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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8

       으으.

         

       『황제 놈은 언제 오는 거지? 애가 쓰러졌는데 즉시 병문안을 오지 않는 건 무슨 생각인 거냐. 머리가 없는 건가?』

       “그것이, 페하께선 숲에서 수렵을 즐기시던 참이라 소식을 듣고 서둘러 돌아오고 계십니다.”

       『식사하자고 불러놓고 본인은 사냥을 나갔다고? 하. 그놈이 그따위로 사니 건국제 때 신민 앞에서 짝사랑을 고백했다가 바로 차인 거다.』

       “험! 험! 그 일은 황궁에서 언급이 금지돼 있습니다.”

       『얼씨구. 가지가지 하는군.』

         

       으으으.

         

       “검진 결과 나왔습니다! 독극물은 검출되지 않았지만 마기 농도가 인간이 감당할 수준을 벗어났습니다. 이 정도면 고농도 마기로 거대화한 야수에게나 볼 수치입니다.”

       『내놔라. 흠? 식사 직후인데 왜 이렇게 낮은 거지? 설마.』

       “예? 이게 낮다고요?”

       『……아니다. 실언했군. 이렇게나 높다니. 황제 놈이 준비한 만찬에 문제가 있던 게 확실하다. 손님 대접을 어떻게 한 거지? 이러고도 황제라 할 수 있는 건가?』

       “그것이.”

       『듣기 싫다. 전부 나가라. 어린 크래프트는 내가 돌보겠다.』

         

       비몽사몽.

         

       사몽비몽.

         

       『긴장해 제대로 식사를 못 했을 거 같아 기껏 딸기 파르페를 준비해 놨건만 쓸모없게 됐나. 얘는 매번 가르쳐도 하나씩 꼭 깜박하니 원. 그래도 그렇지 매번 하는 일을 깜빡해서는, 하아. 일단 녹기 전에 파르페부터 치울까.』

         

       딸기 파르페.

         

       딸기 딸기.

         

       파르페 파르페.

         

       파르페는 유리잔의 대따큰 아이스크림에 과일과 생크림과 시럽을 듬뿍 올려서 먹는 디저트라고 해요.

         

       그러니까 딸기 파르페면 아이스크림에 폭신한 생크림을 뾰족하게 올리고 상큼한 딸기를 듬뿍 장식한 다음 달콤한 붉은 시럽을 줄무늬처럼 뿌린 모양새인 거죠.

         

       허억.

         

       완전 맛있겠음.

         

       “딸기 파르페 주세요!”

         

       파스텔은 병상에서 벌떡 일어났다.

         

       딸기 파르페를 본인 입에 넣어 치우고 있던 악마가 주춤했다.

         

       파스텔은 큼지막한 수저 자국으로 엉망이 된 딸기 파르페를 발견하고 눈이 동그랗게 됐다.

         

       소녀의 표정이 순식간에 울상으로 변했다.

         

       “우아앙! 내 딸기 파르페……!”

         

       딸기 딸기 파르페가아!

         

       악마가 당혹스러워했다. 생크림 묻은 붉은 입술로 내용물을 서둘러 삼키더니 다가왔다.

         

       『일어났나. 이론상 아픈 데는 없겠지만 체감은 어떻지?』

       “내 파르파르페……!”

         

       악마가 곤혹스러워하다가 먹다 남은 딸기 파르페를 가져왔다.

         

       『아직 남았다.』

         

       파스텔은 파르페를 바라봤다.

         

       얼마나 큼지막하게 떠서 입에 넣은 건지 생크림 산맥의 반쪽이 잘려있었다.

         

       내 딸기 파르페가…….

         

       굉장한 서러움이 찾아왔다. 냉장고에 맛있는 푸딩을 사놓고 룰루랄라 샤워를 하고 돌아왔더니 악마님이 냠냠 하는 광경을 보게 된 기분이다.

         

       으아아!

         

       그거 제 푸딩이에요오!

         

       너무 서러움.

         

       근데 안 먹겠다는 건 또 아니라서 딸기 파르페를 받았다.

         

       파스텔은 파르페를 미심쩍게 살펴봤다. 생크림 산맥 근처에 코를 대고 킁킁 향을 맡았다.

         

       “악마님 침 냄새.”

         

       으에에.

         

       『날 리가 있나. 첫 숟가락질이었다. 기다려 봐라. 새 수저를 가져오지.』

         

       뿌우.

         

       “저 이미 배고프거든요.”

         

       파스텔은 생크림 산맥과 함께 딸기 친구를 큼지막하게 떴다. 작은 입을 큼지막하게 벌렸다.

         

       “우아앙~.”

