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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8

       

       

       

       

       

       128화. 마지막 시련 ( 1 )

       

       

       

       

       

       “끄응…”

       

       

       레온은 눈부신 햇빛에 눈을 찡그리며 몸을 일으켰다. 내리쬐는 햇살이 참으로 맑기 그지없었다.

       부스스 몸을 일으키자,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넓은 결투장과 거대한 성화 그리고 환호하는 수많은 인파.

       

       와아아아-!

       

       고막을 울리는 환호성은 멍한 정신을 뒤흔들었다.

       희미하던 기억이 점차 뚜렷해진다.

       

       결투장, 시련, 도전자들. 

       설원과 스승님, 그의 동료들과 마귀.

       

       모두 신께서 그에게 주신 시련이었다. 과거의 상처를 마주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준비하신 안배.

       참으로 은혜로운 일이다.

       

       한낱 늙은이를 이토록 보살펴 주시다니.

       

       꾸욱.

       

       손에 들린 할버드가 새삼 묵직하게 잡혀 왔다. 낡고 조금 오래된 할버드. 지나온 세월만큼 켜켜이 쌓인 이야기가 가득한 그의 애장.

       

       

       이제는 그가 나아가야 할 의무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했다.

       

       

       “라이언하트!”

       

       “토니?”

       

       타탓!

       

       관중석에서 훌쩍 뛰어내린 안토니오가 한쪽 무릎을 땅에 붙이고, 한 손으로 땅을 짚으며 착지했다.

       어쩐지 관절에 안 좋을 것 같았지만 제법 멋진 자세다.

       

       

       “라이언하트! 자네 괜찮은 건가!”

       

       “음? 하하! 안 괜찮을 건 또 뭔가? 그런데 갑자기 왜 그렇게 나를 걱정하나, 적응 안 되게.”

       

       “그야… 자네 그, 스승님을…”

       

       “음?”

       

       

       레온의 머리를 스치는 하나의 불길한 예감. 앞서 이스칼과 프리가의 시련에서는 거대한 거울이 떠올라 관중들에게 그들의 시련을 생생하게 보여줬다.

       그리고 라이언하트, 그는 바닥에 누워있다가 일어났다. 마치 자다가 일어난 사람처럼.

       

       그렇다는 말은ㅡ

       

       

       “설마… 다 보였나?”

       

       “음.”

       

       “여섯 신 맙소사! 제발 아니라고 해주게! 제발! 정말 다 보였단 말인가? 처음부터 끝까지? 내 젊은 시절도?!”

       

       “…전부 다 봤네.”

       

       탁!

       

       레온은 저도 모르게 이마를 짚었다. 누구나 밝히고 싶지 않은 과거가 있기 마련이다. 

       부끄러운 치부와 철없던 시절의 기행. 혹은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특별하다고 여기던 시절의 창피한 흔적들 따위.

       

       저도 모르게 온몸이 꼬아지면서 필사적으로 숨기고 싶은 것들.

       

       그런 것들이 전능한 신의 뜻으로 수천수만의 사람들 앞에서 공개됐다면. 

       자신은, 도대체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하는 걸까?

       

       쿵!

       

       레온의 머릿속으로 수많은 기억들이 초상화처럼 지나간다.

       

       짐승처럼 밧줄에 묶여서 바둥거리는 모습. 재갈을 물고 소리 지르는 모습. 자신과 스승이 함께하면 최강이라고 말하는 모습. 그런 주제에 기습당해서 꼴사납게 기절한 모습…

       

       순간 세상이 핑 도는 것처럼 느껴졌다. 허나 야속해라. 팔라딘의 예민한 감각은 관중들이 레온을 향해 속삭이는 것까지 잡아냈다.

       

       

       “저 사람이 팔라딘이라는데, 젊었을 때 그렇게나 망나니였을 줄은…”

       

       “나는 한 쪽 눈을 잃은 사연이 뭔가 있을 줄 알았는데, 설마 기습당하고 기절한 흉터라니.”

