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27


    ​
    정령의 어머니가 꺼낸 말은 놀라웠다.
    ​
    ​
    “정말 단숨에 이동할 수 있어요?”
    [ 정령의 문을 이용하면 찰나의 시간만으로 인간들의 제국에 도착할 수 있단다. ]
    ​
    정령왕의 부연 설명에 릴리의 눈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 
    ​
    ​
    [ 그러기 위해선 우선… 내 아이들을 만나러 가야겠구나. ]
    ​
    ​
    그 말에 리안은 기사와 함께 탈출했던 정령들이 떠올랐다.
    ​
    ​
    ‘그러고 보니 진작에 마주쳤어야 했는데… 다들 어디로 간 거지?’
    ​
    ​
    그런 리안의 물음에 답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정령왕이 말을 이었다.
    ​
    ​
    [ …내가 가르쳤던대로 숲속에 숨죽이고 숨어있단다. 같은 정령이 직접 길을 열지 않는 이상 절대 찾을 수 없도록. ]
    ​
    ​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널찍한 길옆에 펼쳐진 숲이 흔들렸다. 마치 환각으로 이루어진 숲처럼 일그러지기도 하고 이리저리 움직이기도 했다. 이내 나무들이 양옆으로 물러나고 빳빳하게 세워져 있던 풀들이 고개를 틀어 길을 만들었다.
    ​
    ​
    마치 숲이 그들을 불러들이는 것 같은 모습에 전도하던 신도나 감동의 눈물을 흘리던 이들이 모두 입을 다문 채 멍하니 숲을 바라보았다.
    ​
    ​
    [ 자, 가자꾸나. ]
    ​
    ​
    정령왕이 허공에 붕 떠올라 앞서 나아가자 노아가 다급히 일행을 이끌고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
    ​
    ***
    ​
    ​
    그녀의 말대로 숲길 안쪽에서 기사와 정령들을 만날 수 있었다. 거의 100명에 가까운 정령들이 이리저리 나풀나풀 날아다니자 일행 모두가 멍하니 입을 벌린 채 경이로운 장면을 눈에 담았다.
    ​
    ​
    “…!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
    ​
    기사는 감격한 얼굴로 리안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리안은 곧바로 그를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해주었다. 처음에는 경계하던 이들도 리안의 소개에 금세 표정을 풀었다.
    ​
    ​
    “…어?”
    ​
    ​
    멋들어지게 웃으며 기사다운 표정을 짓고 있던 그는 돌연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표정으로 아이리스를 바라보았다. 
    ​
    ​
    “어어?”
    ​
    ​
    그의 시선이 리안과 아이리스를 번갈아 바라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꽤 닮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
    ​
    하나하나 떼어다 보면 전혀 닮지 않았지만 공통으로 둘 다 순하게 생겨서 남매라는 말에 그 누구도 딴지를 걸 수 없었다. 머리색과 눈 색이 동일하다 보니 더 그랬다.
    ​
    ​
    다만, 아이리스는 과거 리안이 한번 죽었을 때 어둠의 힘을 끌어다 쓴 흔적이 머리카락에 남아 리안보다는 약간 탁한 색이었다. 탁하다고 해도 백발이 연한 은빛으로 변했을 뿐이라 리안과 붙여놓지 않으면 그저 흰색으로 보일 뿐이었다.
    ​
    ​
    ‘왜, 왜 두… 둘이나?’
    ​
    ​
    어찌 되었든 기사에겐 공작가의 직계혈족이 두 명이나 나타난 상황이라 혼란만이 가득했다.
    ​
    ​
    그가 혼란을 잠겨있는 사이, 정령왕은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
    ​
    [ 다행히 이 주변은 정령의 힘이 넘쳐나니, 바로 정령의 문을 열 수 있단다. ]
    ​
    ​
    그녀는 불쾌한 곳을 빨리 떠나고 싶은 마음에 정령의 문을 열고자 본체로 돌아갔다. 어리둥절해하는 일행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있던 릴리와 네로의 시선이 단번에 거대해진 정령왕 쪽으로 향했다. 그들을 따라 다른 일행의 시선도 정령왕을 향했다.
    ​
    ​
    [ 자, 그럼… ]
    “어엇?!”
    ​
    ​
    정령왕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리안의 어깨를 다시 끌어안았다. 리안은 어정쩡한 자세로 그녀의 품..아니, 가슴에 안길 수밖에 없었다.
