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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7

       게다가, 하늘이는 양팔을 벌리고 있었다.

        

       만약에 앉거나 선 채로 그 자세를 취했다면 누가 총이라도 겨누고 있는 줄 알았을 법한 자세였다.

        

       그러니까…… 하늘이는 지금 저 위로 올라오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위에서, 입술이 입술에 닿기 직전까지 얼굴과 몸을 밀착시키라는 말이기도 했다.

        

       “……저기, 하늘아.”

        

       나는 얼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응. 나는 그렇게 생각해.”

        

       돌아온 하늘이의 대답은 굳건했다.

        

       “자극적인 기억이 필요한 거잖아? 그리고 ‘자극적인’ 기억은 몇 번이고 반복하다 보면 그 자극성이 점점 희석되는 법이니까. 이렇게 조금씩 강도를 높여가야 한다고 생각해.”

        

       ‘조금씩?’

        

       지금 ‘조금씩’이라고 한 건가?

        

       내가 생각하는 ‘조금’과 하늘이가 생각하는 ‘조금’의 틈이 대체 얼마나 큰 건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아니 물론 수치화되지 않은 감각일 뿐이니 개인마다 다를 수는 있겠지만—

        

       “그리고, 우리는 이미 이 단계는 지났다고 생각해.”

        

       하늘이가 누운 채로 말했다.

        

       “지난번에 관찰 차에서. 기억 안 나?”

        

       “…….”

        

       아, 맞다.

        

       그때는 위아래가 반대이긴 했지만, 하늘이가 취하고 있는 구도와 비슷하긴 했다.

        

       그때는 ‘침대 위’가 아니었고, 하늘이가 ‘위’에 있긴 했지만.

        

       …….

        

       사라의 속이 부글부글 끓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그 말에 차마 반박하지는 못하겠는 모양이다.

        

       확실히, ‘그런 상황’을 이미 한 번 겪었으니 그 이상으로 자극적일 필요가 있기는 했다.

        

       게다가, 지금은 그런 걸로 싸우고 있을 시간도 없었다. 수아가 샤워 중이고 소희가 업무 준비 중이긴 했지만 둘 다 조만간 돌아올 테니까. 특히 소희는 조금 일찍 돌아올 수도 있다.

        

       “……알았어.”

        

       나는 결국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흡.”

        

       그리고 기합을 주듯 소리를 내고, 양손으로 볼을 찰싹찰싹 두드렸다.

        

       지금부터 하려는 일은 개인적인 이유가 아니라 필요에 의한 거니, 어쩔 수 없는 행동이다. 나는 그렇게 속으로 몇 번 중얼거리고, 몸을 움직였다.

        

       침대가 가까워진다. 침대 모서리에 걸쳐 굽혀진 하늘이의 다리가 보였다.

        

       ……그 다리에 닿지 않고 하늘이의 위로 올라갈 방법은 없어 보였다. 애초에 ‘몸과 몸’이 맞닿아야 했으니까.

        

       하늘이의 왼쪽 허벅지 옆에, 내 오른쪽 무릎을 올렸다. 침대 위로 기어 올라가듯 나는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다행히 하늘이도 나도, 아직 파자마 차림이라 맨살이 닿을 일은 없었다.

        

       닿을 일은 없었지만—

        

       아무래도 잘 때 편하게 입기 위한 옷인 파자마는 소재가 부드럽고 얇아서, 그 너머로 체온을 느끼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부드러운 면 너머로 희미하게 느껴지는 하늘이의 체온.

        

       심장이 마구 뛰었다. 쿵쿵 뛰는 심장이 나 때문에 뛰는 것인지, 아니면 사라 때문에 뛰고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두 사람 다 심장이 마구 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여자 건 남자 건, 이 상황은 부끄럽고 당황스러운 상황이 맞았으니까.

        

       게다가, 하늘이는 내가 자기 몸 위로 기어 올라가는 와중에도 움직임 없이 가만히 있었다.

        

       내 양 무릎이 모두 침대 위로 올라갔다.

        

       나는 하늘이 위에 올라탄 채로 엎드린 모양새가 되었다. 아직 배와 가슴이 맞닿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 자체로 이미 엄청나게 민망했다.

        

       이 정도로 된 거 아닐까?

        

       여기서 얼굴만 가깝게 다가가면 되는 거 아닐까? 이미 정신이 혼미했다. 그게 여자에게 별다른 내성이 없던 내 전생의 영향인지, 아니면 정말로 내 안의 사라가 튀어나오기 직전이라 그런 건지 잘 모르겠지만.

        

       하늘이는, 나를 똑바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손, 잡아줘.”

        

       하늘이가 작게 속삭였다.

        

       붉게 물든 하늘이의 얼굴에서 시선을 옮겨, 하늘이의 양손을 올려다보았다.

        

       그래, 올려다보았다.

        

       하늘이는 여전히 양손을 자기 얼굴 옆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그 손들을 잡으려면 나도 팔을 살짝 위로 올려 벌려야 했다.

        

       그리고 내가 장담하건대, 사라의 몸으로 그런 짓을 했다가는 그대로 자세가 무너질 거다. 아마 그대로 기지개 켜는 고양이 같은 자세가 되어버릴 게 뻔하다.

        

       ……후, 냉정해지자.

        

       ……아니, 냉정해지면 안 되나?

        

       정신이 어질어질할 정도로 자극적인 상태를 만들어 의식이 전환되도록 해야 하는데, 내가 이성을 가지고 버티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은데.

        

       ……에라 모르겠다.

        

       나는 오른손을 하늘이의 오른손에 올렸다.

        

       살짝 촉촉한 손바닥 위에, 나의 손바닥이 겹친다.

