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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7

       폭력적인 순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제 멱살을 쥐고 마구 흔들어대는 백우진을 향해 장삼이 외친 말 덕분이었다.

         

       “구, 굳이 그들을 전부 적으로 돌릴 필요는 없소!”

         

       그 말이 백우진을 멈추게 했다.

         

       터무니없는 말에 화가 나긴 했지만, 사리분별이 흐려질 정도는 아니었다.

         

       그랬다면 그에게 두어대 맞았을 때 장삼은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다쳤을 터다.

         

       멱살을 쥔 그의 손아귀 힘이 느슨해짐을 느낀 장삼이 이때를 놓치지 않고 재차 외쳤다.

         

       “말했듯 난 영혼과 대화를 나눌 수 있잖소.”

       “그랬지.”

       “수백 년 된 문파에는 그곳에 머무르고 있는 영혼들이 매우 많소.”

         

       도가 계열의 문파라고는 하나, 그들 모두가 경지에 올라 선계에 오르거나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아무런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장삼이 말하기를, 수백 년 된 문파에는 그런 식으로 제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사문을 떠도는 영혼들이 많다고.

         

       “그들 중에는 모산파의 멸문에 개입된 자들도 분명 있지 않겠냔 말이오.”

       “그러니까, 그들을 찾아 접촉해서 정보를 캐낸 뒤 후보군을 줄여나가자?”

       “그, 그렇소.”

       “흐음.”

         

       장삼의 멱살을 쥔 채로 생각에 잠긴 백우진.

         

       괜찮은 방법이다.

         

       여기저기 전부 들쑤시고 다녀야 하나 고민하던 순간이 무색해질 정도로.

         

       대문파 내부로 들어서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도가나 불가 계열의 문파들은 향화객들을 위해 문을 활짝 열어두는 편이니.

         

       물론 내부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방법에 대해서는 조금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지만, 대놓고 적대하는 것보단 백 배, 천 배 나았다.

         

       “그런 방법이 있으면 진즉에 말해야지.”

         

       왜 굳이 서로를 힘들게 하냐며 타박하는 말투에 장삼이 울분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말할 시간도 안 줬잖소!”

         

       그가 억울해 하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야, 영술서 하나 찾자고 구파일방, 오대세가, 사흑련을 전부 들쑤셔야 한다는 말을 들은 내 심정은 어땠겠냐.”

         

       그 말을 들었을 때 백우진이 느낀 막막함 또한 상상 이상이었다.

         

       장삼은 여전히 억울한 듯, 이빨을 바득바득 갈면서 속으로 몇 번이고 짓씹어 너덜너덜해진 말을 내뱉었다.

         

       “그럼…, 퉁 칩시다….”

       “어, 그럴까.”

         

       아쉬울 것 없는 거래다.

         

         

       * * *

         

         

       백우진이 장보도를 가지고 있다.

         

       그는 섬서백가에 있다.

         

       위와 같은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 것이 허언이 아님을 증명하듯, 섬서백가 주위로 수많은 무인들이 몰려들었다.

         

       덩달아 가문 내에서도 난리가 났다.

         

       소문을 접하기가 무섭게 백호각으로 헐레벌떡 뛰어온 백명신이 침을 꼴깍 삼키며 물었다.

         

       “정말 장보도를 가지고 있느냐…?”

       “하하, 어쩌다 보니 이게 또 제 손에….”

       “끄응….”

         

       섬서의 치안을 마비시킨 장보도가 설마 돌고 돌아 이곳으로 올 줄이야.

         

       그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돌아가선 가문 내의 경계를 강화했다.

         

       날카롭게 날이 선 섬서백가의 무사들을 보며 모여든 낭인들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대신 다른 방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옥면신룡은 숨지 말고 나오시오!”

       “숨지 말고 나와라!”

         

       자기들이 안으로 들어갈 수 없으니 백우진을 밖으로 끌어내기 위해 온갖 공작을 펼치기 시작한 것.

         

       처음엔 무시할까도 했으나, 이내 적당히 어울려주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꾸헥!”

       “크헉!”

       “오고곡…!”

         

       하루에 열 명에서 열다섯 명 정도 자근자근 밟아주고 돌아오는 게 일상이 되었다.

         

       “어휴, 지겨워.”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돌아와 몸서리를 치며 제갈연지의 무릎을 베고 눕는 백우진.

         

       제 무릎 위에서 금세 평온한 미소를 되찾는 그를 보며 그녀는 궁금해졌다.

