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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8

       컬럼비아 대륙 동부의 세 나라와 접하고 있는 카리브 해는 ‘세상에서 제일 위험한 바다’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배들이 실종되는 소식들이 신문에 실리니 그런 악명을 얻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실제로 카리브 해에서 발생하는 해난 사건 사고는 잡지 기자들이 애용하는 소재 중 하나였다.

       날로 먹기 쉬웠기 때문이다.

         

       발행일이 가까이 다가오는데 지면을 채울 거리가 없으면, 편집장은 한가한 기자에게 카리브 해 실종에 대한 특집을 써보라고 지시했다.

         

       그러면 기자는 최근 실종된 배 목록을 뒤져서 <크리스티앙 가이드>로부터 좋은 평점을 받은 음식점 가까운 곳에 사는 선주(船主)를 찾았다. 그곳으로 떠나 출장비로 여가를 즐긴 후, 이전에 쓴 카리브 해 기사에서 배 이름과 화물 이름만 쏙 바꿔서 편집부에 제출하는 것이 그들의 방식이었다.

         

       그러한 짓을 매달 반복하는 편집부와 기자들 덕분에 경쟁사로부터 ‘월간 카리브 해’라는 조롱을 들은 잡지가 이번에는 ‘카리브 해 실종에 관한 오해’에 관해 특집을 낸 것은 재치있는 반격이라 할 수 있었다.

         

       기사는 카리브 해가 위험한 바다라고 오해받는 것은 2가지 이유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나는 접근성이었다.

         

       정말 세상에서 제일 위험한 바다인 ‘금역 사르가소’ 같은 곳은 애초에 사람들이 접근하지 않았다. 하늘까지 닿을 것 같은 거대한 촉수들이 넘실거리는 모습은 수백 km 떨어진 곳에서도 볼 수 있었다.

         

       덕분에 사람들은 그곳을 알아서 피해가니 사고가 나지 않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빈도였다.

         

       카리브 해는 세상에서 제일 북적거리는 바다였다.

       대륙 중간을 가로지르는 시에라마드레 산맥 때문에, 대륙 동부와 중부 사이의 무역은 대부분 해운으로 이루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카리브 해가 있었다.

       많은 배가 오가니 많은 사고가 일어나는 것은 당연했다.

         

       기사를 작성한 사람은 정확한 정보 수집력과 예리한 통찰력으로 크고 작은 사건들의 이면을 파헤친 것으로 유명한 프리랜서 기자였다. 그의 기사 덕분에 잡지 기자들은 한동안 카리브 해 실종 특집과 덤으로 딸려오는 맛집 탐방 기사를 쓸 수 없게 되었다.

         

       웃고 넘길 이 해프닝에서 몇몇 예리한 자들은 기사의 뒤편에 있는 음모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원래 그 기자가 준비하던 기사는 ‘카리브 해의 해적들과 상단 관계자들의 결탁, 그리고 그 뒤에 자리 잡은 부두교’에 관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는 갑자기 노선을 전환해서 카리브 해는 생각보다 안전하다는 식으로 기사를 썼다.

         

       뭔가 이상하다 싶어 그에게 연락을 취한 지인들은 그의 집이 얼마 전 가스등 폭발 사고로 전소되었다는 소식을 알게 되고 두려움에 떨었다.

         

       기자의 가장 친한 친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 이유는 다른 사람들과 달랐다.

         

       기자가 부두교의 협박을 피해 달아나면서 친구에게 믿고 맡긴 자료가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부두교 사람들에게 팔기로 약속한 날 직전에 사라진 것이다.

         

       누가 훔쳐 간 거야?

       설마 친구가 내 속셈을 알아채고 몰래 와서 다시 가져간 건가?

       아니면 부두교 놈들이 돈을 주기 싫어서 내 방에 침입해서?

