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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7

        

       별빛처럼 반짝이고, 가로등의 불빛처럼 찬란하게 빛을 발하며, 눈이 부실 것 같으면서도 연신 모양을 바꿔가며 시선을 사로잡는 빛을 발한다. 팔을 움직이면 부서지듯 퍼져나가는 빛이 덧없이 사라지는 불꽃의 형상을 닮았고, 지나갈 때마다 미련 없이 사라지는 기척은 냉기를 흩뿌리며 굴러가는 얼음을 닮았으니.

         

       사람을 현혹하기에는 참으로 충분한 모습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을 현혹하려 하는가?

         

       진성은 자신의 몸에 황금의 갑주를 두른 채 저택의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축지를 사용해 뒷산으로 이동하고는, 으슥한 숲속이나 폐허를 위주로 계속해서 축지를 사용해 이동했다. 짧은 시간에 축지를 사용하자 그의 몸이 바싹 마르는 느낌이 들었고, 그의 몸을 지탱하고 있는 다리가 후들거렸다.

         

       특히 저택에서 한참 먼 곳까지 도착하자 그의 발바닥은 나무껍질처럼 바싹 말라 비틀어져 있었는데, 말라 비틀어진 발바닥 피부의 아래에서 새빨간 피부의 안쪽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하지만 흐르는 피조차도 아깝다는 듯 피 한 방울 나지 않고 있었으며, 오직 걸어 다닐 때마다 느껴지는 끔찍한 고통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이것은 축지법의 대가.

       개량형 축지법(縮地法)을 과도하게 사용한 대가였다.

         

         

        * * *

         

         

       축지법은 여러 차례에 걸쳐서 바뀌었다.

         

       역사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첫 번째로 만들어진 축지법은 맥(脈)을 이용해 이동하는 방법이었다.

       풍수지리에서는 산을 단순히 지형지물로 보지 않고 사람의 것에 대입해서 보았다.

       암반은 산맥의 뼈였고, 그 위에 덮인 흙은 사람의 살과 같았다.

       당연하게도 그들은 산이 생기(生氣)를 품었다 여겼으며, 사람처럼 혈관이 흐르고 그것이 모이는 혈도와 같은 것이 있다고 여겼다.

         

       산맥의 혈관.

       그것이 바로 맥(脈)이었다.

         

       맥(脈)은 다른 말로 용맥(龍脈)이라고 부르는 것.

       사람들은 이 용맥을 생기가 흐르는 통로이자 혈(穴)과 혈을 연결해주는 끈이며, 자연을 유지하는 생명줄이라 여겼다. 그랬기에 공사를 할 때는 이 용맥을 피해서 했으며, 나라에 재앙이 닥치면 용맥에 무슨 문제가 생기지 않았나 조사하곤 했었다고 한다.

         

       축지법은 이 맥에 흐르는 생기를 강처럼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최초의 축지법에는 분명한 단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맥이 존재하는 곳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산의 흐름을 타고 움직이는 것이니 험한 산을 돌아다닐 적에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사람이 어디 산에서만 살아가는 존재이던가.

         

       축지법을 사용할만한 능력을 갖춘 이들은 분명히 산에서 오래 사는 것은 맞으나, 그렇다고 사람을 아예 안 보고 사는 일은 드문 편이었다. 속세를 완전히 등지는 것이 아니면 마을에 들러서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생필품도 사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이런 불편함에 더해서 사람들의 항의까지 더해졌다.

       용맥이란 신성한 것이며, 결코 훼손되어서는 안 되는 것인데 어찌 사람이 그것을 발로 밟으며 그것을 더럽히냐는 항의였다.

         

       이러한 항의는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졌으며, 세종 때에 이르러서는 그 항의가 극에 달했다.

       1433년 고중안(高仲安)은 장문의 상소를 썼으며.

         

       『 땅을 접어 달리는 이들에게는 절제가 없어 제 분수를 생각하지 못하고 오직 편리함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는 오직 한 해의 소출만을 생각해 숲을 불태우고 그 위에 농사를 짓는 이들과 같으나, 눈을 뜨게 해야 할 무지한 이들과는 달리 그들은 충분한 이치를 알고 있음에도 이러고 있으니 그 죄가 분명하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무례하기 짝이 없는 행동은 반드시 길지에 문제를 일으킬 것이니, 원하옵건대 이제부터 용맥을 우습게 여기는 이들을 벌하고, 생기를 밟아 혈처의 청명함을 어지러이 만드는 것을 금하여 주시옵소서. 』

         

       그 뒤를 이어 목효지 같은 풍수지리에 능통한 이들이 용맥에 손을 대려는 이들을 엄히 벌하고, 이를 금기로 만들어야 한다고 세종에게 상소를 올렸다. 그리고 이러한 상소를 받은 세종은 용맥을 타고 다니는 것을 금하였으며, 이렇게 첫 번째 축지법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될 뻔하였으나….

         

       다행히 축지법의 편리함을 잊지 못했던 이들에 의해 개량된 형태로 다시 등장하게 된다.

         

       하지만 마가 낀 것처럼 계속해서 문제가 생겼으니.

