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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8

       

       나도 모르게 내뱉은 ‘우장춘’이라는 중얼거림에, 

       

       『그래. 조선어로는 그렇게 읽지.』

       

       스나가 박사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스나가 박사, 아니 우장춘 박사에게 말했다.

       

       “아니, 그 우장춘 박사님? 진짜로?”

       『일본어로 해 주게. 비록 조선인이지만…… 일본에서 나고 자라서 조선어는 못 하니까.』

       

       조선 사람인데, 조선 말을 못 한다고? 으음, 하긴 우장춘 박사 본인의 말마따나, 조선인임에도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면 조선어를 못하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리라.

       

       그나저나, ‘그’ 우장춘이라니?! 

       

       나는 역사적 인물을 만났다는 것이 반가워서, 그동안 반말을 하던 태도까지 버리고 한껏 들뜬 목소리로 아는 체를 했다.

       

       『우 박사라면, 저 압니다! 맞죠? 씨 없는 수박……』

       『?』

       『?』

       

       우 박사는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영문이었기에 나는 되물었다.

        

       『엥, 아닙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모르겠군.』

       

       우 박사는 고개를 저었다. 으음. 아직 시기상 아닌 것인가? 씨 없는 수박은 훨씬 뒤의 일이라든가…… 아니면, 우장춘 박사가 만든 것이 아니라든가.

       

       아무튼, 내 눈 앞에 앉아있는 이 사람이 그 우장춘 박사인 것은 확실했다. 잘은 몰라도, 해방된 이후의 빈곤한 한국에서 농업발전을 주도했던 유명한 사람이 아니던가.

       

       한국에 있어서는 위대한 역사적 인물이었고, 위인전에 실릴 법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어째서……’

       

       나는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포악한 이계식물인 인페르날 오르키다와 합성된 벼 품종이 배양되어 있는 연구실 탁자.

       

       그 우장춘 박사같은 위인이 어째서 저런 흉악한 물건을 만들어냈단 말인가?

       

       더 나아가, 창경원에서 마수화된 동물들 역시 이 사람의 소행이었다면?

       

       ‘만약.’

       

       장차 한국의 농업발전을 주도할 위인이, 일본제국의 앞잡이가 되었다면.

       

       ‘역사가 뒤틀려 그가 변절했다면……’

       

       그의 연구능력으로 괴물들을 만들어내 일본의 침략전쟁을 돕고, 이어서 일본과 미국 사이에서 일어날 전쟁에서 일본에게 유리함을 가져다 준다면.

       

       만약 그런다면, 아무리 위인이라고 해도 두고 볼 수는 없었기에, 

       

       『우 박사. 당신이 왜 이곳에서, 이런 흉악한 합성종이나 만들고 있는 겁니까? 솔직하게 말해 주십시오.』

       

       나는 다시 칼을 들어 그를 겨누며 말했다. 그러자 우 박사는 침울한 얼굴로 대답했다.

       

       『무엇을 숨기랴…… 그래. 나는 수 개월 전 까지만 해도, 내지 경도(京都)의 다끼이 연구농장(硏究農場)에서 나팔꽃 연구를 하고 있었지. 그런데 어느날, 사람들이 찾아왔네. 그들은 내 논문에 주목했다더군.』

       『논문이요?』

       『그래. ‘종의 합성’에 대한 내 박사학위 논문 말일세.』

       

       우 박사는 자신의 논문을 간략히 설명했다.

       

       그동안 진화라는 것은 자연선택의 결과로만 만들어진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두 종의 교배로도 새로운 종이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을—그러니까, ‘종(種)의 합성’에 대한 가능성을 1935년 박사 논문으로 발표했었던 것이다.

