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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8

     

    “…성녀님?”

     

    아르윈은 성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만의 시간을 방해한건 아닌가 싶었지만…아르윈은 알았다.

     

    홀로 눈물을 흘릴때는 도움이 필요하다는 신호라는 걸.

     

     

    실프리엔의 동료기도 한 그녀를 내버려두고 싶지 않았다.

     

     

    성녀는 아르윈의 등장에 놀라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숨을 삼키고 동그란 눈으로 아르윈을 올려다보는 건 덤이었다.

     

     

    그녀는 아르윈의 모습에 눈을 깜빡였다.

     

    당장 보고 있는게 믿기지 않는다는 것처럼.

     

    아르윈은 어떻게 포문을 열어야하는지 고민하다 물었다.

     

    “….왜…울고 계세요…?”

     

    “………”

     

    하지만 성녀는 대답없이 그녀만을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그녀의 눈이 아르윈의 머리카락을, 눈을, 입을, 귀를 훑는다.

     

    끝내, 손에 있는 반지까지도.

     

     

    어째서인지 반지에 붙어 떨어지지 않는 성녀의 시선에 아르윈은 반사적으로 손을 등 뒤로 숨겼다.

     

    그제야 성녀는 정신을 차린 듯, 호흡을 고르며 말했다.

     

     

    “아…아니에요.”

     

    “…”

     

    상상 이상으로 순수해 보이는 사람.

     

    금방 성녀가 왜 성녀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게 딱한 모습을 보일수록 아르윈은 더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솟았다.

     

    과거의 그녀는 이러지 않았겠지만, 이조차도 베르그가 만들어낸 변화였다.

     

    힘든 시기에 뻗는 손이 얼마나 의지가 되는지 알았으니까.

     

     

    “도와드릴건 없을까요?”

     

    아르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없…”

     

    성녀는 눈물을 닦아내며 대답하다 그대로 굳었다.

     

    “…”

     

    잠시 침묵을 선택하던 그녀가 묻는다.

     

    “…도와주시…게요…?”

     

    덜덜 떨리는 그녀의 목소리.

     

    아르윈은 그 눈물 담긴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도와드릴게요.”

     

    어떤 부탁이던지간에, 가능하다면 들어줄 생각을 했다.

     

     

    성녀의 눈이 아르윈을 찾았다.

     

    한참을 입을 달싹이던 그녀가 끝내 제안한다.

     

    “….그러면….이야기 좀 나누시겠어요…?”

     

     

     

    ****

     

     

    아르윈은 성녀의 곁에서 오랜시간 앉아있었다.

     

    어렵게 눈물을 진정시키고 있는 성녀를 기다려주었다.

     

    어떤 이야기를 꺼낼지는 모르겠으나, 도와주겠다고 한 아르윈이었다.

     

     

    생각해보면, 마족과의 전쟁을 이끌어가는 영웅 중 한명이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이런 기회조차 어쩌면 축복일지도 몰랐다.

     

    나름의 친분을 만들어두는 것도 괜찮겠다 싶은 그녀였다.

     

     

    다름 아닌 성녀였으니 말이다.

     

    어쩌면 차후 베르그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진정이 되셨나요?”

     

    성녀의 눈물이 잦아들자, 아르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성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고개를 틀어 아르윈과 마주했다.

     

    또 한참을 그녀를 살피던 성녀가 속삭였다.

     

    “…성함이 어떻게 된다고 하셨죠?”

     

    “저는 아르윈 셀레브리엔이에요.”

     

     

    문득 자기소개를 하며, 아르윈은 베르그를 언급할 필요성도 느꼈다.

     

    다른 귀족들은 혼인을 올리며 성씨가 바뀌는만큼, 그것만으로 자기소개가 어느정도 된다지만.

     

    베르그는 귀족이 아니라 성씨가 바뀌지 않은 아르윈이었다.

     

    그러니 그녀가 덧붙였다.

