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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8

       내가 5성 권능을 뽑고, 이브가 사라진 이후로 열흘이 흘렀다.

       

       여전히 이브는 돌아오지 않은 상태. 하지만 넋 놓고 기다릴 수만은 없는 터라, 나는 나대로 해야 할 일을 해나가고 있었다.

       

       달빛을 머금은 수정의 제작을 의뢰한 것이 그러했고, 베니와 함께 마탑의 피해보상을 조율 중인 것이 그러했으며, 2층의 계층 수호자가 떴다는 소식에 레이드 파티 참석 신청을 넣은 것 또한 그래서다.

       

       모르가나의 사건이 꽤 충격이었는지, 요즘 들어 어딜 가나 찰싹 달라붙어 오는 리디아의 옆구리를 콕콕 찌르며 물었다.

       

       “리디아 님. 리디아 님.”

       

       “응? 배고파? 그래도 먹고 들어가면 엘리 선배가 아쉬워할걸.”

       

       “그렇겠죠. 따로 밖에서 먹고 온다고 말하는 게 아니면 항상 뭔가 준비해 주시니까요. 근데 제가 리디아 님을 부른 건 그런 게 아니라 궁금한 게 있어서예요.”

       

       “뭔데.”

       

       “2층의 계층 수호자에 관해서요.”

       

       “아.”

       

       모르가나는 나와 비교하면 어마어마한 강자다. 어쩌다 우연히 조건이 맞아떨어져 잡을 수 있었던 거지, 그게 아니라면 나 같은 건 수백 명이 있어도 털끝 하나 못 건드렸을 정도.

       

       다만, 어찌 됐든 나는 모르가나를 쓰러뜨렸고 미궁은 이를 업적으로 인정했다.

       

       거기에 바실리우스의 성장 가속 효과가 더해지니 말 그대로 어마어마한 성장을 이루게 되더라. …벌써 마음만 먹으면 3층으로 넘어갈 수 있을 정도로.

       

       2층에서 더 몬스터를 사냥해봤자 스펙은 거의 늘지 않는다. 그럼에도 3층으로 넘어가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보스는 잡고 가야 하니까.

       

       2층의 계층 수호자는 1층에서 그러했듯 미궁 역사의 첫 토벌은 아닌지라 확정 권능 뽑기는 아니지만….

       

       어쨌든 권능 가챠를 돌릴 기회 정도는 준다. 이것도 처음 해당 수호자를 토벌한 모험가에 한해 주는 것이니 단챠라고 불러야 하나?

       

       속으로 그런 의문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2층의 계층 수호자가 미노타우로스라는 건 알아요. 그런데 구체적으로 어떤 몬스터인지는 잘 모르거든요. 리디아 님은 잡아보셨을 텐데 어땠나요?”

       

       “미노타우로스? 소머리에 사람의 몸을 하고 있는 몬스터지. 강해.”

       

       “외모는 알고 있어요. 얼마나 강한지, 어떤 식으로 싸우는지가 궁금한 거예요.”

       

       “으음. 어떤 식이라.”

       

       잠시 고민하던 리디아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우선 몬스터가 한때는 지성체거나 평범한 동식물이었다는 사실은 알지?”

       

       “당연히 알죠. 신전의 배급을 타 먹으려면 그 정도는 기본이니까요.”

       

       “응. 그럼 평범하지 않은 존재가 광기에 침식되면 어떻게 된다고 생각해?”

       

       “…강한 몬스터?”

       

       “반은 맞고, 반은 틀려. 강함이 특별함이 되는 건 아냐. 어떤 존재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업적이니까.”

       

       “업적….”

       

       그러고 보니 미궁에서는 업적이라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겼지. 어쩌면 신들에게 업적이란 단순히 오래 기억되는 명예 이상의 무언가일지도 모르겠네.

       

       “전쟁은 영웅을 낳아. 그리고 미노타우로스 또한 그중 하나였어.”

       

       “어…그럼 엄청 강한 거 아니에요? 신들도 죽어 나가는 전장에서 영웅이라 불릴 정도면 절대 2층 수준이 아니잖아요.”

       

       “전성기라면 그랬겠지. 미노타우로스는 나름 유명한 영웅이라 아직까지 그 기록이 남아있거든. 아마 요나도 길드 도서관에 가면 열람할 수 있을 텐데….”

       

       “에이. 거기까지 언제 다시 가요. 그냥 리디아 님이 알려주세요. 리디아 님의 목소리로 듣고 싶은걸요?”