        

       ……하늘이는 그대로 손가락을 움직여, 내 손가락 사이사이에 자기 손가락을 끼워 넣었다.

        

       그리고 그대로 꽉 잡았다.

        

       우리 둘의 오른손은 그대로 손깍지를 낀 상태가 되었다.

        

       “잡아줘.”

        

       ……아니, 아직 내가 손가락을 쭉 펴고 있었으므로, 하늘이 혼자 내 손을 꽉 쥐고 있는 형태가 되었다.

        

       하늘이의 ‘잡아달라’는 말은, 나도 그렇게 깍지를 껴달라는 말일 거다.

        

       ……좋아, 침착하자.

        

       ……아니, 침착하면 안 되지.

        

       두 마음이 마구 격돌했다.

        

       솔직히 말해, 하늘이는 귀엽다. 예쁘다. 몸매도 탄탄했다. 아마 같은 반에 남자애들이 있었다면 사라와 마찬가지로 시선을 받았을지 모른다. 어쩌면 집안 사정과는 상관없이 인기가 있었을지 모른다. 성격도 좋고, 착하고 예쁜 애가 인기가 없을 리 없으니까.

        

       그러니까…… 아무리 사심이 없다고 속으로 되뇌어도, 그건 거짓말일 수밖에 없는 거다.

        

       그런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늘이는 순전히 친구로서 나를 돕고 있는 거고, 나는 도움을 받고 있을 뿐이니까.

        

       이런 행동으로 그 사심을 채워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에 피어오르는 기쁜 마음을 차마 감출 수가 없었다.

        

       “다른 쪽 손도.”

        

       “…….”

        

       인간적으로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가슴 한구석에서는 ‘하늘이가 허락했잖아’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최근에는 그런 감정을 의식해서 조금 거리를 두기로 했었는데.

        

       지금 상황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냐고, 내 안의 내가 끊임없이 속삭이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왼손을 들었다. 힘이 들어간 오른팔이 덜덜 떨려서, 나는 얼른 왼손을 하늘이의 손 위에 올려두었다.

        

       하늘이는 곧장 내 왼손도 깍지 꼈다. 이제는 함부로 벗어날 수도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팔이 그만큼 벌어져서, 하늘이와 내 얼굴이 한층 더 가까워진다.

        

       팔이 벌써 후들거렸다. 사라의 몸은 이런 자세를 완벽하게 유지하기에는 아직 체력이 부족했다.

        

       “…….”

       “…….”

        

       나와 하늘이, 두 사람의 시선이 아주 가까운 곳에서 얽혀들었다.

        

       숨이 가빠졌지만, 이내 무언가 깨닫고 그대로 숨을 들이켜버렸다.

        

       내 숨이 가빠지면, 하늘이 얼굴에도 내 숨결이 가서 닿을 테니까. 혹시 불쾌하지는 않을까?

        

       하지만, 하늘이의 표정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딱히 불쾌하다는 표정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머리는 풀어 헤친 채.

        

       그래, 하늘이는 아직 머리를 뒤로 묶지 않은 상태였다. 일요일 아침이었고, 아직 모두 씻지도 않은 상태였으니까.

        

       평소에는 보기 힘든 하늘이의 밤색 머리가, 침대 위로 흩어져 있었다.

        

       침대에 셋이 나란히 누워 자느라, 심지어 어느 순간에 끼어든 소희까지 끼어 자느라 조금은 더웠는지, 하늘이의 얼굴은 살짝 땀으로 젖어 있었다.

        

       그리고 그 얼굴에 머리카락이 몇 가닥,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활달한 하늘이의 평소 모습과는 대조되는, 뇌쇄적인 모습.

        

       “이제, 천천히 다가오면 돼.”

        

       하늘이의 그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따랐다.

        

       안 그래도 거의 바로 앞까지 다가가 있던 얼굴을 천천히 내린다. 시야 안에 하늘이의 얼굴이 다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가까워지고, 한 치 앞보다 더 가깝고, 얼굴을 조금만 움직여도 코와 코가 닿을 수 있을 정도의 거리까지.

        

       ……아직도 의식은 전환되지 않았다.

        

       대체 얼마나 더 가까워야—

        

       하고 생각하던 와중에, 드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드륵, 드르륵……?

        

       그 소리를 듣고 나서야, 나는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드는 기분이 들었다.

        

       아, 그래, 그랬지, 참.

        

       이곳에 있는 것은 나와 하늘이뿐만이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분위기에 몸을 맡기고 있어서 주변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주변을 의식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생각 자체를 못 하고 있었다는 것이—

        

       맞는 말—

        

       *

        

       “흐핫!”

        

       마치 정신을 잃은 듯 사라의 눈이 서서히 감기다가, 번쩍 떠졌다.

        

       그리고 절대로 정신을 잃지 않겠다는 듯, 고개를 옆으로 휙 움직였다.

        

       털썩, 하고 사라의 얼굴이 완전히 떨어졌다.

        

       ……단, 유하늘의 얼굴이 아니라 침대 쪽으로.

        

       사라는 하늘이 얼굴 옆에 그대로 얼굴을 묻고 푹 쓰러진 것 같은 모습이 되었다.

        

       “…….”

        

       그리고 그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있는 소희.

        

       “……어…….”

        

       소희는 잠깐 멍하니 서 있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그제야 경악했다는 듯 입을 크게 벌렸다.

        

       “자, 자자자자자, 잠깐! 너희들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야!?”

        

       소희가 그렇게 외쳤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야, 크게 상심한 사람이 하나 있었으니까.

        

       당연히 그 사람은 정신을 잃고 쓰러진 사라에게 그대로 깔린 하늘이었다.

        

       여전히 사라의 양손을 꽉 잡은 하늘이는, ‘아, 다 됐었는데.’하는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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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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