       

       “밧줄에 묶였을 때 눈 돌아가는 거 봤어? 막 거품 나오고. 나는 진짜로 곰인 줄 알았다니까?”

       

       아찔.

       

       말 그대로 머리가 아찔했다. 조금 털어낸 죄책감과 나아갈 의무에 대해 곱씹을 시간도 없었다. 

       현실은 레온에게 너무나도 차가웠으니.

       

       텁.

       

       안토니오가 조용히 다가와 레온의 어깨를 두들겼다. 위로의 뜻이 다분한 몸짓.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신이시여! 저의 시련은 어찌하여 끝나지 않았습니까?!’

       

       

       레온은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거대한 옥좌를 바라보며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거대한 옥좌는 조용히 레온을 내려다 볼 뿐 이었다.

       

       

       

       

       

              * * * * *

       

       

       

       

       

       “어으ㅡ”

       

       

       라이언하트 영감의 시련까지 끝마치고는 몸을 쭉 뻗어서 스트레칭을 한다. 라이언하트의 시련은 사실상 감상형에 가까웠다.

       

       라이언하트가 알아서 움직이고 잘 싸우면서 목표를 구출해왔다. 라이언하트 할배의 뒷설정 비스무리한 시련을 보고 느낀 점은 딱 하나다.

       

       

       ‘자기가 싼 똥을 자기가 치웠네.’

       

       

       젊을 적의 라이언하트가 ‘리로이 젠킨스~’를 외치면서 돌격했다가, 어그로 튀어서 공대 몰살. 다른 레이드 게임에서도 가끔 있는 이야기다.

       

       다른 점이라면 다른 게임에서는 부활이 가능했지만, 라이언하트 때문에 죽은 사람들은 부활이 안 된다는 점일까.

       

       막판에 죽은 사람들이 전부 나왔을 때는 눈물도 찔끔 나왔다. 나쁘지 않은 스토리였다.

       

       그리고 이번 시련에서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스킬이 금지당했다.

       

       

       ‘도대체 뭔 기준으로 막히는 건지 알 수가 없네.’

       

       

       시련을 고르는 화면에서 미리 알려주기라도 하면 좋을 텐데. 그런 것도 없이 시련이 시작하고 나서야 알려주니, 세상 불편하기 짝이 없다.

       

       

       ‘콜로세움에 몬스터를 소환해서 싸우면 스킬을 쓸 수 있고, 맵이 바뀌면 스킬을 못 쓰는 건가?’

       

       

       일리 있는 가정이다. 프리가, 한스의 경우에는 콜로세움에서 몬스터를 소환해서 싸웠고, 이스칼과 라이언하트는 다른 맵에서 시련을 치렀다. 

       

       어디까지나 만약의 경우지만, 나름 그럴듯한 추측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건 케니스 혼자다. 내 파티의 메인 딜러이자 유일하게 A급 무기를 들고 있는 딜러. 

       

       시련 리스트를 쭉쭉 내리며 신중하게 고민한다. 가급적이면 아주 쉬운 걸로 해서 안전하게 1등을 만들어주고 싶다.

       

       

       ‘그런데 왜 나오는 시련 꼬라지가…’

       

       

       《악마의 시련》(추천!)

       《고난의 시련》(추천!)

       《뿌리의 시련》(추천!)

       …

       《영겁의 시련》(추천!)

       《피의 시련》(추천!)

       

       

       리스트에 나오는 이름들이 하나같이 살벌하기 짝이 없다. 좀 더 쉬워 보이는 이름도 있는 걸 분명히 봤는데, 아무리 리스트를 내려도 보이지 않는다.

       

       

       “아니. 뭔가 좀 더 쉬워 보이는 거 없나?”

       

       슥- 스윽-

       

       리스트를 더욱 빠르게 내린다. 시련의 목록은 계속해서 나오지만, 하나같이 살의가 가득한 이름뿐.

