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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28

       “해명해.”

        

       소희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수아도 당연하다는 듯 그 상황에 동참하고 있었다.

        

       유하늘, 신소희, 이수아는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각자 삼각형의 꼭짓점을 만들 듯 자리에 앉아있었다. 의식을 잃은 사라는 여전히 침대에 누워있었고.

        

       “해명하다니?”

        

       유하늘은 얼굴에 철판을 깔고 말했다.

        

       물론, 그 철판이 그리 두껍지는 못했다. 소희와 수아는 어찌 되었건 유하늘의 친구이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동시에 사라의 친구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사라가 바라는 일이기도 했다. 자신의 마음대로 깨부숴도 되는 관계가 아니었다.

        

       ……유하늘 자신도 그렇게 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기 이 자리에서 자신이 이유를 밝힐 수는 없었다.

        

       사라 개인의 사정이었다. 남이 함부로 밝혀도 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런 상황을 자신이 만든 것이긴 했지만.

        

       그래,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 정확하겠지.

        

       사라를 끌어안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얼굴을 가깝게 하는 것도. 아마 아예 입술을 겹칠 수만 있다면 더 기분 좋겠지. 나아가서 평생을 함께할 약속을 할 수 있다면, 아마 유하늘은 너무 기뻐서 울음을 터뜨릴 거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정한 뒤에도, 유하늘은 차마 사라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지 못하고 있었다.

        

       무서웠으니까.

        

       사라가 혹시라도 자신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을까 봐 무서웠다.

        

       게다가, 그렇게 하지 못할 것 같은 이유도 분명히 있었고.

        

       사라의 안에는 ‘사라’도 있었다. 물론 유하늘은 ‘사라’와도 친구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여기에는 큰 문제가 있었다.

        

       자극적인 행동을 할 때마다, 사라와 ‘사라’는 자리를 바꾼다.

        

       나름대로 파훼법으로 ‘사라’상태일 때 행위를 시작해 사라와 절정에 도달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는 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사라가 그걸 좋아해 줄지 의문이었다.

        

       지금 사라에게 있어서 제일 중요한 존재는 ‘사라’였다. 사라는 ‘사라’를 위해서 자신이 있을 자리도 기꺼이 포기할 수 있을 만큼 ‘사라’를 아끼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유하늘이 사랑을 고백한다고 해도 사라가 받아줄 여유가 있을까?

        

       그걸 받아들이건, 아니건, 사라의 마음에 커다란 짐을 올려두는 행동이었다. 그렇기에 함부로 고백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참을 수도 없다.

        

       사라가 좋다.

        

       평생 함께하고 싶다.

        

       더 앞으로, 더 가까이, 더 친밀한 사이가 되고 싶었다.

        

       그렇기에, 참 비겁하게도, 자신의 강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마음 한구석에 죄책감을 늘 느끼고 있으면서도, 조금 전에 자기 생각이 실패했을 때는 ‘아쉽다’라는 생각을 품었다.

        

       ……그런데, 그 모든 말들을, 이 자리에서 쏟아낼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유하늘은 일단 얼굴에 철판을 깔고 있어야 한다.

        

       “……아까 그러고 있었던 일에 대해서. 해명해.”

        

       사실, 따지자면 소희도 이런 말을 할 이유는 없기는 하겠지만…… 유하늘은 소희에게 경쟁심을 느끼면서도 동질감을 느꼈다. 결국 소희도, 수아도, 유하늘과 같은 상황이었다.

        

       사라를 좋아하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혹시, 둘이 사귀고 있기라도 한 거야?”

        

       “…….”

        

       유하늘은 그 말에 말문이 막혔다.

        

       “……아니.”

        

       아주 잠깐, 어떻게 대답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유하늘은 결국 얼굴에 쓰고 있던 가면을 치우기로 했다.

        

       쓰고 있어 봐야 여기서는 별다른 도움도 되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으니까.

