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27

   [ 맞는 말이지 않으냐? ]

     

   크라슈가 잠시동안 현기증을 느꼈다.

     

   그리고 동시에 오늘 도르마를 데려올 때 아이들이 바라보던 시선을 느꼈다.

   크라슈는 그 시선이 그냥 무슨 일인가 싶어 궁금해하는 시선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시선의 뒤에 만약 저 소문이 겹쳐 있다면.

     

   크라슈는 순간 머리가 아찔해졌다.

   도르마와 함께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또 여자가 더 늘었다거나 하는 말이 붙을 거 같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엮이려 하는 녀석들은 대부분 능력에 출중한 녀석들이라 그러건만.’

     

   창공의 세대는 남자와 여자 비율이 꽤 균등했다.

   문제는 지금 남자 비율의 상당수가 시그린의 곁에 포함되었다는 거다.

     

   ‘시그린은 여자애들이랑은 상성이 별로 안 좋으니까.’

     

   시그린의 성격을 잘 아는 크라슈는 그녀가 동성과는 관계가 좋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시그린은 독선적인 성격에 소유욕이 상당히 높다.

     

   그런 부분은 남녀 사이에서도 드러났다.

     

   ‘전 세계 모든 사람이 자기만 좋아해 주기를 바라는 미친년.’

     

   그러니 자연스럽게 여성들은 시그린을 그다지 탐탁지 않아 했다.

   자기 주위에 있는 모든 남자도 자기가 휘어잡기를 바라는 게 시그린이었으니 말이다.

     

   어쩌면 시그린이 그토록 아서에게 끌린 이유도 아서가 일정 이상 마음을 내어 주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아서의 사랑을 끊임없이 갈구했으니 말이다.

     

   ‘당장 시그린 파와는 어울릴 생각 없으니 이리저리 다른 녀석들이랑 엮인 거였는데.’

     

   이게 이렇게 될 줄 몰랐다.

     

   “……도르마, 난 약혼자가 있어. 내년에 라헬른 아카데미로 올 거고.”

     

   약혼자까지 있는 자신이 여자를 거느리고 다닐 리가 있나.

   그저 엮이다 보니 이런 상황이 나온 것뿐이었다.

     

   “그 소문은 오해야. 약혼자도 있는 내가 뭐 하러 그런 짓을 해.”

   “그, 그렇죠!”

     

   도르마도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소문을 부정했다.

     

   “그리고 네가 말한 것처럼 난 딱히 착한 사람도 아니야.”

     

   크라슈는 그녀의 생각도 같이 정정해 주기로 했다.

     

   “내가 네 부탁을 들어 주려는 건 나도 하나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서야.”

   “부탁이, 요?”

     

   도르마가 고개를 기울였다.

   마치, 자신 따위가 크라슈를 도울 수 있냐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크라슈는 도르마의 진짜 가치를 잘 알고 있다.

   괜히 이 녀석이 해주 쪽에 스페셜 리스트인 게 아니다.

     

   보통 저주의 해주 방법은 총 두 가지다.

     

   하나는 소멸.

   다른 하나는 봉인.

     

   그리고 이 두 번째 봉인이 바로 해주사들이 저주를 들고 다닐 수 있는 이유다.

     

   그리고 도르마는 벨투아의 열두 제자 중.

     

   ‘유일하게 최상위 저주까지 봉인시킬 수 있었던 녀석이다.’

     

   크라슈는 도르마를 보며 아쉬움을 느꼈다.

   그녀가 죽음에 이르지 않았다면 분명 자신도 그렇게까지 고생하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물론 그 도르마조차 결국 손댈 수 없다고 결론 내린 게 크라슈의 저주들이었지만.

   적어도 그녀와 함께 저주 상쇄 연구를 할 수 있었다면 한결 편해졌을 거란 건 사실이었다.

     

   “제가 도울 수 있는 게 있나요?”

   “그래, 최근에 내가 하나 아는 녀석들이랑 연구하고 있는 게 있거든.”

     

   크라슈는 주섬주섬 연금실을 뒤졌다.

   그러고는 연금실에서 달링 녀석이 작성했던 리스트를 꺼내 들었다.

     

   “저주와 독을 합성해서 순간 강화 영약을 만들 생각이야. 아까 말했던 저주 상쇄 이론도 함께 사용해서 말이지. 그러니 상위 저주가 몇 가지 필요해.”

   “네?”

     

   도르마는 놀란 눈으로 크라슈가 건네준 리스트를 받았다.

   그러고는 리스트를 쭈욱 읽던 그녀의 눈이 거세게 흔들렸다.

     

   그도 그럴 게 벨투아가 만든 이론으로만 존재하던 저주 상쇄가 거기에는 상세하게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바쁘게 리스트를 살핀 그녀가 당황한 눈으로 크라슈를 바라보았다.

     

   “크, 크라슈 님, 저기 이건 누가 작성한 건가요?”

   “달링이라고, 이 연금실 주인인 녀석이 있어. 내가 그 녀석이랑 함께 작성한 거야.”

     

   도르마가 크라슈를 바라보았다.

