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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8

       “자아, 자아! 우리이, 2차로 이동해요오-!”

        

       “2차! 2차! 2차!”

        

       일행이 만취하는 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방송도 켜지 않은, 순수한 모임. 거기에 대회를 준비하며 나름 친근해진 사이에다가, 그 결과조차 최상이었던 덕에 앙금도 없었으니- 마음 편히 잔을 주고받으며 술을 들이붓기에는 최고의 자리였던 탓이다.

        

       조금 불편한 아저씨 하나 정도야, 다같이 취한 후에는 크게 방해되는 요소도 아니었다.

        

       평소 술을 멀리 했던 탓일까. 레반은 속에서 뜨겁게 올라오는 취기가 사뭇 낯설게 느껴졌다. 이 정도로 술을 마시는 게 대체 얼마만인지.

        

       물론, 그럼에도 그는 아직 나름 멀쩡한 축에 속했다. 나머지는 이미 주량을 한계까지 채운 듯이 보였으니.

        

       “아! 저는 잠깐 편의점 들렀다 갈 거예요! 톡방에 주소랑 예약자명 올려뒀으니 다른 분들은 먼저 가게로 가계세용. 헿…가게로 가계……헤헿…….”

        

       특히, 별포크는 상태가 많이 안 좋은 것 같았다. 편의점에 따라가, 숙취 해소 음료라도 하나 사 먹여야 하는 것 아닐까.

        

       편의점에 같이 가겠다고 말하던 레반은, 궁탁이 빠르게 자원하여 편의점 동행을 자처하는 것을 보고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오해살 일 없는 유부남이 나서 준다면 고마운 일 아니겠는가.

       

       4명에서, 2명까지. 빠르게도 반토막난 일행이었다.

        

       “어……고라박스님 이 근처에서 빙빙 돌고 계신다는 데요? 입구를 못 찾으시겠다고. 제가 모시고 갈게요.”

        

       이어서, 아크가 머리를 긁적이며 잠시 이탈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렸다.

       

       “고라박스님? 급하게 오시다 헷갈리셨나 보네. 같이 가시죠.”

        

       “아, 아니에요. 제가 얼른 가서 합류하고 갈게요. 지금 8시 조금 넘어서……아까 가게에서 아리한테 오시는 거 맞는지 전화 왔다고 하더라고요. 시훈 오빠가 먼저 가주세요.”

        

       손사레를 치며 떠나간 아크를 뒤로 한 채, 레반은 홀로 지도앱이 안내하는 주소에 도착했다.

        

       보통 술집의 입구와는 달리, 무슨 호텔 입구마냥 큼지막한 문. 고급스러운 바였다. 궁탁이 자기가 좋아하는 곳에서 사겠노라며 직접 고른 가게였던가.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거대한 진열장에는 온갖 위스키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그 어떤 병을 골라도 그보다 나이가 많을 것 같은, 고급 위스키들의 향연.

        

       “안녕하세요, 더 오크입니다. 예약자분 성함을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카운터에 서있던 종업원이 깍듯하게 인사를 하며 다가왔다. 입구에서 서성이는 폼이 서툴러 보였던 걸까. 그럴 리가 없음에도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레반은 이 자리가 너무도 어색했다.

        

       “이쪽으로 안내드리겠습니다.”

        

       양복을 입은 종업원의 뒤꽁무니를 따라 예약된 방으로 가는 길은 퍽 길고 복잡했다. 끝없이 이어지는, 미로에 가까운 검은 복도.

        

       설계 미스라기보다는……프라이빗한 공간을 원하는 손님들을 위한 구조겠지. 언제 알아보는 사람을 마주할지 모를 스트리머의 입장에선 고마운 공간이어야 할 터인데도, 레반은 점점 더 속이 불편해지는 기분이었다.

        

       ‘오지 말걸 그랬나.’

        

       평소 그의 성향대로라면 정중히 사양하거나, 분위기상 어렵다면 무언가 이유를 만들어서라도 거절했을 자리였다.

        

       어쩌다 오기로 했는지. 알코올에 절여진 뇌는 대답을 빠르게 내놓지 못했다. 어쩌면, 너무 많은 이유가 있어서 일지도.

        

       술을 안 마셔도 사고를 치고 다니는 이예나가, 스트리머만 4명 있는 자리에서 술까지 취해서 뭔 짓을 하면 막아줘야겠다 싶기도 했고,

        

       타인과 교류하는 걸 몹시 불편해하는 것이 느껴지는 이예나가, 막상 왔다가 어색해할까 걱정이 되기도 했으며,

        

       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사람인지 궁금하기도 했고…….

        

       아니, 아니지- 라고 생각하며, 레반은 고개를 저었다.

