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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7

     노스트럼과 테르시안, 왕국과 제국의 교육격차에 대해 말하자면 논문도 쓸 수 있다.

     하지만 이 논문, 결국 불쏘시개다.

     왕국 입장에서 말하느냐.

     제국 입장에서 말하느냐.

     양국의 입장이 결이 다르기 때문에, 아무리 자신의 방식을 상대에게 이야기해도 결국 상대는 이해할 수 없다.

     도시에 사는 사람과 시골에 사는 사람이 서로의 고충을 이해할 수 없듯.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이 서로의 고난을 이해할 수 없듯.

     왕국과 제국은 서로 교육을 통해 바라는 이상이 다르기에, 교육에 있어서 문화적 수준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연금술.

     “바토리 부총장. 당신은 이곳에 오기 전, 왕국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을 겁니다.”

     황태자의 측근으로서.

     “하지만 이 정도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겠죠. 안 그렇습니까?”

     “…….”

     제국의 그림자가 보내오는 보고서만 보고 판단을 하든 아니면 소문으로 듣든, 실제로 그걸 직접 겪어보고 경험하면 이야기는 달라지는 법.

     “아카데미 1주일. 어떤 기분이었습니까? 연금술뿐만 아니라, 부총장으로서 지켜본 왕국의 ‘미래’에 대한 소감은.”

     “…이래도 되나, 싶었네요.”

     “어떤 의미에서?”

     “이게 노스트럼의 미래?”

     바토리 부총장이 대놓고 빈정거리듯 말한다.

     “항상 그랬지만, 이번에는 특히 더 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항상?”

     “…뭐, 노스트럼의 미래를 이끌어나가는 아이들이 매 세대 그렇잖아요? 그래도 제가 이사장님보다 몇 년은 더 산 입장인데, 왕국 귀족들의 평균 정도는 제국에서도 풍문으로 듣고는 그랬답니다.”

     “그렇습니까.”

     미심쩍은 부분이 살짝 감돌기는 하지만, 심증일 뿐이다.

     “왕국의 소식을 듣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

     “쉽지 않은 거지, 아예 듣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이해했습니다.”

     일단 눈앞의 바토리 부총장은 올해로 나이가 30대 초반인 제국의 고위층이자 천재 연금술사.

     괜히 여기에서 함부로 설레발을 쳤다가는 긁어 부스럼이 될 수 있으니, 딱 그 정도로 대해야 한다.

     “예전부터 저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노스트럼이 발전이라고는 전혀 없이 계속 500년 동안 쳇바퀴 굴러가듯 역사가 흘러온 건, 결국 왕국 전체에 팽배한 ‘영웅만능주의’ 때문이라고.”

     “…….”

     “갑작스럽게 왜 영웅만능주의를 꺼내느냐. 그야 당연히 이 사상 때문에 그 어떤 학문도 발전할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노스트럼의 모든 초점은 ‘영웅’에 맞춰져 있다.

     “검술과 마법, 이 두 가지 부분에 관해 연구해온 노력을 조금이라도 다른 부분에 퍼뜨리거나 그랬다면, 지금쯤 제국과 비슷하거나 비슷하지는 못하더라도 한 세대 정도 뒤처지는 마도공학도 개발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 영웅이 등장해서, 말이죠?”

     바토리 부총장이 비꼬듯 빈정거렸다.

     “제국이 마도공학으로 압도적인 실력을 보이게 된다고 했을 때, 그 마도공학으로 이 나라가 위험에 빠지게 된다고 했을 때, 왕국은 언제나 그랬다는 것처럼 영웅이 튀어나오겠죠. 이 마도공학의 불모지에서 제국의 모든 공방 기술자 뺨을 때리는 초천재가 태어난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그렇게까지 자조적으로 말씀하실 것까지는 없습니다만, 저도 비슷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영웅이 지브롤터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노스트럼 왕국을 수호할 영웅이 되겠죠.”

     “어머나. 새로운 수호자가 나타나는 걸 바라지 않는 건가요?”

     “바라지 않는다거나 질투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나타났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흐응…?”

     흡혈귀나 엘프 등에 관한 추측은 보류.

     오로지, 교육과 기술, 문화의 관점에서 이 여자를 대해야 한다.

     “시대가 변하면 수호자도 바뀌어야 하는 법. 500년 동안 왕국을 위해 가문이 대대로 충성해왔다면, 이제는 좀 편하게 살아도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500년 동안 조상님들이 그렇게 왕국을 위해 열심히 살아오셨는데, 그 영광을 자기 대에서 끊어버리시겠다?”

