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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8

       한때 백가의 서열 3위까지 올라갔었으나 지금은 기억하는 이도 거의 없는 프란츠 가문.

        직접적인 원인은 실질적인 가주 역할을 하던 헤르헤 소롯이 실종되어 버린 탓이었지만, 그것만이 서열 한 자릿대의 가문이 망한 이유는 아니었다.

        소환물을 직접 공수하고 각종 보험까지 들어야 하는 소환학파는 대대로 돈에 쪼들리기로 유명했다.

        살살이가 트라팔가 호수를 차지하려던 빈센트의 계획에 속아넘어간 것도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가문의 재정상태가 나쁘기 때문이었다.

       

        ‘현재 마탑에서 가장 주목받는 마법사 랭킹 3위! 인터뷰에 응해주신 파도의 소환사, 헤르헤 소롯 영애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저 이제 가도 되죠? 참고로 출연료 떼먹으면 건물 통째로 수장시켜 버릴 거에요.’

        ‘에이, 그런 걱정은 안하셔도 됩니다. 당장 다음 주에 프로그램이 폐지되지만 않으면 출연료는 정상적으로 지급될 테니까요.’

       

        오죽하면 백가의 금지옥엽이 마탑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직접 나와 인터뷰까지 했겠는가.

        정작 시청률 저조로 한 주만에 프로그램이 폐지되어버려 돈도 못 받은 모양이지만.

       

        이후, 물난리가 난 방송국의 필름실에서 건진 수정구는 이곳저곳을 전전하다 잘 쓰이지 않는 수련의 층 한쪽 창고에서 한동안 먼지를 맞았다.

        그러다 지금은 철거된 해주학파의 라운지(불법증축)가 생기는 과정에서 영상이 우리쪽에 입수된 것이었다.

       

        ‘그리고 괜히 시끄러워질 테니까 방송 나갈 때까지 저 여기 왔다는 거 다른 사람한테는 비밀로 해주세요. 특히 오빠에게는.’

        ‘어째서인가요?’

        ‘내 사정까지 일일히 말해야 돼요? 빚 때문이니까 그런 줄 알고 있어요.’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어두운 방에서 혼자 영상을 돌려보고 있는 토비의 모습은 옆에서 보기에 은근히 기분이 나빴지만, 여동생을 잃은 오빠의 넋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좋은 소식을 전해 주었다.

       

        “뭐? 헤르헤를 찾았다고!?”

        “네, 저희 쪽에서 우연히…….”

        “지금 어디 있는데!! 중층이야!? 설마 살아있지 않다는 건 아니겠지?”

        “워워 진정하세요. 숨은 멎었지만 건강에는 이상이 없으니 괜찮습니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려는 토비를 막아서며 나는 그녀를 구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내일 아침이면 공사가 시작될 예정이고 저주도 풀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직 안심하긴 이릅니다.”

        “왜, 또 뭐가 있는거야?”

        “그야 저보다 토비가 더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두 사람의 자산상태에 대해 말입니다.”

        “그건…….”

       

        나야 잘은 모르지만 폭삭 망해버린 프란츠 가문의 이름으로.남아있는 자산이 채무보다 많지는 않을 것이다.

        토비야 대학원생이라 재산을 추심할 자격이 없어 괜찮지만 만약 여동생이 살아있다는 게 알려지면 이야기가 다르다.

       

        “소환학파 출신 중에 빚이 없는 가문은 없다고 들었습니다. 그간 시간이 많이 지났으니 가문의 재산은 다 사라지고 이자는 더욱 불어났겠지요.”

        “크윽…….”

        “이러다간 여동생까지 대학원생이 되어버릴지도 모르겠군요.”

        “안 돼, 그것만큼은 제발……!!”

        “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녀는 제게도 소중한 사람이니 빚쟁이들에게 끌려가는 것만큼은 막고 싶거든요.”