       

       이예나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크나, 궁탁, 고라박스, 별포크……합방을 자주 하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스트리머를 직업으로 삼고 살아가기로 결정한 이상, 연이 닿은 김에 교류를 해둬서 나쁠 것 하나 없는 사람들이었으니까.

        

       -드르륵.

        

       그래. 이제 와서 이러는 것도 우스웠다. 그래도, 이 정도면 온 목적은 거의 다 달성했으니까.

        

       ‘일찍 일어나자. 적당히……너무 취했다고 하-’

        

       “이쪽, 글렌 룸입니다. 필요한 것 있으시면 이쪽의 벨을 눌러주시면 됩니다. 즐거운 시간 되세요.”

        

       생각의 흐름이 가위로 잘린듯 끊겼다.

        

       커다란 대리석 테이블. 고급스러운 벨벳 소파의자. 바깥, 도시의 야경이 내려다 보이는 통 유리 벽.

        

       그 무엇도 눈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부서질 듯이 위태로운 백자(白磁)와도 같은 여자였다.

        

       창백하게 흰 피부에서는 빛이 배어 나오는 듯했다. 칠흑같이 검은 생머리와의 대비 때문일까. 한 쪽 귀 뒤로 넘겨진 머리카락의 틈새로 설핏 비치는 새하얀 목선이, 시선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제야 누군가 들어왔음을 인지한 걸까. 천천히 고개를 돌린 여자가, 레반과 눈을 맞췄다.

        

       뚜렷한 이목구비가 주는 강한 인상을 상쇄시키듯, 반쯤 감긴 채 눈꼬리가 살짝 내려간 눈망울. 세상 모든 것이 지루하다는 듯이 나른한 눈빛이었다. 곧게 뻗은 콧날이 아니었다면, 조금은 어리게 보였을 인상이다.

        

       그리 생각하는 것을 읽기라도 한 건지. 앙다문 입술은 삐뚜름하게 사선을 그리고 있었다.

        

       미간을 살짝 찌푸린 여자가, 고개를 살며시 모로 기울이며 속삭였다.

        

       “잘못 오셨어요.”

        

       “네? 아, 네! 죄송합니다. 종업원이 여기로 안내해주셔서……죄송합니다.”

        

       레반은 다급하게 고개를 두어 차례 숙였다. 잘못이 없음에도, 죄를 지은 것만 같았다. 그런 힘이 있는 얼굴과, 목소리였다.

        

       왜 하필이면 그 종업원은 이런 실수를 한 건지. 덕분에 순간적으로 설마 저 여자가 아따먹인가, 하는 착각마저 해버린 자신이 한없이 한심했다.

        

       정말, 되는 일이 없는 날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여자의 눈은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나무꾼 정모는 옆방이에요.”

        

       순간, 무슨 말인지 이해조차 하지 못했다. 가늘게 늘어지는 눈매가……웃고 있는 건가.

        

       3, 4 초 즈음 지났을까. 체감상 영원에 가까운 시간 동안 멍하니 서있던 레반이, 얼어붙은 것만 같던 입을 가까스로 움직였다.

        

       “그, 아…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님?”

        

       “네.”

        

       “……다들 곧 오실 거예요. 왔으면, 얘기를 하시지. 오시는지 사람들이 1차 내내 궁금해했잖아요.”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귀에 울릴 정도의 취기를 빌려 움직이는 입은, 괜스레 평소와 같은 핀잔을 내뱉고 있었다.

        

       미소를 거둔 이예나가, 고개를 돌려 핸드폰을 향했다.

        

       마음이 상한 건가. 평소에 디스코스로 주고받던 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데. 아니, 애초에 저 사람이 그 아따먹이 맞기는 한지. 뭔가, 조금 더 광기어린 눈에, 머리에는 도적최고라고 쓰인 머리띠를 두른 느낌의-

        

       멍한 머리 속에서는 무의미한 생각만 계속하여 공전했다. 더 이상 이쪽으로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핸드폰을 만지는 이예나의 손짓에, 가슴이 옥죄어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우우웅.

        

       손에 쥔 핸드폰이 가벼이 진동했다. 레반의 눈이 저도 모르게 빛나는 화면을 향했다.

        

       [저 왔어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이예나는 레반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얘기했어요.”

        

       살짝, 아주 살짝.

        

       부드럽게 벌어지는 입술 사이로 하얀 이가 드러나고,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가는 모습이 눈으로 빨려 들어왔다.

        

       꽃망울이 화사하게 터져 나오는 것만 같은 미소였다.

