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28

        끼르르르르…….

       

        고통스럽다.

        내 입에서는 저절로 짐승 같은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몸에서는 끔찍한 고통이 몰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고통만은 기꺼웠다. 왜냐하면 이것은 어머니가 되는 이들에겐 당연한 고통이었으니까.

       

        = 부인. 부인. 부인. 부인…….

       

        ‘시끄러워!’

       

        진통이 시작되자마자 둥지 밖으로 나간 남편이라는 놈은 계속해서 사념만을 보내고 있었다.

        나를 걱정하는 것은 알겠지만, 머릿속이 울려서 슬슬 그만둬 줬으면 싶다.

       

        그래도 저 목소리가 아예 도움이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저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는 말은, 내 남편이 둥지 밖에서 나를 지켜 주고 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으윽! 뭐였지? 임산부들이 하던 호흡이…….’

       

        이젠 이름도 기억 안 나는 그 호흡을 대충 기억나는 대로 따라 해 보다가 포기했다.

        어차피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데다, 인간과 구강 구조도 다른 상태에서 그것을 따라 해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냥 최대한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며 산란에 힘쓴다.

       

        나와 내 남편은 같은 ‘드래곤족’이지만, 서로 다른 DNA를 발전시켜 왔다.

        물론 근본적인 ‘종족’은 같기에 이렇게 생식 자체는 가능하지만…… 아무래도 남편과 나의 차이가 크다 보니 산란도 쉽지 않다.

       

        쉽게 말하자면 ‘포메라니안’과 ‘골든 리트리버’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나는 것과 같다.

        여기서 ‘포메라니안’은 내가 될 것이고, ‘골든 리트리버’는 남편이 되겠지.

        나의 작은 체구에 비해, 남편의 유전자를 받은 우리 사이의 아이…… 그러니까 ‘알’은 내 체구보다 너무 컸다.

       

        ‘너무…… 크잖아…….’

       

        찌지직!!

       

        골반이 최대한 벌어지고, 알이 나오는 길 역시 뛰어난 신축성으로 늘어난다.

        하지만 결국 골반 뼈가 일부 부러지고, 살이 찢어지며 피가 새어 나오기 시작한다.

        현대 지구에서 지금의 내 모습을 수의사들이 보았다면 십중팔구는 제왕 절개를 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을 정도로 내 배는 크게 부푼 상태.

        하지만 이곳에는 외과수술이라는 개념도 없었고, 그런 능력을 지닌 이도 없었다.

       

        너무나도 고통스러웠지만, 나는 이를 악물며 참아냈다.

        여기서 자칫 잘못되는 순간 나와 나의 아이 역시 잘못됨을 느꼈기 때문이다.

       

        ‘아이만은…….’

       

        독샘을 자극해 이완독과 고혈독(固血毒)을 소량 뽑아낸다.

        이완독으로 하반신의 근육 일부를 이완시켜 알이 나올 수 있는 길을 열고, 고혈독으로 찢어진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출혈을 막는다.

        그리고 나의 남은 힘을 다해 다시금 힘을 주었다.

       

        끼루루르르르르……!!

       

        ‘끄으으으윽!!’

       

        = 부인! 부인! 부인! 부인!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한다.

        들려오는 것은 오로지 남편의 사념뿐.

        내가 누구인지, 이곳이 어디인지, 내가 왜 이러고 있는지조차 모호해질 정도로 나의 의식이 점멸한다.

        그리고 그 고통의 끝에서…….

       

        퉁!

       

        섀액! 섀액!

       

        마침내 나는 내 몸 크기에 3분의 1 정도 되는 거대한 알을 산란해 냈다.

       

        ‘아이…… 내 아이…….’

       

        나는 새하얀 색으로 빛나는 커다란 알을 바라보며, 천천히 의식을 잃어버렸다.

       

       

        *            *            *

       

       

        시간이 지나고…….

        나는 불퉁한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답답해.’

       

        간만에 하늘을 시원하게 날아다니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왜냐고?

       

        나는 내 몸으로 품고 있는 커다란 알을 혀로 핥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 이 알이 바로 나의 아이다.

        지금 나는 알을 지킴과 동시에, 알이 부화할 수 있도록 따뜻한 온도를 유지하는 중이었다.

       

        이 험난한 야생의 땅에서는, 무시무시한 포식자의 알이라고 하더라도 안전하지 않다.

        무자비한 포식자의 냄새가 가득 배어 있든, 독초와 독버섯이 가득한 곳이든, 알 도둑들은 상관하지 않고 들어온다.

        그렇기에 나와 남편 중 하나는 보금자리에서 알을 지켜야 했다.

        ……그래야 했다.

       

        ‘계속 나만 지키고 있다는 게 문제지.’

       

        그래. 이해는 된다.

        알을 산란한 후 초주검이 된 나를 본 남편이 얼마나 놀랐을지 이해는 된다.

