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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8

       키엘 대공이 아리아 앞에서 검술을 선 보인지 벌써 몇 분이 흘렀다.

       

       검술의 검자도 모르는 어린아이를 데려와도, 눈 앞의 남자가 검의 정점에 도달한 인간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채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수준 높은 검술이었다.

         

       단순히 검을 수족처럼 다루는 경지는 옛적에 지났다.

       

       그의 정신은 곧 검이었고, 검은 곧 그였다.

         

       그의 공격에 살의 따위는 담겨 있지 않았다. 모시는 주군 앞인 탓도 있었지만, 단순히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공간이 시커먼 묵색으로 물든다.

         

       [‘검성 키엘’이 ‘신검합일(身檢合一]’을 사용합니다.]

         

       키엘 그가 곧 검이었다.

       본래 검이란,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그 용도가 달라지는 무기다.

       작금의 키엘이 펼치는 검격은, 누군가를 지키기 위한 용도였다.

         

       [‘검성 키엘’이 ‘수호검’을 사용합니다.]

         

       이것이 몰살 회차에서 올리비아가 키엘의 성장을 방해했던 이유였다.

       아무리 올리비아라고 한들, 저 상태의 키엘을 뚫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스르릉.

         

       시연을 마친 키엘이 대검을 집어넣고 목례한다. 만족스러운 얼굴로 지켜보던 아리아가 입을 연다.

         

       “그래서, 방금 그걸 올리비아가 알려줬나?”

       “검술의 묘리와 관한 것을 몇 가지 조언해주었습니다.”

       “오호라. 그렇다면 깨달음과 관련된 조언은?”

       “직접적으로 말해주지는 않고, 실마리를 제시했습니다.”

         

       아리아가 올리비아를 바라보며 보란듯이 눈썹을 으쓱였다.

         

       “내가 말하지 않았나. 은연중에 드러났다고.”

        “……조언할 수도 있지.”

        “마법사가? 기사에게?”

         

       입맛을 다시는 올리비아를 보고, 아리아가 미소지었다.

         

       “그래도 다행이구나.”

        “뭐가?”

        “네 비밀을 들킨 것이, 이번 회차가 처음이라는 뜻이니.”

         

       키엘이 지켜보는 탓일까, 아리아는 방금 전부터 어투를 고풍스럽게 바꿔 말하고 있었다.

       물론 그 편이 훨씬 잘 어울렸다.

         

       “……연기였을 수도 있지.”

        “아니. 그게 연기였을 리가 없다. 내 기억을 꺼내서 보여줄 수 없는게 아쉽군. 내가 [회귀]라는 단어를 꺼냈을 때 네 반응은……정말로 볼만 했는데 말이지.”

       

       올리비아가 눈을 깜빡거렸다.

         

       키엘이 보는 앞에서 그런 말을 할 줄 몰랐던 까닭이다. 아리아가 피식 웃었다.

         

       “키엘 대공.”

        “예, 폐하.”

        “지금부터 나와 올리비아가 나누는 대화는 기억에서 지우게.”

       “예.”

         

       와인으로 입술을 축인 아리아가 자신감 가득한 어투로 말했다.

         

       “이제 걱정할 필요 없어.”

         

       그녀의 말투는 어느새 평소대로 돌아와 있었다.

         

       정말로 키엘을 없는 사람 취급하겠다는 소리였다.

         

       조금 어이가 없었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어차피 마신을 퇴치한 이후의 시간대인 이상, 회귀했다는 사실을 들킨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키엘이면 뭐. 상관 없겠지.’

         

       다른건 몰라도 누군가를 모시기로 했으면, 전력을 다해 섬기는 게 키엘이라는 사람이었으니까.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긴 조금 그렇지만. 나는 매우, 엄청나게, 그 누구와도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명석하고 유능한 사람이야.”

       “……부정하지는 않을게.”

         

       아리아가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렇다면 네가 앞으로 만날 다른 ‘나’들도 지금의 나처럼 유능할테지.”

       “그……렇겠지?”

        “그래,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게 바로 그거야.”

         

       아리아는 웃음기를 지우고,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내게 도와달라고 말해.”