       

        “음……”

       

       이과 지식이 짧은 나로서야 들어도 잘 모르겠지만, 우장춘 박사가 불려 온 이유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인페르날 오르키…… 아니, 지고꾸란과 벼의 합성을 위해 당신을 부른 거군요.』

       『그래. 그들은 내게 부탁했지. 이계의 지고꾸란과 자포니카종 벼를 합성해서, 지고꾸란의 성장 속도와, 자포니카종의 볍씨를 맺는 하나의 종으로 만들라고 말일세. 그리고……』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연구실 한켠의 테이블을 눈짓했다. 그의 말대로, 오르키다의 붉은 잎과 줄기 위에는 벼의 낱알이 가득 맺혀 있었다. 

       

       이미 실질적인 연구는 다 완료되었고, 미나미의 모내기 퍼포먼스는 그저 연구실에서 성공적으로 발아한 이계벼를 논에 옮겨심은 것 뿐이었다.

       

       『보다시피, 내 연구는 성공했네. 이 합성종은, 적어도 이 실험실 안의 환경에서는 완벽하게 쌀을 생산해냈지. 이 합성종에서 맺어지는 쌀은, 우리가 평소에 먹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자포니카종 쌀이야. 하지만……』 

       

       우 박사는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내 연구는 이런 것을 위한 것이 아니야! 듣기로, 이 합성종으로 생산된 쌀은 중국에 파견된 군대에 배급된다더군. 내 연구는 배곯는 사람들을 굶주리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지, 군대에 보낼 쌀을 만들려는 것이 아니었네! 그런 쌀에, 애국미(愛國米)같은 이름을 붙이다니……!』

       

       자신의 연구 결과에 괴로워하는 듯한 그에게 내가 물었다.

       

       『거절할 수 있었을 텐데요?』

       『자네,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누가 총독의 명령을 거역하겠나?』

       

       그는 이어서, 일본 교토에 아내와 자식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만약 자신이 총독의 명령을 거부한다면, 가족들에게 어떤 위협이 닥치거나 ‘비국민’이라는 낙인이 붙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그렇군요.』

       

       하긴, 멍청한 질문이었다. 아무리 일본 내지가 조선총독이 다스리는 곳은 아니라지만, 차기 내각 총리대신 후보로도 꼽히는 조선총독의 권력이라면, 일개 연구원 정도는 마음대로 좌지우지 할 수도 있겠지.

       

       나는 우 박사에게 이어서 물었다.

       

       『아무튼, 당신은 종의 합성 때문에 불려온 것이군요. 그렇다면 동물의 마수화 역시, 당신의 연구입니까?』

       『동물의 마수화?』

       『창경원에서 있었던 사건 말입니다. 언론에는 그저 동물의 발작으로만 발표됐지만, 실상은 동물들이 마수로 개조된 것이었죠. 당신이라면 알고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우 박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모르겠네. 나는 그저 여기 가두어져서 연구만 했네. 바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거의 알 길이 없었어.』

       

       으음. 정말로 관련이 없었던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계의 종과 지구의 것을 섞는다는 점에서 관련이 있을 것처럼 보였는데.

       

       『다만, 저 위에서 온 사람들이 수시로 내 연구자료를 가져가기는 하더군. 아마…… 히가시노리 이화학 연구소라고 하던가?』

       『……!』

       

       히가시노리 연구소. 역시, 그 녀석들이 맞았다. 놈들이 우장춘 박사의 연구를 가져다가, 자기네들의 목적에 맞게 고쳐서 동물들을 마수로 바꾼 행패를 부렸었던 것이다.

       

       그래서 내가 우 박사에게, 히가시노리 연구소에 대해 더 알고있는 것이 있는지 자세히 물어보려는 찰나,

        

       —달칵!

       

       연구실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지?’

       

       나는 급히 테이블 뒤로 몸을 숨겼다. 이윽고 어두운 연구실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콧수염을 기른 60대 노인.

       

       나이 든 얼굴과는 달리 꼿꼿이 선 풍채는 당당했으며, 머리에는 금줄 박힌 예장모를 쓰고 군복의 정복(正服)과 닮은 의장복을 입은 그는, 

       

       현 조선총독, 미나미 지로(南次郎)였다.