         

       생크림 산맥이 입속으로 사라졌다. 소녀의 볼이 빵빵해졌다.

         

       와앙!

         

       분홍 눈동자가 반짝였다.

         

       맛있어! 맛있어!

         

       새콤한 딸기에 촉촉 부드러운 생크림이 입안에서 폭발했다. 그 사이로 달콤 차가운 아이스크림이 녹아들자 정신이 아찔해졌다. 은근히 느껴지는 마석 조미료의 단맛까지 환상적이게 조화로웠다.

         

       허억.

         

       맞아! 마석!

         

       지금 파르페를 먹을 때가 아니잖아?!

         

       진지한 사안으로 정신이 돌아온 파스텔은 서둘러 입을 우물거렸다. 생크림 묻은 분홍 입술이 씰룩였다.

         

       우물우물 우물우물.

         

       꿀꺽.

         

       허억.

         

       진짜 맛있다.

         

       수저로 이젠 산맥이 아니게 된 생크림을 떴다. 조심스럽게 딸기를 얹고 입에 크게 집어넣었다.

         

       와아!

         

       분홍 눙동자가 반짝반짝였다.

         

       “와아! 악마님! 악마님! 제 인생 최고의 셰프는 악마님이에요!”

         

       만세! 만세!

         

       『당연한 걸 말하는군.』

         

       악마가 손수건으로 파스텔 입술의 생크림을 닦아줬다.

         

       『그보다 몸 상태는 어떻지? 평범한 음식을 한참 안 먹다가 먹었으니 썩 좋은 상태는 아닐 거다.』

         

       “허억! 맞아요! 마석!”

         

       악마님 천재인가?!

         

       “악마님! 저 마석 가루 뿌리는 거 깜빡했어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방울토마토에 마석 가루요!”

         

       파스텔은 말하다가 멈칫했다.

         

       방울토마토에 마석 가루.

         

       동글동글 탱글탱글 방울토마토에 마석 가루를 어떻게 뿌려 먹지? 물방울조차 미끄러지는 초특급 신선함이잖아.

         

       분홍 눈동자가 맹해졌다.

         

       사실 내가 깜빡한 게 아니라 애초에 어려운 문제였음.

         

       이건 마치 시험 범위를 공부하지 않아서 똑똑한 파스텔이 틀린 게 아니라 애초에 문제가 너무 어려우니 틀린 것과 비슷.

         

       공부를 깜빡 안 했어도 이 문제는 애초에 틀렸을 거라는 얘기. 출제자의 난이도 조절이 실패한 거지 공부 안 한 파스텔에겐 잘못이 없는 거임.

         

       악마는 본인에게 듣기를 포기했는지 파스텔의 이마에 손을 댔다가 의사처럼 분홍 눈동자를 들여다봤다.

         

       『만세 해봐라.』

       “네? 와아! 만세!”

         

       파스텔은 일단 만세하고 뒤늦게 말했다.

         

       “근데 왜 만세해요?”

       『멀쩡하군. 정신이 살짝 꿈속에 있지만 평소에도 이러니.』

         

       악마가 수저질을 권유했다.

         

       『식사를 제대로 못 했으니 배고프겠군. 파르페 마저 먹어라.』

         

       그건 시험 공부와 달리 파스텔 인생에 어렵지 않았다!

         

       파스텔은 성실히 파르페를 먹었다.

         

         

         

       #

         

         

         

       파르페 유리잔은 알뜰살뜰하게 긁혀 깨끗해졌다. 수저가 놓이자 소리가 청명하게 울렸다.

         

       다소 배불러져서 슈퍼 진지 모드가 된 파스텔 각하는 손깍지를 끼고 정색했다.

         

       “악마님.”

       『말해라.』

       “도망칠까요?”

         

       상황을 객관적으로 되짚어 보니 심장이 뛰고 피부가 서늘해졌다.

         

       독을 먹고 쓰러지며 장렬히 범인은 황제 폐하라고 외쳤는데.

         

       외쳤는데…….

         

       사실 오해였던 거임~.

         

       헤헤.

         

       파스텔은 슬쩍 웃다가 울상으로 변했다.

         

       그런데 황제 폐하 모함은 오해가 아니야아.

         

       몸이 파르르 떨었다.

         

       확정된 미래. 잘못된 미래.

         

       완전완전 나쁜나쁜 미래.

         

       『흠.』

         

       악마가 턱을 문질렀다.

         

       『중앙정계의 정확한 현황을 모르니 명확히 판단하기 어렵군. 다만 도망칠 필요는 없다.』

       “네? 저 황제 폐하 모함했는데요?”

         

       황족 모독죄로 즉결 처형!