       “……그게 무슨?”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생각이라면, 그때의 나한테 가서 도움을 청하라는 말이야.”

         

       아리아의 눈동자는 현기(賢氣)로 물들어 있었다.

         

       “‘나’에게 네 비밀을 말해준다면, ‘나’는 납득할 수 있을거야.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나는 엄청나게 유능하니까. 그런 내가 너를 돕는다면, 네가 추구하는 완벽한 결말에 훨씬 빠르게 도달할 수 있겠지.”

         

       아리아는 여유로운 미소를 띄웠다. 하지만 올리비아는 알고 있었다. 그녀가 슬픔과 안타까움을 숨기려고 온 힘을 다해 발버둥치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것이 아리아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양보임을.

         

       곧바로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아리아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시간은 많으니 천천히 생각하고, 생각이 정리됐다면 그때 다시 이야기하도록…….”

         

       올리비아의 눈앞에 알림창이 떠오른 것은 그때였다.

         

       [특별 퀘스트의 클리어 조건이 개방되었습니다!]

         

       ‘……갑자기?’

         

       올리비아는 바로 알림창을 열어 보았다.

         

       +

         

       <특별 퀘스트 – 육체의 주도권 되찾기>

       – 클리어 조건 : 이 세계에는 아직 마신의 잔재가 남아 있습니다. 마신의 잔재를 찾아 확실히 소멸시키세요.

       – 제한 시간 : 없음

       – 보상 : 원래 회차로 복귀, 육체의 주도권 재획득

       – 실패시 : 의식 소멸

         

       +

         

       ‘……마신의 잔재가 여기에도 있다고?’

         

       도대체 그 잔재라는 것이 뭐길래 마신이 죽은 이후에도 남아있단 말인가.

         

       일단 첫번째 가능성은 말 그대로 ‘마신의 잔재’일 가능성이다.

       신체의 일부라던지, 마기의 일부가 응집된 형태라던지.

         

       ‘하지만 마신의 잔재는 내가 있던 ’현재‘에도 존재했어.’

         

       그렇다면 첫 번째는 기각.

         

       두 번째는…….

         

       싸한 예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올리비아는 한참 동안 인상을 찌푸리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리아. 마신이랑 마왕, 그리고 대악마 네마리 다 확실히 죽은거 맞지?”

       “보고 받은 대로라면.”

       “한 가지만 더 묻자. 마신 잡았을 때, 누구누구 있었어?”

         

       아주 잠깐, 아리아의 눈동자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그새 잊었을 리는 없고. 무언가 잊고 있었던 사실이라도 떠오른거니?”

        “비슷해.”

       “너와 키엘 대공, 성녀 리브가와 네가 데려왔던 괴짜 둘까지 해서 총 다섯 명이었어.”

       “……괴짜라니?”

       “으음……이제는 조금 무서워지려고 하는데. 정말로 방금 전 그게 연기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려고 해.”

       

       아무리 올리비아라고 해도, 모든 엔딩을 어떻게 공략했는지 기억하는 것은 무리였다.

         

       ‘마신 원정대’는 매번 그 구성원이 조금씩 달라졌으니까.

         

       “연기 아니야.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고. 정말로 확인할 게 있어서 그래.

        “으음…….”

         

       아리아는 답지 않게 망설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올리비아는 아리아가 왜 그토록 망설였는지를 깨달았다.

         

       터억.

         

       아리아는 서랍에서 서류철을 꺼냈다.

       기껏해야 종이 몇 장에 불과할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수백 장을 가볍게 넘어갔다.

         

       그것의 정체는 보고서였다.

         

       [대현자 올리비아가 데려온 신원 미상자 2인에 관한 보고서]

         

       평범한 보고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뒷조사에 가까웠다.

         

       서류철이 두꺼운 이유는 간단했다. 마신을 처치한 이후로 지금까지, 주기적으로 ‘괴짜’들을 감시해왔기 때문이다.

         

       [3월 27일. 마키나 2번도로 클레앙드르 카페에서 2시간 가량 식사.]

       [4월 5일. 4번 도로에서 건달패 하나가 전부 변사체로 발견. 온 몸에서 자상 다수 식별. 감시 대상이 개입했을 가능성 높음.]