       

       “…끼 부리기 금지.”

       

       딱콩!

       

       은근슬쩍 어깨를 비비적대며 밀착했더니 꿀밤을 맞았다. 너무하네. 자기가 달라붙는 건 되면서 나는 안되다니.

       

       속으로 투덜대고 있자니 리디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설명을 이어 나갔다.

       

       “멸신전쟁은 격렬하고 오래 지속된 전쟁이야. 그만큼 멸종한 종족도 많았지.”

       

       “뭐어. 그렇겠죠.”

       

       그래서 미궁을 돌다 보면 이미 멸종한 종족의 흔적을 발견하는 에피소드도 있을 예정이었다. 고대 종족의 신비는 국룰 아니겠는가.

       

       “이걸 달리 말하면 멸신전쟁 이후까지 살아남은 종족은 나름의 한 수가 있었다는 거야. 줄을 잘 탔거나, 그냥 저력이 뛰어나거나, 위대한 영웅이 태어났거나. …그리고 소 수인은 셋 전부에 해당했어.”

       

       소 수인은 기본적으로 덩치도 크고, 힘이랑 맷집도 좋다. 맹수 계열 수인을 제외하면 순수 태생 전투력으로는 상위권에 들 정도.

       

       마법적 재능이 좀 부족하긴 하지만 그거야 모든 수인의 공통적인 문제니 크게 도드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멸신전쟁의 불길에서 안전할 수는 없었지만…그들은 본격적으로 전쟁에 뛰어드는 대신, 안전하다고 소문난 대지의 신의 영역으로 향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옳은 판단이었다. 대지의 신은 멸신전쟁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살아남았으니까.

       

       아무튼 그렇게 도착한 대지의 신의 영역에서 어찌어찌 평화롭게 살아갔으나….

       

       대지의 신은 살아남았을 뿐, 전화를 빗겨나간 것은 아니었다.

       

       끊임없는 외부의 공세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필요가 있었고, 그렇기에 땅굴을 파고 지하 방공호를 건설한 여러 종족은 대지의 신에게 간절히 기도했다.

       

       부디 흉악한 침략자로부터 지켜달라고.

       

       처음에는 무심했던 대지의 신이었으나, 계속된 절박함을 무시할 수는 없었는지 가장 뛰어난 자질을 타고난 이에게 자신의 축복을 내리고 사도로 삼았다.

       

       “그 사람이 바로 소 수인 출신의 영웅 아스테리오스야.”

       

       땅에 발을 딛고 있는 한 절대 지치지 않는 체력, 바위처럼 단단한 몸, 산을 뒤엎는 거력, 그리고 질 좋은 강철로 무장한 아스테리오스는 강했다.

       

       좁은 땅굴을 홀로 틀어막을 때면, 군대가 몰려와도 역으로 격파하곤 했으니까.

       

       그가 버티고 지켜준 덕분에 땅굴은 점점 넓어져 미로라 부를만한 수준에 다다랐으나.

       

       아무리 강한 영웅이라도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는 법.

       

       강력한 가호를 받아 오랜 기간 젊음을 유지한 아스테리오스에게도 수명의 한계가 찾아왔다.

       

       허리는 굽었고, 근육은 쪼그라들었으며, 자랑이던 뿔은 무뎌지고 갈라졌으니까.

       

       슬슬 수호자의 자리에서 내려와 휴식을 취하려던 아스테리오스였으나…아쉽게도 그는 운이 없었다.

       

       수호자로서 미로를 순찰하는 마지막 날. 광기의 신이 소멸하며 전 세계에 최후의 저주를 흩뿌렸으니까.

       

       대지의 신의 힘으로 보호받는 최심부였으면 모를까, 언제나 외적을 막아내기 위해 외곽을 전전하던 그는 저주를 정통으로 받을 수밖에 없었다.

       

       오랜 전투로 지친 영혼과, 노쇠한 몸은 이에 저항하지 못했고. 결국 그는 광기에 침식되어 괴물이 되어버렸으니.

       

       인간의 몸에 소의 뿔, 귀, 꼬리가 달려있는 일반적인 소 수인의 외모를 하고 있던 아스테리오스는 이족 보행하는 황소의 모습으로 변이했고.

       

       이성이 희미해져 사람의 말을 잃었으며, 평생을 익힌 무기술마저 펼칠 수 없는 몸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젊은 시절의 강인함을 되찾았고……미로를 수호해야 한다는 사명만큼은 잊지 않았다.