        그렇기에 내가 회복할 수 있도록 먹이를 잔뜩 사냥해 오고, 이상한 놈들이 나와 알을 노리지 못하도록 밖에서 경계를 서주고, 내가 조금이라도 불편해하면 곧바로 내 온몸을 핥아주는 등이 노력을 기울이는 것 역시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너무 과해!’

       

        내가 아플 때라면 모를까, 지금의 나는 완전히 회복했다.

        드래곤의 회복력으로 전부 회복했고, 이제는 얼마든지 다시 사냥을 나갈 수 있다.

        그런데도 남편은 나를 밖으로 내보내려 하지 않았다.

       

        내가 조금이라도 둥지 밖으로 나가려 하면 남편은 ‘빼애애애액!!’이라는 이상한 비명을 지르며 내 뒷덜미를 물고 둥지 안쪽에 데려다 두었다.

        그러고는 안절부절못하면서 내 온몸을 핥아준다.

       

        ‘솔직히 사랑받는 느낌이 들어서 좋기는 한데…….’

       

        너무 과해. 너무 과하다고!

        그렇다고 그것을 거절하자니 남편이 시무룩해할 것이 뻔히 보이고, 이대로 있자니 날개가 퇴화해 버리는 것은 아닐지 걱정되고…….

       

        ‘……잠깐. 그런데 내가 왜 그놈 눈치를 봐야 하지?’

       

        문득 드는 의문점.

        분명히 그놈은 싫다는 나를 강간한(?) 놈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왜 나는 그놈을 생각할 때마다 꼬박꼬박 ‘남편’이라고 부르고, 그 녀석의 기분을 생각하는 것일까?

        그동안은 자연스럽게 그렇게 생각해 왔는데, 이제 좀 생각을 달리해 봐야 할 것 같다.

       

        ‘이번에는 얄짤없다!’

       

        쿵! 쿵! 쿵!

       

        때마침 녀석이 되돌아왔다.

        이제는 익숙한 진동을 느끼며,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녀석이 들어오는 것을 기다리다, 완전히 둥지에 들어왔을 때…….

       

        = 부인!

       

        끼양!

       

        ‘왔어?’

       

        나는 고생하고 온 남편의 얼굴을 핥아주었다.

        아이고…… 누구 남편인지 몰라도 잘생겼네!!

       

       

        *            *            *

       

       

        꺙!

       

        나는 남편의 꼬리를 문 채 뒹굴거리는 작은 아이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나와 남편 사이에서 태어난 첫 번째 아이다.

       

        나나 남편과는 달리 말랑말랑한 비늘을 가지고 있고, 마찬가지로 말랑말랑한 발과 뿔, 이빨을 가진……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아이.

        남편을 닮아 노란색을 띄는 비늘을 가진 아이가 뒤로 벌러덩 넘어지더니, 그대로 자기 뒷발을 깨물며 똘망똘망한 눈으로 우리를 올려다본다.

       

        = 아이. 귀엽다. 부인.

       

        남편이 나에게 머리를 기대며 사념을 보내왔다.

        묵직한 남편의 무게를 느끼며, 나 역시 얼마 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한 텔레파시 기관을 활성화 시켰다.

       

        = 맞아. 최고로 귀여워.

       

        그르르르륵…….

       

        나의 말이 듣기 좋았는지, 남편에게서 기분 좋은 듯한 울림이 들려온다.

        그런 남편의 울림을 들으며, 나 역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뀨?

       

        그런 우리를 올려다보며, 우리의 첫째 아이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우리 부부는 다시 미소를 지었다.

       

       

        *            *            *

       

       

        = 이름이 필요하다.

       

        = ?

       

        나의 사념에 남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상황을 보니, 애초부터 ‘이름’이라는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뭐, 사실 드래곤으로 살아가면서 ‘이름이 필요하다!’ 같은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애초에 우리가 무리생활하는 생물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생물과 친하게 지내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나와 남편이 함께 동거하는 것 자체도 이질적인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름이 굳이 필요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남들이 나를 ‘이름’으로 호칭하는 경우도 없고, 내가 다른 이들의 ‘이름’을 부를 일도 없기 때문이다.

       

        남편과 나의 사이도 마찬가지다.

        굳이 이름을 부를 필요 없이, 그저 ‘부인’, ‘남편’이라고 부르면 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싫어.’

       

        인간이었던 나에게 ‘이름’이라는 것은 흔해빠진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를 구분 짓는 중요한 요소였다.

        그리고 나는 그 특별함을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

        그렇기에…….

       

        = 그냥 내가 시키는 대로 해!!

       

        = 아, 알겠다.

       

        나는 이를 드러내며 남편에게 이름 짓기를 강요했다.

       

        = 내 이름은 ‘라그나’. 당신의 이름은 ‘라이츠’야. 알겠지?

