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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7

       먹구름에 의해 유난히 어둑하고도 음산함이 감도는 숲은 소란스러웠다.

       비가 오려는 건지 바람이 나뭇잎을 강하게 어루만졌고, 그때마다 음산하고도 오싹한 기운이 강해진다.

         

       밤의 숲이 위험한 이유는 어두운 것도 있으나 숲이 가진 특유의 사나움이 좀 더 진해져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허나.

         

       “-몸을 숨기기에 적당한 날씨군.”

         

       누군가에겐 이러한 음산함과 사나움이 더없이 친근하게 다가오듯이, 어느 사내는 음산한 숲을 마냥 아늑하게 느끼며 바위를 침대 삼아 누워 있을 따름이었다.

         

       뚝, 뚝.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한 비.

       어느새 투두둑 거리며 빗방울이 거세진다.

       그러나 그는 이 비조차 반갑다.

       덕분에 소리와 흔적조차 알아서 지워주지 않는가.

         

       “오늘은, 운이 나쁘지 않군.”

         

       나지막한 읊조림을 내뱉으며 온몸으로 비와 숲의 흙내음을 즐기는 그였다.

         

       터벅.

         

       “혼자 한가하게 있으니 좋아?”

         

       혼자만의 시간이 끝났음을 알려주는 흙탕물을 튀기는 발걸음.

       놀라진 않는다, 발걸음이 다가오는 걸 진작 알고 있었으니까.

         

       “돌아왔나. 늦었군.”

       “…진짜 너무하네, 누군 일하고. 누군 여유롭고.”

       “각자가 맡은 역할이 다를 뿐이다.”

       “말은 번지르르하지.”

       “…….”

         

       그는 동료의 불손한 대꾸에도 딱히 타박하지 않았다.

       저런 칭얼거림이야 항상 듣던 것인지라 일상 속 참새의 지저귐처럼 들린다.

       물론 아무에게나 관대한 것은 아니었다.

         

       “데리고 왔군.”

       “시체만 건진 거야.”

       “그래도 대단한 건 대단한 거다. 훌륭하다, 2호.”

         

       지하에 묻히며 유골조차 못 건질 줄 알았던 ‘사제의 시체’를 그녀는 멋지게 회수했다.

       비록 죽었지만, 저 사제의 몸에 있는 성력을 고려하면 위험이 뒤따르더라도 회수할 만한 값어치가 있다.

       

       능력이 있는 자에겐 그만한 대우와 친절을.

         

       사내의 좌우명이었고, 그는 여성에게 아낌없는 칭찬을 보였다.

         

       …막상 친절을 받은 이는 떨떠름할 뿐이긴 했지만.

         

       “2사도라 불러줘, 그게 언제 적 호칭인데.”

       “벌써 그렇게 됐던가.”

         

       시간이 빨라….

         

       다시금 나지막한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그였고, 2사도라 불린 여성은 고개를 저었다.

       가끔 보면 그는 학자 같은 면모를 보일 때가 있다.

       혹은 진정으로 구원 활동 등에 최선을 다하는 사제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정도로 사내의 선량한 분위기와 이지적인 눈은 조직과 어울리지 않았다.

       겉보기만 해도 매력적이기 그지없는 옅은 미소가 돋보이는 인물상이 아닌가.

         

       아마 그가 어떤 이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처음 그를 대면한다면 먼저 호감을 표시하며 친근함을 갖고 다가오리라.

         

       대신 그랬다간.

         

       ‘…저 꼴이 되겠지.’

         

       뚝…, 뚜욱….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과 결이 다른 울림.

       훨씬 더 느릿하면서도 어딘지 등골을 서늘하게 하는 울림이다.

         

       “몇 명이나 죽인 거야?”

       “그보단 몇이나 살았는지를 묻는 게 맞지 않을까?”

       “……그러네.”

         

       …울림의 정체는 한때 인간이었던 고깃덩어리에서 떨어지는 핏줄기가 흐르며 생기는 것이었고, 그는 이를 무기질 대하듯 무덤덤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마치 자신은 생명체를 죽인 게 아니라, 그저 말하고 피가 흐르는 ‘진흙’을 가지고 놀았을 뿐이란 듯이 말이다.

         

       ‘…난 아마 몇 년이 지날지라도 저 사람이 계속 무서울 거야.’

         

       2사도는 오싹했다.