     “끊는다는 게 아닙니다. 더 이상 협곡을 지킬 필요가 없어진다면, 그에 맞게 새로운 시대의 흐름에 맞춰 살아가고자 하는 것뿐이죠.”

     “…….”

     “500년 동안 노스트럼 왕가를 지켜온 수호룡이 목줄을 끊고 하늘로 날개를 펼치고 날아간 것처럼, 지브롤터도 그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을 몇 번이고 해왔습니다.”

     은근하게, 뉘앙스를 살짝 풍긴다.

     “지브롤터는…음, 아니죠. 이건 지금 이야기할 게 아니죠.”

     실수한 척, 자신도 모르게 본심을 흘린 척.

     “하여튼 저, 그레이 지브롤터는 왕국이 여러모로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오로솔 아카데미에서 보고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왕국 귀족들이 전통과 과거를 또다시 답습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황태자에게 어느 정도까지 들었는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렇게 직접 본인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다면 더 확실하게 판단할 수 있겠지.

     “대학원이 만들어진다면, 노스트럼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적어도 평민들이 사회적으로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기회는 생겨나겠죠.”

     “그 시간이 엄청 길고, 나중에 그레이 지브롤터가 노인이 되어서도 성과가 나지 않을 수 있는데?”

     “100년 뒤의 노스트럼, 혹은 노스트럼이 아니게 되었을지라도, 인류가 멸망하는 게 아니라면 분명 그 뒤에는 성과가 있을 겁니다.”

     “…….”

     “괜히 300명 중에 시험이라는 방식으로 여러 학생을 입학시킨 게 아닙니다. 아직은 부유층이 대부분이기는 하지만, 언젠가 오로솔 아카데미에도 평민들이 하나둘 입학하기 시작하겠죠. 힘든 환경 속에서도 주변의 역경을 이겨내고 당당히 시험에 합격한 이들이.”

     그건 노스트럼의 역사가 증명한다.

     “영웅이 언제까지 계속 칼 들고 지팡이 들고 할 수는 없죠. 때로는 깃털 펜을 든 영웅도 나타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영웅만능주의를 그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은 처음 보네요.”

     “비록 제가 17년을 살았지만, 제국의 이런저런 수준을 알게 된 지 불과 채 수년이 되지 않았지만, 노스트럼의 교육 수준은 영웅이 필요할 정도로 심각하니까요.”

     이제부터, 슬슬 떡밥을 던진다.

     “노스트럼에 필요한 건 한 명의 영웅이 매번 위기를 극복하는 게 아니라, 다수의 평민이 서로 힘을 합쳐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그걸 위해서는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평민들 스스로 깨우쳐 자기 스스로 영웅이 될 수 있음을 깨달을 수 있어야겠죠.”

     아직 이른 개념이기는 하지만, 합스베르크 ‘황제’가 그런 말을 했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누군가의 백성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시민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해.

     시민.

     나로서는 그다지 와닿지 않는 단어였지만, 그 단어에 포함된 의미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바토리 부총장. 당신이 마도공학을 연구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당신이 제국신문을 상대로 인터뷰한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아카데미 부총장으로 선정되고 난 뒤, 공식 석상에서 노스트럼에서 어떤 활동을 할 것이냐는 기사였죠.”

     “그거, 벌써 4개월도 전의 신문인데.”

     “예. 하지만 기억하고 있습니다. 바토리 부총장. 당신은 ‘동료’가 필요한 거 아닙니까?”

     바토리 부총장이 혀로 입술을 핥으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린다.

     “인간의 생은 유한하고 짧지만.” 

     “학문은 무한하다. …정확히 아시네요?”

     “기억에 남는 문구라서.”

     아스타시아와의 대화를 통해.

     황태자의 최측근이라는 정보를 통해.

     그리고 이 여자의 뒷배경에 대한 추측을 통해.

     “바토리 부총장. 당신은 굉장히 대단한 업적을 역사에 남기고 싶어 합니다.”

     인간이든 아니든, 지성체로서 가진 근원적인 욕망을 자극한다.

     “그것은 짧은 인간의 삶으로는 끝나지 않는, 인류 역사에 남을 명예로운 업적.”

     다른 모든 건 차치하고, 내 앞에 있는 이 ‘바토리’라고 자칭하는 여자의 가장 궁극적인 욕구를 파헤친다.