       

        절망에 빠진 그의 양 어깨를 뒤에서 붙잡으며, 나는 아주 달콤한 제안을 하나 건넸다.

       

        “토비, 여동생을 되찾고 싶나요?”

        “다, 당연하지!”

        “그러면 저에게 딱 한 가지 협조만 하면 됩니다.”

       

        그것은 마치 천사의 속삭임과도 같았다.

       

       

       

        *

       

        “아악! 안 되는 것이와요! 왕가의 보물, 제 재산이……!”

        “여전히 목청만은 좋구나. 학파의 재건을 위해 딱 절반만 가져갈 테니 너무 괘념치 말거라.”

       

        다음 날.

        마가렛이 부른 인부들이 도착해 보물방을 향해 첫 삽을 뜨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포토존이 사라진 것에 아쉬운 기색을 내비치던 사람들은 금세 소문을 듣고 몰려와 보물을 구경하기 위해 기웃거렸다.

        해가 질 때까지 이어진 공사는 이튿날 새벽이 되어서야 끝났고, 나는 그 동안 남은 워크샵 일정을 소화했다.

       

        제 2회 칠현자 호소인 베틀이나 마룡의 머리가 상품으로 걸려있는 족구 대회 등 여러 종목이 있었지만 참여가 저조했다.

        프리나는 지난밤 내가 토비의 방에 들어간 뒤로 어딘가 넋이 나가있고, 토비 역시 자기 여동생을 찾을 생각밖에 없었으니.

        대부분의 우승을 내가 차지한 끝에 공식적인 일정이 모두 종료되었다.

       

        그렇게 폐회식을 앞두고 우리는 다시 보물방 앞에 모였다.

       

        “삼일간의 워크샵 동안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 뒤에 사우 여러분들을 위한 작은 선물이 준비되어 있으니 수령해 가시면 됩니다.”

        “…….”

        “뒤풀이 파티에 참석하실 분들께서는 따로 저에게 말씀해주시고, 앞으로도 저희 해주학파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며 제 2회 칠현자 호소인 베틀에서 패배하신 아녜스 님께서 이번 행사에 대해 한 말씀…….”

        “나, 나는 지지 않았다! 네가 치사하게 간지럽히기 공격을 하지 않았느냐, 그건 반칙이었다!”

       

        패배자의 추한 변명을 무시할 때쯤, 통신 수정을 통해 마가렛에게 연락이 왔다.

        콘크리트를 모두 치우는데 성공하여 보물방을 여는데 성공했다는 것이었다.

       

        “자, 다들 가실까요? 저희 워크샵의 마지막 일정입니다.”

        “이익! 도망치지 말거라!”

       

        우선 아무것도 건드리지 말라고 당부한 뒤, 사람들을 데리고 안쪽으로 향했다.

        어두운 통로를 지나 발파의 흔적이 물씬 풍기는 부서진 문의 잔해를 넘자 드디어 오래 전 이곳에 처음 왔을 때와 똑같은 풍경을 맞이할 수 있었다.

       

        “오, 정말로 보물이 있었군.”

        “이 정도라면 라운지를 다시 짓는데 무리는 없겠죠?”

        “충분하지, 고맙네 클락.”

        “헤, 헤르헤……!”

       

        널려있는 금은보화와 입구와 가까운 벽에 기댄 채 마치 자는 것처럼 앉아있는 여인.

        한손은 앞으로 뻗은 채, 다른 한손으로는 가문을 위해 가지고 가려했던 금화를 꼭 쥐고 있었다.

        먼지가 쌓인 여동생의 최후를 목도한 토비가 떨리는 손을 내뻗으려 할 때, 나는 그를 제지했다.

        혹시라도 저주가 옮을 지 모르기 때문에 해주가 먼저였다.

       

        “어때요 선배?”

        “불가능해 보이진 않네. 방 전체를 해주하려면 시간이 꽤 필요하겠지만 이 아이 하나 정도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풀 수 있어.”

