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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7

       프란체는 곧장 엑시드로 향했다.

         

       진 없이 온 적이 많긴 해도 오랜만인지라 다소 어색한 감이 적잖아 있었다.

         

       “…….”

         

       대충 둘러보니 술집에 상주하는 사람들은 프란체의 얼굴을 기억해 힐끔거렸을 뿐, 그 이상의 시선은 주지 않았다.

         

       저벅. 저벅. 프란체는 거침없는 발걸음으로 앞으로 나섰다. 접수처에서 접수원을 불렀다.

         

       “접수원?”

       “네?”

       “엑시드의 마스터를 만나러 왔어.”

       “죄송하지만 마스터는…….”

         

       프란체는 조용히 접수원을 쏘아봤다. 그림자가 일렁이며 서늘한 감각이 등골에 깃드는 듯한 살기 어린 시선.

         

       “…말씀은 드려볼게요.”

         

       접수원은 마지 못해 고개를 끄덕이곤 안쪽 방으로 들어갔다. 조금 기다려야 하나 싶었는데.

         

       “들어오시래요…….”

         

       1분도 지나지 않아서 허가가 떨어졌다. 프란체는 고개를 끄덕이곤 안쪽 방으로 들어갔다.

         

       “드디어 왔군.”

         

       셀다스는 마치 프란체가 올 줄 알고 있었다는 듯 여유로워 보였다.

         

       ‘저 건방진 태도는 여전하네.’

         

       책상에 다리를 올린 것도 모자라 꼬기까지. 귀족답지 않아 눈살이 찌푸려지는 예의범절이었지만, 딱히 뭐라 할 수는 없었다.

         

       ‘지금의 나는 협력자로서 온 게 아니라 고객의 입장으로 왔으니까.’

         

       게다가 이전, 아무리 협력 관계라곤 하지만 모옥의 습격 때도 예상치 못한 큰 도움을 받았다. 이는 프란체도 잊지 않고 있었다.

         

       “진 바렌베르크를 찾으러 온 거지?”

         

       셀다스가 말했다. 상세한 얘기를 할 준비가 된 건지 자세를 고쳐 앉곤 책상에 팔을 걸었다.

         

       “잘 알고 있네.”

       “우선 앉아라.”

         

       프란체는 팔짱을 끼곤 다리를 꼰 채 소파에 앉았다.

         

       “내가 공녀에게… 아니, 공작에게 말해줄 수 있는 건 한 가지. 협조는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프란체는 미간을 찌푸렸다.

         

       “설마 진이 정보를 차단한 거야?”

         

       대답이 없다. 그간 셀다스와 만남은 허투가 아니었다. 이는 긍정이라는 뜻.

         

       “미치겠네.”

         

       프란체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짓눌렀다. 그냥 편지만 남겨두고 떠난 것도 아니라 정보를 차단하고 갔다니. 완전히 예전부터 계획한 거 같지 않나.

         

       ‘그리고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초월의 노예 각인도 풀어냈고.’

         

       알아볼 게 산더미지만, 지금은 진을 찾아내는 게 가장 중요한 숙제다. 나머지는 그 이후에 해도 상관 없다.

         

       “절대 도와줄 생각은 없는 거지?”

       “일생일대의 부탁을 받은지라.”

         

       프란체가 알기론 셀다스는 그런 부탁을 들어주거나 약속을 이행하는 타입은 아니다. 분명 방법이 있을 터.

         

       “돈을 원해? 지금의 나라면 천문학적인 금액도 감당할 수 있는데.”

         

       프란체의 사업은 대성공을 이루다 못해 제국을 점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치품 사업을 독점하고 있는 것도 모자라 엘반 자작이 이런저런 사업에 발을 들이고 있으니 말이다.

         

       “돈이라, 그건 이미 많아서 말이지. 우리가 딱히 자본이 궁핍한 길드도 아니고.”

         

       예상밖이었다. 진이 사업을 알려주던 시절, 여담으로 얘기했던 ‘거절하기엔 너무 큰 금액이었다’ 작전도 실패하다니.

         

       “그럼 원하는 게 뭐야?”

         

       셀다스는 포기할 생각이 없어보이는 프란체를 보곤 고개를 휘저었다.

         

       “미안하지만, 일생일대의 부탁인지라. 들어줄 수 없으니 돌아가.”

         

       뿌득. 프란체는 어금니가 부서질 정도로 이를 악물었다. 강압적으로 나오긴 싫었지만, 어쩔 수 없지.

         

       “그럼 조건을 바꿀게. 우리가 하는 거래가 아니라, 내가 일방적으로 협박하는 거로.”

         

       그다지 흥미도, 반응도 보이지 않던 셀다스가 눈을 얕게 뜨고 프란체를 응시했다.

         

       “만약 엑시드가 진을 찾는 데 협력하지 않는다면 나는 반란으로 제국을 손에 넣어서라도 진을 찾을 거야.”

