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27

       

       

       고개를 올려 하늘을 바라보았다.

       

       마력 농도가 높아져 허공에서 내려오는 수많은 빛은, 마치 밤하늘에 수놓은 별을 바라보는 것 같다고 느껴질 정도로 아름다웠다.

       

       만약 이게 축제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면 솔직하게 감탄했겠지.

       

       그러나 이곳은 전장.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은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

       

       

       “이게 대체···.”

       

       

       늦잠을 잔 탓에 혼날 각오까지 하고 다급히 도착한 작전 장소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각자가 다급히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는 모습이, 어제까지만 해도 그렇게 여유로웠던 사람들이 맞는지 눈을 의심하게 될 정도로.

       

       그들이 이렇게 바쁘게 돌아다니는 이유는 방금 도착한 내가 보아도 확실했다.

       

       ···저 도시를 뒤엎을 기세로 다가오는 거미 떼.

       

       아마 저 녀석들 때문이겠지.

       

       

       “···작가님? 또 뭔가 저지른 거 아니에요?”

       

       

       그러나 나는 당황하지 않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나는 경우는 이미 여러 번 겪어봤으니까.

       

       저 보자마자 한숨이 나올 정도로 터무니없는 양의 마수들.

       

       저런 양의 마수들이 매일같이 튀어나오는 곳이 최전방이라면, 이미 이 세계는 멸망하고도 남았을 테니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는 원인은 하나밖에 없지.

       

       

       [어, 어라···? 저게 무슨···?]

       

       “···?”

       

       

       작가님의 목소리에 당혹감이 짙게 배어 나왔다.

       

       설마 작가님이 꾸민 일이 아니었던 걸까?

       

       스멀스멀 불안감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작가님의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에 나는 오늘도 머리를 부여잡을 수밖에 없었다.

       

       

       [아뇨, 그게 아니라···. 왜 이렇게 많지?]

       

       “그게 무슨···?”

       

       [습격 이벤트를 넣을 생각이기는 했는데···. 너, 너무 많은데?]

       

       

       아, 젠장. 또야?

       

       도무지 반성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작가님의 행태에 나는 슬슬 질려갔다.

       

       벌써 같이 지낸 지 일 년 가까이 되어가는데도 변하는 게 단 하나도 없다니.

       

       매일같이 사고만 치고 다니잖아.

       

       

       “어쩐지 요즘은 사고를 안 치고 다닌다 싶었는데···.”

       

       [무, 무슨! 저를 맨날 사고만 치고 다니는 사람처럼 말하지 말아 주세요!]

       

       “···그럼 아니에요?”

       

       [···.]

       

       

       내 말에 반박하지 못하는 걸 보니, 자기도 뭘 잘못하는지는 알고 있는 모양이구나.

       

       생각해보니 최근 사고를 치지 않은 것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그런 거잖아.

       

       한심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는 내게 작가님이 반발했다.

       

       자기가 그런 취급을 받는다는 사실이 못내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하, 하지만···! 이번에는 제대로 설정해놨다고요!]

       

       “···뭘요?”

       

       [거미로 설정해둔 것도 맞고, 습격이 일어나게끔 조절한 것도 맞지만···! 저만큼의 숫자는 아니에요! 그냥 엄마 거미가 죽기 전에 알을 낳았다는 설정만 넣었는데···! 그런데···!]

       

       

       그 정도라면 어떻게든 막을 수 있는 범위라고 생각한 걸까.

       

       하긴, 죽기 전에 낳은 알에서 태어난 거미들이 습격했다는 설정 자체는 별다른 문제는 없다.

       

       문제가 있다면 저만큼의 양이 뛰쳐나올 거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한 작가님이 문제지.

       

       ···어쨌든. 작가님이 이렇게까지 억울하다는 듯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제대로 설정해 두었다는 것은 사실인 모양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문제 같은 건 없었을 텐데···! 어, 어디서부터···!]

       

       

       작가님이 끙끙 앓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미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지.

       

       한숨을 내쉬면 수명이 줄어든다는데, 그 말은 거짓인 게 확실했다.

       

       작가님 탓에 내쉬는 한숨만 도대체 몇 번째인지.

       

       그 말이 사실이라면 나는 진작 죽어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래서요?”

       

       [네, 네···?]

       

       “몇 마리 정도 있는 것 같나요?”

       

       

       이 일을 수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답은 하나다.

       

       남들 몰래 저 숫자들을 미리 줄여놓는 수밖에.

       

       다행스럽게도 저정도의 숫자가 있으니, 전방과 후방은 길이차이가 상당할 터.