        “좋네요, 어차피 다른 이들은 보물에 손도 못 댈테니 나머지는 천천히 진행해도 될 것 같습니다.”

       

        만일을 위해 인부들을 모두 물린 뒤, 프리나가 해주를 시작했다.

        모두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녀가 눈을 뜨기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산더미처럼 쌓인 금화 속에서 슬쩍 삐져나온 칼날을 발견했다.

        사악한 마검 녀석, 호시탐탐 본래의 몸을 되찾을 기회를 노리기 위해 숨어 있었군.

        그러나 네 생각대로만은 되지 않을 것이다.

       

        쩌적, 쩌저적……!

       

        저주가 풀려감에 따라 먼지 쌓인 잿빛 머리카락이 아름다운 자색을 머금었다.

        딱딱하게 굳어있던 손가락에는 미세한 떨림이 돌아오고, 창백한 두 뺨에도 혈색이 깃들었다.

       

        “콜록, 콜록 콜록!”

        “헤르헤, 괜찮아!?”

        “오, 빠…… 아, 아아……!”

       

        감격적인 남매간의 상봉이 이루어진 순간.

        프리나의 인형마저 로브 속에서 기어나와 눈물을 훔쳤다.

        허나 그들의 반가운 해후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내가 다가가자 살살이는 조금 전 토비에게 보였던 것과 다르게 차가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깨어나서 다행이네요. 기분은 좀 어떤가요?”

        “가까이 오지 마! 오빠, 내 손 붙잡고 있어. 이 자식은…….”

        “오, 도망갈 셈입니까? 하지만 어디로요?”

        “어디냐니?”

       

        나는 과장스럽게 로브를 옆으로 확 펼쳤다.

        이러니까 마치 악당이 된 것 같은 느낌인데?

        의외로 기분이 좋았…… 아니, 평소 나의 성격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기에 너무도 가슴이 아파왔다.

        허나 그런 모순을 견뎌내고서라도 이 연기를 이어나가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이제 막 본래의 몸을 되찾은 지금 공역의 결계를 벗어나는 건 무리겠죠. 게다가 토비는 엄연히 저희 해주학파의 대학원생이니다.”

        “지금, 오빠를 인질로 잡으려는 거야?”

        “인질이라뇨, 저희 가족인 걸요. 그리고 헤르헤 당신을 만나러 온 사람들도 바깥에 잔뜩 있답니다.”

        “뭐……?”

        “빚쟁이들이요.”

       

        나의 말에 그녀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따.

       

        “프란츠 가문이 망하기 전에 돈을 빌려준 이들을 전부 불러모았죠. 파도의 소환사가 살아 있다고 하니까 다들 한걸음에 달려오던걸요?”

        “말도 안 돼. 어떻게…….”

        “토비 덕에 그들과 연락이 수월했습니다. 위치노트도 없는 주제에 기억력이 제법 좋더군요.”

        “미안 헤르헤, 하지만……!”

       

        나는 토비가 쓸데없는 소리를 하기 전에 재빨리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리고 수치심과 굴욕감에 바들바들 떠는 연약한 소녀의 턱을 잡아올리며 속삭였다.

       

        “지금 밖으로 나간다면 평생 빚쟁이들에게 쫓겨살게 될 겁니다. 하지만 당신이 아주 약간의 희생을 감수하기로 하면 제게 방법이 있죠.”

        “나, 나한테 원하는 게 뭐야…… 설마 주, 당신……! 설마 지금까지 나를!!?”

        “눈치가 빨라서 좋네요, 바로 그겁니다.”

       

        나는 헤르헤의 어깨에 손을 얹고 더러운 로브를 한껍질씩 벗겨 내었다.

        로브 안에서 새하얀 속살이 드러날수록 그녀는 더욱 얼굴을 붉혔지만 저항할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 알았어. 내가 잘못했어! 하라는 건 뭐든지 할 게. 주, 그 이름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게! 그러니까 제발 여기선……!”