       이만한 참사를 벌여놓고도 저토록 여상한 어투와 나긋나긋한 표정이라니….

         

       분명히 말하건대, 동료만 아니었으면 절대 상종 안 했을 소름 돋는 인간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내심 그에게 꺼림칙함을 느끼던 그녀에게.

         

       “4사도는, 드락은 죽은 건가?”

         

       사내는 물었고, 2사도는 언제 이상한 생각을 했냐는 듯 곧장 입을 열었다.

         

       “일단 시체는 못 건졌어, 즉 시체도 못 건질 만큼 완전 가루가 돼서 죽었거나, 그것도 아니면 포로로 잡혔겠지.”

       “흠, 둘 중 어느 쪽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지?”

       “후자. 나라면 살려서 데려갔을 거야. 정보를 빼내기 위해서라도.”

       “그래? 그런 거라면 다행이군.”

       “버림 말이다 이거지?”

       “말을 이상하게 하는군. 버림 말이 아니라 우연의 일치에 불과하다.”

       “…그러시겠죠.”

       “믿질 않는군, 이거야 원.”

         

       억울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는 그에게 2사도는 코웃음을 쳤다.

         

       드락.

       죽었는지 살았는지 조직의 12사도 중 한 사람.

         

       허나 10년 넘게 조직에서 떨어져 홀로 땅굴에서 병력과 마물을 키울 중대한 임무를 맡은 그였으나….

         

       ‘…그냥 임무를 수행하는 데 도움이 안 돼서 버려둔 것에 불과하지만.’

         

       사실은 버려진 것에 불과한 불쌍한 놈.

         

       워낙 성정이 포악하고 급진적인지라 문제가 많았던 이였다.

       괜히 바깥으로 나돌게 하는 게 도리어 걱정일 정도로.

       하여 그들은 드락에게 임무란 이름으로 그를 조직에서 멀어지게 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드락이 아는 정보는 10년 전에서 멈췄지.’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하는 법이고, 사람이 속한 조직은 열두 번도 넘게 바뀌는 법이었다.

       하여 드락이 살아있다고 치고, 그를 고문하여 정보를 뽑아내봤자.

         

       ‘아무런 쓸모도 없지.’

         

       기껏해야 사도나 혈십자군에 대한 정보를 얻어낼 수 있긴 하겠으나, 그 또한 의미는 없다.

         

       “지금의 드락이 우릴 본다면 놀랄 거야. 얼굴과 체형, 목소리만 바뀐 것만 해도 놀랄 일일 텐데, ‘성별’마저 모조리 바뀌었으니까.”

       “…확실히 그렇긴 하겠지.”

         

       이 대목에서만큼은 여유롭기 그지없던 그조차 잠시 멈칫거렸다.

       2사도라 부르는 그의 동료가 갑작스럽게 ‘그녀’가 되어 나타났을 땐 아무리 그라도 당황을 금치 못했으니까.

         

       “왜 그렇게 봐? 내가 너무 예쁜가 봐.”

       “…….”

       “…미안.”

       “사과는 됐다. 그보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군.”

         

       빗줄기가 약해지고 있다.

       그렇게 된다면 더는 피내음이 퍼지는 걸 막지도 못할 터.

         

       하니.

         

       “그만 귀환하도록 하지.”

       “환영할 만한 얘기네.”

       “아, 통로는 폐기했나?”

       “확실하게.”

       “그럼 되었군. 그럼….”

         

       사내는 돌연 고개를 돌렸다.

       지금껏 시선조차 주지 않았던 시신들이 널브러진 곳을 향하여 시선을 주는 사내였고, 점차.

         

       “-유언을 남겨라, 이승에 미련을 두지 않아야 할 것 아닌가, 어차피 지옥으로 떨어질 거.”

         

       그는 자비를 베풀듯 마지막 기회를 주었다.

       이미 싸늘하게 식은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하는 걸까?

       혹시 농락이라도 하는 걸까?

         

       허나 사내는.

         

       “그런가, 답변이 없는 게 아쉽군.”

         

       기회를 줬는데도 받아먹질 못하군.

         

       나지막한 중얼거림이 끝나며 사내의 몸에서 후욱, 하고 검은 안개 같은 것이 솟구쳤다.

         

       뭉글뭉글한 덩어리들은 비에 젖은 흙과 뭉쳐지며 점차 짐승의 형상을 이루었다.