     “누군가는 영웅이 되고 싶어 하며, 누군가는 자신의 이름으로 된 제국을 세우고 싶어 하며.”

     “……!!”

     “또한 누군가는, 자신이 발견한 새로운 이론을 좀 더 많은 이들이 이해하고 공감하며, 토론하고 논의하여, 그 발견의 위대함을 찬양하고 숭배하기를 바랄 수도 있겠죠.”

     “하, 하하….”

     바토리 부총장이 다리를 꼬며 느긋하게 소파에 등을 기댄다.

     “재미있는 말씀을 하시네요, 이사장님.”

     여유로워 보이지만, 전혀 여유롭지 않다.

     “그러는 이사장님이야말로, 도대체 뭘 원하시길래 제게 이런 말을 하는 거죠?”

     “서로 본심을 숨긴 채 대화를 하는 이상, 서로 탐색하고 겉돌며 맞물리지 않는 대화가 지속되는 건 당연지사. 그러니 본심을 분명히 말하도록 하죠.”

     여유를 가진 건 이쪽.

     “저, 그레이 지브롤터는 다른 귀찮은 일 없이, 죽을 때까지 1년 365일 내내 아스타시아 폰 테르시안과 사랑을 나누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을 뿐입니다.”

     “……예?”

     바토리 부총장의 여유가 사라졌다.

     “매일 아침 그녀가 깨기 전에 다가가서 아침이라고 속삭이며 잠을 깨워주고, 좀 더 자고 싶다는 그녀를 안고 씻겨주고, 그 전에 준비한 아침 식사를 함께 먹으며 일과를 정하고,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그녀를 안아주며 피로를 풀어주고, 함께 침대에 누워 같은 침대에서 온기를 나누는 편안한 일과를 보냈으면 합니다.”

     “자, 잠깐.”

     “지브롤터의 협곡에서 평생을 울타리 안 가축처럼 지내는 게 아니라, 자유롭게 둘이서 전 세계를 누비며 여행을 다니고 사진도 찍고 경험을 공유하며 어떤 경험이든 함께 나누고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저기요.”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 나중에 아이가 생기기라도 한다면, 그 때는 태어날 아이가 그 어떤 주변의 위해나 역경에도 상관없는 환경에서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살게 하고 싶습니다.”

     “…….”

     “그러기 위해서 여러 가지 고민을 해봤더니, 역시 그게 제게는 가장 나은 삶이라서요. 그레이와 아스타시아라는 인간 둘이서 함께 지내기에는, 지브롤터와 폰 테르시안이라는 성씨와 핏줄이 있으니 그걸 무시할 수 없잖습니까.”

     

     바토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제게 지브롤터 변경백으로서 노스트럼을 위해 목숨과 충성을 바치게 하는 것, 싫습니다.”

     자.

     “제국에서 살다 온 아스타시아를 이런 불편하고 낙후된 곳에서 살게 할 생각도 없습니다.”

     그레이 지브롤터가 하는 행동의 모든 원리는 아스타시아 폰 테르시안을 위해서라는 사상의 뿌리를 제시했다.

     “아스타시아가 이 왕국 어디를 여행가도 불편함을 겪지 않게. 씻을 때 따뜻한 물이 나오고, 음식을 먹을 때 위생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제국민이라고 동네 아이가 돌을 던지는 일이 없도록 하며, 호텔 곳곳마다 보급된 마도공학 연금술 기계들이 마법 없이도 여름에는 시원하게, 겨울에는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세상.”

     “…….”

     “제국 역사학자 중에는 그런 이야기를 하는 이들이 있다죠? 우리 제국이 현재 마도공학의 발전으로 ‘현대문명’을 누리고 있다면, 저기 왕국은 영웅만 믿고 사는 ‘중세 히어로 랜드’라고. 단시간에 중세를 탈피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지금부터 시작하면 10년 뒤에는 근대 정도는 따라잡을 수 있겠네요.”

     그레이 지브롤터가 바라는 ‘노스트럼의 근대화’는.

     “긴말하지 않겠습니다.”

     모두 한 사람만을 위하여.

     “이 나라를 아스타시아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협조해주셔야겠습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기에 걸려서 오늘 상태가 영 안 좋습니다
    원래는 좀 더 뒷내용이 붙어야 하는데, 컨디션이 좀 안좋아서 분량이 평소보다 조금 적습니다
    잠깐 쉬고 오겠습니다
    뒷 내용은 다음 편에 싣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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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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