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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8

        기계의 몸이라도 잠은 자야 한다.

       

        오랫동안 컴퓨터를 켜 놓고 있으면 블루스크린이 뜨는 것과 같은 이치다. 물론 인간보다야 수면 시간이 길었지만 몇 날 며칠을 안 자고 버틸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하루 권장 수면시간은 3시간이다. 이 이하로 잠을 안 자면 다음 날 찌뿌둥한 채로 하루를 버텨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로즈마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후아암.”

        “오늘 피곤해 보이네.”

        “어제 잠을 설쳤어요….”

       

        마른세수를 하는 것처럼 눈가를 비비는 로즈마리의 입에서 하품이 연달아 튀어나온다.

       

        귀신이나 마수가 무서워서 잠을 설친 건 아닐 테지. 그 괴물이 자기 자신인데 말이다.

       

        어젯밤 밤을 새워가면서까지 무언가를 한 모양이다. 그 ‘무언가’를 알아내기 위해 나는 머리를 필사적으로 굴렸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되기 직전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버멜이 위험하다.

       

        “나 잠깐만 화장실 다녀올게.”

       

       

        지금이라면 보는 눈이 많으니 로즈마리도 함부로 스코프를 켜지 못할 것이다. 나는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구내식당을 빠져나왔다. 

       

        동료의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 오직 그 생각만으로 교양관을 향해 뛰었다.

       

        – 철컥

       

        은신처 문을 따고 들어가자 철제 카메라 여섯 대가 날 반겼다. 

       

        그럼 그렇지. 

       

        강철판으로 된 벽면에는 날붙이에 긁힌 흔적이 역력했다. 어떻게든 원상복구하고 갔다 생각하는 모양인데, 미세한 흠결이 곳곳에 남아 있다. 아무래도 로즈마리는 벽면 어딘가에 공간이 있으리라 추측했던 모양이다.

       

        약속대로라면 버멜은 여기서 어디도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 약속을 하루도 안 돼서 깨 먹을 리 없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아공간에서 캘리퍼스를 꺼내 최대한 길게 잡았다.

       

        – 챙! 챙! 채앵!

       

        포크로 유리잔을 두들기는 것처럼 청명한 소리가 카메라 렌즈를 꿰뚫는다. 모든 감시 카메라를 깨부수자 버멜은 알을 깨고 나오는 아기 새처럼 캐비닛에서 뛰쳐나왔다.

       

        버멜은 숨을 쌕쌕거렸다. 얼굴은 새하얀 목련처럼 창백했다. 왼팔과 오른쪽 관자놀이에는 피딱지가 내려앉아 있었다.

       

        혼자서 호러 영화를 찍고 있다… 라는 농담은 하지 못했다.

       

        “…어떻게 알고 여기 온 거야?” 

        “오늘 로즈마리가 수업 시간 내내 졸더라고.”

        “고맙다. 너 아니면 진짜 죽을 뻔했어.” 

        “감사 인사는 넣어둬. 안 그래도 지금 시간 없거든.” 

       

        마음 같아선 양호실에 넣어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여기서 나가는 게 오히려 위험하다. 심한 부상은 아닌 것 같으니 붕대라도 있으면 알아서 잘 낫겠지.

       

        나는 버멜에게 눈대중으로 인사한 뒤 식당으로 돌아왔다.

       

        어느새 깔끔하게 비어 있는 식판. 로즈마리는 냅킨으로 입가를 닦으며 고개를 돌렸다.

       

        “언니, 왜 이리 늦었어요?”

       

        여태 행적을 생각하면 로즈마리의 지략은 상당한 수준이다. 내가 버멜을 만나러 자리를 비웠다는 사실을 눈치챘을까 봐 두렵다.

       

        “어허, 공녀님이 그런 거 묻는 거 아냐.”

        “피이.”

       

        아마 오늘도 지하실을 둘러보겠지. 버멜이 나오길 기다렸다가 내가 안 보이는 곳에서 암살할 게 분명하다.

       

        나는 퇴식구에 쟁반을 올려놓고는 로즈마리와 함께 식당을 나왔다. 자판기에서 캔 커피를 하나씩 뽑아 마시며 도란도란 잡담을 나누었다.

       

        “그래서 언니는 오늘 학교 끝나고 뭐 하실 생각인가요?”

        “왜, 뭐가 그리 궁금한데.”

        “다른 게 아니라 언니를 저희 집에 초대하고 싶어서요. 처음에 제가 학교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잖아요.”

       

        이건 또 무슨 꿍꿍이인지.