         

       화악!

         

       [——.]

         

       그리고 그 짐승이 형상을 이루며 눈을 번뜩이는 순간,

         

       “자, 잠깐! 기, 기다려다오! 아, 아니 사, 살려주십시오, 제발…!!”

         

       벌떡거리며 일어서는 시체가, 아니 시체인 척을 하는 이들이 몸을 일으켰다.

         

       그들은 짐승의 존재감이 느껴지자마자 공포에 질리고 말았다.

       이미 저 짐승에 의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었는지를 알고, 저 짐승이 얼마나 흉악하고도 잔혹한지를 알기에.

       

       “왜 안 죽이고 있었던 거야?”

       “농락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그저 몇몇은 전투가 나기도 전에 기절하는 척을 하더군. 아니면 도망치든가.”

         

       그래서 그냥 놔둬봤다.

       과연 일어났을 때 어떤 ‘유언을 남길까’ 궁금했기에.

         

       “…악취미야.”

         

       2사도의 단호한 평가에 그는 고개를 가볍게 주억거리며 동의했다.

         

       악취미, 맞는 말이다.

       그러나.

         

       “-머스탱 드 바르가. 브리튼을 멸망시킨 원흉 중 한 명이여. 너에게 묻고 싶다.”

         

       “무, 물어보십시오, 어, 얼마든지 물어보십시오!!”

         

       머스탱 드 바르가, 과거 브리튼의 장군까지 올랐던 사내이지만 적국에서 친히 ‘명예 팬드래건 국민’이라 부를 정도로 무능하며, 수십 번의 패전을 만든 장본인.

       브리튼인조차 그 이름을 듣노라면 치를 떠는 이가 머스탱이란 이였으나, 머스탱은 항상 뻔뻔할 따름이었다.

         

       그도 그럴게.

         

       ‘왜 나 때문에 진 거냐! 병사들이 무능해서 진 것인데!’ ‘왜 내가 책임을 져야 해!? 기사들이 책임을 져야지!’ 등등, 무수한 망언을 남기며 적국의 사람들조차 격분하게 만드는 말을 내뱉길 주저하지 않으니까.

       솔직히 그에게 원한을 가진 이들의 숫자를 생각하면 지금껏 살아남은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아렌 따윈 비교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오만하고도 뻔뻔하며, 제 잘못 따윈 조금도 모르는 남자.

         

       그는 지금 무릎을 꿇은 채 울고 불며 목숨 구걸을 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너는 정말 잘 살아남더군. 로이 반트라고 했었나? 설마 그자를 방패삼아 버리고 도망갈 줄은 꿈에도 몰랐다.”

       “…….”

       “다 죽어가는 폐인을 데리고 있기에 동료애라도 있는 줄 알았거늘, 그 모습을 보며 기대할 가치도 없었음을 새삼 실감했다.”

         

       사내가 머스탱에게 말을 거는 이유는 자신에게 ‘확신’을 줬기 때문이었다.

         

       아, 이들은 역시 살아있을 가치가 없는 존재에 불과하다.

       -이러한 확신을 말이다.

         

       하여.

         

       “너에게 감사한다. 내 선택이 조금도 틀리지 않은 걸 가르쳐줘서.”

       “사, 살려주십시오! 사, 살려만 주신다면 뭐든 하겠습니다! 바, 바르가 가문의 숨겨진 재산이 어디 있는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브, 브리튼 왕실의 비밀과 그들이 숨긴 은닉 자금이 궁금하지 않느냔 말입니다!! 말씀만 하시면 모두 다…!!”

         

       ─콰득!

         

       “끄아아아아아악!!”

         

       허나 머스탱은 더 이상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어느 순간 [짐승]은 머스탱의 하반신을 물어뜯었기에.

         

       머스탱은 고통에 몸부림쳤으나, 사내는 그를 갖고 놀다 죽일 생각인지 느긋하게 비명을 즐겼다.

         

       꽈드드득!

       뿌득!

       콰직!!

         

       “아…아아?!…악…!!”

         

       고통의 시간이 마치 억겁과 다름없었고, 머스탱은 어느 순간 몸이 축 처져갔다.

         

       죽음,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것이 다가온다.

         

       투두둑.

         

       …비가 그쳐간다.