    ​
    ​
    “헉…”
    “와…..”
    ​
    ​
    몇몇 이들이 감탄을 토해내며 부러움에 잠긴 소리를 흘렸고.
    ​
    ​
    “역시 리안님… 정령왕까지 꼬시는 마성의 매력..”
    ​
    ​
    신도들은 리안이 마성의 매력을 가져 정령왕까지 꼬셔버린 구원자라며 칭송했다. 영웅호색이라는 말이 있듯, 아름다운 여성을 꼬시는 재능은 영웅에게 꼭 필요한 재능이었다.
    ​
    ​
    “두 번….”
    ​
    ​
    아이리스가 눈을 탁하게 빛내며 재차 검을 뽑아 들려 했고, 노아는 자신도 모르게 제 가슴을 내려다봤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곤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
    ​
    “쮠님 좋아? 나도 해줄까?”
    ​
    ​
    제스는 슬금슬금 리안에게 다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제 가슴 아래를 받쳐 보여주었다. 리안의 정신이 안드로메다로 향하려는 순간, 정령왕이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노래 같은 말을 뱉어냈다. 
    ​
    ​
    스르륵.
    ​
    ​
    밤에 부는 가벼운 바람 소리와 함께 홀연히 떠오른 달처럼 허공에 새카만 문이 생겨났다. 
    ​
    ​
    [ 오래 열고 있으면 숲의 기운이 흐트러지니 빨리 움직여야 한단다. ]
    ​
    ​
    정령왕은 그리 말한 후 가볍게 허공에 손을 흔들었다.
    ​
    ​
    달칵.
    ​
    ​
    그러자 굳게 닫혀있던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마치 어디로든 통하는 문처럼 문 너머는 그들이 서 있는 숲과 전혀 다른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정령왕은 아무런 고민 없이 리안은 껴안은 채 그대로 문 안으로 향했다.
    ​
    ​
    “어어? 나, 나 먼저 갈게!”
    ​
    ​
    리안은 뒤늦게 작별 인사를 한 후 문 너머로 건너갔다. 제스가 자연스럽게 리안의 뒤를 따랐고, 아이리스는 도망간 사냥감을 쫓아가는 사냥꾼처럼 위험한 얼굴로 그 뒤를 따랐다.
    ​
    ​
    ‘역시… 각하의 자손은 리안님이시겠지.’
    ​
    ​
    기사는 흉악하게 일그러지던 아이리스의 표정을 보곤 그리 결론지었다 -…가 이내 각하가 분노한 얼굴을 떠올리곤 다시 혼란에 잠겼다.
    ​
    ​
    ‘아, 아닌가? 도리어 저쪽이 각하를 더 닮았을지도…?’
    ​
    ​
    공작은 빈말로도 착하다고 말할 수 없는 성격을 가졌기에 기사의 혼란은 더 길어질 듯 보였다.
    ​
    ​
    “다들 빠르게 움직여!”
    ​
    ​
    리더답게 빠르게 이성을 되찾은 노아는 일행을 줄지어 문을 통과하게 했다. 정령들은 신이 나는지 장난스럽게 웃으며 인간들의 머리 위를 날아 문을 통과했다.
    ​
    ​
    그렇게 모든 이들이 정령의 문을 통과하자.
    ​
    ​
    끼익, 탁.
    ​
    ​
    정령의 문은 자연스럽게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를 신경 쓰지 못했다.
    ​
    ​
    “와아….”
    “여긴 어디지?”
    ​
    ​
    만발한 꽃들과 연둣빛의 잎사귀들 아름답다 못해 경이롭게까지 느껴지는 생명의 기운에 죽음의 땅에서만 자랐던 이들은 넋을 놓았다. 
    ​
    ​
    ***
    ​
    ​
    “이상한 연구소에 잡혀갈 때만 해도 진짜 망했다고 생각했는데.”
    “도리어 다행이었지.”
    ​
    ​
    시간이 흘러, 저녁 야영지.
    ​
    ​
    편안하게 모인 이들이 즐겁게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평소였다면 눈을 부릅뜬 채 주변을 경계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도 없었다.
    ​
    ​
    “설마 단번에 제국으로 이동할 줄은 상상도 못 했어.”
    “정말 아무도 못 믿겠지. 정령의 문을 통해 단번에 제국으로 이동했다는 말은.”
    ​
    ​
    그렇다. 그들은 정령의 문을 통해 단번에 제국으로 이동해버렸다. 정말 ‘모든 운을 다 써버렸다.’라는 말이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
    ​
