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28

       수도기사단 본부 건물은 늦은 밤에도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사건사고는 밤낮을 가리지 않으며, ‘원 안쪽’에서는 오히려 밤에 소동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암살도, 밀회도, 불륜도 대체로 야밤에 이루어지는 편이기 때문에.

       

       그러나 오늘 밤은 지나간 다른 밤보다도 환하고 소란스럽다. 식별명 『푸른 장미』를 생포하기 위한 작전이 실행되려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수도기사단 3팀 부장 로널드가 뒷짐을 지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들 모였나!!”

       

       “예!!”

       

       “우리의 목표에 대해서 묻겠다. 목표는?!”

       

       “『푸른 장미』!!”

       

       반듯하게 기립한 기사들이 입을 모아 대답했다. 오늘, 수도기사단 3팀의 임무는 의문의 자경단 『푸른 장미』를 잡아내는 것이었다.

       

       『푸른 장미』.

       

       신원불명의 여성으로, 푸른색 머리카락과 과하게 꾸민 드레스가 특징적이다. 그녀는 한 달 전에 활동을 시작하였고, 지금까지 약 10명에 달하는 비공식적 범죄자를 제압, 이후 비합법적인 방식으로 관할 치안대에 인계했다.

       

       예를 들면, 비공식적 범죄자 A를 밧줄로 묶어 경비초소 앞에 매달아 놓는 식이었다. 죄목이 적힌 쪽지와 함께.

       

       여기서 수도기사단 잠깐 상식.

       

       비공식적 범죄자란, 로비나 보석금을 통해 범죄자의 신분을 벗어난 돈 많은 양아치들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주로 귀족 가문의 차남이나 삼남이 그렇다.

       

       하도 돈으로 무마하고 넘어가는 놈들이 많아서 로널드가 만든 말이었다.

       

       어째서 수도기사단이 『푸른 장미』를 노리느냐, 그것은 그녀가 수상할 정도로 귀족들만 노려서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아는 범죄자가 귀족만 있는 것처럼⋯⋯.

       

       이에 다양한 민원이 들어왔고, 거기에 더하여 수도기사단장 루루의 강력한 주장 덕분에 작전이 추진되게 되었다.

       

       “장비는 챙겼나?!”

       

       “챙겼습니다!!”

       

       “좋다!! 그러면 우선 출동 전에 준비운동을 마치고──”

       

       그렇게 기사들이 철컥거리며 몸을 푸는 사이.

       

       루루는 파워 아머를 입은 채로 구석에 쭈그려 앉아서 온갖 근심·걱정을 끌어안고 있었다. 비유하자면 ‘너희 아빠가 바로 산타클로스야’라는 소리를 들은 직후,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린아이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진짜 걔일까.

       

       아니면 어쩌지⋯⋯?

       

       혹시 아니라서 실망하면 어떡하지, 많이 아플 텐데.

       

       그래도 확인해 보고 싶어. 하지만⋯⋯.

       

       생각이 쳇바퀴처럼 빙글빙글 돌았다. 긍정적이었다가도 부정적으로 바뀌고, 결심했다가도 파도 앞의 모래성처럼 허물어진다. 

       

       “진짜로 오대수일 가능성은, 낮겠지⋯⋯?”

       

       엄청 낮을 것이다. 대체 얼마만큼의 우연이 겹쳐야 하겠는가. 그러니 분명, 『푸른 장미』는 높은 확률로 『퓨어 나이트』가 아닐 것이나.

       

       결국 실망하게 될 걸 알면서도, 간절히 바라고 있으니까.

       

       위이이잉. 철컥.

       

       루루는 파워 아머 투구를 뒤집어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온갖 기능이 달린 두터운 파워 아머 덕분에, 160 언저리의 키가 185cm까지 커지는 마법이 일어났다. 무장 상태의 수도기사단장은 강철의 거인이었다.

       

       “좋군.”

       

       준비를 확인한 3팀 부장 로널드는 당차게 선언했다.

       

       “오늘 밤, 우리는 『푸른 장미』를 잡는다-!!”

       

       “예-!!”

       

       기사들이 달밤을 내달렸다.