     

     

    “…홍염단의 부단장, 베르그의 아내이기도 하고요. 베르그를 따라서 이곳에 왔어요.”

     

    “…………….”

     

    성녀는 아르윈의 말 뒤에, 또 한참을 말 없이 굳어있었다.

     

    “…예쁘시네요.”

     

    아르윈은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그러시는 성녀님도…”

     

    “…”

     

     

    어째서인지 쓸쓸해보이는 성녀의 모습에 끝내 아르윈이 물었다.

     

     

    “그래서요?”

     

    “…”

     

    “왜 울고 계셨어요?”

     

     

    그 질문에, 성녀는 제 의복에 얼굴을 묻었다.

     

    표정을 도무지 보여주지 못하겠다는 것 같았다.

     

     

    마치 작은 동물 같은 성녀의 행동에, 아르윈은 동정심이 계속해서 솟았다.

     

    한참을 기다릴 수 있는 마음이 생겨났다.

     

     

    “…후회하는 일이 있어서요.”

     

    성녀가 말했다.

     

    허탈한 웃음도 터트린다.

     

     

    “…제 것인 줄 알았던 걸…평생 잃어버린걸지도 몰라서…그래서…”

     

     

    아르윈은 나름의 위로를 주었다.

     

    “…물질은 언제나 돌아오는 거에요. 무엇을 잃으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을 잃었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하지만 성녀가 그녀의 말을 끊고 말했다.

     

    그 대답에, 아르윈의 입이 굳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고 하니, 아르윈도 어째서인지 심장이 뻐근했다.

     

    자신의 입장에 대입해, 베르그를 잃은 상상을 했기에 그런걸지도 몰랐다.

     

     

    베르그를 잃으면 자신은 어떻게 행동할까.

     

    눈 앞의 성녀처럼 한참을 울고 있을까.

     

     

    “…제 잘못이었어요. 처음부터 모든게 잘못됐어요. 이랬으면 안되는 거였는데…”

     

    “…”

     

    “그 행복했던 순간들이 다시는 오지 않을수도 있다는게 너무나 힘들어요…너무나 아파요…”

     

     

    아르윈은 실프리엔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물었다.

     

    “…사랑한다는 분이…남성분인가요?”

     

    “…”

     

    성녀는 그 말에 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실을 시인하는 모습에 아르윈은 숨을 삼켰다.

     

     

    실연당한 사람을 실제로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아픔이 무감정한 그녀에게도 전염되는 것 같아 놀라웠다.

     

    어쩌면 약간의 상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 그런걸지도 몰랐다.

     

     

    아르윈이 말했다.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한 그녀의 노력이었다.

     

    때로는 그저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풀릴때가 많은 걸 알았다.

     

    “…좋은 분이었나보네요.”

     

     

    성녀가 끄덕였다.

     

    “어릴적부터 함께했거든요.”

     

    “소꿉친구인가요?”

     

    “…네. 9살때부터 알았어요. 제가 고아가 됐을때도 저를 떠나지 않았고요. 저를 위해 싸워주고, 제가 웃을 수 있도록 항상 노력하던 사람이었어요. 그런데…어쩌면…”

     

    “…”

     

    성녀의 눈에서 또다시 눈물이 흘렀다.

     

    후회가 넘치는 목소리로 그녀가 말한다.

     

     

    “…전쟁에 나서기 위해 떼어놓고 온 사람인데…흐윽…너무 매몰차게 밀어냈나봐요. 너무…너무 어리석은 선택이었어요. 저도 제가 왜 그랬는지…”

     

    “…돌아가신 건가요?”

     

     

    성녀는 고개를 젓다 말했다.

     

    어렴풋한 한기가 목소리에 내려앉는다.

     

    “…아내가 생겼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아.”

     

     

    아르윈은 숨을 삼켰다.

     

    이제야 성녀의 아픔이 이해가 되고 있었다.

     

    스스로를 희생해 몸을 전장에 던졌더니, 사랑하던 사람에게 짝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것이다.