    몬스터가 아닌 귀여운 토끼가 뛰어다니는 숲은 그들이 상상하던 ‘천국’과 너무나 유사했다. 워낙 끔찍한 곳에서 살아왔다 보니 평범한 숲도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다.
    ​
    ​
    그런 분위기 속에서 초조하게 다리를 떨고 있는 이가 있었으니.
    ​
    ​
    ‘어찌해야 하지?’
    ​
    ​
    바로 공작가의 기사 판톤이었다. 그는 자신이 제국의 땅에 돌아왔다는 걸 알았을 때 이건 신이 인도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
    ​
    실종되었다고 알려진 각하의 자손을 공작가까지 안전하게 모실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했다.
    ​
    ​
    ‘도대체 어떤 분이 각하의 자손이란 말인가!’
    ​
    ​
    평민으로 자랐음에도 위엄과 품위, 자애로움까지 겸비한… 핏줄부터 다를 것 같은 리안.
    이상하리만치 각하의 살벌한 분위기를 닮은 아이리스.
    ​
    ​
    기사는 두 사람 중 어느 쪽이 각하의 자손인지 알 수 없었다. 그 탓에 쉽사리 공작가로 향해야 한다는 말도 꺼내지 못했다. 
    ​
    ​
    ‘역시 리안님이… 하지만…. 끄응…’
    ​
    ​
    스프를 떠먹으며 끙끙거리던 기사에게 작은 손이 불쑥 들이밀어졌다.
    ​
    ​
    “형아, 힘들면 이거 먹어.”
    “음? 아니 괜찮-.. ”
    “나는 누나가 준 거 있으니까 괜찮아.”
    ​
    ​
    겨우 10살이나 되었을까 싶은 어린아이가 머리의 길이만 다를 뿐 본인과 쏙 빼닮은 누나 옆에 앉아 환희 웃어 보였다. 딱 봐도 쌍둥이처럼 보였다.
    ​
    ​
    쿠구궁!
    ​
    ​
    “…!”
    ​
    ​
    기사의 머릿속에 벼락이 떨어졌다.
    ​
    ​
    ‘…! 만약 하나가 아니었다면? 두 분이 쌍둥이 남매라면 모든 게 설명된다!’
    ​
    ​
    리안이나 아이리스 둘 다 조금 어린 티가 나는 얼굴이긴 하지만 2차 성징을 겪었기에 성인 남녀 부럽지 않은 키를 가지고 있었다.
    ​
    ​
    리안이 좀 더 어른스러운 분위기라 오빠라는 이미지가 강하긴 했지만, 그런 이미지를 제외하면 비슷한 또래로 보였다. 이는 기사의 착각을 더욱 짙게 만들었다.
    ​
    ​
    ‘당장, 당장 공작가의 전서구를 보내야 해.’
    ​
    ​
    제국 어딘가에 있는 숲속에서 전서구를 날리는 건 불가능했기에 잔뜩 흥분한 그가 뛰쳐나가는 불상사는 없었지만, 눈은 별을 박은 것처럼 마구 번쩍거렸다.
    ​
    ​
    그 시각, 리안은 곤란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
    ​
    “내 오빠야.”
    “…”
    ​
    ​
    아이리스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노아를 노려보았다. 그녀가 리안과 떨어져 있는 사이 부쩍 가까워진 노아를 경계하고 있었다.
    ​
    ​
    노아는 어색하게 웃어 보인 후 스프 그릇을 들고 일어났다.
    ​
    ​
    “불편한 거라면 난 저쪽에 가서 먹을게.”
    “어어? 아냐, 노아 여기서 먹어.”
    ​
    ​
    아이리스의 눈은 “꺼져”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입은 평범한 말을 담고 있던 탓에 리안은 갑작스럽게 자리를 뜨는 노아의 모습에 당황했다.
    ​
    ​
    “아냐, 릴리랑 할 얘기가 있어서 그래. 맛있게 식사해.”
    “아, 어어.”
    ​
    ​
    노아가 자리를 떠나 릴리 쪽으로 다가가자, 릴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
    ​
    “그냥 오빠랑 거기서 식사하고 오지. 왜 여기로 와?”
    “…그게,하아….”
    ​
    ​
    노아는 한숨을 내뱉고는 빈손을 들어 얼굴을 쓸어내렸다.
    ​
    ​
    ‘친동생을 보고 질투했다고 어떻게 말해.’
    ​
    ​
    아무리 같은 여자라고 해도 아이리스는 리안의 친동생이다. 질투를 하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알고 있음에도 불쑥 치솟는 새카만 질투에 노아는 작게 앓는 소리를 흘렸다. 부끄러움에 귀 끝이 빨갛게 물들었다.
    ​
    ​
    ​
    ​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Ilham Senjaya님 오늘도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3