       

       ===============================================================

       

       로데루스 레드번은 암살 임무에 실패하여 지하감옥에 수감되는 벌을 받았다. 그러나 형량을 마치고 감옥에서 벗어난 지금도, 징벌은 이어지고 있었다.

       

       “몸이 회복되기 전까지는 소일거리 삼아 집안의 작은 일을 처리하라.”

       

       언뜻 보면 몸 상한 아들에게 정양할 시간을 주겠다는 말이었지만, 속내는 다르다. 네 능력에 회의감이 드니 밑바닥에서부터 다시금 증명해 보라는 말이었다.

       

       네가 쓸 만한 칼이 맞는지.

       

       사실상 강등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는 레드번 가문의 중심으로부터 멀어져 자질구레한 일을 맡아 하게 되었다. 

       

       레드번으로부터 몇 다리 건너 산하에 있는 단란주점의 경비나, 요새 말을 안 듣기 시작하는 불량배 조직을 손봐주는 등.

       

       기존의 로데루스였다면 심한 분노와 모욕감을 느꼈을 만한 일이었다. 엘리트 셰프에게 라면만 끓이게 시키는 격이었으니까.

       

       그러나 지금의 로데루스는 그러한 것에 연연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아주 약간만 연연했다.

       

       “사람을 아주 개새끼로 아는군⋯⋯.”

       

       우화 인력에게 주먹패들을 정리시키는 그 심보가 고까워서 열이 받긴 하지만,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오히려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쉬운 임무는 많은 자유시간을 보장하니까.

       

       남는 시간은 마법소녀 활동을 위해서 사용했다.

       

       가문 내부에서 돌아가는 여러 ‘사업’ 리스트는 머릿속에 집어넣고 있었다. 세상에 악인은 많았으니, 로데루스는 가서 거두기만 하면 됐다. 

       

       처음에는 얕게.

       

       마약에 빠진 놈팽이, 노예 거래에 손을 대려는 얼간이, 불법 사설 도박장을 운영하는 찌질이 등. 레드번과는 아주 느슨하게, 연결고리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희미하게 연결된 이들부터 노렸다.

       

       거인의 각질을 갉아내는 격이었지만, 이런 자잘한 것들이 하나둘 쌓이다 보면 분명 의미가 생길 터.

       

       그런 나날을 보내던 와중, 로데루스에게 임무가 하달되었다. 벤스톤 백작이 주최한 연회에서 경비를 서라는 내용이었다. 다음 임무가 내려올 때까지 계속.

       

       벤스톤 백작은 영지 내에 있는 질 좋은 철광산 두 개를 바탕으로 병장기 사업에까지 뛰어든 자였다. 그의 사업은 나날이 성공하여 크기를 불려 나가는 중이고, 막대한 돈을 벌어들였다.

       

       벤스톤 백작은 벌어들인 돈을 연회에 투자하여 다른 귀족과의 커넥션을 공고히 했다. 그 노력 덕분에, 그는 크라운홀 내부에서도 마당발로 통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위장.

       

       벤스톤 백작의 주 수입원은 병장기 판매가 아닌, 귀족들에게 은밀하게 유통하는 마약이었다. 

       

       꿈속 세계의 마약과는 사전적 정의가 다르다.

       

       이곳은 어지간한 중독 증세는 사제한테 찾아가면 치유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러니 양귀비도 대마초도 합법이며, 한껏 피워대서 거나하게 약에 꼴아도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러니 이런 세계에서 ‘마약’이라고 불릴 정도의 약은, 좀 더 지독한 놈이었다. 

       

       불안정하고 성질을 폭급하게 만드는 대신에, 잠력을 끌어낼 수 있는 약. 

       

       생명을 깎아내는 대신에 일시적으로 강한 힘을 발휘하는 약.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막대한 쾌락을 제공하는 약.

       

       따라서 벤스톤 백작의 ‘연회’는, 성대하고 화려한 파티의 탈을 뒤집어쓴 암시장이나 다름이 없었다. 로데루스는 그런 곳에 경비 인력으로 파견된 것이다. 말단 직원으로.

       

       사람들이 떠들고 춤추는 틈바구니 속에서, 로데루스는 시종의 복장에 모자를 눌러쓰고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누군가가 술이나 약에 취해 난동을 부리면 제압하고, 칼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칼을 뽑는다. 평온할 때는 대기한다. 그런 일이다.