       

       이런 걸 골랐다가는 케니스가 1등은 커녕 통과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면 10등 상품으로 걸린 유니콘이 케니스에게…

       

       

       “으. 그건 좀.”

       

       

       처녀충 유니콘이 케니스랑 붙으면 무슨 이벤트가 나올지 가늠도 안 된다. 이런 변수는 애시당초 떨어트려 놓는게 상책.

       

       슥-

       

       계속해서 리스트를 내린다. 내리고 내리고 내리다가, 결국 포기하고 제일 원점으로 돌아왔다. 내려갈수록 시련의 이름이 점점 무서워진다.

       

       

       ‘아니 뭐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이유모를 악의마저 느껴진다. 케니스에게 결코 쉬운 시련을 주지 않겠다는 의지가 보이는 듯하다.

       

       

       “그나마 좀 쉬워 보이는 게 뭐였지…”

       

       

       살다보면 수많은 억까를 만난다. 이겨낼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이 그리 만만하지는 않은 법.

       

       지금은 타협이 필요한 순간이다. 

       

       

       ‘그나마 뿌리의 시련이 제일 멀쩡해 보이네.’

       

       

       악마의 시련이니, 영겁의 시련, 피의 시련.

       

       이딴걸 골랐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도 안 간다. 어쩌면 콜로세움 한복판에 악마가 나올지도 모른다.

       

       

       ‘혹시 모르니까 버프라도 미리 줄까?’

       

       

       디버프는 그대로 유지된 채로 백룸에 끌려갔던 제국의 기사가 떠올랐다. 혹시나 스킬이 봉인 당할 수 있으니, 보험을 미리 준비한다.

       

       

       ‘성기사 전용 스킬이… 아, 여깄다.’

       

       

       ‘불타는 대행자의 흔적’을 걸어주려 했는데 그럴 틈도 없이 곧바로 시련이 시작한다.

       

       

       《뿌리의 시련… 도전자는! 케니스!》

       

       

       타이밍이 조금 촉박했으니, 어쩔 수 없이 버프는 포기했다.

       

       얌전히 두 손 모아 기도한다. 이제 케니스가 1등을 한다면 모든 것이 완벽하다.

       

       쿠그그그ㅡ!

       

       콜로세움 주변의 땅이 흔들리며 거세게 진동한다.

       이제 마지막 시련을 시작한다.

       

       – 화아아앗!

       

       “윽! 어우 눈부셔.”

       

       화면에서 눈부신 빛이 터져 나오더니ㅡ

       

       팟!

       

       화면이 꺼졌다.

       

       

       “아니! 갑자기 왜 그러는데!!”

       

       

       

       

       

              * * * * *

       

       

       

       

       

       “아으. 내 눈…”

       

       

       케니스는 눈을 가렸던 손을 조심조심 치웠다. 강렬한 빛에 노출된 눈은 아직도 고통을 호소하는 듯했다.

       

       제일 먼저 따스한 햇볕이 느껴졌다. 도란도란 일상의 소음도 들려왔다. 아이들이 저들끼리 뛰어다니며 신나게 떠드는 소리와 조용하게 담소를 나누는 연인의 웃음소리.

       

       마음이 포근해지는 평화의 소리다.

       

       혹시나 괴물이 튀어나올까, 한껏 긴장한 몸에 힘이 빠진다. 당장 판단하기에 위험은 존재하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면 낯이 익은 풍경이었다. 잘 정돈된 보도블럭의 대로와 하얀색 계통의 건물들, 거리 곳곳에 장식된 만신전의 표식까지.

       

       

       “성도…?”

       

       

       케니스는 성도에 있었다. 그녀의 기억과 조금 다른 부분이 있었지만, 영락없는 성도 키비타스였다.

