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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8

        

        * * *

         

         

       세조 때에 작은 마을이 있었다.

       이 마을은 순박한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그들의 인성과는 정반대로 터는 사람에게 모질기 그지없었다. 돌이 많아 농사를 짓기가 힘이 들었으며, 마을에 우물조차 없어 멀리서 물을 떠야만 했던 까닭이었다.

       다만 근처 산에 호랑이가 없어 호환을 당할 일은 없었으니, 오직 그것만이 위안이었다.

         

       그렇게 마을 사람들이 서로 힘을 합쳐 힘겹게 살아가던 어느 날.

       마을에 한 스님이 찾아왔다.

         

       더운 여름날에 한참을 걸었던 스님은 너무 목이 말라 마을에 들러 물 한 잔을 달라고 청하였고, 주민은 흔쾌히 스님의 부탁을 들어주겠다 말하곤 그를 집 안에 들였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주민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나타나지 않는 것이 아닌가.

         

       혹시 까먹은 것이 아닌가. 혹은 무언가 변고라도 생긴 것인가.

       스님은 호기심을 갖고 방 안에서 계속 기다렸고, 몇 시간이 지난 후에 주민이 땀 범벅이 된 채 스님에게 물을 한 바가지 떠다가 건네주었다. 그 모습에 스님이 기이하게 여겨 어찌 몸에 그리 땀이 많이 나 있냐고 물었더니 주민은 이렇게 말하였다

         

       [ 이 마을엔 샘이 없어 멀리까지 갔다가 오는 길입니다. ]

         

       스님이 놀라 어디까지 갔냐고 물으니, 무려 10리가 훌쩍 넘는 곳이었다.

         

       주민에게 감동한 스님은 이러한 사람에게 복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였고, 오직 자신에게 물 한 잔을 대접하기 위해 찌는 더위에도 먼 거리를 걸었던 주민을 위해 보답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여 그는 자신이 익히고 있는 주술을 사용해 보답하려 하였다.

         

       하지만 절에서 지내며 풍수지리를 익힌 스님의 눈에 마을의 지리는 참으로 마땅치가 않았다. 물이 흐를만한 곳은 근처에 없고, 그렇다고 빗물이 고이는 곳도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나마 산세는 좋은 편이나 농사짓기에는 적합하지 않으니.

       하여 스님은 자신이 알고 있는 주술을 이용해 물이 나올만한 곳을 찾았다.

         

       [ 주술을 사용해보니 이 바위를 파고들면 물이 나올 것 같습니다. ]

       [ 바위 아래에 물이 있다고요? 아이고, 스님. 바위를 팠는데 어찌 물이 나온단 말입니까? 그리고 우리 마을에는 이 바위를 까부술만한 장사가 없습니다요. ]

       [ 걱정하지 마시지요. 제가 해결하도록 하겠습니다. ]

         

       스님은 가지고 다니던 지팡이 형태의 주물을 이용해 바위에 구멍을 뚫었다. 그리곤 그렇게 뚫린 구멍에 나무 말뚝을 박고 그것을 얼고 녹이기를 반복하며 바위에 금을 만들었다.

         

       그러한 작업을 닷새 동안 계속하자 바위틈에서 샘물이 솟기 시작하였고, 그 자리가 마을 주민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우물이 되었다.

         

       [ 본디 거대하고 오래된 바위 같은 것은 영성을 가지고 있을 수 있어 제물을 바쳐야 하지만, 이는 내가 가지고 있는 지팡이로 대신할 것이니 안심하고 물을 쓰시지요. ]

         

       스님은 그렇게 말하곤 자신의 지팡이를 바위틈 사이로 던져넣었고, 그러자 바위틈에서 나오던 흙탕물은 엄청나게 깨끗한 물이 되었다.

       마을 주민은 자신들을 위해 귀해 보이는 지팡이를 던져넣은 스님을 위해 마을 창고에 보관하고 있던 벼락 맞은 버드나무를 가지고 와 스님에게 내밀었다.

         

       [ 십수 년 전 하늘에 벼락이 떨어져 마을 어귀에 있던 거대한 버드나무가 타들어 간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번개의 형상을 간직한 나무토막을 얻었는데, 마침 스님이 지팡이가 없으니 이것을 받아 지팡이로 만들어 쓰시면 좋겠습니다. ]

         

       스님은 주민이 내민 벼락 맞은 버드나무를 받았다. 하지만 지팡이로 쓰는 대신 잘 다듬어 우물에 틀을 만들어 주었다.

         

       [ 마음이 갸륵하니 참으로 복된 일입니다. 하니 이 우물에 특별한 능력을 부여하였으니, 이제 이 우물은 겨울에는 더운물이 나올 것이고 여름에는 얼음장같이 시원한 물이 나올 것입니다. 또한, 이 물은 아무리 가문다 한들 마르지 않을 것이고, 아무리 물이 불어난다 한들 쉬이 넘치진 않을 것입니다. ]

         

       하지만 스님은 마을 사람들에게 이렇게 당부하였다.

         

       [ 다만 이 우물은 꼭 세 번을 넘칠 것입니다. 태풍 때문도 아니고 하늘 때문도 아닌, 오직 나라에 큰 변이 날 때마다 눈물을 흘리듯이 넘쳐흐를 것입니다. 그러니 이 우물을 잘 이용하고 있다가 물이 넘쳐 흐르거든 몸을 숨겨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물이 세 번째 흘러넘칠 때는 말세가 찾아올 것이니 반드시 마을을 떠나십시오. ]

         

       스님은 그 말을 남긴 채 홀연히 사라졌다.

