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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8

       

       

       나의 업보.

       

       그 외에 무어라고 표현해야 옳을까.

       

       이 이상 눈앞의 소녀를 표현할 방법을 찾지 못하겠다.

       

       내가 죽인 수많은 사람의 시체를 얼기설기 엮은 상태로 나타난 괴물.

       

       이것이 네가 저지른 죄다.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끔찍한 모습이었다.

       

       

       “네가 죽였어···! 네가, 우리의 계획을 모두 망쳤어!”

       

       “···그래. 내가 죽였어. 하지만, 너희들은 죽어도 괜찮은 녀석들이잖아.”

       

       

       소녀의 증오 섞인 말에 대꾸했다.

       

       내가 여태껏 마음속으로 수십 번은 되새겨왔던 말.

       

       이 세상 속 사람들은 모두 인형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설령 그들이 인형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아무나 죽인 것은 아니었다.

       

       ···예전에 하율을 죽이려고 한 적이 있었던가? 그걸 작가님이 어떻게든 틀어막은 적이 있었지.

       

       재밌는 사람 같아서 죽이기 싫다는 이유를 댔던가.

       

       그때는 무슨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하는가 싶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죽이지 않은 게 정답이었다.

       

       만약 그때 하율을 죽여버렸다면, 이런 자기합리화조차 불가능했을 테니.

       

       

       “너희들은 빌런이잖아. 사람을 죽이고 다니는 범죄자.”

       

       

       그래.

       

       언제나 사회에 해를 끼치고 다니는 악당들.

       

       그렇기에 더욱 거리낌 없이 죽일 수 있었다.

       

       그들이 착한 사람이 아니라서.

       

       억지로 묻어둔 죄책감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 사회의 쓰레기들이라서.

       

       

       “너도 사람을 잔뜩 죽여댔으면서.”

       

       

       위버멘쉬는 빌런 집단이다.

       

       아무런 해악을 끼치지 않았다는 거짓말 같은 건 통하지 않아.

       

       게다가 이 여자, 시우가 여기에 온 원인임이 틀림없다.

       

       영웅 여럿을 기습으로 죽여버린 범인.

       

       목소리만 들었을 때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지금이라면 확실하게 알아차릴 수 있다고.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나는 복수를 하러 온 거니까.”

       

       “···그래. 네 말이 맞아. 사실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지.”

       

       

       하지만 소녀는 자신의 죄에 대해서는 굳이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그래, 그렇지.

       

       그게 빌런들이니까.

       

       그게 바로 이 녀석들의 방식이니까.

       

       자신들이 누군가를 괴롭혔다, 누군가를 상처입혔다. 누군가를 죽였다.

       

       그런 건 이 녀석들에게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이다.

       

       그저 자신이 같은 일을 당했을 경우에 분노할 뿐.

       

       ···나라고 다를 건 없었다.

       

       내가 빌런을 죽인다고 한들, 그건 결국 빌런. 악역을 맡은 인형일 뿐.

       

       나랑은 아무 상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덤벼.”

       

       

       흐릿한 시야를 어떻게든 유지하며 실들을 주변에 풀어댔다.

       

       소중한 사람을 누군가의 손에 잃어버린 사람과, 소중한 사람을 죽여버린 사람.

       

       둘 사이에 누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같은 사소한 이야기는 끼어들 자리가 없으니.

       

       내가 죽인 게 빌런이라고 하더라도 결국 사람을 죽인 것이 바뀌지는 않듯이.

       

       소녀의 소중한 사람이 악당이라고 해도. 세상 그 누구도 그녀의 죽음을 안타까워하지 않는다고 해도 소녀는 복수를 하러 왔으니까.

       

       세상은 정의롭지도 않고, 논리적으로 돌아가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소녀는 복수를 하러 왔다.

       

       나의 죗값을 물으러 왔다.

       

       

       “미안하지만, 순순히 죽어주고 싶은 생각은 없어.”

       

       

       만약 시우가 죽어버렸다면.