       

        = 어…… 알겠다.

       

        그날 우리 부부에게는 ‘이름’이 생겨났다.

       

       

        *            *            *

       

       

        요즘 나에겐 작은 고민이 생겼다.

       

        ‘남편이 요즘 나와 짝짓기를 해주지 않아…….’

       

        암컷에게 발정기가 있듯, 수컷에게도 발정기가 존재한다.

        다른 동물은 모르겠지만, 일단 내가 속한 ‘드래곤족’은 비슷한 시기에 발정기가 겹치는 이들이 만났을 때 서로 짝짓기를 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우연찮게도 나와 내 남편은 발정기가 어느 정도 겹치는 경우였다.

       

        문제는 서로 발정기에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나의 상대를 해주지 않는다는 것.

        첫째 아이가 아직 어릴 때는 이해가 되었다.

        약하디약한 새끼가 독립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기 이전에 내가 또다시 임신함으로써 운신을 할 수 없게 될 경우, 나와 아이 둘 다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첫째 아이는 이제 다 컸지.’

       

        한 20년 정도 지났나?

        이제는 나보다도 커진 첫째 아이는 스스로 우리 부부를 따라서 ‘블레이즈’라는 이름을 짓더니, 요즘에는 뭔가 반짝거리고 예쁜 것들만 보면 둥지로 가져오기 시작했다.

        혹시나 내 아이가 전생에 까마귀는 아니었을지 심각하게 의심되는 취미였다.

       

        어쨌든 그렇다 보니 요즘에는 첫째 아이를 독립시키려고 독촉하는 중이다.

        그리고 아이가 독립하는 것으로 인해 슬슬 우리 부부의 발정기가 다시 시작되는 조짐을 보이는데…… 정작 남편이 나에게 손을 안 대는 것이다.

       

        ‘이유는 대충 짐작이 가는데…….’

       

        아마 첫 임신과 첫 산란의 기억 때문이겠지.

        그 첫째 아이를 산란할 당시, 나는 내 몸 크기보다 커다란 알을 낳느라 거의 초주검이 되었었다.

        한동안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한 채 회복에만 전념해야 했을 정도로 말이다.

        남편은 그때의 트라우마로 인해, 내가 또 임신할 경우 죽는 것이 아닐까 걱정하는 것이다.

       

        ‘그 걱정은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그걸 혼자서만 끙끙대나? 그럴 거면 텔레파시 기관은 왜 만들었대?

        부인이라며? 그런 고민이 있으면 나와 상의 정도는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아니…… 나라고 그때 기억을 잊었는 줄 아나?

        시간이 흐른 만큼, 나 역시 그때의 기억을 토대로 내 몸을 진화시켜 왔다.

        지금에 와서는 내 몸체도 좀 더 키웠고, 유연성도 크게 키웠다.

        이제는 임신 및 산란을 하더라도 첫 산란 때와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안 되겠어.’

       

        크르르르르…….

       

        나는 첫째 아이가 외출한 것을 깨닫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황금으로 막아 놓은 남편의 굴로 다가가, 그동안 준비해 놓은 특제 독을 꺼내 들었다.

        바로 황금조차 녹인다는 ‘왕수(王水)’였다.

       

        치이이이익!!

       

        끼잉?!

       

        = 부, 부인…….

       

        막혔던 입구가 뚫리자마자 훅 느껴지는 유혹의 페로몬.

        그러자 나의 몸 역시 후끈하게 달궈지며 빠르게 임신 준비하기 시작한다.

       

        당황해하는 남편을 노려보며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숨을 헐떡이는 남편을 덮쳐, 남편의 위에 올라탄다.

        짐승이 항복의 의사를 표현하는 ‘배를 보이는 자세’로 넘어진 남편을 내려다보며, 나는 사념을 날렸다.

       

        = 이건 복수야.

       

        = ???

       

        첫째 아이를 임신했던 그날의 복수니까!

        싫다고 해도 안 봐줄 거니까!

       

        그러니까 애원해도 소용 없으…….

        …….

        ………….

        ………………잘못했어요오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노벨피아 공지를 조금 늦게 확인했는데, 참 그렇습니다.

    비록 저도 하꼬 작가이기는 하지만, 나름 전업 작가로서의 꿈을 꾸고있는데…… 조금 씁쓸하네요.

    일단 연재는 계속될 것 같습니다.

    우리 드래곤님의 방송은 계~속!

    다음화 보기


           


Dragon’s Internet Broadcast

Dragon’s Internet Broadcast

드래곤님의 인터넷 방송
Status: Ongoing Author:
Fantasy, martial arts, sci-fi... Those things are usually products of imagination, or even if they do exist, no one can confirm their reality. But what if they were true? The broadcast of Dragon, who has crossed numerous dimensions, is open again today. To tell us his old stories...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