       

        “미안한데 네 집에 가는 건 나중으로 미루면 안 될까?”

        “무슨 약속이라도 있으세요?”

        “오후에 카이뤼삭 교수님이랑 미팅을 잡아놓았거든.”

       

        툭.

       

        로즈마리는 들고 있던 커피를 떨어뜨렸다. 양철북을 두드리는 것처럼 깡깡거리는 소리를 내며 쏟아진 커피가 바닥을 적셨다. 로즈마리는 ‘아앗…!’ 하며 짧은 신음을 흘렸다. 

       

        “괜찮아?”

        “네, 다행히 옷에 튀기진 않았네요. 내 정신 좀 봐…. 오늘은 일찍 돌아가서 자야겠어요.”

       

        로즈마리는 개다래나무에 취한 고양이처럼 헤실헤실 웃으며 캔을 주웠다.

       

        그러나 올라가 있는 입꼬리와는 달리 눈매는 사나웠다.

       

       

        ** 

       

       

        플레어를 소형화하려고 해도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하다.

       

        당장 스크롤을 작게 만드는 것부터가 문제다. 미세공정은 내 전문 분야가 아니다.

       

        “어휴.”

       

        그래도 이사장에게 석 달 이내로 만들겠다고 큰소리를 쳤으니 하긴 해야겠지. 

       

        [세상에. 어떻게 해야 할 지 가닥도 못 잡으셨으면서 기한을 맞추겠다고 떵떵거리신 거예요?]

       

        “그게 뭐가 문젠데?”

       

        [데드라인을 못 맞추면 뫼스바이언가 뭔가 하는 사람이 조리돌림할 걸요.]

       

        “그러면 맞추면 되지.”

       

        얼척이 없는 듯 입을 꾹 다무는 양장본.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지계마도 연구소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이세계 나노기술의 권위자, 카이뤼삭 교수를 만나기 위함이다.

       

        왜. 내가 모르면 남에게 배우면 그만이다. 어떻게 나 혼자 다 할 수 있겠어?

       

        – 똑똑

       

        “교수님, 오전에 면담을 잡은 에테르라고 합니다. 안에 들어가도 될까요?”

        “어서 들어오세요, 학생!” 

       

        기다렸다는 듯 문이 열렸다. 카이뤼삭 교수는 얼굴에 화색을 띤 채로 나를 맞이했다.

       

        이 교수님이 나를 반기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과거부터 명석하다고 널리 알려진 금안족.

        틸레트 역사상 유일한 필기 만점자에, 버멜이 사라진 지금은 1학년 수석.

        학부생 주제에 황립 학회 저널에서 주저자로 논문 두 편을 출판.

       

        이 세 가지가 합쳐지니 나도 모르게 교수들이 입맛을 다시는 학생이 되어있었다. 카이뤼삭 교수도 예외는 아니었는지 내 방문에 반가워하며 차와 다과를 대접했다. 이래서야 누가 교수인지 모르겠군.

       

        “학생이 무얼 궁금해하는지 오히려 제가 궁금하군요. 무슨 질문을 하고 싶나요?”

        “정령마도를 이용하여 나노 수준의 컨트롤을 하는 방법을 익히고 싶습니다.”

        “흐음.”

       

        카이뤼삭은 곤란하다는 듯 흰 턱수염을 만지작거렸다.

       

        “혹시 정령과 계약해야만 가능한 일인가요?” 

       

        수업 시간에 카이뤼삭은 정령을 이용해야 나노 수준의 미세한 컨트롤이 가능하다고 알려주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선 정령 없이는 반도체 공정을 못 한다는 소리인가? 아리송하다.

       

        “아뇨,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현재 기술력으로는 어렵죠. 그래서 정령의 손을 빌릴 수밖에 없는 겁니다.”

        “저도 정령이랑 계약할 수 있을까요? 하다못해 대화라도요.”

       

        이렇게 얘기하니 교수의 표정이 더욱더 복잡해진다. 카이뤼삭은 리만 가설이라도 들은 사람처럼 깊은 신음을 삼켰다.

       

        “역사를 전공한 친구가 한 명 있습니다. 학생의 눈을 보고 그 친구에게 그저께 물어본 적이 있었죠. 금안족도 정령을 가질 수 있느냐고.”

        “…그래서요?”

        “자신이 알기로는 그런 사례는 천 년치 사료를 뒤져봐도 없다고 하더군요. 주류학계의 가설은 아니지만, 일부 학자들은 오래전 금안족이 여신의 미움을 샀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답니다.”