         

       안 그래도 거센 바람에 의해 먹구름이 금세 물러가며 희미하지만 달빛이 드러났고, 머스탱은 어둠에 의해 보지 못했던 사내의 얼굴을 생애 마지막이 돼서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흐읍!

         

       사내의 얼굴을 확인하며 머스탱은 많은 것을 깨우쳤다.

         

       일종의 깨달음일지도 모르는, 이 세상 그 누구도 모르는 은밀한 비밀에 가까워진 듯한 느낌을 받으며 머스탱은 유언을 남기듯 그를 불렀다.

         

       “…왕세자 전-.”

         

       “하하, 간만에 드는 이름이군.”

         

       푸확!

         

       상대는 들어줄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다는 게 중요했지만.

         

       짐승은 거침없이 머스탱의 목을 물어뜯었다.

         

       털썩….

         

       눈을 부릅뜬 채 허무하게 죽은 머스탱이었고, 사내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설마 아직도 내 얼굴을 기억하는 자가 있을 줄이야. 흠, 생각보다 지위가 있는 놈이었던가?”

       “…바르가면 브리튼 군부의 정점이었던 가문이잖아. 아마 이런 저런 자리에서 얼굴 정도는 마주쳤던 거겠지.”

       “그럴 가능성도 없지 않아 있겠군.”

       “…어휴, 당신은 태생이 브리튼이면서 어떻게 나보다 더 몰라?”

       “그럴 수도 있는 거겠지.”

         

       콰드득!

         

       다시금 울리는 짐승이 사냥감을 물어뜯는 소리.

       살아남은 이들이 방금 전의 머스탱처럼 단숨에 목이 물어뜯기며 죽어갔다.

       허나 두 사람은 그들이 죽건 말건 관심을 주지 않았다.

       다만 2사도는.

         

       “그래도 기껏 키워낸 건데, 안 써먹어도 괜찮겠어?”

         

       지난 10년 동안 키워낸 반마인들이 아깝긴 한 듯했다.

       하지만 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저런 실패작들을 써서 뭘 할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이들의 몸에서 얻은 실험 정보다. 이것만 있으면 병사는 얼마든지 뽑아낼 수 있다. 시간은 우리의 것이다. 그러니 안심해라 2사도.”

       “…뭐,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2사도는 아쉬움을 표하긴 했지만, 그의 말을 믿기로 했다.

       자기가 아는 한 가장 현명한 사람이었으니까.

       그렇기에.

         

       “그래 돌아가자, 1호.”

       “하하, 짓궂긴. 1사도다.”

         

       둘의 모습은 눈 깜짝할 새 사라졌다.

       금세 왔다 사라지는 먹구름처럼.

         

         

         

       나흘 뒤, 고깃덩이로 변한 반마인-죄수들의 시체가 어느 사냥꾼에 의해 발견되며 기사들에게 알려지는 것은 조금 나중의 일이었다.

         

       *

       *

       *

         

       ……이한은 침음을 삼키는 중이었다.

         

       왜일까?

         

       왜 자신은 복귀하자마자 집에서 쉬지도 못하고 이렇게 있어야 하는 것일까?

         

       ‘…쉬고 싶은데.’

         

       그러나 안타깝게도.

         

       “-본 왕태녀는 실망했노라.”

         

       …상대는 그를 쉬게 해줄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임무에 실패해도 괜찮다. 땅굴 따위를 무너트린 것도 개의치 않는다. 하지만 설마…!!”

         

       아이시스 이레인 드 팬드래건은 눈을 번뜩이며 이를 악물며 그를 타박했다.

         

       “북부 놈 따위에게 고전하며 무승부밖에 내지 못하다니…! 이 얼마나 원통한 일인가!!”

         

       “…아니, 무승부도 아닌 것 같은데.”

         

       “보드카 빼곤 북부에게 패배해선 안 된다고 하거늘! 네가 이렇게 누이를 실망시키느냐!!!”

         

       “……보드카는 왜 빼는 거래?”

         

       “어허…!”

         

       “…….”

         

       …이한은 그냥 입을 다물기로 했다.

         

       원래 상사의 잔소리는 상사가 만족할 때까지 끝나지 않음을 알기에.

         

       그러며.

         

       ‘나중에 북부산 보드카나 마셔봐야지.’

         

       그녀조차 패배를 인정하는 술이 얼마나 센지 조금 궁금하긴 한 이한이었다.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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