       

       벤스톤 백작의 연회는 레드번 공작의 주 수입원 중 하나였다. 이곳을 무너뜨릴 수 있다면⋯⋯ 상당한 타격이 되겠지.

       

       로데루스가 연회에 참여한 인물들의 면면을 하나씩 되새기며 기억하고 있을 때.

       

       “어이, 경비.”

       

       “⋯⋯⋯⋯.”

       

       로데루스는 모자챙을 슬쩍 올려, 말을 걸어 온 놈을 바라보았다. 벤스톤 백작의 차남 즈위디 벤스톤이었다. 이명은 『약쟁이』.

       

       그 역시 ‘연회’의 핵심 멤버 중 하나로, 제 아비를 도와서 약을 팔아넘기고 있었다. 그는 높은 저항력을 갖고 태어나, 약과 독 모두를 거의 부작용 없이 쓸 수 있었다.

       

       그런 그의 역할은, 효과를 의심하는 귀족들의 앞에서 부작용을 신경 쓰지 않고 시범 복용하는 것이다. 귀족들은 약의 놀라운 효과를 보고 매료된다. 어둠 속에 가려진 부작용은 알지 못한 채로⋯⋯.

       

       또한 즈위디 벤스톤은 자신의 몸으로 신약의 성능을 테스트하거나, 약끼리 섞어서 시너지를 알아보기도 했다. 그 유용함 때문에, 옹졸하고 배배 꼬인 성격으로도 중책을 맡고 있는 것이다.

       

       그는 핵심 인물인 만큼, 유통되는 약의 대부분이 레드번 공작에 의해 내려진다는 사실도 안다. 

       

       따라서, 로데루스가 레드번 공작으로부터 파견된 칼날이라는 사실을 아는 놈이었다. 그가 임무 실패로 인해 벌을 받고 있다는 것도.

       

       “야, 내가 부르고 있잖아. 경비.”

       

       “⋯⋯말을 함부로 지껄이지 마라. 천것아.”

       

       “천것? 하⋯⋯ 아직도 돌아가는 꼴을 모르나? 총애를 잃고 버려진 들개 놈이 아직도 입은 살아있군 그래.”

       

       “배다른 자식인 건 너도 마찬가지 아닌가? 아, 물론 씨가 다르긴 하지⋯⋯. 나는 고귀한 품종의 들개고, 너는 탄광에서 굴러먹던 폐병 난 똥개니까.”

       

       촤아악-!

       

       즈위디 벤스톤은 들고 있던 와인을 로데루스의 얼굴에 뿌렸다. 그리고는 비죽 웃으면서 놀리듯이 말했다.

       

       “어이쿠, 실수로 흘려버렸네.”

       

       “이해한다. 탄광에서 노역하는 놈들은 잔기침과 수전증을 달고 살더군.”

       

       “⋯⋯언제까지 그렇게 뻔뻔할 수 있는지 보자고.”

       

       즈위디 벤스톤은 이를 한 번 갈아붙인 뒤에, 근처의 스파게티 접시를 집어들어 로데루스에게 던졌다. 철퍽, 하고 미트볼과 스파게티가 얼굴에 붙어 흘러내렸다.

       

       로데루스는 참았다. 여기서 저놈의 머리를 탕후루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간단한 일이지만, 그는 지금 벌을 받는 중이다. 

       

       마약 사업의 핵심 인력을 죽일 수는 없었다.

       

       레드번 공작은 즈위디 벤스톤이 먼저 모욕했다는 사실보다는, 자신이 내린 명령을 로데루스가 어겼다는 쪽에 분노할 것이다. 그러면 눈 밖에 날 테고, 가문을 정화한다는 목표와도 멀어지겠지.

       

       그걸 즈위디 벤스톤도 대강은 알았다.

       

       “알아서 치워, 경비 새끼야.”

       

       즈위디 벤스톤은 마지막으로, 로데루스의 구두에 가래침을 탁 뱉고는 떠나갔다. 그는 깊은 심호흡으로 화를 갈무리했다.

       

       퓨어 나이트의 다음 표적이 정해지는 순간이었다.