         

       『전대 폭군 때라면 골치 아파지긴 했겠지만 네 어머니가 힘쓴 덕분에 현재는 군주의 폭주를 견제할 제도적 장치가 많이 있다. 하물며 대귀족을 함부로 하긴 어렵지.』

         

       악마의 손가락이 파르페 유리잔을 톡 건드렸다. 유리잔이 사탕 녹듯이 흐르더니 테이블에 중앙정계의 전체 구도를 그렸다. 유리 글자가 귀족의 이름들을 적고 세력별로 구분됐다.

         

       “우왕.”

       『기본적으로 왕당파와 귀족파가 대립 중이다. 현재 황제는 폭군을 폐위시킬 만큼 비대해진 크래프트 가문을 손본 대가로 파벌이 열세인 처지지. 네 어머니와 친분도 있던 황제가 황권에 너무 위협이 된다는 이유만으로 대대로 왕당파던 크래프트를 몰락시켰으니 말이다. 파벌을 회복하려면 한참 더 고생해야 할 거다.』

         

       헤에.

         

       잘됐다.

         

       앗, 나쁜 생각.

         

       나쁜 생각 사라져라, 사라져라.

         

       파스텔은 양볼을 문질렀다.

         

       사라짐.

         

       응응!

         

       “그럼 저 더 큰 위기 아니에요? 정략이 절박한 상황에 황제 모함을 하는 귀족이 생기다니!”

         

       으아아!

         

       악마가 픽 웃었다. 순진한 소녀를 보는 눈길이었다.

         

       『그 정략은 지금 불가능하다. 대귀족이 그것도 사망하면 가문의 대가 끊기는 후작이 피를 토하고 쓰러진 상황에 파벌이 밀리는 황제는 진위 여부를 확인하자는 모욕적인 발언을 할 수 없어. 그런 주장은 오히려 귀족파에 좋은 먹잇감만 될 거다. 역시나 귀족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는 황실이라는 명분으로 말이다.』

         

       으엣.

         

       뭔가, 뭔가 굉장히 큰일이 될 거 같은 조짐.

         

       분홍 눈동자가 빙글빙글 돌아갔다.

         

       순진한 파스텔은 이런 복잡한 거 몰라……!

         

       생각이 정처없이 떠돌았다.

         

       “앗! 그러고 보니 저 후추통 떨궜어요!”

       『흠?』

         

       서둘러 품을 확인했다. 당연히 없었다. 병실을 둘러봐도 마석 후추통은 없었다.

         

       “제가 마지막에 마석 후추후추라고 유언했거든요!”

         

       죽진 않았지만!

         

       “진위 여부와 별개로 제가 쓰러지는 게 황제 페하께 나쁜 일이라면 가문을 몰락시킨 황실에 복수하기 위해 제가 마석 가루를 먹으며 자작극을 펼쳤다고 주장하면 어떡하죠? 이건 증거가 있잖아요!”

         

       마석을 먹어야 사는 이상한 몸 상태라는 건 다들 모르고!

         

       악마의 표정이 다소 심각해졌다.

         

       『그건 황제 놈이 물고 늘어지면 골치 아파질지 모르겠군.』

         

       으아아!

         

       심각! 심각!

         

       『헌데 네 후추통을 주웠다는 얘기는 못 들었다. 내게 비밀로 했을 수도 있겠지만 정략 대응 차원에서 공표하는 게 나았을 텐데도 조용한 걸 보면 황실 인사들은 후추통을 확보하지 못한 걸 거다.』

       “네?”

         

       그럼 내 후추통은 어디에?

         

       내 후추후추 어디?

         

       병실 문이 두드려졌다.

         

       악마가 인상을 찌푸리더니 문가로 향했다. 문이 열리자 평범한 잡일꾼 같은 시종인이 있었다.

         

       『무슨 일이지?』

         

       시종인이 들어와 문을 닫았다. 그리고 예의 바르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놓고 가신 게 있어 왔습니다.”

         

       품에서 태연히 마석 후추통이 꺼내졌다. 웬 쪽지와 함께였다.

         

       으엣.

         

       황실이 챙겼어야 할 증거품 등장.

         

       쪽지를 받아 펼치자 은거지 같은 주소와 문장 하나가 적혀 있었다.

         

       떨리는 분홍 눈동자가 문장을 읽었다.

         

       ―우리는 제국 최고 모략 가문의 합류를 환영하오.

         

       우아앙!

         

       너무 수상한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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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It’s Mental Immunity

No, It’s Mental Immunity

Status: Ongoing Author:
The guardian demonic sword is troubled and in distress, believing it has been ruined because of me. Does striving for advancement through consuming demonic energy seem too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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