         

       새하얀 가면 사이로 보이는 셀다스의 휘둥그레진 눈.

         

       “…제정신인가?”

       “놀랍게도 제정신이야.”

       “허황된 소리 같은데.”

         

       제국은 대륙 최강의 국가. 아무리 백귀가 있다고 해도 숫자에서 압도적으로 밀린다. 게다가 최근엔 기사들을 전부 해임하지 않았는가?

         

       “그런 근거 없는 헛소리로 협박을 할 줄이야. 진 바렌베르크가 그리 가르쳤을 거라곤 생각 들지 않는데.”

         

       물론, 프란체도 아무 생각없이 내뱉은 말은 아니었다. 모든 것에는 근거가 있는 법.

         

       “그거 알아? 나는 사령술을 사용할 수 있어.”

         

       사령술. 죽은 자를 일으켜 사역마로 부리는 마법. 지속 시간이 낮아 반란에 도움이 되진 않을 거 같다만…….

         

       “근데 내 사령술은 좀 특별해.”

         

       프란체는 손바닥을 펼쳐 새까만 구체를 만들었다. 어두컴컴한 마력이 휘몰아치며 그림자가 퍼져 나간다.

         

       “…이게 무슨.”

         

       셀다스의 눈에 들어온 건 어둠을 뒤집어쓴 마수 하나. 종류는 외눈박이 고블린.

         

       “나는 내가 거둬들인 마수들을 저장할 수 있어. 한 번 죽으면 끝이지만, 전투가 일어나면 계속 보충할 수 있지.”

         

       프란체는 픽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얼마전에 재앙의 파도를 막으러 갔던 거 알지? 그때 회수한 마수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해?”

         

       당혹감에 말을 잇지 못하는 셀다스. 마수를 저장하는 사령술은 들어본 적도 없다. 심지어 재앙의 파도까지 다녀와 보유하고 있는 숫자도 미지수.

         

       ‘백귀를 앞세워 그 마수 군단을 이용하면 반란은 충분히 가능하겠군.’

         

       제국에 혼란이 오면 엑시드도 곤란한 건 마찬가지다. 아무리 현존하는 최고의 암흑 길드라 해도 제국의 일부분에 불과하니 말이다.

         

       “엑시드의 존속을 걸고 협박하는 거군.”

       “맞아. 그러니 내게 협력해.”

         

       툭. 툭. 검지로 테이블을 두드리며 옅은 한숨을 내뱉은 셀다스. 이내 고개를 휘젓더니 결정을 내렸다.

         

       “협력하겠다. 진 바렌베르크도 사정을 말하면 이해해주겠지. 다만, 찾을 수 있다고 단정은 못 짓겠다.”

         

       진 바렌베르크는 소드 마스터지만, 초월자의 경지에 오른 인물이다. 일류 어쌔신보다 기척을 숨기는 것이 가능하고 무력 또한 강해 함부로 건드리는 것도 불가능.

         

       다행히 이 점은 프란체도 알기에 양보했다.

         

       “그건 이해할게. 진은 일반적인 사람이 아니니까. 대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고 맹세해.”

         

       이거로는 셀다스를 협박하는 데 한없이 부족하다. 프란체는 그림자 마수를 회수하곤 말을 이었다.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고 꼼수를 부린다면 엑시드는 물론이고, 프레이아 백작가도 무사하진 못할 거야. 잘 판단해.”

         

       일순 불쾌감에 얼굴이 일그러진 셀다스는 프란체와 시선을 마주했다. 한치의 흔들림도 없는 눈동자. 저건 거짓이 아니다.

         

       “…가문까지 인질로 잡아 협박할 줄은 몰랐는데.”

       “너의 행실에 대한 업보라고 생각해. 그간 나를 무시했잖아.”

         

       쯧, 셀다스는 혀를 차곤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어떻게든 진 바렌베르크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지. 무언가 발견하면 전서를 보내겠다.”

         

       프란체는 싱긋 웃으며 “말이 잘 통해서 다행이네.”하곤 자리에서 일어나 술집을 나왔다.

         

       그토록 엿 먹이고 싶었던 셀다스에게 한 방 먹여줬음에도 프란체는 전혀 즐겁지 않았다.

         

       옆에서 같이 웃어주고, 잘했다고 칭찬해주는 진은 없으니까.

         

       ‘정신 차리자.’

         

       지금은 그 어떤 때보다 중요한 순간. 사소한 일 하나에도 집중해야 하는 시기다. 프란체는 고개를 휘젓곤 공작저로 돌아갔다.

         

       이제 남은 계획을 세울 차례다.

         

         

       * * *

         

         

       진을 다시 볼 수 있을 거란 희망이 생긴 프란체는 의지를 되찾았다. 정확히는 무너지지 않기 위해 억지로 붙잡고 있는 거지만.

         

       프란체는 공작령의 업무를 능숙하게 처리했고, 이를 도와줄 감독관들도 추려내서 뽑아냈다.