       

       

       “이게 도대체 무슨…”

       

       

       신께서 그녀에게 무슨 시련을 주신 것인지, 뭘 의미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케니스는 무작정 발걸음 닿는 데로 걷기 시작했다.

       

       평화로운 분위기를 만끽하며 걷는 케니스는 이유 모를 허전함을 느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콕 집어서 설명할 수 없었다.

       

       

       ‘뭔가 이상한데… 뭐지?’

       

       

       항상 있었던 무언가를 놓친 느낌. 이유모를 찝찝함이 마음의 한 구석을 차지했다. 케니스는 그 이유를 생각하며 인파를 헤치고 대로를 걸었다.

       

       익숙한 대로를 따라 걷다가 익숙한 식당을 발견했다.

       

       만신전 사거리 앞. 그녀가 자주 가는 단골 식당이다. 매일 아침마다 용사 세트를 공짜로 먹으러 가는 곳.

       

       딸랑.

       

       케니스는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늘 맡아오는 고기와 수프의 향긋함이 그녀를 반겼다.

       

       

       “어서 옵쇼!”

       

       “어? 어… 여기 주인분이 바뀌셨나요?”

       

       

       그녀를 맞이한 주인은 낯선 얼굴이었다. 그녀가 알고 있는 주인의 얼굴과 조금 닮았지만, 조금 더 나이가 많아 보였고 이목구비가 조금씩 달랐다.

       

       케니스가 알고 있는 주인의 가족이라도 되는 걸까?

       

       

       “예? 아뇨. 제가 여기서 장사한 지 벌써 20년이 돼가는데 무슨 말씀이신지…”

       

       “20년이요?”

       

       “손님, 주문하실 거예요?”

       

       “아, 네에… 그- ‘용사님의 매일 아침 세트’ 하나 주시겠어요?”

       

       “뭐, 뭐요? 뭔 세트요?”

       

       “어… 용사님의ㅡ”

       

       쾅!

       

       “우리 가게에서 내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 이상, 그런 괴상한 메뉴는 있을 수 없어!!”

       

       

       주인장의 기백에 밀려 얼떨결에 가게에서 나온 케니스는 어안이 벙벙했다. 당장 오늘 아침에도 먹었던 메뉴가 없다니?

       

       

       ‘도대체 이게 무슨… 뭐지?’

       

       

       뭔가 이상했다. 

       익숙한 풍경의 성도였지만, 무언가 달랐다.

       

        불현듯 케니스는 그동안 느꼈던 허전함의 이유를 깨달았다.

       

       

       ‘사람들이 나를 못 알아보잖아?’

       

       

       당당하게 대로를 활보해도, 로브를 뒤집어쓰지 않아도.

       

       그녀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여기는 대체…’

       

       

       혼란스러운 기색이 가득한 케니스의 눈동자. 온갖 추측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여긴 그녀가 없는 세계인 걸까? 애시당초 그녀가 태어나지 않은 만약의 경우? 

       

       

       “아!”

       

       

       저 멀리, 인파에 섞인 익숙한 인영이 보였다. 시린 은발의 머리칼.

       그녀의 아버지이자 팔라딘인 데모닉이다.

       

       타탓!

       

       케니스가 재빨리 데모닉을 향해 뛰어갔다. 아무도 그녀를 모르고, 그녀가 아는 것과는 미묘하게 다른 곳에서 아는 얼굴을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반가운지!

       

       

       “아ㅃ…”

       

       멈칫.

       

       반갑게 뛰어가던 케니스가 우뚝 멈춰섰다. 데모닉의 바로 옆, 붉은 머리카락의 여인이 있었다.

       

       

       “어, 어…?”

       

       

       케니스의 빨간 머리와 아주 똑 닮은 여인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댓글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 ‘신선우’님!! 귀중한 후원!!! 감사합니다!! 등심 돈까스…!! 벌써 군침이 흐르는군요…!! 맛있는 거 + 맛있는 거 = 엄청 맛있음의 훌륭한 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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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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