   동시에 도르마는 크라슈의 몸에 깃든 저주의 힘을 다시금 느꼈다.

     

   “크라슈 님, 혹시…….”

     

   저주 상쇄 이론이 성립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사람한테 실험하기에는 위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크라슈의 몸에 깃든 저주와 이 표본을 보니.

   그녀는 이 저주 상쇄 이론을 크라슈가 직접 실현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더 함부로 물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까지 해서 대체 그는 무엇을 하려는 걸까.

     

   “할 말 있어?”

   “아, 그, 그게 이런 건 처음 봐서 묻고 싶은 게 많아서요. 실례되지 않으면 괘, 괜찮을까요?”

     

   그러니 그녀는 더 묻지 않고 일단 말을 돌렸다.

   게다가 이쪽 질문도 그녀에게는 궁금한 거였다.

     

   크라슈는 최대한 친절한 웃음을 지었다.

     

   “얼마든지.”

   [ 늘 느끼는 거지만 가짜 웃음 한번 잘 짓는구나. ]

     

   그렇게 도르마가 저주 상쇄 관련으로 물을 때마다 크라슈는 친절히 답해주었다.

   처음에는 말을 돌릴 겸 선택한 주제였지만 벨투아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열띤 반응을 보였다.

     

   자기가 아는 분야가 나온 덕분에 그녀는 라헬른 아카데미에 와서 오랜만에 길게 떠들어본 기분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떠들고 나니 도르마는 어느새 얼굴 가득 헤실헤실 웃음을 짓고 있었다.

     

   재밌다.

   사형과 사저들과 자주 저주로 대화하곤 했던 때가 떠오를 만큼 그녀는 즐거웠다.

     

   크라슈는 놀라울 정도로 저주에 관해 해박한 지식을 지니고 있었다.

   오죽하면 그녀조차 크라슈의 대답에서 배우는 게 있을 정도였다.

     

   “크라슈 님은 정말 저주에 관해 자세히 아시네요! 저주를 좋아하시나요?”

     

   저주를 좋아한다고.

   크라슈는 그 물음을 듣고, 쓴웃음을 삼킬 뿐이었다.

     

   자신이 이토록 저주에 관해 해박한 지식을 갖추게 된 과정이 어떤지 도르마는 알 수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럭저럭.”

     

   그러니 크라슈는 도르마가 신경 쓰지 않는 선에서 대답해 주었다.

     

   “아, 맞다. 죄, 죄송해요. 아직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대답을 안 했죠.”

     

   그녀는 자신이 대화하느라 너무 신났다는 걸 깨닫고는 새빨개진 얼굴을 양손으로 감쌌다.

   그러고는 얼른 크라슈에게 대답했다.

     

   “……제, 제가 도울 수 있을 거 같아요!”

     

   크라슈가 벨투아를 찾는 걸 돕기로 해준 만큼 자신도 돕는 게 도리다.

   그러니 그녀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말하자 크라슈는 물음을 던졌다.

     

   “그러고 보니 도르마, 넌 3황녀님 쪽에 속해 있잖아. 날 도와도 괜찮아?”

     

   발하임과 에파니아는 사이가 별로 좋지 못하다.

   특히 시그린에게는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샬롯이 있는 만큼 발하임과 에파니아의 사이는 더더욱 좋지 못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시그린 파에 소속되어 있는 도르마다.

   그러므로 도와도 괜찮겠냐고 하자 그녀는 ‘아’ 하고 소리를 내었다.

     

   “일, 일단은 물어봐야 할 거 같아요. 그래도 시그린 님은 너그러우신 분이니까. 아, 아마 괜찮을 거예요!”

     

   그야, 괜찮을 거다.

   시그린은 어떤 식이든 이쪽에 다리를 놓고 싶어 할 테니까.

     

   “그렇다면 다행이네.”

     

   그리고 평생 완공 못 할 다리를 만들며 허송세월 보내게 되겠지.

   순진한 도르마는 모를 진짜 크라슈의 속내가 웃음을 그린 순간이었다.

     

   “그,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대화가 끝난 만큼 도르마는 이제 돌아가고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각또각-

     

   그 순간 바깥에서 굽 높은 구두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크라슈는 그 보폭과 걸음걸이를 듣자마자 누군지 눈치챘다.

     

   크라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 연금실 문 쪽에서 똑똑하니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여기 저희 도르마가 있다는 소식을 들어서 찾아왔는데요?”

     

   상냥함을 머금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작 크라슈는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얼굴부터 와락 구겼다.

     

   저쪽이 문을 바로 안 열어서 다행이다.

   만약 열었다면 이 얼굴을 보자마자 자신이 같이 회귀했음을 눈치채 버렸을 테니 말이다.

     

   “누구십니까.”

     

   아직 크라슈는 그녀와 마주한 적 없다.

   그러니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모르는 척 대답했다.

     

   “헉, 허어, 크라슈 님, 시, 시그린 님이에요!”

     

   그러자 도르마가 당황한 목소리로 크라슈에게 외쳤다.

     

   왜냐하면 이 목소리의 주인은 3황녀, 시그린 에파니아.

   크라슈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인간이었으니까.