       

       ===============================================================

       

       밤이 깊었다.

       

       파티가 마무리되고, 귀족들이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으며, 로데루스 또한 잠깐의 자유를 얻었다. 다음 파티가 있을 때까지는 쉴 수 있을 터다.

       

       “변신.”

       

       아니면, 크라운홀의 공공질서에 기여하거나.

       

       벤스톤 저택의 창문이 열리고, 자그마한 그림자가 벽을 타고 솟아올랐다. 타닷. 그림자는 유연하고 가벼운 몸놀림으로 순식간에 지붕에 발을 디뎠다.

       

       바람이 불어 둥근 달을 가린 구름이 밀려나면, 달빛 아래로 푸르른 미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긴 리본을 나부끼며 크라운홀을 누비는 마법소녀, 『퓨어 나이트』였다.

       

       “『리본 로프』.”

       

       촤라라라락-!

       

       마력으로 형성된 푸른 리본이 길게 늘어나며, 다음 건물의 난간을 둘둘 감았다. 오대수는 가볍게 발을 굴러 지붕 꼭대기로부터 떨어졌다. 

       

       휘이이이-!

       

       자그마한 몸이 반원을 그린다. 오대수는 리본을 타고 하늘을 누비며 크라운홀 시가지를 가로질렀다. 바람이 나풀거리며 귓가를 스쳤다.

       

       야간 순찰 시간이었다.

       

       늦은 밤에도 사건은 일어난다. 크게 보면 별것 아닌 일이더라도, 사건에 휘말린 당사자에게는 모든 것일 터. 그런 이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목적이었다.

       

       고요한 도시를 지나가는 건⋯⋯ 종종 고독함을 느끼게 했지만, 따스한 추억을 되새기면 괜찮았다.

       

       사람을 구하고 악을 처벌한다.

       

       그로 인해서 그리운 친구들의 모습에 한 발짝 더 가까워질 수 있다면, 스스로에게 떳떳할 수 있다면 못 할 게 없었다.

       

       하늘에서 지상을 관찰하던 오대수의 눈동자가 으슥한 뒷골목에 머물렀다.

       

       저기에, 달아나는 어린아이가 보인다.

       

       도둑질? 아니야. 어린아이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 아이의 눈에서는 자유를 향한 갈망을 읽어낼 수 있었다. 뒤를 쫒는 것은 거지다. 탐욕에 물든.

       

       아마도⋯⋯ 아이들에게 동냥을 시켜 상납금을 받는 종류의, 작은 조직이 아닐까. 그렇다면야.

       

       휘리릭!

       

       “컥⋯⋯!!”

       

       “으앗⋯⋯?!”

       

       뒤쫒는 거지는 리본으로 가볍게 묶어서 제압한다. 마법소녀는 도망치는 아이의 앞에 사뿐하게 내려섰다.

       

       그 모습에 아이는 깜짝 놀라서 뒤로 넘어져 버렸다.

       

       오대수는 목을 가다듬고, 최대한 상냥하려고 노력하며 말했다. 오혜인처럼.

       

       “괜찮아?”

       

       “아, 으⋯⋯.”

       

       “놀랄 거 없어. 나는 못된 사람들에게만 관심이 있거든.”

       

       오대수는 빙긋 웃으면서, 무릎을 살짝 굽히고 손을 내밀었다. 아이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덤벙대다가, 그녀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서쪽 교회로 가. 그곳의 사제님은 그나마 청렴하니까, 나이를 먹을 때까지 목숨 정도는 부지할 수 있을걸.”

       

       “⋯⋯⋯⋯.”

       

       “가, 어서.”

       

       아이는 마법소녀를 바라보며 얼굴을 붉히더니, 부리나케 도망갔다. 오대수는 그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거지에게 시선을 돌렸다.

       

       “거지. 너는 이제 북문에 매달리게 될 거──”

       

       “표적 발견했습니다!! 『푸른 장미』, 표적 발견!!”

       

       “⋯⋯⋯⋯?!”

       

       오대수는 다급하게 주변을 둘러봤다. 투구에 내장된 빛 마법으로 라이트를 켠 기사가, 자신을 가리키며 도시가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수도기사단이 어째서⋯⋯?!”