공작가 파트가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아이리스의 반응이 너무 기대되네요(흐뭇)

선작과 추천은 사랑입니다!다음화 보기

정령의 어머니가 꺼낸 말은 놀라웠다.

“정말 단숨에 이동할 수 있어요?”

[ 정령의 문을 이용하면 찰나의 시간만으로 인간들의 제국에 도착할 수 있단다. ]

정령왕의 부연 설명에 릴리의 눈이 반짝반짝 빛이 났다.

[ 그러기 위해선 우선… 내 아이들을 만나러 가야겠구나. ]

그 말에 리안은 기사와 함께 탈출했던 정령들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진작에 마주쳤어야 했는데… 다들 어디로 간 거지?’

그런 리안의 물음에 답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정령왕이 말을 이었다.

[ …내가 가르쳤던대로 숲속에 숨죽이고 숨어있단다. 같은 정령이 직접 길을 열지 않는 이상 절대 찾을 수 없도록. ]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널찍한 길옆에 펼쳐진 숲이 흔들렸다. 마치 환각으로 이루어진 숲처럼 일그러지기도 하고 이리저리 움직이기도 했다. 이내 나무들이 양옆으로 물러나고 빳빳하게 세워져 있던 풀들이 고개를 틀어 길을 만들었다.

마치 숲이 그들을 불러들이는 것 같은 모습에 전도하던 신도나 감동의 눈물을 흘리던 이들이 모두 입을 다문 채 멍하니 숲을 바라보았다.

[ 자, 가자꾸나. ]

정령왕이 허공에 붕 떠올라 앞서 나아가자 노아가 다급히 일행을 이끌고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

그녀의 말대로 숲길 안쪽에서 기사와 정령들을 만날 수 있었다. 거의 100명에 가까운 정령들이 이리저리 나풀나풀 날아다니자 일행 모두가 멍하니 입을 벌린 채 경이로운 장면을 눈에 담았다.

“…!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기사는 감격한 얼굴로 리안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리안은 곧바로 그를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해주었다. 처음에는 경계하던 이들도 리안의 소개에 금세 표정을 풀었다.

“…어?”

멋들어지게 웃으며 기사다운 표정을 짓고 있던 그는 돌연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표정으로 아이리스를 바라보았다.

“어어?”

그의 시선이 리안과 아이리스를 번갈아 바라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꽤 닮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나하나 떼어다 보면 전혀 닮지 않았지만 공통으로 둘 다 순하게 생겨서 남매라는 말에 그 누구도 딴지를 걸 수 없었다. 머리색과 눈 색이 동일하다 보니 더 그랬다.

다만, 아이리스는 과거 리안이 한번 죽었을 때 어둠의 힘을 끌어다 쓴 흔적이 머리카락에 남아 리안보다는 약간 탁한 색이었다. 탁하다고 해도 백발이 연한 은빛으로 변했을 뿐이라 리안과 붙여놓지 않으면 그저 흰색으로 보일 뿐이었다.

‘왜, 왜 두… 둘이나?’

어찌 되었든 기사에겐 공작가의 직계혈족이 두 명이나 나타난 상황이라 혼란만이 가득했다.