         

       그가 공황에 빠져 있는 곳에서 몇 km 떨어진 카페의 테라스에서 사냥개 마르스는 입수한 자료를 안주 삼아 얼음을 띄운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마르스는 다른 시네페쿠스의 마도사들이 그렇듯 정보 수집과 추적의 전문가였다.

         

       시네페쿠스는 소문, 명성, 험담을 즐기는 마신이었다.

       그는 자신의 신도들에게 그가 거니는 정원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권리를 선물했다.

         

       속삭임의 정원.

       그곳에는 세상 곳곳에서 수집된 온갖 속닥거림이 메아리치고 있었다.

       마르스는 보통 그곳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그 근원지를 추적했다.

         

       그러나 가끔은 이렇게 직접 현장에 난입해서 정보를 구하는 편이 효율이 좋았다.

         

       정원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양이 너무 방대하기도 했고, ‘속삭임’과 ‘지저귐’을 구분하기 어려웠다.

         

       둘은 시네페쿠스의 마도사들 사이에 통하는 은어였는데, 속삭임은 가치 있는 정보나 사실을 의미했고, 지저귐은 가치 없는 정보나 거짓을 의미했다.

         

       “지저귐은 인생의 낭비다.”

         

       마르스는 스승이 해준 말을 금언으로 삼고 침묵을 미덕으로 여겼다.

         

       그는 맥주를 한 모금씩 마시며 따가운 햇살 아래에서 정보를 하나하나 머리에 입력했다. 헛된 말 한 마디 절대 입으로 내는 법이 없었다.

         

       마르스는 기자가 조사한 정보 중에서 몇 가지를 주목했다.

         

       부두교의 총본산으로 의심되는 섬.

       부두교의 핵심 멤버로 파악되는 간부들.

       그리고 그들이 외부와 통할 때 쓰는 창구들.

         

       서류를 모두 읽은 마르스는 속삭임의 정원에 진입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정신을 그곳으로 보내는 것이다.

         

       그곳에서 그는 기자의 자료로부터 얻은 정보를 검토했다.

       대부분이 사실들이었다.

       과연 유능한 기자다웠다.

         

       마르스는 나중에 시간나면 그가 쓴 기사들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행동은 평소보다 급한 편이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가 주인으로 모시는 베르그송 상회의 주인이 부두교의 음모에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안 것은 며칠 되지 않았다.

         

       상회의 배신자, 피에르 모파상을 추적하는 것은 어려웠다.

         

       피에르는 상회의 전 주인인 제랄 베르그송의 의형제였다.

       거기다 상회의 부회장이기도 했다.

       그는 마르스의 존재와 그가 지닌 능력, 그가 일하는 방식을 알고 있었다.

       누구보다 사냥개의 추적을 피하는 방법을 꿰뚫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이름 대신 가명을 썼다.

       그것도 접촉하는 대상마다 서로 다른 이름으로 말이다.

         

       그것은 시네페쿠스의 마도사를 상대로 아주 효과적으로 작동했다.

       속삭임의 정원에서 그의 행적을 추적하기가 몇십 배는 어려워졌다.

         

       하지만 며칠 전, 마르스는 우연히 정원에서 한 토막의 대화를 건져냈다.

         

       -어서 오시구려, 피에르 씨.

       -……루아젤이오.

         

       해적섬 프리포트에서 이루어진 짤막한 대화였다.

       대화의 대상은 피에르와 거래한 것으로 알려진 ‘집게발’이라는 해적 선장이었다.

         

       루아젤.

       그것이 피에르가 부두교를 대상으로 쓰고 있는 가명이었다.

         

       그것을 알아낸 덕분에 마르스는 몰랐던 몇 가지 정보에 접근할 수 있었다.

       그의 주인에 대한 음모도 그중 하나였다.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아내야 했다.

         

       마르스는 기자가 조사한 자료를 이용해서 루트를 찾아내 부두교 본부가 있는 섬에 잠입했다. 그는 마도사였기에 부두교에서 준비한 몇 가지 장치를 무력화할 수 있었다.