     

    아르윈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아픔이었다.

     

     

    성녀의 편을 들어 말한다.

     

    “…남자분이 못되셨네요.”

     

    “….”

     

     

    성녀는 그에 대답하지 않았다.

     

    고개를 무릎에 다시 묻고, 그렇게 멈춰있을 뿐이었다.

     

     

    한참의 시간이 또 흐르고, 성녀가 물었다.

     

    “…아르윈님은…남편분이랑 사이가 좋으신가요?”

     

    “네?”

     

    “…불편한 점은 없으신가요? 정략혼이시라고…들었는데.”

     

     

    성녀가 많은 말들을 생략했지만, 질문에는 많은 질문이 담겨있었다.

     

    평민인 인족 용병에게 팔려나갔는데 괜찮냐 묻는 의도가 깔려있었다.

     

     

    “…”

     

    아르윈은 실연에 고통스러워하는 성녀에게, 혼인의 행복함을 알려주어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성녀가 제 아픔을 토로해놓았듯, 아르윈도 제 고민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게 대화의 예의일 수 있으니 말이다.

     

     

    실프리엔과도 나누었던 이야기를, 아르윈이 꺼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요새 저도 머리가 복잡해요.”

     

    “…….네?”

     

    “원래 저와 제 남편이 사랑으로 이어진 사이는 아니었잖아요. 말씀했듯, 정략혼이니.”

     

     

     

    성녀는 눈을 깜빡이다 어렵게, 상상 이상으로 힘들어하며 속삭인다.

     

    “…안돼요…남편에게 잘해주셔야죠…”

     

    마치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반복하지 말라는 듯.

     

     

    아르윈도 그에 말했다.

     

    “저도 그러고 싶은데…수명 문제가 계속 걸리네요.”

     

    “……”

     

    “길어야 60년을 함께할텐데. 그 후면 사별할텐데…사랑을 나누는게 맞는지…혹시 한참토록 아파하기 전에 이별하는게 맞는건 아닐지…”

     

     

    말을 하면서도 아르윈 또한 슬픔이 찾아왔다.

     

    그녀는 분위기를 풀어보고자 성녀에게 말했다.

     

     

    “실프리엔 언니도 단명종은 단명종끼리 함께하도록 두어야한다고 하더라고요.”

     

    “…”

     

    “그래서 더 고민되네요.”

     

     

    성녀가 물었다.

     

    “…아직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신가요?”

     

    “……….”

     

    아르윈은 그 간단한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아니, 답은 알지만 말을 하지 못하는걸지도 몰랐다.

     

    그녀는 어깨를 으쓱이며 질문을 넘겼다.

     

     

    그리고는 묻는다.

     

    “…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이토록 순수한 성녀님이라면 좋은 이야기를 해줄거라고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누군가가 조금만 더 떠밀어 준다면, 마음에 대한 답을 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더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미래를 대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질문에 성녀는 힘없이 웃기 시작했다.

     

    “…?”

     

    아르윈은 의문을 가졌다.

     

    하지만 순수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성녀는 한참토록 그렇게 웃었다.

     

    미소가 전염될 것 같으면서도, 또 한켠으로는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그런 웃음이었다.

     

    끝내 웃음을 진정시킨 성녀가 묻는다.

     

     

     

    “……그러면 그냥 이혼하시는 건 어때요…?”

     

    어떠한 악의도 담기지 않은 것 같은 질문.

     

     

    “…네?”

     

    순결의 신, 헤아에게 선택을 받은 성녀의 제안에, 아르윈은 잠시 굳었다.

     

     

    성녀가 아르윈을 올려다보았다.

     

    다시금 그녀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 편이 행복하시지 않으시겠어요?”

     

    “…”

     

    “아르윈님의 말도, 실프리엔님의 말도 틀린게 없는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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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IW 섞일 수 없는 이종족 아내들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Polygamy is abolished.

We don’t have to force ourselves to live together any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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