     

   그 순간 밖에서 옅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네, 시그린 에파니아라고 해요. 혹시 이 목소리의 주인은 크라슈 발하임 님이실까요?”

   “어, 어쩌죠?”

     

   도르마가 도둑질이라도 하다가 걸린 것처럼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아무래도 그녀도 시그린이 샬롯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서 그러는 모양이다.

     

   크라슈는 샬롯의 동생이었으니까.

     

   “내가 나가 볼게.”

     

   크라슈는 별로 신경 쓰지 말라는 듯 문고리를 잡고 열었다.

   그러자 문에서 한걸음 물러선 시그린의 모습이 비치었다.

     

   타고 나기를 몸이 약해 머리색이 옅은 시즐리와는 다르게 색이 강한 푸른 백발이 휘날렸다.

   미모만큼은 남다른 그녀는 크라슈와 마주하자마자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맞네요. 크라슈 발하임 님, 반가워요.”

     

   그건 마치 처음 만난다는 반응이었다.

   거기다가 구태여 꼬박꼬박 님을 붙여서 말하는 모습.

     

   나 같이 고귀한 사람이 당신을 존칭까지 붙여 주며 대해주고 있어요.

     

   이게 시그린의 속마음일 것이다.

   덕분에 크라슈는 토악질이 물씬 올라왔다.

     

   “3황녀님, 반갑습니다.”

     

   하지만 뻔뻔하기는 이쪽도 만만치 않았다.

   크라슈 또한 그녀를 만난 것이 처음이라는 듯 어색한 반응을 보였다.

     

   그런 그녀의 뒤에는 두 명의 남자가 서 있었다.

     

   한쪽은 백발의 짧은 머리카락의 주인 후에 백사(白蛇)라고 불릴 이.

   다른 한쪽은 검은 장발의 주인 후에 흑사(黑蛇)라고 불릴 이.

     

   머리색 다른 쌍둥이 형제로 창공의 세대에서도 상당히 두각을 보였던 녀석들이다.

   그리고 지금은 시그린에게 포섭당해 메리 대신 그녀의 호위 기사 역을 맡고 있었다.

     

   특수학 학생들이 이쪽을 보고, 자기들끼리 열심히 속닥거렸다.

   크라슈야 몇 번인가 특수학 교실에 볼일이 있어 찾아왔다지만 시그린이 직접 행차하는 건 처음이었으니 말이다.

     

   “저희 도르마가 크라슈 님을 찾았다고 해서요. 혹시 실례를 끼치지 않을까 싶어 만나러 왔네요.”

   “아, 그랬습니까.”

     

   아무래도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전부 파악하고 움직인 모양이다.

     

   ‘알게 모르게 아카데미에 귀를 꽤 많이 심어 놓은 모양인데.’

     

   괜히 그녀가 라헬른 아카데미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는 게 아니겠지.

     

   “도르마랑은 잠시 저주 쪽으로 이야기할 게 있어 그랬습니다.”

   “저주요?”

     

   시그린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반응은 정말로 놀란 표정이었다.

     

   크라슈가 아니었다면 깜빡 속았을 정도로 시그린의 연기는 자연스러웠다.

     

   “예, 저주 쪽에는 도르마가 일가견 있지 않습니까.”

   “아, 헤헤, 그 정도는…….”

     

   뒤에서 이야기 듣던 도르마가 쑥스러운지 자기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래서 최근에 연구하고 있는 게 있어 도르마에게 도움을 좀 요청했습니다. 시그린 님한테도 마침 말씀드리려 했는데 잘됐네요.”

     

   크라슈는 물 흐르듯 시그린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이야기를 곰곰이 들은 시그린은 곧 미소 지으며 도르마를 돌아보았다.

     

   “도르마, 크라슈 님을 돕기로 했나요?”

   “아, 네, 네에, 크라슈 님이 스승님을 찾아주신다고 하셔서요!”

     

   스승님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시그린의 눈이 한순간 날카롭게 떠졌다.

   그 눈은 아주 잠시였지만 크라슈만은 그 눈을 확실히 보았다.

     

   저건, 무언가 의심스러운 정황을 포착했을 때의 반응이었다.

     

   “혹시 크라슈 님이 다루시는 그 힘, 벨투아 락로드 님께 배운 기술일까요?”

     

   다음 질문을 듣고, 크라슈는 대답하지 않고, 천천히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의 의미를 알아차린 시그린의 얼굴이 굳었다가 풀어졌다.

     

   “아, 죄송해요. 너무 깊게 파물었네요.”

     

   그녀의 얼굴은 풀어져 있었지만, 그 너머에 자존심이 상했음을 크라슈는 느꼈다.

     

   늘 저주 받이 취급하던 이가 선을 넘지 말라는 반응을 보였으니.

   그녀로서는 당연했다.

     

   참 변함없는 녀석이라 크라슈는 감사했다.

   반드시 이 녀석만큼은 조져 놓겠다는 마음이 다시금 샘솟았으니까 말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 트위치에서 삽화 작업을 방송하고 있습니다~ ]
!!놀러 오실 분들은 트위치에 ‘무화꽃란’ 을 입력 하시면 됩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