         

       그곳은 기넹이라는 이름의 섬이었다.

         

       피에르가 배임과 횡령, 살인미수로 고발된 이후, 상회 감사팀은 그의 부정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이 섬 역시 그 목록에 있었다.

       그러나 이 섬은 상회 감사팀의 조사 대상에서 후순위로 배정되었다.

         

       이 섬은 접근하기 힘든 해역에 있을 뿐더러, 겉보기로 봤을 때, 망그로브 군락지와 열대우림으로 뒤덮인 오지였기 때문이다.

         

       그런 곳에 그가 빼돌린 자재와 자금이 흘러들어갔을 리 없다는 게 감사팀의 판단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이었다.

       울창한 밀림 한가운데 부두교는 으리으리한 건축물들을 세워두고 있었다.

         

       그것들은 마르스가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오르락 내리락 하는 궤도를 따라 작은 열차가 질주했다.

       수십 미터나 되는 원형의 철골 구조물이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좌석을 실은 채 회전했다.

       쇠사슬에 매달려 좌우로 왔다갔다 하는 그네들이 빙글빙글 돌았다.

         

       이런 것들이 섬밖에서는 보이지 않았다니…….

       마도의 힘이 개입했음이 틀림없었다.

         

       마르스는 인부들 틈에 섞여 그곳으로 들어갔다.

       입구에는 ‘원더 아일랜드’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원더 아일랜드에는 저것들 외에도 군데군데 많은 건축물들이 지어지고 있었다.

       그것들 역시 아무리 봐도 그 용도를 알 수 없었다.

         

       적당히 일하는 척 돌아다니던 마르스는 공사현장 중간에서 현장 감독관들을 모아두고 찍찍대고 있는 랫맨을 발견했다.

         

       “원심력을 이용한 철도 놀이기구는 세계에 몇 군데 없습죠! 그리고 돌아가는 바퀴는 제가 직접 설계한 것입죠! 찍찍!”

         

       그는 보통의 랫맨들과 달리 말을 아주 유창하게 했다.

       거기다 하얀 가운을 착용하고, 눈에는 어두운 렌즈의 보호경을 쓰고 있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그의 머리통이었다.

       그의 두개골은 활짝 열려 있었고, 거기에는 피부 대신 투명한 유리관이 덮여 있었다.

       꼬불꼬불한 핑크빛의 거대한 뇌가 그대로 드러났다.

         

       마르스는 그가 자료에서 본 부두교의 간부 중 하나라는 것을 알아봤다.

         

       그때, 그가 몸을 돌리자 그의 뒤에 있던 사람이 드러났다.

       그는 현장감독관들에게 얘기하고 있던 게 아니었다.

       그의 앞에 선 토끼 귀를 단 소녀에게 떠들고 있는 것이었다.

         

       그녀의 외모와 간부가 존댓말을 쓸 정도의 지위.

       그는 한 명밖에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부교주.’

         

       그때였다.

       에엥 하는 사이렌 소리가 섬 전역을 뒤흔들었다.

       인부들이 당황하고 있는데, 부두교 마도사 한 명이 다가와 부교주에게 보고했다.

         

       “침입자입니다! 플로랜드 쪽 창구에서 발견된 흔적이 섬안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토끼 귀의 소녀가 분노에 찬 얼굴로 고함을 질렀고, 옆에서 랫맨이 난처한 얼굴로 찍찍댔다.

         

       인부들은 마도사의 지시를 받으며 숙소로 돌아갔다.

       마르스는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무리에서 조용히 빠져나왔다.

         

       그는 길에서 떨어진 곳에 몸을 숨기고 눈을 감았다.

         

       나가는 방법은 걱정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완벽한 탈출 방법이 있었다.

         

       하지만 별로 얻은 것도 없는데 이대로 나갈 수는 없었다.

       그는 시험 삼아 속삭임의 정원에 접속해보았다.