       [5월 2일…….]

         

       아리아가 변명하듯 말했다.

         

       “아무리 네가 추천했다고는 하지만, 나는 제국의 황제로서 그들 같은 위험 분자들을 경계할 필요가 있었어…….”

         

       올리비아는 말 없이 서류철을 넘겼다.

         

       그리고, 그 ‘괴짜’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냈다.

         

       올리비아는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얘네들, 지금 어디 있는지 알아?”

       

         

       *****

         

         

       올리비아는 하루 종일, 아리아가 건네줬던 서류철을 읽느라 정신이 없었다.

       

       보고서 제목 자체는 ‘신원 미상자 2인에 대한 보고서’였지만, 그 중 9할은 한 남자에 관한 내용이었다.

       

       물론 평범한 남자는 아니었다.

       

       15인의 회귀자 중 한 명.

         

       ‘……연쇄 살인마.’

         

       놀랍게도 그는 마신 원정대 5인 중 한 자리를 꿰차고 있었다.

         

       그런 회차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많지 않았던 것 또한 사실이었다.

         

       이론상 회귀자 15인이 모이면 플레이어 없이도 마신을 사냥할 수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분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가능한 일이다.

         

       마신을 잡기도 전에 자기들끼리 내분이 일어나 망했던 회차는 또 얼마나 많았던지.

         

       ‘그런데 내가 연쇄 살인마를 데려갔다는 뜻은, 그 놈을 제어할 수 있을 정도의 친분은 쌓아놨다는 소린데…….’

         

       물론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호감도를 얼마나 쌓았던 간에, 마신을 처치한 건 이미 십 년도 더 지난 일이었기 때문이다.

         

       올리비아는 읽었던 페이지를 읽고 또 읽었다. 그녀가 찾고자 하는 것은 뚜렷한 ‘변화’였다.

         

       인간의 몸에 악마가 깃들면, 조금씩 그 성향이 변해간다.

         

       ……만약 마신의 잔재가 깃들기라도 했다면?

       

       의지도 없는 순수한 마기의 집합체에 불과하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선인을 순식간에 악인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마신의 잔재가 ‘연쇄 살인마’의 몸에 깃들었다면 분명 그런 변화를 드러냈을 것이다.

         

       [8월 7일. 전날 감시 대상에게 시비를 걸었던 용병 둘이 변사체로 발견. 두개골에 희미한 관통상 식별.]

         

       하지만 원래 답이 없던 놈이라, 이게 변한건지 안 변한건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한 명씩 다 조사해봐야 하나?’

         

       어찌되었든 마신의 잔재가 깃들려면, 적어도 한 번은 마신과 접촉해야 했다.

         

       그리고 마신과 접촉한 사람은 ‘마신 원정대’ 뿐이다.

         

         

       *****

         

         

       마기의 조사를 위해 떠난 리브가는 밤이 되어서야 키엘이 있는 천막으로 돌아왔다. 언제 정신을 차렸는지, 키엘은 텅 빈 눈으로 침대에 앉아 있었다.

         

       “일어나셨군요.”

         

       별 소득은 없었다. 아무리 성녀라고 한들, 공기 중에 남은 마기가 고작 몇 줌뿐인 탓에 상대가 어떤 악마인지 도무지 특정할 수 없었다.

         

       “너는…….”

       “신성 왕국의 성녀. 리브가라고 합니다. 키엘 공작님 맞으신가요?”

         

       이렇게 된 이상 남은 방법은 하나.

         

       “여쭈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유일한 목격자에게 물어보는 것 뿐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Ilham Senjaya님!!!!!!!!!!!!!!!!!!!!!!1

    참고로 둘은 전생에서 딱 한 번 만났습니다.

    키엘이 방랑하면서 죽음에 관한 조언을 구하려고 말이지요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세계를 멸망시킨 마녀가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destroyed the world to see its Annhiliation Ending.

And I possessed my Character Olivia in the game.

However… … .

[The world is rebuilt.] – NPCs killed by you return.

– Princess Aria hates you.

– Sword Saint Kiel wants to slit your throat.

… … Isn’t that a bit of a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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