       

        마침내 헤르헤가 눈물을 글썽이며 내 손을 붙잡았을 때.

       

        “그래요? 그럼 이걸 입어주세요.”

        “뭐?”

       

        나는 그녀에게 칼레이도스의 문양이 새겨진 로브를 하나 건넸다.

       

       

       

        *

       

        “부서지지 않게 조심하시고 천천히 내리세요!”

       

        마탑의 1층, 메릴랜드 관 기숙사로 향하는 통로의 입구.

        마가렛은 인부들에게 어느 동상을 옮길 것을 지시하고 있었다.

        메릴린이 자유를 찾아 떠난 이후 쭉 공석이었던 기숙사의 상징물을 구하는데 드디어 성공한 것이었다.

        혹자들은 머리색이나 복식이 다르다며 동일 인물이 아니라고 술렁댔지만 애초에 수백년 전의 인물이니 고증이 완벽할 필요는 없었다.

       

        “휴, 이걸로 다 끝났네요.”

        “왠지 안도한 기색이시네요?”

        “아하하, 사실 계획서를 뜯어보니 클락님이 말하셨던 얼음 정수기 건은 사업성이 너무 떨어졌었거든요. 그리고 복사뼈 스캔 기능 같은 거 진짜로 탑재했다간 행정부에서 개인정보 침해죄로 조사 받는 수가 있어요.”

       

        전지를 향한 나의 뜨거운 열망은 고작 체제에 굴복할 정도로 나약한 것이 아니었지만, 이번만큼은 수긍하기로 했다.

        마가렛도 곤란함을 표했을 뿐더러 따로 돈이 나갈 곳이 생겨 버렸으니까.

        그래도 기존 정수기에 설화수를 공급하겠다는 크리스티나와의 약속은 별개여서 이번 워크샵의 수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내가 허리춤에 찬 검을 유심히 지켜보던 마가렛이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데 괜찮으신 거에요?”

        “뭐가요?”

        “파도의 소환사 말이에요. 일단 석상 모습으로 빼내기는 했지만 빚쟁이들 때문에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수가 없잖아요.”

        “아, 그거요? 사실 빚 같은 거 없어요.”

        “네에!?”

        “다 탕감했거든요. 제 사비로.”

       

        추가로 마가렛은 모르겠지만, 살살이가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건 틀린 사실이다.

        기숙사 통금이 넘는 밤이 되면 저주를 풀고 한시적으로 인간의 형태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 놓았으니 적어도 하루 중 절반은 자유로운 셈이다.

       

        누구의 의심도 사지 않겠지.

        메릴랜드 관 4대 불가사의, 움직이는 메릴린 동상이 다시 돌아온 것뿐이니까.

        나는 아직도 완전한 탈출을 노리는 녀석이 듣지 않도록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토비에겐 이 사실만 비밀로 해달라고 했어요. 자신을 쫓아다니는 빚쟁이가 없다는 걸 알면 진짜로 도망가버릴 테니까.”

        “어쩐지, 그래서 갑자기 사업을 접네 마네 하셨었군요. 그냥 주머니를 전부 털어서까지 옆에 두고 싶으셨던 건 아니고요?”

        “전혀요, 비즈니스는 언제나 냉철해야 하는 법입니다.”

        “아하…… 뭐, 결과적으로 클락 씨가 탑을 오르게 되었으니 저희야 좋지만요.”

       

        마가렛은 생각이 있으면 자기 공략대를 찾아달라며 명함을 주고 떠나갔다.

        이걸로 모든 게 제자리에 돌아왔으니 해야 할 일은 하나뿐이었다.

        나는 자신의 본체를 눈앞에 두고 부들부들 떠는 살살이의 검신을 천천히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우린 영원히 함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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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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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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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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