        

       * * * *

       

        “예나님! 이게 웬일이야. 오셨다고 말씀을 하시지 그랬어요! 오늘 진짜 장난 아니게 예쁘다. 오시는 길에 캐스팅 10번은 받으신 거 아니에요?”

        

       “오랜만이에요, 진희님.”

        

       “어, 네? 와, 저 이제 이름으로 불러주는 거예요? 그냥 진희 언니라고 해도 돼요!”

        

       “저도! 저도 아리라고 불러주세요!”

        

       “네, 아리님.”

        

       “어, 뭐야. 그런 분위기야? 그럼 저도 병구 오빠로-”

        

       “안녕하십니까, 궁탁 파트너 스트리머님.”

        

       “크핳핳, 우리 아따먹 선생님 역시 유머감각도 있으시네. 아무튼, 반가워요! 오늘은 우리 우승 기념으로 제가 쏠 테니까, 드셔보고 싶으셨던 술 아무거나 시키세요. 여기 칵테일도 괜찮으니, 여성분들은 메뉴판도 한 번 보시고. 일단 첫 병은 제가 미리 주문해뒀습니다.”

        

       아무거나……진짠가.

        

       그러면 저기……맥캘란 30년……와, 0이 몇 개야 저거. 양심이 호기심을 아슬아슬하게 누른 탓에, 시선을 메뉴판에서 거뒀다.

        

       궁탁이 추천한 위스키는 제법 부드러웠다. 혀 위에서 굴러가는 듯한 느낌. 빨뚜만큼은 못해도, 이 정도면 괜찮은 술이네.

        

       목으로 넘길 때 화한 느낌도, 마음에 들고.

        

       통성명을 마친 후에도, 나를 향한 관심은 끊이지 않고 있었다. 1차에 오지 않았기 때문……만은 아니겠지. 이미 거하게 한잔씩들 하신 모양인지, 조금은 거리낌 없는 대화가 허공을 오갔다.

        

       “와, 근데 진짜 상상 이상으로 미인이시네. 왜 캠 공개 안 하시는 겁니까? 아니, 아니다. 괜히 공개하시면 진짜 스토커 붙을 수도 있겠어요. 적당히 예쁘셔야 되는 건데.”

        

       궁탁의 말에 뭐라 답하기도 전에, 옆에 앉은 남자가 웃으며 장난스레 말을 흘려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고라박스였나. 그렇게 당황할 필요는 없는데.

        

       “우리 예나 언니가 캠 공개할 거였으면 그냥 연예인 했죠. 이 미몬데.”

        

       “……두 분 동갑 아니에요?”

        

       “예쁘고 게임 잘하면 언니예요.”

        

       꺄르륵 거리는 소리. 술잔이 부딪히고, 점점 커지는 목소리가 오가는……소란스러운 분위기가 이어졌다.

        

       이런 자리가 너무 오랜만이라 그런가. 시끌벅적한 소리는 그렇다 쳐도, 사람들의 시선이 내 얼굴에 들러붙는 감각이 영 익숙해지지 않았다.

        

       역시, 요새 안이 편한데. 돌아가고 싶지만…….

        

       모처럼, 큰 결단을 하고 한 걸음 걸어나온 마당이니까.

        

       흘긋, 이 자리에서 유일하게 조용히 장단만 맞추고 있는 레반에게 시선을 향했다. 이제 보니 그 용사랑 좀 닮은 것 같은데.

        

       어색한 목소리에 벙찐 표정으로 ‘하우 디드 유 겟 히어’라고 말하는 레반을 떠올리다가, 참지 못한 웃음이 슬며시 새어나왔다.

        

       음……아크가 성녀 코스프레를 하고……레반이 용사, 별포크가 도적을 해주면 딱일 것 같네. 치맥과 함께 보고 싶은 방송이다.

       

       아크의 팬으로서, 도네이션으로 보내고 싶은 문구가 어마어마하게 떠오르는…….

       

       둘이 우결은 안 하려나. 잘 어울리는데.

        

       입밖으로 내기 힘든 상상을 위스키와 함께 삼켰다.

        

       

       역시 맛있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5/5

    오늘의 5연참을 위해 이틀 간 휴가를 냈습니다. 보람찬 휴가였을까요.

    전개를 답답하게 느끼시는 분들이 생긴 건, 결국 충분히 재밌는 글을 적시에 준비하지 못한 제 불찰이라고 생각합니다. 혹 오늘 그 답답함이 조금이나마 해소되셨다면, 작가로서는 무척 기쁘겠습니다.

    본업이 밀린 관계로, 금요일(11/3) 혹은 토요일(11/4) 중 하루는 휴재를 하게 될 것 같아요. 이후 확정되면 공지를 드리겠습니다만, 미리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

    다음화 보기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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