         

       아무리 상대하기 쉬운 자들이라곤 하나, 이겨야 본전이고 지면 잔뜩 잃기만 하는 비무였다.

         

       굳이 그런 비무에 끝없이 응해주는 게 궁금하여 그녀가 물었더랜다.

         

       “굳이 왜 상대해주시는 거예요…?”

         

       그러자 그는 더욱 제갈연지의 무릎 안쪽으로 파고들며 졸린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로 보는 게 사람이거든….”

         

       적당히 상대해주는 지금도 뭣모르고 달려드는 이들이 한둘이 아닌데, 아무런 대응 없이 침묵하고 있으면 얼마나 날뛸지 모른다는 이유에서였다.

         

       백우진의 목적은 명확했다.

         

       “지금 같은 분위기가 딱 좋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오로지 비무로밖에 달려들지 못하는 상황.

         

       호시탐탐 빈틈만 기다리는 쥐새끼들을 과감히 배제하고, 멧돼지처럼 달려드는 녀석들만 적절하게 요리해주면 되는 지금의 상황을 이어간다.

         

       “이러다 청룡단이든, 흑풍대든 누구 하나 도착하면 끝나거든.”

         

       기다리던 님들이 오실 때까지.

         

       그렇게 며칠이 흐른 뒤.

         

       이 상황을 종식시킬 무리가 백하현에 도착했으니.

         

       “청룡단이 왔다아!”

       “흐, 흑풍대도 왔어!”

         

       쌍방간에 의사소통이라도 했는지, 각각 남문과 북문으로부터 청룡단과 흑풍대가 동시에 백하현에 들어섰다는 소식이 방방곡곡 울려 퍼졌다.

         

       그와 함께 호시탐탐 장보도를 노리던 낭인들의 곡소리도 함께 울려 퍼졌다.

         

       “크흑! 이젠 끝이야….”

       “고수가 될 절호의 기회였건만!”

         

       그들이 등장한 이상 개개인의 다툼은 무의미해졌기에.

         

       천신만고 끝에 장보도를 손에 넣는다고 해도 무림맹과 사흑련의 주력 단체인 청룡단과 흑풍대의 손아귀를 벗어날 능력이, 그들에게는 없다.

         

       애초에 그럴 능력이 되었다면 그토록 장보도에 목을 매지도 않았겠지.

         

       “오, 온다.”

         

       끝과 끝에서 수십의 무사를 대동한 채 위풍당당하게 걸어들어온 두 세력은 섬서백가의 대문 앞에서 서로를 마주했다.

         

       정과 사.

         

       무림맹과 사흑련.

         

       청의로 몸을 두른 청룡단과 흑의로 몸을 두른 흑풍대.

         

       여러모로 대비되는 각 단체는 그들을 이끄는 두 수장의 모습 또한 대비되었다.

         

       한쪽은 말도 안 되게 젊었고, 다른 한쪽은 연륜을 잔뜩 머금었다.

         

       “청룡단주십니까?”

         

       먼저 말을 건넨 쪽은 흑풍대의 대주였다.

         

       “그렇소.”

         

       이에 대답한 청룡단주는 온통 흑색으로 무장한 무사들을 위시한 채 서 있는 사내를 보았다.

         

       짙은 남색 머리카락을 질끈 동여맨 젊고 수려한 사내.

         

       “흑풍대의 대주, 도경입니다.”

       “청룡단주 만승이오.”

         

       언제나 소문만 무성할 뿐, 모습을 내비친 적이 없던 도경을 처음으로 마주한 만승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소문대로 범상치 않은 자로다.’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로 이름 높은 독고천.

         

       그의 이름이 나올 때면 사파에서는 이에 지지 않겠다는 듯, 도경을 칭송했다.

         

       하지만 소문만 무성할 뿐, 실체가 드러난 적이 없어 모두가 독고천을 한 수 위로 올려놓는 추세였는데.

         

       ‘전혀 모자람이 없다!’

         

       독고천과 마주한 적이 있는 만승은 도경이 결단코 그의 아래가 아님을 온몸으로 느꼈다.

         

       “단주께서도 섬서를 혼란으로 몰아넣은 장보도 때문에 오셨겠지요.”

       “으음, 그렇소. 그것은 그대들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아오만.”

       “예, 맞습니다.”

         

       싱긋 웃는 얼굴로 대답하는 도경을 보며 만승이 말을 건넸다.

         

       “이미 우리 정파의 후기지수가 장보도를 손에 넣었음은 알 것이오.”