         

       토기(土氣)와 목기(木氣)를 이용하는 방법으로 개량했더니 전쟁의 불길에 휩싸여 나라가 죄다 타버려 민둥산과 다 죽어버린 땅밖에 남지 않아 사용에 문제가 생겼고. 그냥 자연의 기를 사용하려 하였더니 산업의 발전과 함께 오염이 되어 효율이 개판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자동차니 기차니 하는 것들이 등장하면서 축지법을 사용할 이유도 사라져버렸으니.

         

       현대에 이르러선 축지법은 반쯤 사장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민족의 비극을 거치면서 주술이 박살이 나버리기까지 했으니, 본래대로라면 축지법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리게 되는 것이 순리였으리라.

         

       하지만 세계 3차 대전 이후 축지법은 다시 한번 개량을 거치게 된다.

       어떤 이름 모를 사람의 손에 의해 ‘자신의 몸 안의 기운을 이용하는’ 방법이 만들어진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기존의 축지법을 한없이 쪼개고 낮춰서 사람의 몸에 저장된 에너지를 원동력으로 삼을 수 있게 개량을 했다.

       기존의 축지법은 엄청난 효율을 가지고 있는 대신 필요한 힘이 너무나 컸다면, 개량형 축지법은 효율은 별로인 데다가 이동 거리도 얼마 되지 않는 대신 사람의 몸으로 간신히 사용할 수 있는 형태였다.

       사람의 몸을 소우주로 보고, 거기서 토기와 목기를 끌어서 에너지로 사용하겠다는 발상은 그야말로 혁명과 같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용하는 이들은 별로 없었다.

         

       ‘주술은 사람의 육체를, 영혼을, 정신을 건드린다.’

         

       대가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불편한 신발을 신고 몇 년이고 지낸다면 발의 모양이 바뀌고, 좋지 않은 식습관을 가진다면 반드시 병이라는 이름의 재앙이 찾아오는 것처럼 아무리 약하다고 한들 쌓이면서 사람의 형태를 본래의 것과 다르게 바꾼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일반적인 주술은 아주 약하고 천천히 바꾸고.

       의식과 같은 것은 순식간에 그 사람을 뒤바꾼다는 것에 있겠다.

         

       그러니 다른 능력자들은 주술을 접하려 하지 않는다.

       마력을 사용하는 주술이 있어도 마법사는 그것을 손대려 하지 않으며, 무인 역시 기와 생명력을 사용하는 주술이 있다고 한들 그것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다. 잠깐 편리하다고 한들 반드시 문제를 일으킬 것이 분명했으니까.

         

       마력을 저장하는 곳의 형태를 뒤바꿔버리고, 기가 흐르는 통로를 막거나 기묘하게 바꿀 테니까.

       육체를 넘어 영혼의 경지로 나아가야 할 때 자신을 방해하는 거슬림이 될 것이며, 티끌만 한 점에서 시작되며 자신의 정신을 찢어발기려 하는 심마가 될 테니까.

         

       높은 경지를 갈망하는 이들에게는 모래알 하나조차도 거대한 바위가 되고, 벽을 넘어갈 때 자신을 붙잡고 늘어지는 천근이 넘는 무게추와 같은 걸림돌이 되어버린다.

         

       그러니 축지법을 개량한다 한들 그것을 일반적인 능력자가 쓸 일은 별로 없었다.

       설령 쓴다고 해도, 목숨이 위기에 처했을 때나 사용했다.

         

       ‘피부에 무리가 가는 것은 치료하거나 재생을 하면 그만이고, 뼈가 약해지는 것은 다른 주술로 틀어막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진성에게는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고작 피부와 뼈가 약해지는 것을 대가로 땅을 접으며 움직일 수가 있다.

         

       이만큼 꿀 같은 주술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진성은 자신의 발바닥 피부가 벗겨지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축지를 사용해 충청북도의 한 마을까지 이동했다.

         

       진성이 도착한 곳에는 자그마한 집 몇 채와 우물이 있었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우물이었다.

       

       ‘도착했다.’

         

       하지만 진성은 눈을 빛내며 그곳을 향해 이동했다.

       잘 닦인 도로의 옆에 놓인 우물은 반질반질 잘 손질된 새하얀 돌로 쌓여있었는데, 그 돌이 쌓인 모양새가 우물 정(井)자의 형태였다. 사람의 머리통을 조금 넘을 크기의 돌은 3단으로 쌓여있었으며, 그 옆에는 자그마한 석등이 놓여있었다.

       석등은 네모난 단 위에 만들어져 있었는데, 가장 꼭대기 부근에는 묘한 기운을 발하는 금속이 햇빛에 반사되며 반짝이고 있었다.

       금속은 아주 미약한 마력을 우물 뒤편에 있는 자그마한 안테나로 보냈고, 안테나는 미약한 마력을 흐릿하게 바꿔 우물의 옆쪽에 있는 공터 아래로 보냈다.

         

       세련된 형태의 방범용 마력 결계였다.

         

       문제가 일어난다면 즉시 발동해 범위 안의 존재에게 제압용 마법을 쏘아내리라.

         

       진성은 결계의 범위 안에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조심 움직였다.

       그리고 우물의 뒤쪽에 세워진 안내문을 쳐다보았다.

         

       『 말세를 알리는 우물 』

         

       말세를 알리는 우물.

       다른 말로는 말세 우물.

         

       물이 불어날 때마다 재난이 닥치고, 세 번 흘러넘치면 세상이 망한다는 전설이 있는 우물이었다.

         

       진성은 그것을 보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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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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