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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8

       “실비아, 일단 진정해봐.”

        

       “저는 지금 완벽하게 진정한 상태입니다.”

        

       물론 무릎 위에 얌전히 올려두었던 손이 3mm 정도 떠오르긴 했다. 그 손이 내 이마를 탁 치기 전에 간신히 진정시켜 다시 무릎 위에 올려두긴 했지만, 앨리스의 눈동자가 아주 잠깐 아래로 향했던 것을 보면 완벽하게 숨길 수 있었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래,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전혀 진정한 상태는 아니었다.

        

       “내 눈으로 보기에는 전혀 진정한 상태는 아닌 것 같은데.”

        

       당연히 앨리스의 눈은 정확했고. 올해 들어서 언제나 그렇듯이.

        

       진정할 수 없는 상태인 게 당연하다.

        

       황제도 하지 않을 생각을 앨리스가 먼저 해서 실행해버린 거 아닌가. 내가 시간을 수십 번씩 돌려가면서 이런저런 정보를 모으고 있는 사이에 제도의 일부 귀족과 부르주아를 제국군이 뒤집어버리고 있었다는 소리다.

        

       “너무 걱정할 거 없어. 아버지한테 보고가 올라가기 전에 한 번에 싹 뒤집어버릴 수 있도록 조율했거든.”

        

       “…….”

        

       딱 한순간이지만, 앨리스가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이 있는 건 아닌가 의심했다.

        

       지금은 앨리스가 시간을 돌리기 전인 상태인 거고.

        

       “내가 황제가 될 사람이라면서?”

        

       앨리스는 나에게 말했다.

        

       “그러면 이 정도는 할 줄 알아야지. 안 그래?”

        

       “…….”

        

       미아 크로우필드의 얼굴은 이제 불안함을 넘어서 거의 공포에 물들어 있었다. 여기서 뭔가 더 알아서는 안 될 것 같다는 표정.

        

       “……그래서,”

        

       나는 30초 정도 더 진정할 시간을 가진 뒤에야 그렇게 말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뭔가 알아내신 것이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래.”

        

       앨리스가 말했다.

        

       “점조직끼리는 이어지지 않았지만, 그 위쪽의 거미줄같이 가느다란 선은 있었어. 당연하지. 아이가 오가는 건 잘 모르겠지만, 마약은 어디선가 생산되어서 제도로 오는 거니까. 제도 내에는 양귀비를 그렇게 전면적으로 키울만한 곳이 얼마 없거든.”

        

       그 말에는 미아 크로우필드도 흠칫 놀랐다.

        

       “뭐, 양귀비 원산지를 없앨 수 없는 이유 정도는 알아. 아무리 마법이 발달했어도 진통제 생산을 그만둘 수는 없겠지. 몸에 좋지 않더라도 써야 할 수밖에 없는 경우는 많으니까.”

        

       특히 마법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평민 계층이 그랬다. 아니면 마법사가 전멸해버린 최악의 상황에서 병사들이 생환하기 위한 비상용품이라던가.

        

       “그게, 저희 영지에서 흘러나가고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미아 크로우필드가 드디어 용기를 내 입을 열었다.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너는 너희 부모님을 믿고 있는 모양이구나. 조금 전에는 내 찻잔에 약이 들어가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으면서.”

        

       “…….”

        

       앨리스의 그 말에는 미아 크로우필드도 할 말이 없었던 모양이다.

        

       “뭐, 좋아.”

        

       앨리스는 작게 숨을 내쉬면서 몸을 일으켰다.

        

       “너도 너희 영지에서 일어나는 일을 전부는 알 수 없겠지. 나도 얼마 전까지는—”

        

       앨리스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들이 있으니까. 너를 탓하지는 않겠어.”

        

       “…….”

        

       그리고 미아 크로우필드도 하얗게 질리긴 했지만, 여전히 딱딱한 표정을 유지하면서 앨리스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가 원한다면, 너도 볼 수 있게 해 줄게.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크로우필드 가의 명예를 실추시키기 위한 것이라면……”

        

       “그런 건 걱정할 필요 없어.”

        

       앨리스는 쓰게 웃으며 말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황가도 그렇게까지 깨끗하지는 않거든.”

        

       그 말에는 나도 무언의 동의를 할 수밖에 없었다.

        

       *

        

       “산책하러 나가시나요?”

        

       응접실 밖으로 나오자, 거실 쪽 창가에 앉아있던 백작 부인이 몸을 일으켰다. 그 표정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저 부드러운 미소가 연기라는 것이 어마어마하다. 저게 귀족이라는 걸까?

        

       그렇다고 얼굴에서 느껴지는 표정이 언제나 긍정적으로만 보인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그건 내가 이 사람의 속마음을 어느 정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요. 혹시 미아와 함께 영지를 거닐어도 괜찮을까요?”

        

       “물론입니다.”

        

       앨리스의 말에 부인은 미아 쪽을 슬쩍 보았다. 우리 두 사람을 따라 응접실에서 나오는 미아 크로우필드의 얼굴은 여전히 하얗게 질려 있었다. 부인은 그 표정을 보고 의심스럽다는 듯 앨리스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물론 표정은 자애로운 귀족 부인 그 자체였지만.