       

       요새 너무 들쑤시고 다녔나!

       

       척척척척.

       

       사방에서 육중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하나가 아니다. 

       

       오대수는 골목길의 어둠 속으로 뛰어들었다. 괜찮다. 그렇게 위험한 상황은 아니었다. 충분히 따돌릴 수 있다⋯⋯!

       

       “표적이 도주합니다!!”

       

       “포위망을 구축⋯⋯ 날았어?!”

       

       “플라잉 자경단이다!!”

       

       “지금은 야밤이다 얼간이들아! 사람들 다 자는데 목소리 좀 낮춰!”

       

       수도기사단은 하나하나가 얕볼 수 없는 전력이지만, 술래잡기에서는 다르다. 저것들은 시끄럽고 둔하다. 

       

       “『퓨어 미라지』!”

       

       오대수는 마력으로 자신의 분신을 만들어 사방으로 뿌렸다. 가까이서 보면 뭉툭해서 티가 나지만, 멀리서 보면 쉽사리 구분이 가지 않는 정도의 분신이다.

       

       “분신 자경단이다!!”

       

       “젠장, 상대는 환상 마법사라는 말이냐?!”

       

       “잡았⋯⋯ 분신입니다!!”

       

       혼란에 빠진 수도기사단의 틈바구니에서 오대수는 유유히 빠져나왔다. 생각보다 간단했다. 하기사, 기사라는 작자들이 건물을 박살 내가며 추적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저들이 재산과 인명피해를 감수하고 ‘최단 루트’로 추적했더라면 잡혔을 것이나, 지금으로써는 어림도 없었다. 

       

       “흥, 나를 잡으려면 한 세기는 멀었⋯⋯.”

       

       그 순간.

       

       오대수는 자신의 등 뒤에 태양이 있는 듯한 착각을 받았다.

       

       식은땀이 흐르고, 전신의 근육이 바짝 긴장했다. 자신을 손짓 하나로 지워버릴 수 있는 존재가⋯⋯ 바로 등 뒤에 있다.

       

       우우우우우웅-!!

       

       짐승이 울부짖는 것 같은 엔진음.

       

       “거기.”

       

       마력으로 변조되어, 지옥의 틈바구니에서 외치는 것 같은 위협적인 목소리.

       

       “얼굴 좀 보자.”

       

       “⋯⋯⋯⋯!!”

       

       오대수는 필사적으로 몸을 날렸다. 전력을 다해서 도망쳐야 한다.

       

       김루루는 달아나는 마법소녀의 뒷모습을 보며 우두커니 서 있었다. 닮았다. 비슷하다. 똑같은 부분도 있다. 하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얼굴을 보기 전에는 믿을 수 없다. 그렇게 자신을 다독여봐도, 심장이 엄청 두근거렸다. 설마⋯⋯ 진짜?

       

       진짜라면.

       

       진짜라면⋯⋯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아니지, 멍청한 루루야. 일단 잡아놓고 봐야지⋯⋯!!”

       

       루루는 투구 위를 텅텅 두드렸다. 전신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위이이이이잉──!!

       

       콰앙!!

       

       그리고 크레이터를 남기며 날아올랐다.

       

       ===============================================================

       

       걸어 다니는 태양, 피부로 느껴지는 막대한 힘, 파워 아머. 저것이 바로 수도에서 악명이 자자한 수도기사단장이리라. 

       

       맹세컨대, 저 수도기사단장이라는 자가 몸을 조금만 더 잘 썼어도 진작에 잡혔을 것이었다.

       

       슈우우우웅──!!

       

       “이 방향이 아닌데⋯⋯!!”

       

       엉뚱한 곳으로 꼴아박거나.

       

       “야, 거기 멈춰보, 지나쳐버렸다⋯⋯!!”

       

       가속 조절을 실패해서 오대수의 저 앞으로 먼저 가버린다거나.

       

       온갖 실수란 실수는 다 하는데도 추적이 이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양자간에 존재하는 막대한 출력 차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째서?

       

       어째서 승화급 인물이 자신을 쫒는 것인가.