       

       나는 테이블 옆의 어둠 속에 숨어서 우장춘 박사에게 입을 뻥긋거렸다.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행동하시오.」

       

       우장춘 박사는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미나미 총독은 우장춘 박사를 향해 연구실 안으로 뚜벅뚜벅 걸어들어오며 말했다.

       

       『방금 확인하고 왔는데 벌써 사람 키만큼 자랐더군, 하하! 신나게 오줌을 갈기고 왔지.』

       

       총독의 기분은 좋아 보였다. 우 박사가 말했다.

       

       『그럼 저는……』

       『아아. 자네는 더 이상 필요가 없지. 개발의 가장 어려운 부분은 끝났으니 후속 개량은 다른 사람들이 해도 될 게야.』 

       『그럼 저는, 이제 돌려보내지는 겁니까?』

       『뭐? 하하하!』

       

       총독은 호탕하게 웃었다. 그리고 그 때,

       

       –삐이이이…… 펑!

       

       창 밖으로부터 커다란 소리와 함께 빛이 번쩍였다.

       

       『아아! 하나비(花火; 불꽃놀이)로군. 이제 시작하는가.』

       

       창 밖의 연회장에서는 한창 무르익었는지,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폭죽이 높이 날아올라 발산하며 아름다운 빛을 내었다.

       

       『하나비를 보면, 그래, 내가 젋었을 때…… 일로전쟁(러일전쟁) 때가 아직도 생각이 난단 말이야. 하하……』 

       

       총독은 그렇게 말하며 웃다가,

       

       『그래. 돌려보내지냐고 물었던가?』 

       

       —척. 

       

       리볼버 권총을 들고 우장춘을 겨누며 말을 이었다.

       

       『그건 안 되지. 개량법을 아는 사람이 외부로 나간다니! 그러다, 해외로 유출이라도 되면 큰일이지 않은가? 으응?』 

       

       총독은 애초부터, 우 박사를 죽일 생각이었던 것이다.

       

       연회가 무르익은 가운데 이곳은 아무도 신경쓰고 있지 않은 데다가, 바깥에선 불꽃놀이가 펼쳐지고 있었다. 총독이 우장춘 박사를 총살하고 연구실 구석의 소각로에 던져넣으면, 아무도 모르게 살인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게다가 자네는 조선인이니까 말이야. 내지에서 나고 태어났음에도, 게다가 ‘스나가(須永)’라는 일본 묘자(苗字; 일본식 성씨)를 가졌음에도 굳이 조선의 ‘우(禹)’ 씨를 고집하는 조선인…… 영 믿을 수가 없는 녀석이지.』 

       『…….』

       

       우 박사는 총독이 이렇게 나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 말 없이 총독의 말을 듣다가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역시, 이렇게 되는 것입니까.』

       

       이래서 우 박사가 나를 처음 봤을 때, 자신을 죽이러 온 자객인 줄 알았던 것인가. 그래서 이렇게 토사구팽당해 버려질 줄 짐작했다는 듯이, 체념한 듯한 눈빛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역시 마찬가지로, 옆에 내가 숨어있었지만 나에게 별다른 기대는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이미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으로 여기는 듯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약속대로, 내지에 있는 저의 가족만큼은 해하지 말아주십시오.』

       『하하! 전연 염려하지 말게. 자네는 황송하옵게도 제국의 전쟁수행에 큰 공을 세운 영웅이 될 테니 말이야. 자네의 가족 역시 그에 준하는 대우를 받게 될 걸세.』

       『…….』

       

       우 박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 돼.’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우장춘 박사, 당신이 조선, 아니 해방 후의 한국으로 돌아와서 씨 없는 수박 바이럴 마케팅을 해야 우리나라 농업이 발전된다고.

       

       —달깍!