그가 혼란을 잠겨있는 사이, 정령왕은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 다행히 이 주변은 정령의 힘이 넘쳐나니, 바로 정령의 문을 열 수 있단다. ]

그녀는 불쾌한 곳을 빨리 떠나고 싶은 마음에 정령의 문을 열고자 본체로 돌아갔다. 어리둥절해하는 일행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있던 릴리와 네로의 시선이 단번에 거대해진 정령왕 쪽으로 향했다. 그들을 따라 다른 일행의 시선도 정령왕을 향했다.

[ 자, 그럼… ]

“어엇?!”

정령왕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리안의 어깨를 다시 끌어안았다. 리안은 어정쩡한 자세로 그녀의 품..아니, 가슴에 안길 수밖에 없었다.

“헉…”

“와…..”

몇몇 이들이 감탄을 토해내며 부러움에 잠긴 소리를 흘렸고.

“역시 리안님… 정령왕까지 꼬시는 마성의 매력..”

신도들은 리안이 마성의 매력을 가져 정령왕까지 꼬셔버린 구원자라며 칭송했다. 영웅호색이라는 말이 있듯, 아름다운 여성을 꼬시는 재능은 영웅에게 꼭 필요한 재능이었다.

“두 번….”

아이리스가 눈을 탁하게 빛내며 재차 검을 뽑아 들려 했고, 노아는 자신도 모르게 제 가슴을 내려다봤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곤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였다.

“쮠님 좋아? 나도 해줄까?”

제스는 슬금슬금 리안에게 다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제 가슴 아래를 받쳐 보여주었다. 리안의 정신이 안드로메다로 향하려는 순간, 정령왕이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노래 같은 말을 뱉어냈다.

스르륵.

밤에 부는 가벼운 바람 소리와 함께 홀연히 떠오른 달처럼 허공에 새카만 문이 생겨났다.

[ 오래 열고 있으면 숲의 기운이 흐트러지니 빨리 움직여야 한단다. ]

정령왕은 그리 말한 후 가볍게 허공에 손을 흔들었다.

달칵.

그러자 굳게 닫혀있던 문이 부드럽게 열렸다. 마치 어디로든 통하는 문처럼 문 너머는 그들이 서 있는 숲과 전혀 다른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정령왕은 아무런 고민 없이 리안은 껴안은 채 그대로 문 안으로 향했다.

“어어? 나, 나 먼저 갈게!”

리안은 뒤늦게 작별 인사를 한 후 문 너머로 건너갔다. 제스가 자연스럽게 리안의 뒤를 따랐고, 아이리스는 도망간 사냥감을 쫓아가는 사냥꾼처럼 위험한 얼굴로 그 뒤를 따랐다.

‘역시… 각하의 자손은 리안님이시겠지.’

기사는 흉악하게 일그러지던 아이리스의 표정을 보곤 그리 결론지었다 -…가 이내 각하가 분노한 얼굴을 떠올리곤 다시 혼란에 잠겼다.

‘아, 아닌가? 도리어 저쪽이 각하를 더 닮았을지도…?’

공작은 빈말로도 착하다고 말할 수 없는 성격을 가졌기에 기사의 혼란은 더 길어질 듯 보였다.

“다들 빠르게 움직여!”

리더답게 빠르게 이성을 되찾은 노아는 일행을 줄지어 문을 통과하게 했다. 정령들은 신이 나는지 장난스럽게 웃으며 인간들의 머리 위를 날아 문을 통과했다.

그렇게 모든 이들이 정령의 문을 통과하자.

끼익, 탁.

정령의 문은 자연스럽게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를 신경 쓰지 못했다.

“와아….”

“여긴 어디지?”

만발한 꽃들과 연둣빛의 잎사귀들 아름답다 못해 경이롭게까지 느껴지는 생명의 기운에 죽음의 땅에서만 자랐던 이들은 넋을 놓았다.

***

“이상한 연구소에 잡혀갈 때만 해도 진짜 망했다고 생각했는데.”

“도리어 다행이었지.”

시간이 흘러, 저녁 야영지.

편안하게 모인 이들이 즐겁게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평소였다면 눈을 부릅뜬 채 주변을 경계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도 없었다.

“설마 단번에 제국으로 이동할 줄은 상상도 못 했어.”