       

        결국 계약 정령이 없으면 플레어 소형화는 꿈도 못 꾼다는 건가.

       

        [하지만 주인님에겐 제가 있잖아요.]

       

        양장본이 유용한 건 사실이지. 하지만 어디까지나 총망라된 마법 목록을 제공하는 백과사전에 불과할 뿐이다. 거기에 코딩 기능 조금 추가한 것 정도가 전부. 솔직히 말해서 아날로그 감성 가득한 노트북에 지나지 않는단 말이지.

       

        [진짜 너무하네.]

       

        펄럭거리던 양장본은 그대로 포켓에 쏙 들어갔다. 얘 요즘 들어 자주 삐지네.

       

        “…크흠, 정령이 없어도 연구에 필요한 장비 정도는 보여줄 수 있어요.”

        “엇, 정말요?”

        “이쪽으로 와 보세요.”

       

        실낱같은 희망이 보이자 가슴이 쿵쿵거린다. 나는 종종걸음으로 카이뤼삭의 뒤를 따라갔다.

       

        “이겁니다.”

       

        컴퓨터 모니터만 한 크기의 장비였다. 한쪽에는 검은 직육면체 상자가 있고, 그 주변을 기다란 원통과 날카로이 깎은 프리즘 몇 개, 그리고 구불구불한 도선이 감싸고 있는 구조였다.

       

        “저, 이게 뭔가요? 현미경처럼 생기긴 했는데….”

        “알고 있었나요? 현미경입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 구조는 AFM과 흡사하다. 압전소자처럼 보이는 원기둥이 중간에 깔려있었으니 말이다.

       

        원자간력 현미경이라면 학부생 시절 공동기기원에서 몇 번 만져본 적 있다. 그 뒤로는 분야가 달라 건드릴 일이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아예 생소하지는 않았으니 천만다행이다.

       

        “나노 수준의 컨트롤을 하려면 일단 나노미터 단위를 봐야 하겠지요? 우선 이것으로 원하는 시료 표면을 읽은 다음 정령의 손을 빌려 마소를 옮기는 것이 가능하답니다.”

        “어떻게 조작하는지 보여주실 수 있나요?”

        “허허, 물론이죠.” 

       

        교수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를 눈으로 좇는다.

       

        먼저 마전지를 조각으로 찢어 시료로 올린다. 다음으로 탐침을 내리고, 캔틸레버에 약한 빛을 쪼인다. 접촉 모드에서 정령인을 사용하여 마소를 하나하나 긁어 옮긴다. 마지막으로 그 결과를 열악한 사진 기술로 인화하여 찍어낸다.

       

        아무것도 없던 마전지 위에 사각형 하나가 깔끔하게 조립되었다. 아무런 기능을 하지 않는 회로였지만 명실상부 스크롤이라 불릴 만하다. 세상에서 제일 작은 스크롤 말이다.

       

        “오… 혹시 이런 기기를 빌릴 수 있나요?”

       

        학부생이라고 못 만질 건 없었기에 괜한 기대를 해 본다.

       

        “화계마도 연구실에 안 쓰는 게 하나 있는 걸로 압니다. 그곳 학과장에게 말씀드리면 아예 주실지도 모르죠.”

        “주신다뇨….”

       

        그렇게까진 필요 없는데.

       

        “에테르 학생이라면 지원을 아끼지 않을 거라 생각해요. 뭔갈 또 만들려는 계획이죠?”

       

        나는 볼을 긁적이며 무의미한 웃음을 흘렸다.

       

       

        **

       

       

        “네. 플레어를 가능하면 작게 만들어 보려고요.”

       

        에테르의 진로 설문지에 ‘플레어 소형화’라는 계획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로즈마리는 그 문구를 잊지 않았다. 오히려 관심을 갖고 지켜보던 중이었다.

       

        그래서 큰 언니가 인간 교수와 면담을 가진다고 말했을 때 커피 캔을 떨궜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나 일을 일찍 시작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으니까.

       

        ‘이걸 어떡하지….’

       

        그런 고민을 하기도 잠시.

       

        좋은 생각이 떠올라 문 너머로 대고 있던 귀를 떼었다. 로즈마리는 치맛자락을 들어 올리고는 잰걸음으로 뛰었다.

       

        벌써 날이 저물고 있다. 블랜튼 공작가의 인장이 찍힌 마차에 올라 궁으로 향했다. 피곤한 것도 있어서 오늘은 엘프의 건을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이 언니가 왜 이러는 건데 진짜…!’

         

        무엇보다 지금은 엘프가 아닌 언니부터 막아야 할 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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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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