        

       “사귀는 것도 아닌데 그런 상황이 올 수 있어? 사라가 네 위에 직접 올라탄다고? 너, 설마 사라한테 무슨 나쁜 짓이라도……”

        

       “아냐.”

        

       하지만 그 말에는 딱 잘라서 말했다.

        

       ……사실, 그 이야기를 듣고 양심에 가책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분명 그 상황을 유리하게 이용하고 있었으니까. 관점에 따라서는 충분히 나쁜 짓이라고 할만하긴 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사라는 몇 번이나 유하늘에게 안기면서 면역이 생겨버린 것 같기는 했지만.

        

       마지막 순간, 입술이 닿기 직전에 ‘사라’가 돌아올 수 있었던 건, 아마 자극적인 상황 위에 충격적인 상황— 그러니까, 유하늘과 사라가 침대 위에서 몸을 거의 겹치고 키스 직전까지 간 상황을 누군가에게 들켜버리는 상황이 겹쳐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행동이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아마 필요한 행동도 점점 더 과격해지겠지.

        

       ……어쩌면 그때가 되면 이 아이들의 도움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사라는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유하늘은 싫다고 생각했지만.

        

       “사귀는 것도 아니고, 내가 협박한 것도 아냐.”

        

       강제로 덮치려고 한 적은 있지만.

        

       ……이렇게 생각하니 진짜 막 나갔구나, 하고 유하늘은 스스로를 되돌아보았다.

        

       변명하자면 ‘사라’ 쪽이 먼저 도발하긴 했지만.

        

       “그럼 도대체 왜……?”

        

       수아가 물었다.

        

       “……그건…… 사라의 개인적인 일 때문이라…….”

        

       “…….”

        

       수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혹시, 이번에도 ‘기억’ 때문이야?”

        

       “…….”

        

       그래, 지난번에 소희가 보는 앞에서 끌어안았던 것을 변명할 때는 그렇게 하긴 했다. 실제로도 기억과 관련된 일 때문이긴 했으니까. 사라 안의 두 인격은 각자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서로가 그 기억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고, 생각에도 간섭할 수 있는 모양이기는 했지만.

        

       유하늘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

        

       그 말에, 소희와 수아가 조용해졌다.

        

       그나마 안심했다는 듯한 분위기였다.

        

       물론 분위기가 완전히 풀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것과는 별개로 여전히 둘의 표정은 심각했다.

        

       그야 당연했다. 만약 지금의 상황이 지속되면, ‘과거의 기억’을 불러내야 하는 상황이 생길 때마다, 유하늘과 사라는 저렇게 몸을 붙이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서로 최소한의 호감이 있는 두 사람이, 그렇게 애정 행위 비슷한 일을 반복하다 보면, 결국 그렇고 그런 마음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다.

        

       남자와 여자가 아닌, 여자와 여자 사이의 일이라 확신을 할 수는 없었지만.

        

       “그 기억이라는 건, 언제까지 계속 불러와야 하는 거야? 지난번에 다 불러온 거 아니었어?”

        

       “그게…….”

        

       유하늘은 잠시 망설였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우물쭈물하는 유하늘에게 수아와 소희의 시선이 몰렸다.

        

       “그게, 그러니까…….”

        

       “내가 설명할게.”

        

       유하늘이 천천히 입을 열다가, 그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유하늘뿐만이 아니었다. 수아와 소희도 모두 소리가 난 쪽, 그러니까 침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침대 위에 얌전히 눕혀놓았던 사라가 일어나고 있었다.

        

       아니, ‘사라’가 일어나고 있었다.

        

       인상을 찡그린 채 일어나서 이마에 손바닥을 대고 있던 ‘사라’는, 이내 완전히 몸을 일으켜 침대 모서리로 와 걸터앉았다.

        

       “뭐…… 숨긴다고 해도 결국에는 다 들킬 것 같아서.”