“정말 아무도 못 믿겠지. 정령의 문을 통해 단번에 제국으로 이동했다는 말은.”

그렇다. 그들은 정령의 문을 통해 단번에 제국으로 이동해버렸다. 정말 ‘모든 운을 다 써버렸다.’라는 말이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몬스터가 아닌 귀여운 토끼가 뛰어다니는 숲은 그들이 상상하던 ‘천국’과 너무나 유사했다. 워낙 끔찍한 곳에서 살아왔다 보니 평범한 숲도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초조하게 다리를 떨고 있는 이가 있었으니.

‘어찌해야 하지?’

바로 공작가의 기사 판톤이었다. 그는 자신이 제국의 땅에 돌아왔다는 걸 알았을 때 이건 신이 인도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실종되었다고 알려진 각하의 자손을 공작가까지 안전하게 모실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했다.

‘도대체 어떤 분이 각하의 자손이란 말인가!’

평민으로 자랐음에도 위엄과 품위, 자애로움까지 겸비한… 핏줄부터 다를 것 같은 리안.

이상하리만치 각하의 살벌한 분위기를 닮은 아이리스.

기사는 두 사람 중 어느 쪽이 각하의 자손인지 알 수 없었다. 그 탓에 쉽사리 공작가로 향해야 한다는 말도 꺼내지 못했다.

‘역시 리안님이… 하지만…. 끄응…’

스프를 떠먹으며 끙끙거리던 기사에게 작은 손이 불쑥 들이밀어졌다.

“형아, 힘들면 이거 먹어.”

“음? 아니 괜찮-.. ”

“나는 누나가 준 거 있으니까 괜찮아.”

겨우 10살이나 되었을까 싶은 어린아이가 머리의 길이만 다를 뿐 본인과 쏙 빼닮은 누나 옆에 앉아 환희 웃어 보였다. 딱 봐도 쌍둥이처럼 보였다.

쿠구궁!

“…!”

기사의 머릿속에 벼락이 떨어졌다.

‘…! 만약 하나가 아니었다면? 두 분이 쌍둥이 남매라면 모든 게 설명된다!’

리안이나 아이리스 둘 다 조금 어린 티가 나는 얼굴이긴 하지만 2차 성징을 겪었기에 성인 남녀 부럽지 않은 키를 가지고 있었다.

리안이 좀 더 어른스러운 분위기라 오빠라는 이미지가 강하긴 했지만, 그런 이미지를 제외하면 비슷한 또래로 보였다. 이는 기사의 착각을 더욱 짙게 만들었다.

‘당장, 당장 공작가의 전서구를 보내야 해.’

제국 어딘가에 있는 숲속에서 전서구를 날리는 건 불가능했기에 잔뜩 흥분한 그가 뛰쳐나가는 불상사는 없었지만, 눈은 별을 박은 것처럼 마구 번쩍거렸다.

그 시각, 리안은 곤란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내 오빠야.”

“…”

아이리스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노아를 노려보았다. 그녀가 리안과 떨어져 있는 사이 부쩍 가까워진 노아를 경계하고 있었다.

노아는 어색하게 웃어 보인 후 스프 그릇을 들고 일어났다.

“불편한 거라면 난 저쪽에 가서 먹을게.”

“어어? 아냐, 노아 여기서 먹어.”

아이리스의 눈은 “꺼져”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입은 평범한 말을 담고 있던 탓에 리안은 갑작스럽게 자리를 뜨는 노아의 모습에 당황했다.

“아냐, 릴리랑 할 얘기가 있어서 그래. 맛있게 식사해.”

“아, 어어.”

노아가 자리를 떠나 릴리 쪽으로 다가가자, 릴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냥 오빠랑 거기서 식사하고 오지. 왜 여기로 와?”

“…그게,하아….”

노아는 한숨을 내뱉고는 빈손을 들어 얼굴을 쓸어내렸다.

‘친동생을 보고 질투했다고 어떻게 말해.’

아무리 같은 여자라고 해도 아이리스는 리안의 친동생이다. 질투를 하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알고 있음에도 불쑥 치솟는 새카만 질투에 노아는 작게 앓는 소리를 흘렸다. 부끄러움에 귀 끝이 빨갛게 물들었다.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