       

       ···그랬다면 나도 저 소녀처럼 되어버리고 말았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고 할지라도, 이런 화풀이에 죽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죽어. 네 피가 보고 싶으니까.”

       

       

       소녀의 팔이 기괴하게 뒤틀리고, 이내 거대해진 팔이 나를 향해 휘둘러졌다.

       

       기습당한 탓에 삐걱거리는 신체를 억지로 움직여가며 실을 뽑아 근처의 건물에 붙임과 동시에 날아갔다.

       

       그러자 내 뒤에 있던 건물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과연 조금 전의 충격 탓에 무너진 걸까, 아니면 저 공격이 강한 걸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스치기만 해도 끔찍하게 아플 것 같다는 것.

       

       

       “···날파리 같은 게.”

       

       “이왕이면 거미라고 말해줘. 파리는 실 못 쓰거든?”

       

       “···.”

       

       

       시간을 벌어보고자 입을 열어보았지만, 더는 할 이야기가 없다는 듯 소녀의 팔이 다시금 올라갔다.

       

       뭐, 좋아.

       

       나도 오래 끌고 싶은 기분은 아니니까.

       

       지체하지 않고 옷의 실을 모두 풀어냈다.

       

       부끄러운 꼴을 보이지 않을까 하는 고민은 전혀 없었다.

       

       볼 사람도 없는 데다가, 잘못하면 내가 죽을 위기였으니까.

       

       

       [도, 독자님···! 괜찮으세요?!]

       

       “조용히 하세요. 머리 울리니까.”

       

       

       아무리 봐도 저 소녀는 저번에 만났을 때보다 월등히 강해져 있었다.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덕지덕지 붙어있는 흉측한 물건들 때문인 걸까.

       

       강도를 확인해보기 위해 실을 채찍처럼 내리쳐 공격해보았다.

       

       

       “···이게 다야? 고작 이 정도 실력으로 미르를 죽였다고?”

       

       

       그러자 소녀의 손에서 생겨난 입이 불을 내뿜으며 실을 태워버렸다.

       

       ···아, 미친.

       

       저건 또 뭐야.

       

       한 사람에게 능력은 하나 아니었냐고.

       

       왜 갑자기 불을 내뿜고 있는 건데?

       

       

       “내가, 네 모습을 보고도,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

       

       

       격양에 찬 목소리로 일갈하는 소녀가 발을 구르자, 이번에는 땅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 진동에 무너지는 빌딩에서 벗어나 옆의 건물로 이동하자 보이는 물줄기.

       

       물줄기가 이동하는 곳마다 두부 잘리듯 손쉽게 잘리는 건물의 모습에 황급히 실을 더 사용하여 자리를 벗어났다.

       

       

       “···하아.”

       

       [저, 저 아니에요···! 정말 모르는 일이에요!]

       

       

       또 제 발 저린 듯 작가님이 무언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무어라 말하는지 잘 듣지는 못했다.

       

       마치 아멜리아의 가속을 보는 것 같은 엄청난 속도로 소녀가 내게 돌진해왔으니까.

       

       

       “···걸렸다.”

       

       “?!”

       

       

       그러나 너무 빨리 달리면 좋지 않은 법.

       

       그런 속도로 달려들면,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실을 발견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안 그래도 잘 보이지 않는 실인데, 지금은 대낮이다.

       

       새하얀 실은 쉽게 들키지 않지.

       

       근처까지 다가왔을 때, 눈앞의 실을 눈치챈 것 같지만 이미 늦었다.

       

       가속을 이기지 못해 실로 달려드는 소녀의 몸을 실이 난도질했다.

       

       

       “···으, 머리 울려.”

       

       

       끝인가.

       

       한 손으로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몸을 계속해서 비비적거렸다.

       

       벌써 가을을 넘어 겨울이 되어가는 와중이다.

       

       아무리 대낮이라지만 이런 날씨에 알몸으로 밖에 있으니 감기에 걸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작가님에게 부탁해서 옷을 구해야지.

       

       

       “후우, 그나저나 저게 도대체 뭐람.”