       “그렇지요.”

       “그런 상황에서 흑풍대가 나설 일은 없지 않을까 싶소만.”

         

       우리끼리 알아서 장보도 확인하고 마무리 지을 테니 너희는 그냥 빠져라.

         

       도경에게는 그의 말이 그렇게 들렸다.

         

       허나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으음, 만약 사파의 무인들이 장보도를 빼앗겠다며 날뛰면 곤란하시지 않겠습니까.”

       “허허….”

         

       흑풍대 또한 사파의 무인들에 속했다.

         

       이대로 자신들을 돌려보내면 곧장 강도로 돌변하겠단 말과 진배없는 말이었다.

         

       언짢은 듯, 어색한 웃음을 흘리는 만승을 보며 도경이 말을 이었다.

         

       “섬서에 들이닥친 혼란은 무릇 정파만의 문제도 아니요, 또한 사파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사료됩니다.”

         

       무공 수집에 열을 올리는 정파와 사파의 무인들도 더러 존재했으나, 섬서를 이토록 혼란으로 몰고 간 주범은 낭인 또는 정사지간의 무인들이었다.

         

       “하니.”

         

       도경이 멋들어진 미소를 그려내며 그에게 제안했다.

         

       “이번만큼은 손을 잡고 사태를 해결하심이 어떠십니까.”

         

       정중한 제안 속에 미처 숨기지 못한 악의가 느껴졌다.

         

       마음 같아선 단칼에 거절하고 싶지만, 그랬다간 더 큰 적을 상대해야 될 상황.

         

       만승은 한숨을 푹 내쉬곤 하는 수 없다는 듯 그의 제안에 응했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거절하기가 어렵겠구려.”

       “그럼 받아들이신 것으로 알겠습니다.”

         

       두 수장들의 대화로 어느 정도 갈등이 해결되는 듯하던 순간.

         

       “아주 웃기고들 있네.”

         

       조롱 섞인 말투와 함께 굳게 닫혀 있던 섬서백가의 대문이 활짝 열렸다.

         

       이윽고 드러난 것은 짝다리를 짚은 채 못마땅한 표정으로 이쪽을 흘겨보고 있는 사내, 백우진이었다.

         

       갑작스레 나타난 그의 모습에 도경은 눈살을 찌푸렸다.

         

       ‘드디어 만났다, 이 자식.’

         

       이미 한 차례 마주친 바 있는 두 사람.

         

       백우진은 그 아니, 그녀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살았으나 도경은 단 한 순간도 그를 잊은 적이 없었다.

         

       풍진문의 제자로 가장하여 용봉비무제에 대놓고 시비를 걸어 백우진과 대련을 하게 된 도경.

         

       그녀는 그때 경험한 패배를 잊을 수가 없었다.

         

       수없이 많은 대련을 경험하는 동안 그토록 치욕적인 패배를 겪은 적은 그날이 처음이었기에.

         

       더군다나 그는 자신의 정체가 풍진문의 제자 따위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놀라운데, 심지어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고 그대로 놓아주기까지 했다.

         

       그때부터 그녀는 제 아비인 흑사패황의 밑에서 초심으로 돌아가 스스로를 단련했다.

         

       ‘이 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언젠가 한 번쯤은 마주치게 될 그와의 재회를 기다리며.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을 노려보는 도경에게 가벼운 시선만 내던질 뿐, 별다른 반응 없이 대문을 나선 백우진.

         

       그는 상당히 언짢은 목소리로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장보도 주인은 쏙 빼놓고 나눈 합의에 내가 따라줄 거라 생각하쇼?”

         

       그런 거라면 오산인데.

         

       “지이이인짜 큰 오산인데.”

         

       그의 입가에 걸린 뺀질뺀질한 미소에 도경과 만승은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꼈다.

         

       

       그 미소가 마치, 앞으로 닥쳐올 미래가 결코 쉽지 않음을 예고하는 것만 같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근래 바쁘고 신경 쓰이는 일들이 우후죽순 생겨나는 바람에 집필 시간에 차질을 빚었습니다.

    저는 좀 유별나게도 글을 쓰기에 앞서 깨끗하게 씻고, 책상 정리를 싹 한 다음에 차분하게 앉아서 집중하는 타입인데,

    자꾸만 이 집중이 깨지는 일들이 발생하여 애를 먹고 있네요…

    주말 사이에 일 마무리 해서 최대한 집중하여 연재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고생 많으셨고, 저는 내일 또 찾아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편안한 밤 되셔요.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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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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