        

       ‘사라’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하늘이가 한 말인 ‘기억’이라는 거, 맞긴 맞는 말이야.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바꿔말하면 자극적이었던 기억을 마주하면 그 특정한 ‘기억’을 불러올 수 있으니까.”

        

       “그 자극적인 일이라는 게, 유하늘이랑 몸을 비비는 거야?”

        

       소희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물었다.

        

       하지만 그 표정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당혹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그래. 그렇게 몸을 비비는 수준의 기억이 아니라면, 어머님과 다시 만나는 수준의 충격이 필요하겠네.”

        

       ‘사라’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었다.

        

       “어…… 아, 미안…….”

        

       소희는 조금 풀 죽어서 말했다.

        

       “뭐, 괜찮아. 다 나를 좋아해서 그러는 거잖아?”

        

       “……어?”

        

       ‘사라’의 폭탄 발언에, 소희가 얼굴을 퍼뜩 들었다. 떠올라 있는 표정은 충격. 그리고 부끄러움. 아무튼 숨겨두었던 마음을 들킨 사람이 느낄법한 감정은 모두 들어있었다.

        

       “사라, 너……!”

        

       유하늘이 경악해서 ‘사라’의 말을 끊으려고 해 보았지만—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가 아니라 ‘예사라’를 좋아하는 거겠지.”

        

       —그보다도 먼저, ‘사라’는 그렇게 말했다.

        

       “어……?”

        

       소희가 다시 한번 그런 목소리를 냈다.

        

       이번에는 상황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목소리였다.

        

       “소희뿐만이 아니야. 수아, 너도. 그리고 하늘이 너도. 다 ‘예사라’를 좋아하잖아.”

        

       세 사람의 입이 떡 벌어졌다.

        

       “하지만 걱정할 거 없어. 알고 있는 건 ‘나’니까. 너희들이 알고 있는 ‘사라’는 아직 몰라. 애가 엄청나게 둔감하거든. 그렇게 대놓고 끌어안고 매달리고 좋다고 온몸으로 표현해도 못 알아차릴 정도로. 어떤 의미에서는 다행이지?”

        

       짐짓 태연하다는 듯 말하고 있었지만, ‘사라’의 얼굴도 말할 때마다 조금씩 달아오르고 있었다.

        

       당연히, 이 세 사람이 한 행동은 ‘사라’에게 한 행동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이 몸에 먼저 존재하던 인격은 ‘사라’였으니까.

        

       “어, 으, 아…….”

        

       소희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로, 고장 난 듯 그렇게 입만 달싹이고 있었다. 뭐라고 말을 하고 싶기는 했지만, 그게 미처 언어로 완성되지 못한 모양이었다.

        

       “…….”

        

       그리고, 수아는 고개를 푹 숙이고—

        

       “그러니까,”

        

       —있지는 않았다.

        

       “너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사라’가 아니라는 말이야?”

        

       “바로 그 말이야.”

        

       ‘사라’가 간신히 정신을 수습하고 말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몸의 ‘원래의 주인’이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헤엄치는새 님, 후원 감사합니다!

    언제나 저의 소설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가 글을 쓰는 이유는 언제나 누군가가 자신의 글을 읽어주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이렇게 하루에 최소 6천자씩 매일 글을 쓸 수 있는 이유는, 저의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 여러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글을 쓰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나간다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지만, 그걸 혼자서 해나가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입니다.

    만약 저 혼자 한 권의 책을 쓰라고 했다면 저는 그렇게 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오래전에도 몇 번 시도해봤지만 할 수 없었습니다. 누가 읽어줄지, 읽어주지 않을지 알지도 못하는 글을 계속 완성해나간다는 것은 그만큼 외로운 일이니까요.

    여러분의 반응을 볼 때마다, 역시 인터넷에 글을 올리기 시작한 것이 참 잘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도 저의 소설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하는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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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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