       

       내 정체를 들켰나⋯⋯? 아니, 그건 말이 안 된다. 변신할 때마다 주변을 수십 번은 확인하는데⋯⋯!! 오대수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혼란에 빠졌다.

       

       수도기사단장은 그/녀를 끈질기게 쫒아왔다.

       

       “야!!”

       

       “⋯⋯수도기사단장이, 왜 나를 쫒는 거냐! 얼마나 할 일이 없는 거냐고!”

       

       “멈춰!!”

       

       “너 같으면 멈추겠냐?!”

       

       김루루는 생각했다. 목소리도 닮았네. 성질낼 때마다 말끝이 올라가는 것도 그렇고. 하지만 확실하지가, 확실하지가 않으니까! 

       

       눈이 빙글빙글 도는 루루의 곁으로, 나비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나비는 마치 혼잣말처럼 조용히 속삭였다. 루루는 그게 자기 생각이라고 생각했다.

       

       -바보야. 알아볼 방법은 간단해. 이름을 부르면 되잖아? 

       

       “⋯⋯알아! 그, 근데. 진짜면 어떡하는데?!”

       

       -진짜이기를 바라고 있던 거 아니었어?

       

       “맞지, 그런데,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단 말야. 얼마 만에 만나는 건데⋯⋯ 아이씨, 오늘 부관한테 머리 꾸며달라고 할 걸 그랬나⋯⋯?”

       

       옷이라도 이쁜 거 입고 나올걸. 뒤늦은 후회였다.

       

       나비는 키득키득 웃으면서 조언했다.

       

       -오대수도 엄청나게 외로워했어. 너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너무 낙, 낙, 뭐더라. 긍정적인 생각이야.”

       

       -낙관적인 예측이 아니야. 눈 딱 감고 불러 봐.

       

       “그럼, 만약에 맞으면⋯⋯ 뭐라고 해?”

       

       그건 네가 더 잘 알걸. 나비는 흩어졌다.

       

       루루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대로 『푸른 장미』를 놓쳤다가는 잠은 다 자는 거다. 여름방학 일기 쓰기처럼 더 이상 미룰 수는 없다. 

       

       “오, 오⋯⋯.”

       

       엄청 보고 싶었으니까. 그러니까, 만약 실망하게 되더라도, 지른다!

       

       “오대수-!!”

       

       “⋯⋯⋯⋯?!”

       

       턱.

       

       어느 저택의 지붕 위에서, 바쁘게 뛰던 두 사람의 발이 동시에 멈췄다. 로데루스는 수도기사단장을 마주 보며 레이피어를 뽑아 들었다.

       

       그리고 두 눈동자에는 지독한 살기가 깃들었다. 

       

       어, 뭐지. 예상하던 반응이 아닌데. 루루는 뇌정지가 와서 덜컥 굳었다.

       

       “너, 그 이름을 어떻게 아는 거냐.”

       

       “⋯⋯어, 어?”

       

       “그 이름을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다. 그리고, 그 이름을 언급한 소녀는 어떻게 했지? 말해-!!”

       

       “아, 아아아아. 아휴⋯⋯ 까, 깜짝 놀랬다아⋯⋯.”

       

       우연히 이세계에 떨어진 친구를, 수도기사단이 붙잡아서 고문이라도 한 줄 알았던 걸까. 루루는 놀란 가슴을 부여잡으면서 침착하게, 벗기 버튼을 눌렀다.

       

       푸쉬익──!!

       

       갑옷 틈새에서 증기가 나오며, 하나둘 장착이 해제되었다. 루루는 파워 아머에서 폴짝 뛰어내린 뒤에, 짜잔-! 하고 말했다가.

       

       “아, 투구⋯⋯.”

       

       투구까지 제대로 벗고 옆구리에 끼운 뒤, 다시 한번 “짜잔!” 이라고 말했다. 로데루스는 눈을 한계까지 크게 뜬 채로 굳었다.

       

       “환상 마법에 당했나⋯⋯?”

       

       “야, 오대수. 내가 그랬지.”

       

       “너, 아니⋯⋯.”

       

       “나, 원래는 엄청 강하다고⋯⋯ 했지!!”

       

       우다다다. 쾅!