       

       전력을 다해도 아무도 볼 사람이 없을 게 분명했다.

       

       남은 옷이야, 뭐···.

       

       ···안 들키게 잘 숨어다니면 괜찮지 않을까?

       

       아니면 작가님에게 힘 좀 써달라고 하거나.

       

       슬쩍 주변을 바라보자, 다행스럽게도 여전히 다들 바쁜 나머지 주위를 잘 둘러보지 못하고 있는 상황.

       

       내가 뒤늦게 합류한 것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슬쩍 사라져도 아무도 모를 터.

       

       

       [어, 그게···. 모르겠는데요.]

       

       “···하아.”

       

       [···.]

       

       

       어처구니없는 대답에 대놓고 한숨을 내쉬어도 작가님은 아무런 반항을 하지 못했다.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자기 잘못인 게 뻔했으니까.

       

       저기 저 거미들의 모습을 보면 확실하지 않나?

       

       이미 자기가 거미들의 습격 사건을 만들기 위해 움직였다고 증언했고.

       

       

       “하나하나 다 뒤져보는 수밖에 없나···.”

       

       [헤, 헤헤···.]

       

       “조용히 하세요.”

       

       [네, 넵···.]

       

       

       저만한 양의 마수들 몰래 후방으로 이동하라니.

       

       벌써 고생길이 눈에 훤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아니, 앞날이 깜깜한 건가.

       

       

       “시우는···. 괜찮은 것 같네요.”

       

       

       슬쩍 바라보니 황급히 본대와 합류하려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별다른 문제는 없겠지.

       

       이곳의 영웅들은 베테랑 중의 베테랑.

       

       인류 최강들이 모인 장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수를 썰어버리는 데 온갖 세월을 소모한 사람들이라고.

       

       저만한 양을 아무런 피해 없이 잡기는 힘들겠지.

       

       이만한 양의 마수들을 상대하는 경험은 저들도 처음일 테니까.

       

       ···하지만, 시우가 있다면 어떨까.

       

       이런 위급상황에는 언제나 주인공과 동료들이 멋들어지게 해결하는 법.

       

       내가 뒤에서 마수들을 적당히만 제거해 준다면 괜찮겠지.

       

       다행히도 내 능력은 대량 살상에 특화되어 있다.

       

       특히 저렇게 지능이 낮은 마수들 상대로는 더더욱.

       

       수습이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란 말이지.

       

       

       “작가님도 슬슬 반성하세요. 매일같이 사건만 터트리고.”

       

       [히잉···.]

       

       

       본대에서 내가 사라졌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게끔 남들 몰래 자리를 벗어난 뒤, 앞으로 일어날 일에 마음이 착잡해졌다.

       

       이제 이 옷도 이별이겠지.

       

       아무리 남들이 보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야외에서 발가벗고 다니게 될 예정이라는 사실에 벌써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시우에게 들키지 않는다면 좋을 텐데.

       

       괜히 팔찌를 한번 만지작거리는 그 순간.

       

       강한 통증이 일어남과 동시에, 시야에 보이는 광경이 마치 달리는 열차 밖의 풍경을 바라보듯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

       

       ···무슨 일이 일어났지?

       

       아, 옆구리가 차였구나.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건물에 처박혔고.

       

       그래서 이렇게 아픈 거였어.

       

       

       “커, 커흑···!”

       

       [···독자님?! 괘, 괜찮으세요?!]

       

       

       귓가에 작가님이 호들갑을 떠는소리가 자그맣게 울렸다.

       

       작가님의 소행은 아니야.

       

       멍청한 작가님이 꾸민 일이라면 이렇게 당황할 리가 없었으니까.

       

       마수도 아니다. 마수라면 나를 찢어발길 테니까.

       

       이런 식의, 상대를 날려버리는 기습을 하지는 않는다.

       

       건물에 처박혀 온몸이 고통을 호소하는 것을 억누르고 어떻게든 고개를 들어 나를 기습한 상대를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안녕. 나 기억해?”

       

       [···어? 살아 있었어···?]

       

       “···!”

       

       

       그리고 경악했다.

       

       분명 본 기억이 있는 사람이, 그곳에 서 있었으니까.

       

       그날.

       

       시우가 유일한 인간이라는 것을 깨달은 날.

       

       시우에게 정신이 팔려 살려 보낸, 위버멘쉬의 유일한 생존자.

       

       마지막 남은 십이지의 이름모를 간부.

       

       그녀가 내 눈앞에 서 있었다.