       

       육군 장성 출신이어서일까, 미나미 총독이 권총을 내뻗은 자세는 그럴듯했다. 팔을 길게 내뻗어 리볼버 권총으로 우 박사를 겨눈 총독은, 엄지손가락으로 공이치기를 당겨 권총을 장전하며 말했다. 

       

       『자아, 기쁜 마음으로 잠들게…… 우왓!』

       

       —탕!

       

       우장춘 박사에게 총구를 향하고 방아쇠를 당긴 총독이었지만, 탄환은 애꿎은 벽을 맞추고 말았다. 예상 외의 변수에 총독이 깜짝 놀라는 바람에 총구가 흐트러졌기 때문이었다.

       

       『괴인! 고무 괴인이다!』

       

       그 예상 외의 변수란 물론,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나였다. 그래. 이 곳에 나같이 수상한 녀석이 있으리라고는 짐작조차 못 했겠지.

       

       『무, 무슨 놈이냐, 네 놈은! 경호! 경호!』

       

       총독은 다급하게 경호원을 외쳐 불렀지만, 바깥에서는 불꽃놀이가 한창이라 총독의 외침은 아래까지 전해지지 않았다. 

       

       『크흣……!』

       

       하지만 총독은 상대방인 내가 그저 칼 한자루를 들었을 뿐임을 파악하고는, 경호원 호출을 포기하고 나에게 권총을 쏘기 시작했다.

       

       —탕! 탕탕! 탕!

       

       총독은 나에게 총탄을 발사했지만, 당황하며 쏜 권총탄이 표적을 제대로 맞출 리가 없었다. 그나마 마지막의 한 발이 나를 향해 제대로 날아왔지만,

       

       -태앵!

       

       탄환은 내가 들고 있는 칼의 검신에 맞고 튕겨져 나갔다. 내가 가진 C급의 강기는 권총탄 정도는 충분히 막아낼 수 있는 것이었다.

       

       『으윽! 탄이……!』

       

       짤깍, 짤깍. 공이치기를 당기던 총독이 실린더를 열어보았지만, 5연발 리볼버의 실린더 안에는 이미 빈 탄피만 들어차있을 뿐이었다.

       

       『뭐, 뭐냐! 네 놈은!』

       『조선 제일의 애국자다.』

       

       목소리를 잔뜩 깔고 아무렇게나 대답한 나는 성큼성큼 총독에게 다가가, 

       

       짜아악—!

       

       몹시 호되게 따귀를 올려붙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우장춘 박사에 대한 TMI 그 2

    실제로 우장춘 박사는 조선인이었음에도 일본에서 나고 자라서, 해방 뒤에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스나가(須永)라는 일본 성씨를 얻은 것은 일본인 연인과의 결혼을 위한 것으로, 본인은 이후에도 개인적으로는 우(禹)씨 성을 계속 사용했다고 하네요. 일제강점기 당시 연구논문에 기재한 이름도 ‘NAGAHARU U’로, 성씨만큼은 우 씨를 썼다고 해요.

    덧붙여 실제 역사에서 1939년이면, 당시 41세의 우장춘 박사는 일본 교토의 다키이 연구농장에서 나팔꽃 연구를 하고 있었을 때입니다(다키이 연구농장은 지금도 ‘다끼이 종묘’로 유명한 곳이죠).

    본작에서는 위협을 받아 수원의 농사시험장에 억지로 끌려왔다는 설정이지만요.

    그리고 어제의 TMI에서도 말했던 것이지만, 현실에서 우장춘 박사의 ‘종의 합성’ 연구는 같은 속(屬)에 속한 두 종의 교배에 대한 것이고, 작중에서처럼 이세계의 작물과 지구의 작물을 합성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부디 오해하거나 집에서 따라하지 말아주세용!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저는 월요일에 다시 뵙겠습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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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eongseong’s Hunter Academy

Gyeongseong’s Hunter Academy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Artist: Native Language: Korean

I woke up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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