         

       “플뤼겔? 지금까지 고생했어.”

         

       프란체가 싱긋 웃자 플뤼겔은 깍듯이 허리를 숙였다.

         

       “아닙니다, 공작님. 해야하는 일을 했을 뿐입니다.”

         

       언뜻 보기에 미소를 되찾고 정신을 회복한 것 같지만, 어디까지나 연기에 불과했다. 프란체에게는 이 모든 일이 진을 찾기 위한 준비에 불과했으니.

         

       “사용인들은 어떻게 됐니?”

       “추천서를 중심으로 뽑았습니다.”

       “그럼 다들 착실하겠네.”

       “그렇습니다.”

         

       이거로 사용인은 끝났고. 기사들은 케일이 알아서 뽑았을 테니 넘어가도 되겠다.

         

       “공작령 업무는 이제 간단한 거밖에 남지 않았으니 감독관에게 맡겨도 괜찮겠네. 플뤼겔? 조금만 더 공작령의 관리를 부탁해.”

         

       플뤼겔은 “맡겨만 주시길.”하곤 다시 허리를 숙였다.

         

       ‘감독관들은 자백의 저주로 심문했으니 쓸데없는 걱정을 할 필요는 없고.’

         

       이제 진을 찾는 데에만 집중하면 된다.

         

       “일은 끝났으니 나가보렴.”

       “예. 평안한 하루 되시길.”

         

       플뤼겔이 집무실에서 나가고, 프란체는 곧장 종을 울렸다. 헬레나가 서둘러 들어왔다.

         

       “헬레나. 카자르와 케일, 라데아를 불러주렴.”

       “네, 알겠습니다.”

         

       헬레나에게 명을 내리고 잠시 기다리자 세 명이 집무실로 찾아왔다. 프란체는 곧장 본론을 꺼냈다.

         

       “나는 진을 찾을 거야.”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주억이는 케일과 라데아. 카자르가 물었다.

         

       “공작님, 엑시드와 협상은 잘 됐나요? 그쪽이 도와줄 거 같진 않은데.”

       “잘 얘기하니 진을 찾는데 협조해주겠다고 했어.”

       “진 씨와의 약속을 어겼나보네요. 일생일대의 부탁이라 했는데.”

       “단순한 거래가 아니라 협박을 했으니까. 의리가 없는 놈이기도 했고.”

         

       카자르는 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 눈에 뵈는 게 없는 프란체라면 터무니없는 협박을 했을 터. 굳이 내용을 물어보진 않았다.

         

       “카자르? 모두에게 계획에 대한 설명을 부탁해.”

         

       카자르는 “네, 알겠어요.”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모두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이전, 제가 진 씨를 검사했을 때 발견한 마법진이 두 개가 있었어요. 인과율에 크게 어긋나는 마법이었죠.”

         

       마법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고개를 주억이며 카자르의 말을 경청하는 케일과 라데아.

         

       “당시의 저는 성취가 부족해 더 파고드는 건 불가능했지만, 초월 마법사에 도달한 지금이라면 치료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카자르는 “어디까지나 가능성에 불과하지만요.”하고 말을 덧붙였다.

       

       “진 씨에게 그 마법진을 새긴 건 초월 마법사예요. 인간에게 마법을 새기는 작업은 워낙 복잡해서 자칫하면 폐인이 되는데, 그런 세밀한 마력 제어가 가능한 건 그 사람밖에 없죠.”

       

       진 씨도 그렇게 말했고요, 하고 카자르는 대망의 목적을 말했다.

         

       “첫 번째 방법이 통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 만약을 대비해 진 씨를 수색하는 동시에 초월 마법사를 만나야 해요.”

         

       케일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진심인가? 그 제멋대로인 초월 마법사와 만나는 건 황실도 쉽지 않은데?”

         

       프란체가 “방법은 있어.”하곤 말을 이었다.

         

       “내가 어떻게든 초월 마법사와의 만남을 주선할 거야.”

         

       프란체가 직접 나선다면 그 초월 마법사도 테이블에 나올 가능성이 크다. 진과 관계되어 있기도 하고, 자신을 죽이려는 성녀의 협력자니까.

         

       “그러니 다들 이 부분은 크게 신경 쓰지 말고, 수색에만 집중해줘.”

         

       라데아가 손을 들며 물었다.

         

       “초월 마법사와 만났을 때 저희가 해야 할 일은 뭔가요?”

         

       프란체는 엄숙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초월 마법사가 협조적으로 나오지 않을 경우, 전투가 일어날 수도 있어. 힘을 써서라도 그 마법사의 입을 열어야 해.”

         

       카자르는 결국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기에 그리 놀라진 않았지만…….

         

       케일과 라데아의 표정은 사색으로 변했다.

       

       초월 마법사를 상대로 힘을 쓰겠다니, 이 공작님은 지금 진을 찾는 데 혈안이 되어 지금 제정신이 아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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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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