       

       여러모로 흉측해졌지만, 그럼에도 그녀라는 것을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분명히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 네가 어떻게.”

       

       “기억하고 있구나?”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해! 네가 왜 여기에···!”

       

       “나도 놀랐어. 네가 여기에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니까. 거미들을 사용해서 여기를 벗어나려고 했는데, 마침 네가 보이더라고.”

       

       “···!”

       

       

       ···그렇구나.

       

       작가님이 당황할 정도로 많은 양의 거미들이 나타난 이유.

       

       이 여자였어.

       

       작가님도 잊어버린 이 여자 탓에, 사태가 훨씬 커져버린거야.

       

       

       “···예전에는 꽤 예쁜 모습이었던 것 같은데, 생각보다 못생겨졌네.”

       

       “못생겨? 그럴 리가. 엄청 예쁜걸. 나는 지금이 마음에 들어. ···그렇지, 애니?”

       

       “그래, 미르.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야. 우리의 동료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야.”

       

       “이거 봐. 미르도 그렇게 말하잖아.”

       

       

       ···이 여자는 누구랑 대화하고 있는 걸까.

       

       정신이 나가버린 건가?

       

       

       “네가 미르를 죽였어.”

       

       “···그게 누군지 나는 모르겠는데.”

       

       “하하, 모를리가 없잖아. 거짓말하지 마.”

       

       “···.”

       

       “말해. 왜 죽였어?”

       

       

       언젠가.

       

       정말 언젠가는 이런 질문을 받을 거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인형들을 계속 죽이다 보면, 누군가 내게 이런 질문을 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었다.

       

       이럴 때는 무슨 답변을 하려고 했더라.

       

       ···아, 안 돼.

       

       고통 탓에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아.

       

       

       “···인형이었으니까.”

       

       “인형?”

       

       “전부 인형이야. 이 세상의 모든 게 전부. 나와 시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게 다 인형이라고.”

       

       

       그래. 모든 게 인형이야.

       

       작가님이 이 세상을 자기 제멋대로 주물럭거리는 이상, 이 세상은 커다란 인형극과 다를 바 없는 세상이니까.

       

       그런 곳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이 인형이 아니면 무엇일까.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지 않으면 버틸 수 없을 것만 같아서.

       

       

       “···인형 따위가 아니야.”

       

       “아니, 인형이야.”

       

       “···너 같은 거짓말쟁이에게 미르가 죽어버린 거구나.”

       

       

       차가운 눈동자의 생존자는 나를 바라보며 증오를 불태우고 있었다.

       

       ···들켜버렸다.

       

       들켜버리고 말았다.

       

       그래, 사실은 알고 있었다.

       

       모두 인형 따위가 아니라는 것을.

       

       모두 이 세상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내가 죽여버린 것은 인형 따위가 아니라, 정말 사람이라는 사실을.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었는걸.

       

       그날.

       

       모든 것이 뒤바뀐 그날.

       

       눈앞에서 반으로 갈라지는 시체, 뿜어져 나온 붉은 피.

       

       내가 저질러버린 끔찍한 참상에 두려움에 떨고 있을 적,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사라져버린 시체.

       

       사라진 시체들이 나는 죄가 없다고 말하는 듯 보였다.

       

       그들은 모두 사람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렇기에 나는 나의 죄를 외면했고, 그렇기에 나는 인형들을 죽였다.

       

       소녀가 넝마를 벗어던지며 나를 바라보았다.

       

       흉측하게 변한 얼굴 외에도, 그녀의 몸은 한없이 뒤틀려있었다.

       

       쥐, 양, 소, 돼지, 토끼, 말, 호랑이, 원숭이, 닭. ···그리고 용.

       

       본 적 있는, 특징적인 부위들.

       

       

       “···있지, 너. 이거 기억나?”

       

       

       기억하고 있었다.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위버멘쉬의 간부들. 그들의 신체.

       

       살아남은 소녀와 스피라를 제외한 위버멘쉬 간부들의 신체 부위가, 소녀에게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그래,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구나.”

       

       

       나는 깨달았다.

       

       내가 죽인 사람들을 덕지덕지 붙인 채로 나타난, 이 최후의 생존자는 나를 단죄하러 내려왔음을.

       

       그들의 복수를 위해 내게 찾아왔음을.

       

       내가 이곳에서 벌인 죄.

       

       그 죄가, 죗값을 물으러 왔음을.

       

       

       

       나의 업보가 내게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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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시엘 님, 17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실눈흑막 화이팅~! 언제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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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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