         

       그리고 우물은 지금까지 두 번이 넘치게 되었는데.

         

       첫 번째는 임진왜란이 일어나던 정초에 넘쳤으며.

       두 번째는 경술국치가 일어나 나라가 빼앗긴 해였다.

         

       이 우물은 수위의 변화로 나라에 변고를 말해주기도 하였는데, 1950년 6월 24일에 우물이 넘칠 것처럼 물이 차오르기도 하였고, 1999년에 우물이 넘칠 듯 물이 차오르기도 하였다.

         

       이러한 신통함에 사람들은 이 우물을 보물로 여겼다.

         

         

         

        * * *

         

         

         

       ‘참으로 잘 만든 주물이로다.’

         

       말세 우물은 회귀 전에는 국가의 보물로 여겨졌던 주물이었다.

         

       전쟁 전에는 커다란 나라에 한두 개씩은 존재하는 것이 예언과 관련된 주물인지라 ‘중요하긴 한데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는’ 물건으로 여겨졌으나, 세계 3차 대전이 터지고, 온갖 미친놈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세상이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게 되자 예언과 경고의 능력을 갖추고 있는 주물은 신줏단지와 같은 존재가 되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죄다 멸망해버리는 최악의 사태를 막을 수 있는 보물.

       인류를 존속하게 해줄 수 있는 최후의 보루.

       세계의 위기를 막을 기회를 주는 경보기.

         

       이는 단순히 국가의 자산이라고만 여길 수 없었다.

         

       인류의 보물.

       인류가 존속하기 위해 필요한 보물.

         

       그렇기에 막장으로 돌아가는 와중에도 절대로 건드리지 않는 것이 바로 예언과 경고의 능력을 갖춘 주물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귀한 대접을 받는 것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었다.

       회귀 전 진성과 같은 사회적 지위가 높지 않은 사람은 아예 접근조차 할 수 없었으니까.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

       예를 들자면 국가의 얼굴 역할을 하는 사람이나, 국가의 무력을 대표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온갖 마법과 주술로 떡칠을 하고, 경지에 이른 능력자를 이용해 지키며, 때에 따라서는 지형을 뒤바꿔서라도 주물을 지키려 했다.

         

       몰래 들어가는 꿈도 꾸지 못하고, 무력으로 돌파하는 것은 핵무기를 들고 온다고 할지라도 불가능할 정도로 경비가 삼엄했다.

         

       지금도 철통같은 경비가 있기는 하나, 회귀 전에 비하면 새 발의 피.

         

       ‘보자. 마력 결계에, 주기적인 위성 감시에, CCTV, 센서, 저 멀리 산자락에 TOD(Thermal Observation Device)도 보이고. 아마 경찰도 주기적으로 순찰을 할 테고,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한 인원들이 근처의 주택에 들어가 있겠구나.’

         

       오직 지금.

       지금밖에 기회가 없다.

         

       전쟁이 일어난다면 수준급 능력자가 우물 옆에 딱 달라붙어 경비 노릇을 하고 있을 것이고, 접근하는 것들은 동물이고 기계고 모조리 토막을 내고 가루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아니, 우물 근처에 도착하기도 전에 총알 샤워에 벌집이 되거나 폭탄에 몸이 수천, 수만 개로 조각나버릴 것이다.

         

       만일에 대비하는 능력자가 있기는 하나 감시에 치중한 지금.

       이 시점이어야 우물에 접근해서 궁금증을 해소하고, 목표와 원만한 만남을 가질 수 있으리라.

         

       ‘CCTV가 내 쪽을 보고 있는 것을 보니 이미 들켰고. 이젠 시간이 없다.’

         

       진성은 가면의 형상을 바꿔 입이 쩍 벌어지게 했다. 그러자 턱 부분이 사방으로 쩍 갈라지며 구멍을 만들어내었고, 거기서 반짝반짝 빚을 내는 것들이 떼로 나왔다. 지폐를 접어 만든 것 같은 곤충은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을 날았고, 황금으로 만들어진 곤충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땅에 투두둑 떨어졌다.

         

       황금 벌레는 바닥을 천천히 기어 다니며 자국을 만들었다.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늘어진 배는 기다란 자국을 만들어내었고, 바늘처럼 날카로운 여섯 개의 다리는 땅을 콕콕 찍으며 구멍을 만들어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벌레는 지폐로 이루어진 날개를 펄럭였는데, 마치 날벌레처럼 이리저리 날아다니다가 불빛을 발견한 나방처럼 한 곳을 향해 무리 지어 날아갔다.

         

       그리고 진성은 벌레가 날아가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움직이기 시작했다.

         

       파지지직-!

         

       그가 마력 결계의 경계 부근에 발을 들여놓자 결계가 활성화되었다.

       석등에 꽂혀있던 금속은 붉게 달아올랐고, 안테나는 삐이이 거리는 소리와 함께 덜덜 떨렸다. 그리고 그와 함께 근처의 나무와 흙 속에 숨겨져 있던 장치들이 일제히 작동하며 그에게 전기 충격을 쏘아 보냈다.

         

       어마어마한 양의 전기는 사방에 스파크를 일으켰고, 진성이 몸에 두르고 있는 황금에 흐르며 빛을 발했다. 그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왕관 모양의 푸른빛을 발하는 코로나 현상까지 일어났다.

         

       하지만 진성은 제 몸에 두르고 있는 황금 갑옷을 믿고 축지를 사용해 단숨에 우물에 다가갔다.

       그리곤 우물 안으로 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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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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