       

       김루루의 안녕태클이 작렬했다. 로데루스는 컥, 하고 뒤로 넘어가 버렸다. 그의 두뇌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옆에서 나비가 단서를 속삭이기도 했다.

       

       언젠가 김루루가 내뱉었던 대사.

       

       ‘그리고 혜인이한테 들은 건데. 마법소녀는 둘이서 함께 싸우면, 퓨어 에너지도 두 배로 얻는대! 그러니까 마력을 독식하겠다고 싸울 필요가 없다는 거야.’

       

       마력이라고 했다.

       

       다들 퓨어 에너지라고 말하고 다니는 와중에, 마력이라고 했다!

       

       “⋯⋯살아있었구나.”

       

       로데루스는 전신에서 힘이 쭉 빠졌다. 안도감, 벅참, 기쁨, 그런 감정들이 마구잡이로 섞여서 머리를 쿡쿡 찔러댔다. 그는 뭐라고 한마디 하려다가⋯⋯.

       

       김루루가 얼굴을 묻은 자신의 가슴팍이 점점 축축해지는 걸 깨닫고, 그냥,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올려다본 밤하늘이 오늘따라 죽이게 예뻤다.

       

       그리고 한동안, 즐거운 재회의 침묵을 즐기──

       

       “이쪽으로 흔적이 이어집니다!!”

       

       “⋯⋯제기랄.”

       

       즐길 틈도 안 주는군.

       

       김루루의 정체가 사실 수도기사단장이었다고 해도, 그 아래의 기사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는 미지수였다. 만약 일이 잘 풀린다고 해도, 이대로 붙잡히면 상당한 시간을 쓰게 될 터.

       

       그러면 레드번 공작의 의심을 사게 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지금은 재회를 기약하며 물러나는 편이 나을 터.

       

       “김루루.”

       

       “⋯⋯크응, 오대수.”

       

       “다음에 다시 보자. 여기는 크레페도, 탕후루도 없지만⋯⋯ 케이크는 있으니까. 동부 사거리 제과점에서, 내일 모레 낮 1시. 그리고⋯⋯.”

       

       로데루스는 김루루의 뺨을 잡고 주무른 뒤에, 잠깐 고민하다가, 이마에 쪽 하고 입술을 맞췄다. 오혜인이 우는 아이에게 이렇게 해 주는 걸 봤으니까.

       

       “⋯⋯⋯⋯!!”

       

       “울지 마. 나 이만 간다.”

       

       오대수는 수도기사단이 쫒아오는 소리를 뒤로 하며, 도시의 어둠 속으로 뛰어내렸다. 얼굴이 발갛게 된 채로 얼어붙어 있던 김루루는, 뒤늦게 쫒아 온 3팀 부장 로널드에게 이렇게 말했다.

       

       “『푸른 장미』는, 놓쳤나?!”

       

       “아니, 잡힌 것 같애⋯⋯.”

       

       마음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안녕하세요, 마이 프렌즈. 내일 연재는 늦거나 미뤄질 것 같습니다. 오전중에 일이 생겼거든요⋯⋯.
    그래서 그 대신 오늘은 고봉밥이랍니다. 아니, 뭐, 예⋯⋯ 사실 그냥 신나서 많이 쓴 거 맞아요.

    안 늦도록 비벼보긴 할텐데, 정말 늦어지거든 내일 공지로도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럼 내일, 70% 확률로 늦은 밤에 만나요!

    다음화 보기


           


Otherworld TRPG Game Master

Otherworld TRPG Game Master

Another World TRPG Game Master, 이세계 TRPG 게임마스터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wizard of the Illusion Magic School and decided to create a virtual reality with illusion magic to play a tabletop role-playing game (TRPG). It was great to create a virtual reality, but I was in trouble because there were no suitable players. During that time, I received an offer to be the professor from the Royal Academy. The offer was to use illusion magic to fill the students’ lack of practical experience safely. And so, I became a professor at the academy. “Send me back, send me back to that world right now-!” “Outer god, someday an outer god will be our doom, we’ll all die!!” “I am not the bastard of the Redburn Ducal Family. I am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Great Namgung Clan, Namgung Qinghui!” But it seems there is a bit of a misunderstanding. This isn’t a spell for dimensional travel, kids. It’s fictio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