와의 관계를 적당히 꾸며내어 녀석을 놓아주고 싶지 않다는 말을 꺼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서로 틱틱대는 관계였지만 탑을 오르며 그간 정이 많이 들었고.

        친구 하나 없는 녀석의 말동무로 시작해 점점 가까워졌으며.

        앞으로도 평생을 오붓하게 함께하고 싶다고.

       

        “호, 혹시 우리 학파 사람이야?”

        “반쯤 그렇다고 할 수 있겠네요. 오늘도 같이 끌어안고 자려고 했는데…….”

        “그, 그렇구나.”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이대로면 사이가 영영 멀어져버릴 것 같아서요.”

       

        나의 말이 이어질수록 프리나의 얼굴이 점점 붉어져갔다.

        그녀는 몸을 일으켜 엉덩이에 묻은 흙들을 털어내더니, 실로 프리나스러운 답변을 내놓았다.

       

        “뭐, 뭐…… 붙잡고 싶으면 그냥 확 잡으면 되는 거 아니야? 너 힘 세잖아.”

        “그럴 용기가 없어서요.”

        “아, 아니면 잘 꼬드겨 보던가. 약점이라든지 빚이라든지…… 나도 너한테 그런 거 꽤 있는 편이고…….”

       

        복부를 가리며 이쪽을 힐끔거리는 프리나를 보던 중, 한 가지 기가 막힌 생각이 떠올랐다.

        빚, 정확히는 채무.

       

        “선배.”

        “으, 응.”

        “혹시 토비 방이 몇 호였죠?”

        “……뭐?”

       

        잘하면 살살이와 앞으로도 함께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어제 연재를 펑크내고 말았네요, 죄송합니다.
    최근 또 몸상태가 좋지 않아져서 집필에 어려움을 겪는 실정입니다.

    연재주기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밖에는 드릴 말씀이 없네요.
    앞으로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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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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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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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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