       

       

       아무리 생각해도 평범한 모습은 아니었다.

       

       마치 공포게임 속 연구실에서 갓 뛰쳐나온 것 같은, 끔찍한 외형.

       

       한 명당 하나뿐이라는 법칙을 무시하듯 다루는 여러 가지 능력들.

       

       ···도대체 뭘까.

       

       

       [도, 도, 독자님! 뒤! 뒤!]

       

       “···?”

       

       

       뒤라니?

       

       아무리 그래도 내 실로 난도질당하고 살아남았을 리가 없잖아.

       

       입학 초기에도 바위 정도는 쉽게 가르던 강도라고.

       

       그야말로 인간을 벗어나기라도 하지 않는···한···.

       

       

       “···저게 뭐야.”

       

       

       분명 사지가 분해되어있어야 하는데.

       

       생채기가 생기기는 했지만 커다란 상처도 생기지 않은 소녀는 아직도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황급히 아직 허공에 떠다니는 실로 최대한 공격해봤지만, 여전히 생채기들만 생길 뿐.

       

       소녀의 몸이 잘리거나 하는 일은 생기지 않았다.

       

       

       “···이익!”

       

       

       뚜벅, 뚜벅.

       

       소녀가 내게 다가올 때마다 실들이 그녀를 난도질한다.

       

       ···소용없었다. 확실히 상처는 하나둘 생겨나지만, 그녀를 저지할 수는 없었다.

       

       소녀와 나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나와 나의 죄악의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나는 깨달았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음을.

       

       소녀의 앞에서 나는 그저 무력할 뿐이라는 것을.

       

       이윽고 소녀와 내가 마주했을 때.

       

       소녀는 내게 비릿하게 웃어 보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통증.

       

       

       “커헉···!”

       

       “아, 미안해. 왼쪽만 새파랗게 멍들어 있길래, 오른쪽도 똑같이 만들어줬어.”

       

       “흐으, 흐으윽···!”

       

       

       숨이 잘 쉬어지질 않는다.

       

       헐떡거릴 때마다 폐가 찢겨나가는 것 같은 고통이 느껴진다.

       

       갈비뼈라도 부러진 걸까.

       

       나도 모르게 고통에 풀썩 쓰러졌음을 깨달아 일어나려고 해보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생전 처음 겪어보는 고통에 나는 그저 허덕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뭐야, 너. 겨우 이 정도로 그렇게 주저앉으면 어떻게 해?”

       

       

       소녀가 나를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겨우 이 정도의 고통도 견디지 못하는 놈.

       

       그런 생각을 하는 걸까.

       

       ···그러나 나는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는 소녀에게 반격하지도 못한 채로 주저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 세계로 넘어와서 내가 이렇게 얻어맞은 적은 처음이었으니까.

       

       이 정도로 강한 통증을 느껴본 적은 처음이었으니까.

       

       나 자신도 한심하다고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몸이 움직이지를 않았다.

       

       사시나무 떨듯 떨고만 있을 뿐.

       

       내 육체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진짜 어처구니가 없네. 이런 녀석한테 미르가 죽었다니.”

       

       “하악, 하아악···!”

       

       “조금 전까지 순순히 죽어주지 않겠다던 녀석은 어디로 간 거야?”

       

       “커흑, 흐으···.”

       

       “···됐어. 죽어버려.”

       

       

       소녀의 팔이 또다시 끔찍한 소리를 내며 뒤틀렸다.

       

       넓은 부위를 타격하기 위해 넓게 피는 대신, 무언가를 찌르기 위한 날카로운 형상으로.

       

       

       “···미르, 모든 것은 너를 위해서.”

       

       

       푸욱.

       

       선혈이 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여러분! 아틀리에에 한번 들러주세요!

    유시엘 님께서 그려주신 술에 취한 귀여운 아르테 그림이 올라왔답니다!

    ***

    유시엘 님. 8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부끄러워 하실 필요 없어요! 애정이 듬뿍 담긴, 사랑스러운 팬아트 감사합니다! 언제나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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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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