        

       “저희 영지는—”

        

       앨리스를 따라오면서 부인이 건네던 말이 끊어졌다.

        

       우리가 향하던 저택의 문이 벌컥 열리면서 기사 한 명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우리를 따라온 호위 기사는 아니었다. 크로우필드 특유의 까마귀 문장이 그려진 갑옷을 입은 기사였다.

        

       크로우필드 영지의 기사.

        

       “영주님……!”

        

       하지만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던 기사는 부인의 옆에 서 있는 앨리스와 나를 보고는 딱딱하게 굳어졌다.

        

       나의 시선도 다시 앨리스를 향했다.

        

       하지만 앨리스는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그대로였다.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적어도 저 기사가 왜 들어왔는지는 아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무슨 일이시죠?”

        

       기사의 행동이 황녀 앞에서 보이기에는 충분히 무례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잘 훈련된 기사가 그런 모습을 보일 정도라면 알려야 하는 일도 그만큼 급박하다는 의미다. 아마 그래서 부인은 얼굴을 찡그리는 동시에 상대를 따로 탓하지 않은 것이리라.

        

       기사는 투구를 벗어들었다. 잘생긴 중년 남성의 이마가 땀에 젖어서 머리카락이 달라붙어 있었다.

        

       간신히 이성을 찾았는지, 그는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부인에게 걸어갔다. 그리고 한 손을 들어 입 옆에 세웠다.

        

       부인이 그쪽으로 귀를 향하는 것을 보고서도, 앨리스는 나에게 말했다.

        

       “그럼, 우리는 할 일을 하러 가자.”

        

       부인이 평정을 잃은 것은 우리가 저택을 나가기 직전이었다.

        

       “황녀님!”

        

       그 외침에, 앨리스, 나, 그리고 주춤주춤 우리 뒤를 따라오던 미아 크로우필드의 걸음이 멈췄다.

        

       “지금, 이게, 무슨—”

        

       조금 전 기사에게 보였던 그 찡그린 표정이 무색하게, 백작 부인도 여러모로 예절에 어긋나는 태도로 우리를 향해 달려왔지만,

        

       “황녀님.”

        

       그보다 먼저, 우리 쪽의 기사가 다가왔다.

        

       이미 백작 저택 입구에는 우리 기사들이 가득했다. 그건 별로 이상한 일은 아니다. 주인이 밖으로 나오는데 기사가 먼저 와서 대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하지만, 분위기가 영 이상했다.

        

       검을 뽑지는 않았지만, 황실 기사들과 백작령의 기사들이 서로 검이라도 뽑아 들 것 같이 신경에 날을 세우고 있었다. 만약 내가 살기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면 나오자마자 등이 땀에 젖었을 거다.

        

       “명령서에 적힌 대로 모두 조치해 두었습니다.”

        

       “좋아요.”

        

       기사의 말에 앨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뒤로 돌아서서, 거의 바로 뒤에 있던 나, 그리고 내 뒤에서 서성이던 미아 크로우필드를 보았다. 그 뒤쪽의 부인한테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앨리스는 말했다.

        

       “따라올래? 오기 싫으면 그러지 않아도 돼. 어차피 나는 그저 진실을 알고 싶었을 뿐이니까.”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기서 내가 ‘이 사실을 황제 폐하가 아신다면 어쩌겠나’하는 말을 해봐야 기사들만 동요할 테니까.

        

       게다가, 다시 생각해보면…….

        

       황제가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 더 이상하지 않을까?

        

       처음에는 황제를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불과 반년 전만 해도 말이다. 필요하다면 시간을 몇 번이고 되돌려서라도 황제를 암살해버리고 이야기를 내 마음대로 흘러가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상하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내 머릿속에서 황제를 죽일 수 있을 방법이 하나씩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무엇을 해도 다 알고 있을 것 같고…… 만약 내가 황제를 확실하게 죽일 방법을 준비한다고 해도, 이상하게 황제가 그곳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

        

       나도, 황제의 계략에 말려든 것이 아닐까 하는 불안감.

        

       앨리스는 말없이 나를 보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나는 앨리스에게 그렇게 대답했다. 앨리스의 입가에 아주 조금 미소가 서렸다.

        

       “저, 저는…….”

        

       미아 크로우필드는 불안한 듯 자기 어머니 쪽을 돌아보았다. 백작 부인은 어깨를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지금 당장에라도 여기 있는 두 황녀를 죽여버리겠다는 듯이.

        

       하지만, 분명 백작 부인한테 말을 건 기사는 ‘황제의 명’이라고 알고 있을 것이다. 명령서는 황제의 이름으로 나갔을 테니까.

        

       거의 중앙집권화가 완료되어 막대한 군사력을 휘두르게 된 제국군 앞에서 그 명을 거부하는 것은, 죽여달라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이런 식으로 일을 우악스럽게 해결하는 것은 황실 기준으로도 곤란한 일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 막대한 권력을 가진 황제가 죽은 뒤에 올라갈 차기 황제는 어쩔 건데?

        

       나는 다시 한번 앨리스를 보았다.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짓고 있는 앨리스의 얼굴을 보면……

        

       어, 음…….

        

       왠지 문제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아주 잠깐 들어서 짜증 났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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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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