         

       시도는 성공이었다.

       섬을 중심으로 온갖 소리들이 그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외부에서는 들을 수 없던 속삭임을 섬 안에서는 들을 수 있었다.

         

       그는 딴 것은 전부 무시했다.

       베르그송에 대한 음모만 닥치는 대로 쓸어담았다.

         

       “침입자가 여기 어딘가 있다!”

       “추격해라!”

         

       마도술을 쓰는 것을 감지하는 자라도 있는 걸까?

       그가 정원에 접속한지 얼마 안 되어 추적자들이 근처로 몰려들었다.

         

       마르스는 모은 정보들을 머리속에 정리하고 미리 준비한 방법을 썼다.

         

       ‘내 이름을 지운다.’

         

       시네페쿠스의 마도사들은 자신의 이름을 평생 숨기고 살아야 했다.

         

       누군가 그의 존재를 인식하고 이름을 부르면, 그는 세계 반대편에 있어도 그 소리가 어디서 들려오는지 들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의 이름을 아주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함부로 입에 담지 말라고 당부했다.

         

       사회에서 동떨어져, 소문이나 엿들으며 뒷골목을 전전해야 하는 것이 그들의 운명이었다.

       가명을 너무 많이 써도 안 됐다. 그것이 자신의 진짜 이름을 대체할 수 있으므로.

       그래서 아예 그냥 남들과 소통하며 사는 것을 포기하고 사는 것이 편했다.

         

       그런 그들에게 이름을 지운다는 의식이 의미하는 바는 곧 존재의 소멸이었다.

       자신을 속삭임의 정원을 떠도는 정보들 안으로 던져넣는 것이다.

         

       이름 없이 떠돌던 자가 남기는 것 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마르스는 걱정하지 않았다.

       그의 주인은 그와 한 약속대로 주기적으로 한 번씩 그의 이름을 부르는 제사를 치러주었다.

       그녀가 이름을 불러주면 그는 비로소 다시 마르스가 될 수 있었다.

         

       그 제사를 통해 그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정체성을 되찾고, 다시 이 세상으로 존재를 되돌릴지 선택할 수 있었다.

         

       ‘다음 제사는 며칠 뒤다. 음모는 막을 수 있어.’

         

       방금 얻은 정보 속에서 그는 충분한 단서를 얻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지우는 마도술을 발동했다.

         

       “여기다!”

       “이쪽에 흔적이!”

         

       마도사들은 수풀 하나를 특정하고 그곳을 포위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들이 수풀을 젖혔을 때는 그곳에 아무도 없었다.

         

       “설마 본섬에 침입을 허용할 줄이야. 자료를 도난당했다고 할 때부터 대책을 세워나서 다행이지.”

         

       부두교의 부교주이자 토끼 마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렐 로헤라는 옆에 있는 마도사를 보며 물었다.

         

       “어때?”

         

       그는 부두교가 보유하고 있는 시네페쿠스의 마도사 중 하나였다.

       그는 자신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성공했습니다.”

         

       그들은 사냥개 마르스로 추정되는 자에게 자료를 털렸다고 들었을 때부터 이 가짜 계획을 섬에 퍼트렸다.

       가짜 회의를 하고, 가짜 명령을 내리고, 가짜 소문을 속삭였다.

         

       부두교는 마도사들의 연합체였다.

       그들은 세상 어느 곳보다 많은 마도를 수집했고, 그를 활용할 방법을 연구했다.

         

       반대로 상대의 능력을 무력화할 수 있는 방법도 많이 알아냈다.

       섬 전체에 어비스와의 통로를 열어 외부로 정보가 퍼지는 것을 방지하거나 속삭임의 정원에 지저귐을 퍼트리는 것이 그랬다.

         

       렐 로헤라는 그가 지저귐(Twitter)에서 캐간 가짜 소식이 어떤 결과를 낼지 기대하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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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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