       

       문제는 외적과 자신이 지켜야 할 이를 구분하지 못했다는 것이지만.

       

       광기에 절어버린 아스테리오스는 일평생 동안 지켜온 것들을 제 손으로 부수기 시작했다.

       

       반쯤 완성된 지하도시, 백수십 년간 동고동락해 온 이웃들, 심지어는 자신의 동족마저.

       

       아스테리오스에게는 이 모든 것이 가증스러운 침략자로 보였으리라.

       

       광기의 저주로 미쳐버린 다른 몬스터를 막아내던 대지의 신이 뒤늦게 이변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었다.

       

       신도의 절반 가까이가 죽었고, 공들여 건설한 도시는 무너졌으면, 그가 가장 아끼는 대전사는 괴물이 되어있었으니까.

       

       대지의 신은 슬퍼하면서도 황급히 아스테리오스를 격리시켰다.

       

       신의 의지에 따라 땅이 무너지고 봉합되며 지형이 뒤바뀌었으니.

       

       반파된 도시와 생존자들은 지면 위로 대피시켰고, 아스테리오스는 도시로 향하는 미로와 함께 지하 깊은 곳에 봉인되었다.

       

       하지만 차마 제 손으로 대전사를 죽일 수 없었던 대지의 신은 모든 가호를 회수하고 아무도 접근할 수 없게 미로를 꽁꽁 감쌌다.

       

       타락한 영웅을 차마 찬란하던 시절의 이름으로 부를 수 없던 생존자들은 미쳐버린 그를 출신 부족의 이름을 따 미노타우로스라 불렀으며, 대지의 신의 선택을 존중했고.

       

       뭐어. 결국 대지의 신은 마지막까지 광기의 저주를 풀 방법을 찾지 못해, 아스테리오스와 함께 판 그레이브에 묻혔지만 말이다.

       

       “그게 미노타우로스야. 튼튼한 맷집과 거력을 겸비한 소머리의 괴물.”

       

       “…슬픈 이야기네요.”

       

       이건 나도 몰랐던 이야기다. 당연한 일이지. 누가 아직 1화도 안 쓴 소설에 나올지 안 나올지도 모르는 몬스터의 세세한 뒷사정까지 설정하겠는가.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그저 2층에 묻힌 신이 대지의 신이라는 것, 어쩌다 이들이 미로 같은 땅굴을 만들었는지 정도다.

       

       그렇기에 더욱 크게 다가오더라. 언제나 내가 모르는 곳에서 내가 감탄할 정도로 살이 붙은 이야기는 감미로운 법이니까.

       

       다만, 물어볼 건 물어봐야지.

       

       “그래서 약점은요?”

       

       “…이 이야기를 듣고 가장 먼저 묻는 게 그거야?”

       

       “어차피 2층의 미노타우로스가 진짜 아스테리오스도 아니고, 설령 그렇다 해도 싸워 쓰러뜨려야 할 적이라는 건 변함 없잖아요? 가능하면 쉽게 싸우고 싶단 말이죠.”

       

       “하아.”

       

       한숨을 푸욱 내쉰 리디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요나가 그럼 그렇지. …뭐. 약점은 꽤 알기 쉬워. 아스테리오스는 평생을 좁은 땅굴에서 싸웠어. 즉, 탁 트인 곳에서의 전투는 약하다는 소리.”

       

       “공동에서 다굴하라는 소리인가요?”

       

       “응. 자세한 건 레이드 파티가 결정된 이후에 길드 쪽에서 알려줄 거야. 그 외에 약점이랄 건…역시 마법이려나.”

       

       무기를 다루지 못하니, 원거리 공격에 취약해졌다나. 다만 워낙 몸이 단단해 물리 공격은 효율이 떨어진다고도 했다.

       

       “응. 너무 가까이 다가가거나, 직선상에 있는 것만 아니면 괜찮아. 아까도 말했듯 대부분 땅굴에서 싸운 터라 직선상에서의 돌파력은 엄청나니까.”

       

       “아니, 약점이 원거리 마법이면 근접직은 어떻게 해요.”

       

       “몸빵?”

       

       “…….”

       

       모험가의 세계는 냉혹한 모양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근딜러 우러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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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cha Addict in a Matriarchal World

Gacha Addict in a Matriarchal World

남녀역전 세계의 가챠 중독자
Score 8.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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